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걷는 산책자들

한수희·정다운·한승재

10년째 쓰고 있습니다

한수희

그 무렵 나는 30대 초반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전의 이야기다. 한숨이 나올 정도로 낡고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추운 단독주택에서 어린 아이 둘을 키우며 미래에 대한 불안과 가난의 공포에 반쯤 실성해가고 있던 때였다.

이렇게 무너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 그런데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구립 도서관에 갔다. 책을 고르고 빌리는 동안 운 좋게 아이가 잠이 들면 도서관 옆 공원에 유모차를 세우고 벤치에 앉아 책을 읽었다. 아이가 잠에서 깰까 조마조마하며 몇 시간이고 책에 빠져 있던 기억이 생생하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어디든 갈 수 있었다.

그렇게100권쯤 읽고 나니 뭔가 토해내고 싶어졌다. 하지만 진짜로 토할 수는 없으니 블로그에 열심히 글을 써서 토해냈다. 아이들 이야기도 쓰고, 책 이야기도 쓰고, 영화 이야기도 쓰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싫어하는 것들과 생각하는 것들을 마구 썼다. 아는 사람들이나 들어와서 읽는 블로그였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썼고, 그래서 지치지 않을 수 있었다.

몇 년이 지났을 때 AROUND 매거진의 기자라는 사람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그가 내 블로그를 재미있게 보고 있었다고 했다. AROUND에 책과 영화 칼럼을 쓸 사람을 찾고 있는데, 일단 한 달만 같이 해보자고 했다. 나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다.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여전히 다음 달에도 청탁이 들어올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준비도 하지 않는다. 연락이 오면 그제야 성실한 청부업자처럼 몸을 일으켜 준비를 시작한다, 고 쓰지만 준비해야지, 준비해야 하는데, 하고 생각만 한다. 그러다가 마감일이 닥쳐오면 으악, 이러면 안 돼, 하고 영화를 찾고 책을 찾은 후 또 넋을 놓고 있다. 그러다가 진짜 마감일이 닥쳐오면 으악, 이러면 안 돼, 하고 쫓기듯이 원고를 쓰기 시작한다. 그렇게 9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 9년 동안 나는 어떤 인간이 되었을까? 많은 일이 있었다. 원고를 쓰는 동안 내 무릎 위에 올라앉고 내 발목을 붙잡고 매달리던, 옆자리에 앉아 높은 목소리로 이상한 퀴즈를 끝도 없이 내던 아이들이 이제 10대 중반이다. 그 애들이 방문을 닫고 하루 종일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달라진 점일 것이다. 기적 같은 일이다. 드디어 나는 그 시절 그토록 꿈꾸던 자유를 얻은 것이다.(그리고 아이들의 방문 너머에서 어둠의 기운이 스물스물 새어나오고 있다. 10대 자녀를 키우기 위해서는 항마력 비슷한 것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그동안 내 칼럼의 담당 기자는 가만 있자, 6명쯤 바뀌었다. 그러니까 나는 용역인 채로 얼떨결에 AROUND의 역사를 가장 오래 함께한 사람들 중 하나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건 행운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 당시 AROUND의 기자 이혜인씨가 굳이 내 블로그를 보고 있었을 이유가 뭐란 말인가. 그 당시 책과 영화 칼럼을 쓸 사람이 없었을 건 또 뭐란 말인가. 그리고 얼마 후, 딱히 실을 컨텐츠가 없던 네이버가 내 칼럼을 메인 화면에 연속적으로 노출시켜준 덕에(이것도 운) 나는 아주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건 내가 쓴 글들에 달린 댓글들이었다.

