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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
이우성
몇 년 전, ‘무엇이든 잘하게 만들어주는 글쓰기’라는 수업을 들었다. 잡지 에디터가 되고 싶었고 누구도 그 방법을 알려주는 이가 없었다. 이우성이란 패션지 에디터가 그 수업의 선생님이었고. 시인이기도 했다. 만나보니 시인도 에디터도 선생님도 아닌 것 같았다. 철이 덜든 동네 오빠 같았달까.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자꾸 자신을 ‘미남’이라 칭했다. 시집 이름도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였다. 처음엔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시 쓰는 우성이
이우성은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무럭무럭 구덩이’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그로부터 4년 후인 2012년에는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라는 시집을 출간한 바 있다.
2009년에 등단했잖아요.
쩔었지. 아주.
(웃음) 대학 졸업하고 에디터 일을 하다가 등단한 걸로 알고 있어요.
응. 그때 《GQ》에 있었지. 대학 때, 국문학과였는데 시 창작 동아리를 했었어. 선생님, 친구들과 열심히 썼지. 졸업하고 일하느라 시를 못 쓰다가 동아리 MT를 따라갔어. 후배들이 낭송회를 하며 웃는데, 난 눈물이 나더라고. 우리 학교에서 시로 등단한 선배가 없었거든. 쟤들이 졸업하면 저 행복을 이어갈 수 있을까, 싶었지. 등단해서 후배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어. 너도 알다시피 잡지 일은 너무 바쁘잖아. 그런데도 하고 싶었어. 1년 반 정도 일은 대충하고 시만 썼어.
신춘문예는 신문사마다 한 사람을 뽑는다면서요. 많은 사람 중에.
응. 경쟁률은 정확히는 모르지만, 높을 거야. 보통 1000대 1 정도 되지 않을까? 한국일보, 경향신문, 조선일보, 서울신문, 동아일보, 세계일보, 문화일보, 한국경제 등을 신춘문예 공모전을 여는 주요 일간지 여덟 개라고 말해. 1년에 여덟 명의 등단한 시인이 나오는 건데, 그중에 5년 안에 시집이 나오는 것은 사실 반도 안 돼. 살아남을 확률이 낮지.
같은 해에 등단했던 사람들 중에 활동하는 사람 있어요?
정영효, 민구, 김은주, 나. 이 중에 문학과지성사에서 시집을 낸 사람은 나밖에 없고, 등단하자마자 계약을 한 사람도 나밖에 없어. 등단한 지 3년 만에 시집이 나온 것도 나밖에 없지. 냉정하게 보면 내가 제일 잘된 거야. ‘하지만’ 시는 김은주와 민구가 가장 잘 쓰고 있다고 생각해.
등단할 때, 보통 시는 몇 편 내요?
5편 이상을 내라고 되어 있거든. 나는 6편을 냈어. 신문사마다 시기가 다른데, 원칙적으로 중복투고는 안 돼.
당선되었으면 했던 시가 있었을 것 같아요.
‘어쩜 풍경이 멈춰 있다고 생각했을까’라는 시. 앞으로도 그런 시는 다시 못 쓸 것 같아. 당선은 ‘무럭무럭 구덩이’가 되었지만, 심사해주신 김기택, 신경림, 김사인 선생님은 ‘손끝이 말해줍니다’라는 시를 좋아하셨대. 《GQ》에서 일할 때, 사무실에서 나와 걸으면서 썼던 시거든. 주머니에 증명사진이 있길래 그걸 만지작거리며 썼어.
나는 왜 ‘이우성’의 시를 읽으면 순수가 느껴질까요.
정확한 판단이라고 생각해. 내가 원하는 것은 시를 쓴 종이에 잉크로 쓴 글자 덕분에 하얀 종이가 더 하얗게 변하는 상태야. 과장하거나 수사를 써서 치렁치렁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고, 단순한 문장으로 큰 이야기를 하고 싶어. 일반적으로 시에 원하는 것은 아닐지도 몰라. 그건 예술관의 차이라고 생각해. 잔꾀가 많으면 하얀색을 못 만들어. 내가 원하는 지점은 하얀 것을 더 하얗게 만들어서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거야. 순수하다는 의미에서도 옳고, 순진하다의 의미에서도 옳아.
순수와 순진의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는데요?
순수는 여자가 먼저 나에게 뽀뽀를 해. 그러면 ‘아, 좋아!’ 하는 거야. 순진은 여자가 먼저 나한테 뽀뽀를 해. 그러면 ‘어이구, 미안해!’ 하는 거야.
(웃음) 정확하네. 시인들 연봉이 500만 원이란 얘기가 떠돌잖아요. 시인으로 살아가는 건 어떤 거 같아요?
500? 과분하지. 100되나? 10? 시인들은 가난하고 찌질해. 찌질하단 표현 좀 그런가? 나는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고. 자본주의 시대인데, 배고파야 나온다는 거 개소리 같아. 가난해서 현실을 바로 못 보고 왜곡시키는 것 같기도 하고. 피해의식 같은 것. 그래서 나는 시인들이 부자였으면 좋겠어.
