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구원한 문장

우연한 몇 줄

우연한 몇 줄

나를 구원한 문장

어쩌다 마주친 몇 문장은 시들어진 마음을 구원하곤 한다. 각자의 눈과 마음이 남겨둔 문장을 그러모으기로 했다.

 

손보미 | 소설가 

“하지만 잠에서 깨어 안도감이 밀려올 때,
그때의 기분은 정말 대단했다.
나는 괜찮은 것이다. 나는 취하지 않았다.
그 전날도, 그 전전날도 취하지 않았다.”

마음에 남은 글귀 시간이 느려진 것 같았다. 지금 이건 꿈인 것 같았다. 처음 술을 끊었을 때 이런 꿈을 많이 꾸었다 몇 달 동안 술은 마시지도 않았지만, 아직도 이따금 술에 흠뻑 취해 망신당할 짓을 하거나 남을 다치게 하는 꿈을 꾸는 것이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 안도감이 밀려올 때, 그때의 기분은 정말 대단했다. 나는 괜찮은 것이다. 나는 취하지 않았다. 그 전날도, 그 전전날도 취하지 않았다. 몇 달 동안은 그랬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꿈일 것이다. 어쩌면 나는 술을 다시 마시기 시작한 것이 아닐 것이다. 잠에서 깨면 헤이즐든의 명상서와 일 년 동안의 금주를 선포하는 동전이 옆에 있을 것이다. (앤 리어리, 《굿 하우스》) 

인상적이었던 이유 앤 리어리의 《굿 하우스》를 읽기 시작했을 때, 저는 이 소설이 그저 하나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화자 젠체하의 톤이 영 거슬렸는데, 어쩐지 ⅓이 지나니 저도 모르게 이 소설에 빠져들고 말았죠. 아마도 그녀의 말투가 자신의 약점을 숨기기 위한 필사적인 위장술이라는 걸 알아차린 이후부터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거의 후반에 나오는 저 문장을 읽었을 때는 약간 가슴이 울렁거렸어요. 저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이 모든 게 꿈이길 바라는 그런 순간. 어떤 시간들을 건너뛰어 버리거나 혹은 제발, 어떤 시간들로 돌아가 모든 실수를 바로잡고 싶었던 순간. 그녀는 술에 취하지 않았을 때는 술에 취하고 싶어서 자신을 속이고, 술에 취했을 때는 그 사실을 잊어버리기 위해서 또다시 자신을 속입니다. 하지만 우리 중 그런 식으로 자신을 속인 경험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아무개에게 추천하기 다른 무엇보다 재미있는 소설이에요. 너무 무겁지 않지만 그렇다고 마음 놓고 손쉽게 읽을 수 있는 작품도 아니에요. ‘삶’이라는 수면 위에서 우아하게 유영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수면 아래에서 얼마나 발버둥을 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거든요. 하지만 무작정 날카롭거나 시니컬하게, 그런 인물들을 조소하는 것도 아니고요. 적당한 냉소와 적당한 유머가 있습니다. 균형감각이 대단한 작품이에요.

작가에게 하고 싶은 말 당신의 다른 책들도 한국에서 번역되기를 간절하게 바랍니다(웃음).

장근영 | 심리학자 짱가

“성격이란 기득권이다.”

마음에 남은 글귀 “성격이란 기득권이다.” 전체 문장은 이렇습니다. “그런 행동을 1년 동안 계속해봐. 그럼 주위에서도 포기해. 성격이란 기득권이야. 저놈은 어쩔 수 없다고 손들게 만들면 이기는 거지.”(오쿠다 히데오, 《공중그네》) 

인상적인 이유 사람 때문에 속을 썩인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왜 나에게 부당한 참견을 하고 간섭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심지어 그 사람이 내가 하는 일에 끼어들어 방해를 하는 지경에 이르자 저 작자와는 같은 하늘 아래서 살 수 없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죠. 그때 저의 고민을 듣던 동료가 한마디 던졌습니다. “결국 배짱 약한 놈이 지는 거죠.” 이 말을 듣는 순간 저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성격이란 기득권이다.’ 누가 먼저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어떤 자리를 선점하면 그게 좀 이상하더라도 결국에는 그 사람의 자리가 되는 거예요. 그러고 나면, 사람들은 그가 하는 행동도 당연하게 인정하게 됩니다. 문제는 처음에, 이상한 자리를 바로 내 것이라고 선언하는 뻔뻔함입니다. 그 뻔뻔함의 바닥에는 배짱이 있겠죠. 물론 이런 배짱은 일부러 만들어낼 수 있는 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자신도 깨닫지 못하면서 이런 배짱을 부려왔을 겁니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각자의 방식대로 다 이상합니다. 하지만 각자 자기는 정상이고 상대방이 잘못되었다고 여기죠.