잡지에 매달 글을 쓴다는 것은 안개가 잔뜩 낀 호수 너머를 멍하니 바라보며 혼잣말을 하는 일이나 비슷하다. 누가 내 글을,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이 쓴 글을, 한 달이 지나면 가치가 없어질 잡지의 가장 마지막에 실리는 글을, 어쩌면 구색 맞추기에 불과할 책과 영화에 대한 정기적인 칼럼을 읽을 거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 제대로 하고 있는지조차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저 다음달에도 청탁이 들어오는 것만으로 ʻ아, 내가 완전히 망치지는 않았구나’ 또는 ʻ아직 사람을 못 구했나?’ 하고 조마조마해할 뿐이었다.

그러니 그 댓글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겠는가? 그 글들을 읽으면서 나는 비로소 호수 너머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그 누군가가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놀라웠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좋은 댓글이 대부분이었지만(세상은 아름다워!) 간혹 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것조차도 놀라웠다. 이 사람, 내가 쓴 글을 읽기는 읽었구나. 그렇게 싫으면 읽다가 말면 될 텐데, 그냥 나가면 될 텐데, 굳이 로그인까지 해서 댓글을 달다니 당신, 사실은 나를 좋아하는 거 아니야? 애정과 증오는 한 장 차이라는데 당신, 사실은 날… 아니, 여기까지만 하자.

아무튼 그때부터 나는 독자라는 존재를 인지하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독자가 있다. 내가 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경기도의 변두리 동네의 낡고 추운 집에서 아이 둘, 그리고 불안한 미래와 사투를 벌이고 있던 한 여자에게는 천지개벽과도 같은 변화였다. 그렇게 독자들의 존재를 인지하면서 나는 조금씩 ʻ작가’라는 사람이 되어갔다. 독자가 있기에 작가가 있고, 작가가 있기에 독자가 있다. 그리고 작가는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다. 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모른다. 오로지 그것만 알고 쓴다.

오랫동안 한 잡지에 칼럼을 쓰다 보면 소재 고갈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된다. 매달 두 개의 칼럼을 상당한 분량으로 써내느라 매번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요즘은 두 달에 한 개의 칼럼인지라 전보다는 여유가 있기는 하다. 뭐 어쨌든 다행히도 나에게는 소재 고갈의 위험은 없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내가 차마 다 챙겨볼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책들과 영화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여건이나 재능의 한계로 불가피하게 좋지 못한 글을 쓸 때도 있지만, 칼럼을 쓰는 일 자체가 지겹거나 버거워질 일도 없다. 왜냐하면 나는 어떤 책이나 영화도 나 자신의 이야기에 빗대어 바라보기 때문이다. 자랑이 아니다. 나 자신의 이야기에 빗대어 보아야만, 나 자신이라는 필터를 통과해야만 겨우 겨우 그 책과 영화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내가 멍청하다는 말이다. 뭐 어찌 됐든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말할 때 가장 즐겁고 자연스럽지 않은가? 내 생각은 그렇다.

그래서 칼럼의 주제가 뭐든, 책과 영화의 주제나 소재나 장르가 무엇이든 나는 그 시점에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쓴다. 그렇게 쓴 것이 어떻게든 나중에는 주제와 연결이 된다는 점이 신기한데, 따지고 보면 별로 신기할 것도 없는 것이 세상 모든 것들은 사실 다 연결이 되어 있답니다, 여러분. 아니, 사실은 세상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 있다고 우기는 뻔뻔함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나의 이야기를 쓴다.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 쓴다. 내가 사는 세계에 대해서, 내가 발견한 것들에 대해서 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내가 사는 세계에는 이미 너무나 많은 것들이 있어서, 심지어 매일 새로운 것들이 수도 없이 태어나서, 그것들에 대해서 다 쓰려면 매일 글만 써도 모자라다.

그러니 세상을 더 천천히, 촘촘히 바라보는 일이 중요하다. 그리고 천천히, 촘촘히 바라보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나는 다른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내가 무심하게 넘겨보았던 것들을 볼 줄 아는 사람들,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 나는 잠시나마 내가 아닌 사람이 되어 그들의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본다. 다른 사람의 눈으로 나의 세상을 바라보는 일, 그에 대한 표현을 얼마 전에 읽은 책에서도 발견했다.