쉽지 않잖아요.
딜레마지. 문학 활동이라는 게 경제 활동에 쫓기면서 하기 힘들거든. 나도 직장이 있기 때문에 시를 쓰는 게 어려워. 대신 이 사회를 냉정하게 보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시도 있다고 봐. 현실 세계랑 부딪히면서 그 맥락 안에서 쓸 수 있는 것. 그리고 실제로 요즘 시인들이 뭔가 하고 있긴 해.
투잡이요?
응. 안타까운 것은 등단하고 나면 대학원에 관심 없던 사람들도 대학원을 가기도 해. 교수나 강사를 하려고. 나는 그건 좀 불만이야. 이런 얘길 한다고 욕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하라고 해.
저 요즘 시를 읽어요. 그냥 읽어요. 내 마음대로. 그런데 문학 하는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분명 좋은 시가 있대요. 말로 설명하긴 어렵다고 하고. 그게 뭘까요?
기준은 여러 가지인데, 기본적으로 시에는 ‘형상화’와 ‘문장’이 있어. 어떤 시들은 누가 봐도 문장이 학습되지 않은 게 있어. 시가 아니라 문장이 어려운 것. 그리고 형상화에 실패했다고 느껴지는 시도 있고. 전문가들은 그걸 알아차려. 그 외의 것들은 사실 취향의 문제인 것 같아. 신춘문예 최종심사도 기본적인 것들이 걸러지고 나면 선생님들의 취향으로 고르는 거거든. 여러 입장이 있겠지만, 옳거나 그른 것은 없을 것 같아.
그럼 좋은 시는 뭐라고 생각해요?
나는 홍상수 감독이 훌륭한 시인이라고 생각해. 그의 영화를 보면 애증을 갖고 있는 지역의 느낌이 보이잖아. 어디를 밟고 있는지를 알 수 있고. 이상용이라는 영화 평론가가 이런 얘길 해줬어. <어벤져스>는 재미있는 영화지만, 좋은 영화인지는 모르겠다고. 작가가 어디에 사는지, 세계관은 무엇인지가 느껴지냐는 거지. 시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야. 작가가 속한 시대가 어디인지, 어디에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이해가 가능해야 한다는 거야. 한 편으로 어렵다면 한 권의 시집으로.
그럼 지하철 유리에 붙은 시는 어떻게 생각해요? 시인들은 대부분 그게 시가 아니라고 말하더라고요.
나는 생각이 바뀌었어. 좋은 시냐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사람들에게 잠깐의 웃음과 여유를 주더라고. 시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문장으로. 시의 가치는 떨어질지 모르지만, 문장으로 주는 기쁨이 있는 거야. 그래서 그 자체가 부정적이란 생각은 안 들어. 하지만 사람들이 그걸 보고 ‘이게 시구나.’라는 생각은 안 했으면 좋겠어. 반대로 시를 쓰는 이들은 그런 짧은 문장들이 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지 잊으면 안 될 것 같고. 질문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세월호 이후에 우리는 반성하고 달라져야 하는 지점에 있다고 생각해. 이대로 문학이 계속 가는 거 반대야. 지금까지의 시의 흐름대로 계속 가선 안돼. 점 하나일수 있지만 그게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잖아. 예술가는 그런 역할을 해야 해. 하지만 그건 그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내가 뭐라고 할 건 아니고.
요즘 시를 써요?
선아야, 나는 내가 실패한 시인이라고 생각해. 지금까지 했던 얘기들이 그 이유야. 동시대에 대해 얘기하지 못하고 있고, 인기라는 흐름에 영향을 받았고, 이제부터 뭔가 발맞추는 시를 쓰겠다고 해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야.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의욕이 없었어. 한 편의 시도 백 편의 시와 같고, 백 편의 시도 한 편의 시와 같다고 생각하거든. 근데 그 한 편의 시도 못 쓰는데 뭐가 의미가 있겠어. ‘그래도’ 요즘 쓰고 있어. 동시대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쓰고 있어. 내 주변에 대해. 가능한 구체적인 언어로 사람들에 관해 쓰고 있어. 그러고 있습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기사 쓰는 우성이
이우성은 2002년 《GQ》를 시작으로 《DAZED&CONFUSED》, 《ARENA HOMME+》에서 피처에디터로 일해왔다. 현재는 한겨레신문의 온라인 매거진인 《ESC》에 인터뷰 기사를 연재하고 있다.
패션지인 《ARENA》에 문학을 계속 엮고 있잖아요. 소설가나 시인을 소개하고, 그들의 글을 싣고.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느낌이지만, 나는 내 위치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어. 내가 기자생활을 했고, 등단했기 때문에 서로가 만날 수 있는 장을 형성할 수 있었거든. 그걸 만들고 싶었어. 앞으로도 그에 대한 책임을 갖고 있을 거고.