사회생활을 하며 각자의 이상함이 충돌하는 상황을 겪으면 갑자기 그게 온전히 남의 일로만 여겨집니다. 나도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건 기억하지 못하고, 그저 상대방에 대해서만 어쩌면 저렇게 제멋대로 뻔뻔하게 굴 수 있는지 새삼스레 놀라며 분노하죠. 결국 나도 누군가에게 내 눈앞의 저 개새끼처럼 굴었을 것이고, 그 누군가들은 내 뻔뻔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용납하거나 기겁하고 떠나갔을 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고 나면 어떤 면에서는 배짱이 생기고, 다른 면으로는 겸손해지죠. 

아무개에게 추천하기 남의 시선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스스로 자신을 남의 눈으로 판단하고 옭아매려는 현대인의 성향을 슬슬 건드리는 작가입니다. 이 작가의 소설의 요점은 결국 “뭐 하러 그렇게 피곤하게 살아?”라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각자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거죠. 남을 위해서 사는 게 아닙니다. 내가 좋기 때문에 남과 잘 지내려는 것이고, 그런 마음일 때 정말로 잘 지낼 수 있는 겁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잊기 쉬운 이 원칙을 상기하게 만드는 작가입니다. 

작가에게 하고 싶은 말 당신의 글 덕분에 자신의 의도를 스스로 명확하게 알고 있을 때 문장도, 이야기도 명쾌해진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박은진 | 포토그래퍼

“모든 것이 그럭저럭이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한 그럭저럭이
계속될 것 같았다.
인생이란 게 더 이상 무섭거나
두렵진 않지만 어쩐지 힘이 빠졌다.”

마음에 남은 글귀 그럭저럭 다들 졸업은 했다. 그럭저럭 다들 일도 하고 있다. 그럭저럭 연래 비슷한 것도 하고 그럭저럭 실연 비슷한 일도 겪었다. 그러다 보니 그럭저럭 나이도 먹었다. 모든 것이 그럭저럭이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한 그럭저럭이 계속될 것 같았다. 인생이란 게 더 이상 무섭거나 두렵진 않지만 어쩐지 힘이 빠졌다. 소설 같은 사랑도 없었고 영화 같은 삶도 없었으며, 없고,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위해, 아주 특별한 인생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오로지 노는 일에 열중했는지도 모른다. 내일에 대해 기대하는 일을 그만두기 위해. 희망에 기대는 일을 멈추기 위해. (중략) 따뜻한 물국수를 한 그릇씩 앞에 놓고 드문드문 남은 이야기들을 하다가, 졸린 눈을 부비며 나란히 잠자리에 들던 밤, 아아 그래도 오늘 하루는 괜찮았어, 내일도 괜찮을 거야, 자신에게도 친구에게도 나지막이 타이르던 그때를 떠올리면, 조용하고 소박하게 끓어오르는 멸치국물 냄새가 난다. 어쩌면 우리의 삶이란 여태 그럭저럭이지만, 그것도 그럭저럭 괜찮다.(황경신, <그럭저럭 물국수>) 

인상적인 이유 슬프거나 힘들거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을 때, 음식에 대한 글을 자주 봅니다. 아니, 배가 고파지는 소설이나 에세이를 봅니다. 우울해지면 슬퍼지고, 슬퍼지면 또 화가 납니다. 그런 악순환을 끊어낼 때는 무언가를 입에 넣어주는 게 가장 좋았어요. 억지로 힘을 내어 책장으로 엉금엉금 기어가 표지에 노오란 달걀 프라이가 그려진 책을 꺼내오곤 합니다.

김치밥국, 달걀말이, 스파게티, 라면에 대한 이야기들을 부은 눈으로 천천히 읽어 나가다 보면 항상 배가 고파져요. 덜그럭거리는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가서 가능한 한 따뜻하고 부드럽게 배를 채울 수 있는 걸 찾아서 후루룩거리며 입속으로 밀어 넣고 꼭꼭 씹어서 삼켜버려요. 푸근한 물국수나 청량고추를 푼 라면, 맨밥을 따뜻한 멸치국물에 말아 김치를 올린 것, 주로 이런 것들이죠. 한 그릇을 다 비워내면 수많은 문제가 어쩐지 조금은 아래로 내려와 쪼그라들어 있는 기분이 들어요. 부른 배를 통통 두드리고 책을 가져와 다시 폅니다. 책에 나온 음식들을 훑어보면서 ‘내일은 스파게티 해 먹어야지!’라고 생각하면, 그럭저럭 또 조금 괜찮아진답니다. 