내가 타인을 보는 곳 말고 타인이 나를 보는 곳으로 가기, 거기서 내 눈을 버리고 타인의 눈을 얻기, 그리고 마침내 그 타인의 눈으로 나를 보게 되기. 이러한 ʻ관점의 이동’을 통해 그녀는 실연의 상태와 단절한다. –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9년 전의 나는 많은 것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른 나이에 암에 걸려 죽는다든가, 아이들이 유괴를 당한다든가, 하다 못해 집에 불이 나거나 지진이나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게 아닐까 전전긍긍했다. 가장 무서운 일은 쫄딱 망해서 집도 절도 없이 길바닥에 나앉는 것이었다. 그런 일들이 너무 무서워서 새벽마다 악몽을 꾸고 깨어나 아침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 적도 많았다.

그러나 나는 9년의 세월을 살아남았다. 죽지도 미치지도 망하지도 않고 그냥저냥 살아남았다. 그 9년 동안 나는 거의 매달, 그리고 두 달에 한 번씩 AROUND 매거진에 칼럼을 썼다. 어쩌면 그 일이 9년 동안 나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는지도 모른다. 칼럼을 쓰기 위해서 나는 수많은 책과 영화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경청했고, 때로는 이 책과 영화가 내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여러 번을 보고 또 봐야만 했고, 그러면서 어렵게나마 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눈을 빌릴 수 있었다. 그 눈 덕분에 나는 내가 갇힌 좁은 세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지난 시간을 버텨올 수 있었다.

세상은 늘 새롭다. 자기 전에는 조금 지겨웠던 세상이 자고난 후에는 다시 새것처럼 반짝인다는 사실이 매일 놀랍기만 하다. 사랑하는 작가 사노 요코의 말대로 사는 것이 너무 즐거워 그만 둘 수 없다. 사는 날까지 사는 것을 즐거워 하고 싶다.

만약 내가 10년 전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10년 전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나는 젊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걱정하지 마. 걱정할 거 없어. 넌 10년 후에도 여전히 살아 있을 거고,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어. 너도 망하지 않았어. 어차피 다 운이야. 그러니까 쫄지 말고, 그냥 즐겨.

이 세상을.

함께한 처음들

정다운

첫 청탁

처음 《AROUND》와 인연을 맺은 건, 2013년 9월. 6개월간의 남미 여행을 마무리하고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당시 《AROUND》 에디터였던 J에게 연락을 받았다. 9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그 연락을 받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분당 미금역 근처였고, 여행 가기 전에 다니던 회사의 친구들을 만나러 가던 길이었다. 친구들에게 《AROUND》에서 기고 요청이 왔다고 했더니 “《AROUND》 요즘 잘 나가는 잡지야. 잘됐다􏚅”라고 손뼉 치며 말해주었다. 그때 나는 직업이 없었고,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나 고민이 깊던 때였다. 꿈은 작가였다.

언제부터 작가라는 꿈을 꾸기 시작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한글을 익히기 시작하면서부터 글자 읽는 걸 좋아했다. 독서가 제일 재미있던 10대가 보기엔 작가가 가장 멋져 보였고 막연하게 작가라는 직업을 선망했다. 하지만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니까. 좋은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대학교에 들어갔고, 회사에 입사했다. 학창 시절 공부 잘한 모범생이 선택할 수 있는 범주 안에서 지극히 평범한 인생을 살았다. 그러다 어느 날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장기 여행을 떠났다.

무턱대고 여행을 떠난 건 아니다.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면 원래 하던 일과 비슷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럴 계획이었다. 하지만 마음속엔 남들에겐 말하지 못한 작은 꿈을 품고 있었다. 무사히 이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여행 에세이 책을 내고 싶다는 꿈.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이 여행이 내가 작가가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할 때 작가란,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한 사람이거나,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 혹은 남들에 비해 생각이 유달리 깊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딱히 상상력이 풍부하지도 생각이 깊지도 않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떠나는 남미 여행은 제법 특별한 경험이 아닐까? 이건 책을 쓸 수 있는 이야기일지도 몰라. 그렇게 나는 작가가 꿈인 학생, 작가가 꿈인 회사원 시절을 지나 작가가 꿈인 여행자가 되었다.

