나를 먼 곳으로 데려갈 문장

차경희 — 고요서사

단어에는 정해진 뜻이 있지만 나만의 해석으로 또 다른 의미를 담을 수 있다. ‘고요’라는 단어에 그만의 서사가 담긴 것처럼. 특별히 애정을 두는 단어, 문장이 있다면 일상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좋은 문장과 단어는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까. 해방촌의 작은 서점, 들어서는 순간 평온함 힘이 느껴지는 ‘고요서사’에서 그에게 물었다.

언제 와도 차분한 공간이에요. 고요서사엔 요즘 어떤 소식이 있나요? 

코로나19로 손님 방문이 많이 줄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 하는 일들은 늘어서 오히려 바쁜 시기를 지났어요. 다행인 거죠. 작년 말부터는 1년 동안 진행하던 프로젝트들이 마무리되면서 여유 시간이 생겼어요. 그동안 고요서사 운영이 행사나 이벤트에 집중하면서 책 선별에 조금 소홀해진 면이 있어서, 공간 구조를 바꾸거나 책 정리도 새로 하면서 기본을 재정비하는 시간을 보냈어요. 오랜만에 아무것도 없이 쉬어 가는 시간이 늘어서 조금 낯선 일상을 보낸 것 같기도 하고요. 고요서사는 올해로 여섯 해를 넘겨 문을 열고 있네요. 

 

고요서사에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네요. 

지금까지는 주변의 힘을 받아서 책방 운영이 안정적이었죠. 이제 고요서사 자체의 동력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조금씩 변화를 주려고 해요. 

 

시기별로 달라지는 책 동향의 흐름도 자연히 읽히실 것 같은데, 요즘 사람들은 어떤 문장을 필요로 할까요? 

고요서사는 소설, 시, 에세이를 주로 소개하기 때문에 전체 도서 시장의 흐름을 다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서점을 시작할 때는 사람들이 ‘공감’되는 책을 많이 원하고 찾았던 것 같아요. 일상적인 에세이나 우울증 관련 에세이가 인기 있던 게 기억나네요. 그러다가 요즘은 ‘롤 모델’이 되어줄 인물이나 이야기를 원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젊은 작가들의 소설도 일상의 디테일을 살린 소설들이 주목받다가 지금은 여성이나 소수자들이 연대하고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많이들 원하는 것 같아요. ‘공감’이든 ‘롤 모델’이든 기본적으로는 이를 통해 ‘위로’를 얻는 느낌이라는 생각도 들긴 해요.

SNS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죠. 고요서사의 이름은 박인환 시인의 책방 ‘마리서사’에서 나왔다고 했는데, ‘고요’라는 단어에는 어떤 의미가 담겼을까요? 

‘마리서사’라는 이름과 그 서점이 가지고 있던 이야기가 좋았는데, 실제로 책방 운영은 힘들었다고 해요. 결국 일찍 문을 닫았는데, 같은 이름으로 하면 비슷한 운명을 따르게 될까 싶어서(웃음), 한글 중에 적절한 단어를 고르고 있었어요. 그때 20대 초반에 하던 블로그를 오랜만에 다시 열어보니 제목이 ‘고요에 집중’이더라고요. 저한테 고요는 속이 시끄럽고 머리가 복잡한 상태일 때 안쪽으로 침착해지는 마음 상태를 의미한 거였어요. 어쩌면 좋은 책이 주는 역할도 ‘내면의 고요’이지 않을까, 생각이 이어졌고요.

 

여러모로 자연스러운 의미가 담겼네요. 고요서사는 문학 서적 위주로 운영되고 있죠. 판매율을 생각하면 그리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일단 작은 서점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출판사를 다니고 있었어요. 당장 그만두고 뛰어들기에는 준비된 것도 없고 제가 그렇게 추진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 생각만 맴돌고 있었거든요. 집 근처에 ‘책방 만일’이라는 작은 서점이 생겼는데 거긴 인문학 위주로 소개하는 책방이었어요. 그때 사장님과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문학은 잘 팔리지 않아서 입고하기가 더 까다롭다는 이야기를 해주시더라고요. 그때 저는 판매가 힘들다는 건 알고 있지만, 모아서 문학만 내보이는 공간이 있다면 좋아하는 사람들은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제가 출판사에서 편집을 맡았던 분야가 비문학 분야라서 그런지 여가 시간에 읽는 책들은 모두 문학 서적이었기도 했고요. 제가 흥미를 가지는 책을 소개하는 게 맞겠다는 판단에서 그런 선택을 했죠.

문학, 그러니까 소설은 어떤 점에서 좋아해요? 

어릴 때부터 친숙했던 것 같아요. 거리감이 적당해서 편안하고요. 거리감이라는 게, 고통스러운 서사를 접했을 때 인물에 너무 이입해서 함께 힘들 수 있잖아요.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안전한 장치를 두고 읽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학 읽는 걸 시간 낭비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저는 나이가 들수록 사람을 이해하는 눈이 오히려 좁아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대로 살아가려면 다른 사람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면에서 소설은 어쨌든 다른 사람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소설을 찾는 여유, 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힘이 있는 게 진정으로 마음이 건강한 상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실제로 제가 소설이 안 읽힐 때는 제 개인적인 문제에 골몰해 있을 때가 많아요. 