아무개에게 추천하기 황경신 작가는 밥상에서 무덤덤하게 생선 반찬을 밀어주는 친구 같아요. 그걸로 충분해요. 나의 현재 상황과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해결책을 제시하는 친구보다, 그냥 “밥 사줄게.” 하는 친구가 더 고마운 것처럼. 

작가에게 하고 싶은 말 황경신 작가님! 《위로의 레시피》 2권 내주세요. 이왕이면 지난번보다 두껍게 부탁드립니다. 빵과 과자에 관한 이야기도 써주시면 안 될까요?

김나연 | 통번역사&작가

“월급을 받을수록 나는 젊음을 잃는다.
늙어간다. 가능성과 원기를 잃는 것이다.
존재가 가난해진다.”

마음에 남은 글귀 월급이란 젊음을 동대문 시장의 포목처럼 끊어다 팔아 얻는 것이다. 월급을 받을수록 나는 젊음을 잃는다. 늙어간다. 가능성과 원기를 잃는 것이다. 존재가 가난해진다. (이혁진, 《누운 배》)

인상적이었던 이유 유독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생애 처음으로 퇴사를 선언하던 순간이 떠올랐어요. 저는 사유하는 인간으로서의 자아가 사라지는 기분을 견딜 수가 없어 퇴사했어요.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회사가 업무를 배정하고, 관리 감독하고, 평가하는 과정에 의구심이 들 때가 있을 거예요. 입사 2년 차까지만 해도 열심히 질문했죠. 이건 아니지 않나요, 저건 왜 저렇죠, 상부에 건의하면 안 되나요? 하지만 일에 치이고 삶에 치이다 보면 결국 이의를 제기하는 일도 힘에 부쳤어요. 회사의 업무 처리 방식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하면 전엔 보이지 않던 것이 눈에 들어오고, 그런 삶은 피곤하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서서히 의심하기를 그만뒀어요. 이유도 모르는 채 눈물 바람으로 출퇴근하는 날이 잦아졌고 회사에선 말을 뱉는 날보다 말을 삼키는 날이 많아졌지요. 통장 잔액이 늘어날수록 저는 줄어들더군요. 

아무리 모르는 척을 해도 때때마다 북받치는 설움까지 외면할 순 없었어요. 아무 데서나 쉽게 희석되고 묻혀버리는 자아를 되찾고 싶었어요. 하지만 야근이 잦은 회사에서 자아를 찾는 일은 불가능해 보였죠. 결국 자아를 찾으려면 우선 내 ‘시간(젊음)’부터 되찾아야 했습니다. 급여명세서를 마흔 장쯤 받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았고요. 노동력이 아니라 내 시간(젊음)을 팔아 돈을 벌고 있었던 거예요. 회사를 나와 다시 학생으로, 프리랜서로, 또다시 직장인으로 살아보니 어디에 소속되어 무슨 일을 하든 시간을 팔아야 먹고 살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대신 요즘은 시간을 팔아 번 돈으로 다시 시간을 사고 있어요.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 어차피 시간을 팔아 살아야 할 운명, 기왕이면 배가 부르든, 배가 고프든, 존재를 잃지 않는 소크라테스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무개에게 추천하기 회사 생활을 하는 동안 조직 체계의 모순에 대해 고민해 본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어요. <누운 배>는 중국 내 한국 조선소에서 진수식까지 끝낸 배가 기울어지며 시작하는 이야기예요.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소재도 묘사하는 주인공이 맡은 업무 내용도 다소 낯설지만, 결국 사용하는 단어만 다를 뿐 여느 회사 업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어요. 회사 생활을 하는 동안 균형이 어긋난 몸처럼 마음 한 켠이 계속 뻐근했는데, 《누운 배》는 비슷한 통증을 겪은 환자들의 증상과 예상 원인을 상세하게 기록한 진료기록부 같아요. 물론 통증이라는 게 원인을 안다고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고통은 그 원인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 있을 만한 아픔이 되죠. 이 책 덕분에 원인 분석에 쓸 시간을 벌었다면 이제 해결책을 찾아볼 수 있을 거예요. 