하지만 막상 여행을 시작하고 많은 여행자를 만나면서 그 꿈을 다시 고이 접어 넣었다. 길 위에는 정말로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고, 특별한 줄 알았던 나는 그들 사이에서 다시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런 내가 하는 여행은 당연하게도 지극히 평범했다. 고작 이 정도의 어중간한 여행으로 책을 내겠다는 건 오만이다. 겸손한 마음으로 나의 여행을 오롯이 즐기기로 했다. 다만 매일 저녁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안부를 전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쓰다 보니 그날그날의 여행을 글로 정리하는 게 썩 괜찮은 일이었고 버릇이 되었다. 아무튼 쓰는 건 즐거운 일이니까.

에디터 J는 그 블로그를 봤다고 했다. 블로그에 썼던 글처럼 자연스럽게, 모쪼록 부담 없이 지금도 여행하는 기분으로 써달라고 했다. 지면에 글을 실어본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전하는 섬세한 디렉팅은 첫 원고를 쓰는 동안 좋은 가이드가 되어주었다.

첫 원고료

태어나서 처음으로 글을 써서 돈을 벌었다. 그러니까 《AROUND》는 내 첫 원고료를 지불한 곳이다. 세상에,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건 단벌 계약. 처음이자 마지막 원고료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제주도로 이사를 했다. 이사를 하며 용기 내어 J에게 연락했다. 혹시 제주도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연락해 주세요. 너무 간절해 보이지는 않게, 하지만 진심이 느껴지도록, 그러나 부담스럽게 하지는 말아야지. 여러 번 고쳐 쓴 메시지를 보냈다. J는 연재를 제안했다. 야호.

마감은 자주 찾아왔고, 그 마감 덕분에 나는 제주에서 살며 항상 안테나를 길게 뽑아두고 지냈다. 좋아하던 동네를 걷다 단골 카페 사장님을 만난 이야기를 쓰고, 바닷가 마을 도서관에서 단기 아르바이트하던 이야기도 썼다. 숲에 가서 고사리를 꺾은 이야기, 작은 카페를 잠깐 운영하며 생긴 다정한 일들에 대해서도 썼고, 제주의 봄꽃이나 오름, 설산에 대한 이야기도 썼다. 이런 사소한 이야기도 글이 될 수 있나? 하던 장면들이 글이 되어 《AROUND》에 실렸다. 그 사이 남미 여행기를 완성했고, 출판사에 투고했다. 투고 바로 다음 날 한 출판사의 편집자 S에게 연락이 왔다. 원고 읽었다고, 계약하자고 했다. S는 원고를 보자마자 알았다고 한다. 《AROUND》에 글 쓰는 정다운이 쓴 글이라는 걸. 첫 번째 책을 출판했다. S는 나를 ʻ작가님’이라고 부른 첫 번째 사람. 그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는 그에게로 가서 꽃이, 아니 작가가 되었다. 나는 꿈을 이룬 건가.