 

좋은 관점이네요. 그래도 서점은 판매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오래 유지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온 걸까요? 

오히려 절망 상태랄까(웃음), 사실 조금 비관적인 마음으로 시작했거든요. ‘생각보다는 괜찮네?’ 하는 마음가짐이 계속 이어졌던 것 같아요. 찾아오시는 분들이 소수지만 아주 큰 힘이 됐고, 애초에 기대치가 없던 상태가 오히려 도움이 된 것 같아요. 희망이 보였던 거죠.

 

‘오히려 좋아’라는 요즘 유행어가 떠올라요(웃음). 손님분들과 정이 쌓이기도 하겠어요.

그렇죠. 실제로 친구가 된 적도 있어요. 서점을 열고 나서 단골손님분들도 생겼고, 쪽지나 엽서처럼 작은 메시지들을 자주 주고받았어요. 

 

아, 편지가 아니라 주로 엽서나 쪽지를 주고받는군요.

편지는 뭔가 작정하고 상대와 나에 대해 써야지, 하는 의무감이 들잖아요. 엽서는 한 장 속에 그 순간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할 수 있어서 훨씬 부담 없이 주고받게 되는 것 같아요. 편지를 쓰다 보면 이상하게 일기처럼 될 때가 있어서(웃음) 열심히 다 쓰고 안 준 적도 되게 많거든요. 받는 사람이 부담스러울까 싶어서요.

종종 전해주지 못한 편지가 생기죠(웃음). 책을 소개받고 싶어요. 문학 작품을 추천해 주실까요? 

워낙 한 가지만 꼽는 일을 잘 못하고 어려워해요. 그래서 비슷한 질문을 받으면 그때그때 떠오르는 책이나 문장을 말하는데요. 지금은 한강 작가의 《희랍어 시간》이라는 소설이 떠올랐어요. 좋은 문장을 딱 하나 고르기 어려울 정도로, 마음에 남는 힘 있는 문장들이 가득한 소설이에요. 소설 자체가 ‘언어’를 말하거나 읽는 행위에 대해 말하고 있기도 하고, 두 인물이 ‘희랍어’라는 언어를 계기로 만나게 되는 이야기가 굉장히 오래 기억에 남아 있거든요. 

 

일상 속에서도 문득 좋은 문장이 들릴 때가 있잖아요. 드라마나 영화에서 발견한 문장들이 있나요? 

며칠 전부터 영화 <해피 아워>(2015)를 보기 시작했어요. 한 번에 보기에는 길어서 나눠 보는 중인데, 30대 후반, 아마도 저랑 같은 나이인 여성 네 명의 이야기라 더 흥미롭게 보이는 것 같아요. 오랜 친구들인 인물들이 서로의 깊은 속사정을 갑자기 털어놓는 장면이 있어요. 친구의 좋지 않은 소식을 갑작스럽게 들은 한 친구가 당황하면서 왜 그동안 말하지 않았냐고 따져 묻는데, “아무도 안 물었으니까 말 안 한 거야. 말하고 싶어져서 지금 말한 것뿐이고.”라고 답을 해요. 요즘 그 장면이 종종 떠오르더라고요. 

 

공감하는 마음일까요? 

평범한 말이긴 한데, 저도 주변 사람들과 인연이 길어지면서 놓치는 부분이기도 하거든요. 모두 그런 경험들이 있잖아요. 너무 가까운 사이라 오히려 말을 안 하게 되어서 서로 서운한 감정이 쌓일 때요. 저 대사를 가만히 떠올려보다가 제 주변 사람들을 떠올리게 됐어요.

우연히 발견한 작은 문장에서 깊은 생각이 이어질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좋은 문장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까요? 

어느 날 서점에서 혼자 음악을 듣는데, 아주 멀리 떠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었어요. 언제, 어디인지 구체적으로 상상된 건 아니지만 왠지 ‘향수’나 ‘그리움’이 느껴지는 느낌도 들었고요. 좋은 문장도 역시 우리를 ‘멀리’ 데려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아까 말한 ‘고요’가 내가 어디에서 무얼 하든 책과 나 둘만 남은 세계처럼 느껴지는 순간을 말하는 건데, 비슷한 이야기 같기도 하네요. 그곳이 어디든지, 우리를 먼 곳으로 데려가는 문장들이 있는 것 같아요.

 

벌써 마지막 질문이에요. 지면을 빌려 기록하고 싶은 문장이 있나요? 

서점을 열 때나 무슨 일을 할 때 되새기는 문장이 있어요.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긴 했지만… 화가 에곤 실레의 편지나 글들을 읽으며 만난 말인데, “나는 나의 훌륭함이 마음에 듭니다.”라는 문장이에요.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이 많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의 훌륭함을 알고 있으며 존중한다는 뜻 같아요. 뛰어난 사람들이나 공간을 보면 괜히 주춤할 때가 있는데, 이 말을 떠올리면 소박한 힘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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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지수

포토그래퍼 김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