작가에게 하고 싶은 말 이혁진 작가는 실제로 조선소에서 근무하며 자신이 ‘보고 겪은 것에 기초를 두고’ 책을 썼다고 해요. 조직 사회의 모순을 세밀하게 묘사해낸 작가 덕분에 저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자주 진저리를 쳤고, 숨이 막혔어요. 그리고 이런 글을 쓰고 싶어졌어요. 번역이든 창작이든, 제가 글쓰기를 통해 도달하고 싶은 목표점은 그런 곳이에요. 찰나의 순간, 비틀어진 일상의 틈을 기민하게 포착하고 무한에 가깝게 확장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리하여 세상의 미묘한 어그러짐을 정확히 짚어낼 수 있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쓰는 것. 작가님, 앞으로 쓰실 모든 작품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승목 | 제품 디자이너

마음에 남은 글귀 전란으로 내 그림은 다 없어지고 말았다. 내 생애 전반의 역사는 없어지고 만 셈이다. 범범凡凡 이하인 내가, 그 새파란 애송이가 했으면 무어 대단했겠는가마는 라파엘이나 고호로 치면 나는 벌써 벌써 죽어버렸을 나이 아닌가. 이 천재적인 위대한 예술가들을 들어 나와 비교한다는 것은 본시가 되어 먹지 못한 소리나 여기서는 단지 그들의 나이만을 인용한 것이다. 하여튼 내 그림은 내가 아끼는 수밖에 없다. 나는 그래도 내 그림이 귀엽다.(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인상적인 이유 김환기 화백이 글에서 꼭 말하고 싶던 한마디는 “나는 그래도 내 그림이 귀엽다.”라고 생각해요. 저는 화가는 아니지만, 그리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 정도는 될 것 같습니다. 종종 정성스럽게 그은 선 하나를 보면 다시는 못 그릴 것처럼 유일하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반면, 정이 가지 않는 선들도 있죠. 위 글귀를 보면 김환기 화백은 모든 그림에 정성과 애정을 쏟았다는 게 느껴집니다. 정성스럽게 그린 선들에 대한 칭찬을 받는 기분이면서도 스스로 반성하게 만드는 글이었어요. 아무개에게 추천하기 김환기 화백의 에세이를 읽으면 고흐가 동생에게 남긴 편지들이 생각나요. 두 글의 공통점은 시를 읽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표현이 낭만적이고 풍부하다는 거예요. 이 에세이를 화가의 관점에서 쓴 시를 읽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작가에게 하고 싶은 말 감사합니다. 그림과 글 모두.

신지수 | 임상심리사

마음에 남은 글귀 안 웃긴데 일부러 웃지 않게 도와주세요. 안 좋은데 좋다고 말하지 않게 해주세요.(이슬아, 《일간 이슬아 수필집》) 인상적인 이유제가 매일 모든 날, 웃기지도 않은 상황에서 일부러 웃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 문장을 보고 알았어요. 평소에도 웃는 모습이 요란한데, 웃기지 않는 상황에서의 웃음은 더 과장된 모양새였죠. 안 좋은데 좋다고 말하거나, 좋은데 좋지 않다고 말하는 일도 빈번했어요. 일련의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어그러지며 떠올랐고 잠깐 역겨운 감정이 들더니 곧 해방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아, 웃기지 않으면 웃지 않아도 된다. 좋지 않으면 좋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 타인에게 유순하고 바보처럼 보이는 것이 그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배려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았던 거예요.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과도하게 친절한 사람으로 길러진 것 같아요. 아무개에게 추천하기 건강한 방식으로 자유를 만끽하는 사람을 관찰하기 드문 세상에서, 좋은 모델을 만나볼 수 있었어요. 작가에게 하고 싶은 말 수동적인 인간으로 살아가지 않을 수 있도록 기도 내용을 들려주어 감사합니다.