첫 책

“사실은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산들바람 속에 앉아 있자니, 정작 이곳에 오기 전에는 가장 크게 느껴졌던 ʻ우기의 우유니’도 ʻ토레스 델 파이네 트래킹’도 ʻ마추픽추’마저도 별로 중요하지 않아졌다. 그건 그냥 남미를 걷다 만나는 ʻ조금 큰’ 선물. 여행은 화려하고 웅장한 선물들로 듬성듬성 엮인 것이 아니라, 따뜻한 햇살, 돌담 위의 꽃, 맛있는 커피 한 잔, 사람들의 미소 같은 작은 선물들로 촘촘히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남미 여행의 첫 도시 과테말라 안티구아에서 쓴 글이다. 이 글은 첫 책 《우리는 시간이 아주 많아서》에도 실렸다. 여행 중 내가 블로그에 쓴 글들은 주로 그랬다. 낯선 골목에서 만난 고양이를 따라 한참 걸은 날에 관한 이야기,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마주 보고 웃으며 함께 시간을 보낸 사람들 이야기, 로컬 식당에서 먹은 소박한 식사, 그 사이사이 떠오른 나지막한 생각들. 사건·사고 하나 없는 이런 단조로운 여행도 의미가 있다는 걸, 누군가는 이런 글도 읽고 싶어 한다는 걸 알려준 건 《AROUND》였다. 무심코 지나치면 평범하기만 한 하루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버릇. 희미하게 반짝이는 아주 작은 것을 건져내서 한번 보고 두 번 보고 세 번 보면 그 속의 이야기가 선명해지는 마법. 작은 것들을 촘촘히 엮는 정성스러운 마음. 그것들 덕에 낸 용기.

처음 마음

《AROUND》 10주년을 준비하고 있다는 에디터 L의 연락을 받았다. 이 잔잔한 매거진이 빠르게 역동하는 한국에서 10년을 살아냈다. 나는 어쩌면 그 비결을 알 것 같다. 8호부터 86호까지 글을 쓰며 여러 명의 에디터와 일을 했다. 그동안 누구도 만난 적이 없다. 아무도 만나자고 하지 않았다. 마감 즈음에 메일만 몇 번 주고받을 뿐. 아, 에디터 J만 제주도에서 두어 번 봤다. 일 때문에 만난 건 아니고, 내가 운영하던 카페, 아르바이트하던 서점의 손님으로 왔다. 조용히 나타나 스윽 인사하고 밖으로 나가 느긋하게 제주의 햇살을 받으며 머물러있다 바람처럼 돌아갔다. 이 글을 가장 먼저 읽을 에디터 L의 메일은 받을 때마다 마음이 환해진다. 사려 깊은 마음으로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떠올리면 언제나 더 잘 쓰고 싶은 마음이 든다. 글 뒤엔 사람이 있고, 책 뒤에도 사람이 있다. J부터 L까지 함께 일하는 동안 나는 늘 적당한 긴장과 충분한 안도감으로 글을 썼다. 간혹 내가 멀리 돌아가더라도 멀찍이 서서 기다려주는 사람들. 누구보다 섬세한 독자이며, 아름다운 글을 쓰는 사람들. 덕분에 《AROUND》 마감은 한 번도 즐겁지 않은 적이 없었고 책을 받아볼 때마다 설렜다. 이런 일이 또 있을까. 여기까지 쓰고 글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 2013년 처음 글을 쓰던 그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한 번도 그러지 않은 적이 없다.


리는 공범!

한승재

처음 《AROUND》 매거진을 알게 된 건, 솔직히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왜곡된 기억을 그냥 거의 지어내다시피 말하자면, 햇살이 떨어지는 원목 책상 위에 놓여있던 하얀 책의 모습이었다. 그래 맞아, 그때 옆에는 하얀 수증기를 하늘로 올려 보내는 뜨거운 커피가 있었고, 카페에는 원두 분쇄하는 기계 소리만 울렸다. 사실 처음 어라운드를 본 게 언젠 지 정말로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왠지 그런 곳에 놓여 있음직 한 책이라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던 듯하다. 그 무렵 나도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하고 비슷한 공간을 많이 만들었다. 진한 햇살을 타고 올라가는 수증기가 눈에 보이는 곳, 색 바랜 합판 테이블이 있는 곳, 사람들은 그런 장소를 즐겨 찾았고 그런 장소를 배경으로 사진을 많이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SNS를 통해 퍼져나가는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봤다.