고신형 | 영화 컴포지터

마음에 남은 글귀 사랑이라 불러 아름다웠던 날들도 있었다 / 봄날을 어루만지며 피는 작은 꽃나무처럼 / 그런 날들은 내게도 오래가지 않았다 / 사랑한 깊이만큼 / 사랑의 날들이 오래 머물러주지는 않는 거다(류근, <나에게 주는 시>) 인상적인 이유 책을 읽을 때 독자 자신의 상황만큼이나 그 책을 읽는 장소나 분위기도 영향을 많이 주는 것 같아요. 주로 자기 전 머리맡에 읽고 싶은 책을 한꺼번에 쌓아두고 손이 가는 책을 읽는 편인데, 최근에는 이 시집이었어요. 겨울이고, 연말이고, 게다가 밤에 읽어서 그런지 마음 한편이 휑하여 이 시뿐만 아니라 시집에 담긴 거의 모든 시가 마음을 울리더라고요. 아무개에게 추천하기 Y에게. 거의 모든 시에서 떠올리게 되었는데 거의 모든 것에서 여전히 생각나지만 축시를 읽을 때처럼 이제는 괜찮다고, 말하고 싶어. 작가에게 하고 싶은 말 꼭 사랑하던 누군가가 아니더라도, 살아 있던 모든 것에 그리움이 사무쳐 그것들을 너무 사랑하던 내 자신에게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고 축약해놓은 글로 어루만져주는 시집을 써주어서 고맙습니다.

조한나 | 수페르가 VMD

마음에 남은 글귀 우리는 공간을 채우느라 공간을 잃는다.(도미니크 로로, 《심플하게 산다》) 인상적인 이유 퇴근 후나 주말에 집안일을 하면서 짜증이 났어요. 청소기를 돌려도 바닥에 물건이 걸려서 자유롭게 돌리질 못하고, 빨래가 너무 많아 세탁기를 두 번이나 나눠서 돌렸죠. 내가 필요해서 산 물건들이 나를 더 피곤하게 한다는 걸 느끼면서, 꼭 필요한 것만 남겨놓고 공간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고 싶어요!(쩌렁쩌렁) 아무개에게 추천하기작가는 미니멀 라이프에 관해서 공간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까지 정리하는 법을 알려줘요. 물건에서, 공간에서, 스트레스까지, 자신을 괴롭히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싶은 사람이라면 가볍게 읽기 좋을 것 같습니다. 작가에게 하고 싶은 말 당신이 알려준 것의 10분의 1만이라도 이뤄내고 싶어요. 이뤄내겠습니다…… 커밍순….

한지영 | 시드니에서 행복하게 장사 중

마음에 남은 글귀 우리는 자신의 고요한 호흡을 느낀다. 그리고 그 리듬에 맞춰 마음마저 고요해진다. 이런 느긋하고 부드러운 순간 속에서 어떤 평화로운 감정 같은 것이 솟아올라 지금 벌어지는 모든 일들, 소리들, 색깔들, 호흡의 동작들, 심장 박동, 흘러가는 생각들 모두를 하나로 이어준다. 우리는 이렇게 평온한 마음 상태로 서서히 진입한다. 우리는 이런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순간들이 더욱 강렬하고 소중하다.(크리스토프 앙드레, 《괜찮아, 마음먹기에 달렸어》) 인상적인 이유 새로운 모험에 대한 두려움과 긴장감을 안고 레스토랑 오픈 후, 40일 정도를 지날 즈음 처음으로 온전한 휴일을 갖게 되었어요. 수영장 앞 잔디에 누워 책을 읽어내려갔는데 딱 내 상황 같았죠. 평온함에 대한 묘사들 그리고 이 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하지만 끝날 거란 걸 잘 알아서 더 소중함을 느끼던 그 순간까지. 아무개에게 추천하기 엄마가 힘들 때 읽으라며 가방에 넣어줬는데 챕터별로 마음 수련에 대한 좋은 조언들이 많아요. 타지 생활이 외롭고 힘들 때 한 번씩 꺼내보면 좋더라고요.

 

하준호 | 대학생·포토그래퍼

마음에 남은 글귀 걸으면서 구상하는 사람은 얽매인 데가 없어 자유롭다. (중략)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도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저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기만 하면 된다. 그의 사유는 어떤 움직임으로부터, 어떤 충동으로부터 생겨난다. 그의 사유에서는 육체의 유연성과 춤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그의 사유는 육체의 에너지와 도약을 고정시켜 표현한다. (중략)사물 그 자체만을 생각한다. 그것은 오랫동안 연이어지는 실연이 아니라 경쾌하고 심오한 사유다.(프레데리크 그로,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인상적인 이유 군 생활이 끝나갈 쯤에 이 책을 읽었어요. 군에서는 단독 행동과 목적 없는 행위 모두 용납이 되지 않기 때문에, 혼자 산책을 나가는 일 역시 불가능했죠. 목적 없는 산책의 즐거움을 잊고 살다가 오랜만에 깨닫게 해준 글이라 독서 노트에 적어놓았어요. 아무개에게 추천하기 눈에 보이는 세계, 혹은 목적을 위한 이동에 지친 사람에게 좋은 지침서예요. 물론 아무 의미도 이익도 바라지 않고 읽어야 합니다. 작가에게 하고 싶은 말 작가님이 김연수 소설가와 대담하게 된다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웃음).

정세랑 | 소설가

마음에 남은 글귀 예외적인 삶은 예언적인 삶을 포함한다.(구병모, <오토포이에시스>) 인상적이었던 이유 복잡하게 아름다운 진실을 포착해내는, 구병모 작가의 시선이 느껴지는 문장이어서 좋았어요. 아무개에게 추천하기누구보다도 가장 멀리, 다른 방향으로 걸어나가는 작가라고 추천하고 싶어요. 작가에게 하고 싶은 말 어떻게 그렇게까지 좋은 글을 쓸 수 있으신지 늘 감탄하고 있어요!

테이커 | 랩퍼

마음에 남은 글귀 “위녕, 넌 참 이쁘고 좋은 아이야. 언제든 그걸 잊으면 안 된다.” 내 머리를 쓰다듬는 엄마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엄마가 내게 준 사랑의 열쇠는 바로 이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해준 것 말이다. 엄마는 내게 그 열쇠로 세상의 문을 열라고 말했다. 나는 그러고 싶었다. 아저씨의 차에 타고 나는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엄마가 두 동생들과 함께 서서 손을 흔들었다.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비로소 내가 온전히 혼자라는 것을, 그리고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공지영, 《즐거운 나의 집》) 인상적인 이유 혼자를 말하는 순간, 그제야 함께를 말할 수 있다. 아무개에게 추천하기 가족들과 사이가 데면데면한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요. 가족들 사이에도 충분히 풀어야만 하는 오해와 와해시킬 경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그때, 우리는 사랑할 수 있습니다. 작가에게 하고 싶은 말 세 번 읽었어요, 작가님.

정연우 | 일러스트레이터

마음에 남은 글귀 선미가 우남을 일으키더니 발등 위에 올라왔다. 처음은 아니다. 우남은 막 씻고 나와 아직 젖은 느낌이 나는, 가볍고 하얀 선미의 발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특별히 발 때문에 결혼한 것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부분을 매일 발견하는 건 즐거운 일이다. 아내를 발등 위에 싣고 춤추기 시작했다. “하와이. 하와이 가고 싶어. 못 가봤어. 내년쯤 데려가줘.”(정세랑, 《피프티 피플》) 인상적인 이유 돌아가신 아빠가 생각났어요. 딱히 부모님이 선미와 우남 같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모습이 너무 다정하잖아요. 너무 다정하면 눈물 나잖아요. 그게 꼭 아빠 같아서. 아빠 생각이 났어요. 아버지 말고, 아빠요. 아무개에게 추천하기 《피프티 피플》 안에 담긴 에피소드를 읽다 보면 삶이 안온하게 느껴져요. 이렇게만 살아도 충분할 것 같고, 딱히 고군분투하지 않아도 될 것만 같고. 그게 마냥 지금 게을러져도 된다는 말이 아니에요. 너무 조급해하거나 마음 쓰지 않아도 된다는 자기허용인 거죠. 작가에게 하고 싶은 말 작가님. 더 많이 써주시죠(엄근진).

도우리 | 프리랜서 칼럼니스트

마음에 남은 글귀 어떤 사람을 존엄한 존재로 대우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자기 인생의 자율적인 형성 주체, 말하자면 작가로서 존중함을 의미한다.(김원영,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인상적이었던 이유 아무리 생각해도 저의 어려운 집안 형편, 예쁘지 않은 외모, 애매한 능력, 크고 작은 실패들은 온전한 결점이자 손해였어요. 하지만 이 문장을 만난 순간, 그것들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이야기를 엮는 독특한 구슬들로 바뀌었죠. 아무개에게 추천하기 인스타그램에 열심히 보정한 사진을 올렸지만 ‘좋아요’ 숫자가 기대보다 적을 때, 그런데 먼 친구는 몇 백 개의 ‘좋아요’가 찍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때. ‘그래도 인생에는 우열이 있고, 직업에도 귀천이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 그래서 막연한 위로가 아닌 든든한 변론이 필요할 때 권하고 싶은 책이에요. 작가에게 하고 싶은 말 이 책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자연 | 《AROUND》 매거진 에디터