일상은 아마도 그 무렵에 발명되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AROUND》나 《KINFOLK》를 햇빛이 잘 드는 곳에 올려두었을 무렵, 카페베네가 없어지고 동네에 작은 카페가 우후죽순 생겨나던 무렵, 예쁜 공간에 가면 누가 인테리어 디자인을 했는지 궁금해하던 무렵. 책의 여백이 많아지고 잠시 필름 사진이 관심받던 무렵. 그러니까 그 이전까지 사람들은 일상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상이란 게 뭐였더라? 일상이라는 것이 주목받기 전에 사람들은 대체 무엇을 살았던 걸까? 이를테면 아이 손잡고 바쁘게 어딘가로 걸어가는 어른의 아침, 옥상에 고추 말리고 목욕탕에 배추김치 절여 놓던 어머니들의 오후, 우르르 당구장 몰려가서 짜장면 한 그릇 때리던 직장인의 점심시간… 그때의 삶은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일? 어쩌면 고생?

그때의 일상이 무엇이었는지 되짚어 보기 위해 어머니와 아버지의 일상을 문득 떠올려 보자면 아득한 기분만이 든다. 나는 우리 세대가 즐기는 것과 같은 일상을 부모님이 즐기는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햇살 아래서 커피를 마시거나 아름다운 몸매를 가꾸기 위해 운동을 배우거나 일관된 취향을 가지고 문화생활을 즐기는 장면을 본 적이 없다. 대신 일상이라는 것을 즐겨 보기 위해 애쓰던 특별한 기억만이 떠오를 뿐이다. 아버지가 미국 출장길에서 돌아오며 사 온 미국의 일상. 그건 다름 아닌 커피 머신이었다. 모카포트도 에스프레소 머신도 아닌 그것을 뭐라고 부르는지 잘 모르겠는데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뜨거운 물이 줄줄 내려와 커피를 만들어놓는… 아무튼 미국 영화에선 종종 아침에 일어나 그 기계에서 커피를 따라 마시며 여유롭게 신문을 읽는 장면이 나왔고, 그 기계를 사람들은 커피 머신이라고 불렀다. 아버지는 검은색 필립스 커피 머신을 사 왔고, 그곳에 넣을 분쇄 원두도 몇 봉지 함께 사 왔다. 바로 다음 날부터 어머니의 일상은 시작되었다. 햇빛이 한 줌 드는 부엌 자리에 미리 만들어 놓은 천을 정성스럽게 깔고 커피 머신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매일 아침 커피를 내려마시면서 책을 읽었다. 아침마다 집안에는 커피 향기가 퍼졌다. 마치 미국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 일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원두가 바닥나 버리며 그곳은 도로 경기도 부천시가 되어버렸다. 슈퍼에서는 원두를 살 수 없었다. 원두가 떨어지면 멈추게 되는 이국적인 삶. 일상이란 건 그렇게 나약한 것이었다.

혹시 부모님이 나 없을 때, 내가 학교 갔을 때 일상을 즐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보면 그것도 역시 아득한 기분이 든다. 그럴 리 없기 때문이다. 왜냐면 어른들의 대화에서, 생각에서, 혹은 가끔씩 신날 때 보이는 반응에서, 어느 부분에서도 부모님의 여유 넘치는 부분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렴 어떠니?”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고 느낌이 가는 대로 몸을 맡기는 자유분방한 태도를 본 적도 없다. 필요하지 않은 곳에 돈과 시간을 지출하는 것을 본 적은 드물었다. 시간을 쓰고 돈을 써가며 물질화될 수 없는 것을 만드는 요즘의 일상이라는 건 낭비와 별로 다르지 않은 말이었다. 일상이란 그렇게 까마득한 단어였고, 반면 요즘은 너무나 만연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예전보다 세상이 살기 좋아져서, 혹은 편해져서 요즘 사람들은 일상이라는 것을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된 걸까?