마음에 남은 글귀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이 많다. 함께 불렀던 노래, 아무렇게나 엉켜서 잠들었던 밤들, 만여 명의 재학생과 졸업생이 휴대전화 조명을 켜고 밤의 캠퍼스를 행진했던 일. (중략) 그 여름의 일들이, 성과가 더 많이 언급되면 좋겠다. 인정받으면 좋겠다. 취업의 관문으로 전락한 대학이 여전히 지성과 정의의 장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도, 여성들의 성취가 평가절하되는 관행을 더 이상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작은 승리의 경험이 더 큰 질문과 도전을 가능케 한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휴대전화 바탕화면에 새로운 문구를 적어넣었다. ‘나는 강하다. 우리는 연결될수록 더 강하다.’(조남주, 《그녀 이름은》) 인상적인 이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잊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이화여대의 현수막에 적혀 있던 문구로 대신하고 싶어요. “이곳이 바로 미래의 근현대사 첫 페이지.” 아무개에게 추천하기 지난 2018년은 서로가 서로의 용기를 증명해준 해라는 생각이 들어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모두 실재합니다. 일면식 없어도 온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는 모든 자매들에게 추천합니다. 작가에게 하고 싶은 말 덕분에 별것 아닌 것처럼 여겨지던 것들이, 별것이 되었습니다.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요. 우리 모두가 작가님을 지켜드릴 거예요. 우리 모두가.

김수빈 | 싱어송라이터

마음에 남은 글귀 남자인 그들은 유죄임이 증명되기 전까지는 모두 무죄다. 하지만 여자인 나는 다르다. 나는 정직함이 증명되기 전까지는 거짓말쟁이다.(루이스 오데닐, 《Asking for it》) 인상적이었던 이유 화자가 처했던 상황이, 한국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환경이, 저 글귀 한 문장으로 설명 가능했기 때문이었어요. 아무개에게 추천하기 나와 성별이 다른 사람에게 추천 후, 나와 너의 옆자리에 앉은 저 여자, 학교 동기, 회사 선배가 겪은 일이라고 전해주고 싶어요. 작가에게 하고 싶은 말 우리나라엔 수십만 명의 엠마가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유죄가 아님에도 주홍글씨를 달고 살아가며, 본인을 숨기고 해명하죠. 반면 그들에게 주홍글씨를 남긴 가해자들은 숨어서 살지도 않고, 해명하지도 않아요. 당신의 책이 우리말로 번역되고 출판되어서 우리나라 가해자들이, 모두 저 문구를 읽었으면 좋겠어요!

김혜린 | 대학원생

마음에 남은 글귀 찾아 나선 것도 아니었지만/ 끝내 발 디디며 서 있는 땅의 끝,/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위태로움 속에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는 것이/ 땅끝은 늘 젖어 있다는 것이/ 그걸 보려고/ 또 몇 번은 여기에 이르리라는 것이(나희덕, <땅끝>) 인상적이었던 이유 정말 슬프게도 이 시는 제 삶의 단면이자 도피처라고 생각해요. 제 삶은 단어 그대로 시험이라고 할 수 있어요. 대학 입학시험, 대학원 입학시험, 변호사 시험. 하나를 넘으면 더 큰 하나가 제 앞에 놓여있어요. 성취를 맛볼 새 없이 다음 전쟁을 위한 긴장감밖에 못 느꼈어요. 결국 원하는 곳을 향해 가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안했지만 항상 벼랑 끝에 내몰린 기분이었지요. 수능이라는 벼랑에서 만난 시가 이 시였어요. 교과서에 수록된 이 시를 읽는데 눈물이 후드득 떨어지더라고요. 얼마 뒤 고등학교로 나희덕 시인이 강연하러 오셨어요. 그분을 만난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다가 강연 끝나고 그분을 붙잡고 물었어요. “땅끝은 왜 젖어있냐”고요. 그분께선 “땅끝은 바다로 연결되잖아요” 한 마디만 남기고 떠나셨어요. 그때의 공간과 시인의 목소리는 6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아요. 아무개에게 추천하기 읽고 읽다 보면 길 가다가 문득 이해하게 되어버리는 진하고 질긴 문장들을 읽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작가에게 하고 싶은 말 당신의 시가 말하는 것처럼 어느 순간 고개를 내려보면 땅끝에 닿아있는 저를 발견하곤 합니다. 당신을 만났을 때의 땅끝을 지나 저는 바다를 헤엄치고, 광활한 육지를 건너 다시 새로운 땅끝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벼랑을 만날 때마다 당신의 시가 생각납니다. 매번 반복해서 마주하는 땅끝이지만 왜인지 익숙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때마다 당신의 시는 제게 바다로 뛰어내릴 수 있는 동아줄이 되어줍니다.

김예슬 | 기업교육 인턴 

마음에 남은 글귀 사실 페트로니우스보다 미숙한 애는 시프리안밖에 없었다. 그러나 페트로니우스는 그걸 입고 싶지 않았다. 소년들은 그것이 끔찍하고 불편하며 페니스를 그 바보 같은 상자 속에 억지로 밀어 넣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오줌을 눌 때 특히 불편했다. 먼저 페호를 고정시키는 허리띠를 풀어야 한다. 허리띠는 치마 아래에 단단히 묶여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특히 처음에는 더듬어 찾아야 한다. 허리띠는 보통 너무 단단해서 피부를 파고 들었다. 더군다나 페호가 밖에서 자유롭게 달려 있도록 아귀를 치마에 꿰매야 했다. 어떤 사람들은 페호가 알레르기를 일으킨다고 말했으나 다른 사람들은 그것은 재료에 달린 문제라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페호를 자랑스러워했다. 예를 들어 발드리안은 페호를 입으면 정말 매력적으로 보였다.(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이갈리아의 딸들》) 인상적이었던 이유 이 글귀는 제가 평소에 가졌던 의문과 불편함을 잘 나타내줘요. 저는 평소에 브래지어를 거의 하지 않아요. 브래지어 착용은 불편하고 혈액순환에 좋지 않으니까요. 한번은 ‘왜 여성은 갑갑한 브래지어를 착용해야 할까?’, ‘왜 여성의 가슴은 가려야 하는 대상이 되었을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종종 가슴의 모양이 예뻐 보이기 위해 자발적으로 브래지어를 착용한다는 분들을 보기도 해요. 그런 말을 들으면, 여성들이 건강에도 안 좋은 브래지어를 ‘왜’ 스스로 착용하게 되었는지 돌이켜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아무개에게 추천하기 사회가 규정한 성별의 모습을 뒤바꾼 소설이기에, 현재의 여성과 남성이 어떠한 모습과 생각으로 살아가는지 리얼하게 볼 수 있습니다. 작가에게 하고 싶은 말 1977년에 출판되었지만, 2018년에 사는 사람으로서 이 책을 읽으며 이질감을 느끼지 못해서 너무 슬펐습니다. 50년 뒤에 태어나는 사람은 이 책의 내용을 읽었을 때, 이질감을 느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장인영 | 출판사 편집자

마음에 남은 글귀 외로움이 나이를 먹고 늙으면 쓸쓸함이 되는 걸까? 외로움이란 단어 말고 쓸쓸함이라는 단어에는 세월의 더께 같은 것, 오래되고 쿰쿰하고 약간은 궁상맞은 땀내 같은 것이 배어 있는 듯했다.(공지영, 《해리》) 인상적인 이유 텍스트를 자주 보는 직업 특성상 집에서 책 읽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어요(웃음). 하지만 《해리》를 사서 집에 오던 길은 달랐죠. 꼭 이 책을 읽고 싶어서도 있지만, 더 이상 침대 위에서 유튜브나 SNS를 하며 쓸쓸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어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느끼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단지 주변에 가족, 혹은 친구나 연인이 없어서는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쓸쓸함에 가까워서 위 문장에 위안을 받은 건지도 모르겠네요. 아무개에게 추천하기 무진은 늘 안개에 싸인 도시로 보여요. 뚜렷하지 않고 흐릿한, 해결되지 못하고 모두 침묵하고 있는 상태인 거죠. 그런 의미에서 공지영 작가는 무진을 사랑하는 작가예요. 《도가니》 때도 그랬고, 이번 신간 《해리》도 마찬가지예요. 처음 《도가니》가 출간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 시설에 대한 문제를 인지했고, 실제 수사가 이루어지면서 시설 관계자들은 처벌을 받았잖아요. 이번 소설도 마찬가지예요. 첫 페이지부터 작가는 ‘이 책은 사실을 기반하지 않은 허구’라고 기재했지만, 사실은 어디에나 있는 현실을 적었다고 생각하거든요. 만약 세상에 존재하는 부조리와 타락을 전면에서 마주하고 싶다면 공지영 작가의 책들을 추천합니다. 마치 영화를 보듯 빨리 읽게 될 거예요. 작가에게 하고 싶은 말 우리 주변에는 누구도 들춰내기 싫은 어둠들이 존재합니다. 앞으로도 작가님의 소설로 더 많은 부조리와 상처를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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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자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