《AROUND》와 처음 만난 순간은 정확히 기억한다. 2015년, 단편소설집 《엄청멍충한》을 출간한 후 책을 읽은 사람들의 반응에 목말라 있던 무렵이었다. 책을 출간한지 한참 지났는데 왜 나는 유명해지지 않는 걸까? 궁금해하던 차에 잡지사에서 나와 나의 서재를 취재하고 싶다는 메일을 받았고, 무척이나 설레는 마음으로 인터뷰 날짜를 기다렸다. 샤워를 너무 일찍 하면 땀이 날 수 있으므로 약속시간 직전에 샤워를 했다. 신경 쓰지 않은 듯 보이는 깨끗한 옷을 입었고, 마지막으로 이 집의 진짜 주인들􏚈엄마 아빠􏚉를 내보낸 후 마치 이 집의 주인인 척 행동하려고 했다. 퇴실 통지를 받은 엄마 아빠는 이 시간에 어딜 가야 하냐고 투덜거렸고, 당장 필요한 물건을 굳이 쥐어짜 내 그것을 사러 마트에 다녀오기로 했다. 그러나 신발장 앞에서 뭉그적거리는 바람에 부모님은 취재하러 온 기자와 마주치게 되었고, 난 좌절했다. 제발 엄마가 ʻ우리 아들 기사 좀 잘 부탁해요.’와 같은 말만은 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다….

아무튼 부모님이 없는 집에서 난 일상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의 진짜 일상은 엄마한테 밥 달라고 조르고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전 보면서 코딱지 파는 것이었지만, 나의 일상을 증언해 줄 부모님은 모두 쫓아낸 뒤였으므로 난 연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온 집안에 은은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게 했다. 그리고 커피를 이용해 일상을 연기하는 건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차분하게 커피를 내렸다. 그리고 “나는 종종 이곳에서 커피를 마신다.”고 말하며 경치가 좋은 옥상으로 기자를 데려왔다. 나는 기울어진 지붕에 누워서 커피를 마셨고, 기자는 난간도 없는 위험한 곳에 서서 열렬히 셔터를 눌러 댔다. 그렇게 일상을 만들어내는 범죄에 가담했다.

《AROUND》와 나는 여전히 공범 관계로 활동하며 일상을 만들어낸다. 난 좋은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을 돕는다. 내가 구상한 공간에서 몇 분 혹은 며칠간 머물며 사람들은 일상이라는 꿈을 잠시나마 현실로 가져본다. 《AROUND》는 일상을 취재하는 데 그것을 지켜본 사람의 입장으로서 그것은 취재라기보다는 발굴에 가깝다. 일상에서 좋은 것을 캐내어 흙을 깨끗이 털어내고 편안하게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일상이라는 건 도처에 널려있어야 마땅한 그냥 삶의 모습인 것인데 노력이라니 아이러니하다. 그러니 나와 그들의 일상은 분투에 가깝다.

일상이라니, 일상이라니….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일상은 꿈이다. 우리는 여유를 갖고 싶고, 손때 묻은 편지를 쓰고 싶고, 어린 시절처럼 넘치는 시간을 감당하지 못해 낮잠을 자고 싶다. 일상은 어쩌면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겠지만, 그런 것들을 꿈꾸며 여전히 꿈이 아니라고 믿는 것, 그것이 일상이다.

인터뷰 이후 《AROUND》로부터 또 다른 연락이 왔다. 반가웠다. 《AROUND》에서는 짧은 에세이를 적을 만한 지면을 할애해 주었고, 나는 그곳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기로 했다. 때때로 보기에 좋은 글을 쓰기도 했지만 대게 일상이라고 믿는 꿈의 실체를 폭로하는 글을 썼다. 어쩔 때는 모호하게, 어쩔 때는 다소 직접적인 언어를 사용하며 아름다운 잡지에 얼룩을 묻히는 일을 했다. 죽음과 고통, 불안과 두려움 같은 누군가의 단 꿈을 깰 만한 일상의 민낯이 종종 글을 통해 드러났지만 《AROUND》에서는 단 한차례의 수정도 요청하지 않았다. 《AROUND》의 가장 마지막 챕터는 일상을 연출하는 우리의 죄를 고해하는 자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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