그런데 《ARENA》 그만둔다고 들었어요. 왜?
지금은 재택근무 중이고 다음 달에 그만둬. 여러 이유가 있는데, 여기서 하고 싶은 것도 다 했고.
한겨레 온라인 매거진 《ESC》에 인터뷰 기사 연재하는 것도 챙겨보고 있어요.
맞아. 멋있지?
(웃음) 그건 패션지와 결이 또 다르잖아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예요?
사실 나는 에디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한겨레에 연재하는 게 꿈이었어. 그때 《GQ》에서 좋아하던 선배들이 다 한겨레에 연재하고 있었거든. 출장을 갔다가 우연한 계기로 《ESC》와 연결이 되었고. 어떤 기사를 해볼까, 하다가 내가 인터뷰를 좋아하니까 ‘이우성의 좋아서 하는 인터뷰’를 하기로 했지.
인터뷰가 왜 좋아요?
사실 지금은 별로 안 좋아하고, 한때는 좋아했어.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글이 세상에 많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인터뷰가 조금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사람에겐 fact(사실)가 없잖아. 사람에 대해 쓴다는 것은 어찌 됐건 쓰는 이의 가치관이 포함되어야 하니까. 그렇다 보니, 내가 본 사람에 대해 내 입장을 가지고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지. 지금은 별로야. 내가 쓰고자 하는 것과 인터뷰이가 드러내고자 하는 것 사이에 늘 간극이 있어.
에디터에게 인터뷰에 대한 고민은 늘 숙제인 것 같아요. 정해진 답은 없겠지만, 읽고 나면 좋은 인터뷰라고 느껴지는 게 있잖아요.
인터뷰어의 존재는 사라져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 나는 그걸 보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어. 아니, 그럴 거면 왜 ‘내’가 인터뷰를 해? 말만 들을 수 있으면, 아무나 하면 되는 거지. 그게 아니지. 인터뷰이가 ‘나’를 만났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들이 있다고 생각해. 내가 기자로서 한 사람을 만나면 실패한 인터뷰고, 이우성으로 만나야 해. 인터뷰이에게 ‘내가 이우성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만나서 이 얘기를 하고 있구나.’라는 상황이 되어야지. 소통의 시대에 한 사람 얘기만 뭐하러 들어.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 나도 욕 많이 먹었어.
주로 어떤 욕 들어요?
덧글에 주로 많아. 정유미 인터뷰했을 때, ‘지가 잘나고 쿨한 줄 아네.’, ‘정유미가 기자 잘못 만나서 고생하네.’ 이런 식의 얘길 하더라고. 난 그건 바보가 남긴 덧글이라고 생각해. 좋은 소리 듣게 쓸 수 있지. 그런데 기꺼이 그들이 좋아하는 스타를 위해 희생한 건데, 그걸 이해를 못 하는 것은 머리가 나쁜 거겠지. 답답할 때가 많아.
현실에서는 어때요?
누군가와 인터뷰를 했을 때, 아쉽거나 안타까운 게 있으면 그대로 쓰거든. 그걸 보고 인터뷰이가 화낼 때가 있어. 전체적으로 보면 그를 옹호하고 이해하려는 글인데, 인터뷰이 입장에선 어떤 한 문장이 마음에 안 들 수 있지. 그런 것 때문에 인터뷰가 점점 싫고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자는 성격 더럽고 남 신경 안 쓰고 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 거야. 착한 애들은 하면 안 돼.
요즘 ‘내 취향이 네 것보다 우월해.’라고 말하는 게 느껴지면 불편해져요. 굳이 싫어하는 것을 말하면서 좋아하는 것을 돋보이게 할 필요가 있는지도 의문이고요. 그냥 각자 좋아하는 것에 집중했으면 좋겠는데, 쌤에게 취향은 뭐예요?
10년을 패션지에서 일하고 나니까 그런 건 다 의미가 없는 것 같아. 전에는 ‘핫’한 게 뭔지에 대해 관심 가졌어.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 생각했던 거 같기도 해. 그런데 진짜 의미 있는 건 자기가 해왔던 것을 그대로 가는 것 같아. 취향이라는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계속할 수 있는가의 문제인 것 같다는 얘기야. 지금은 이것, 지금은 저것. 이런 것은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해. 자기 삶을 계속 가야 하고, 대신 자기갱신이 있어야지. 서로의 영향을 받아야지. 그리고 사실 취향보다 중요한 건 인간이야. 취향은 절대적이지 않다고 봐. 예쁜 여자 만나고, 멋진 남자 만나서 서로 뽀뽀하고 살아가는 게 가장 행복한 거지. 취향은 무슨.
‘나’에 대한 얘길 많이 하고 있잖아요. 시에서도 기사에서도. 만나서도 그렇고. 만날 자신을 ‘미남’이라고 소개하고. 잘난 척도 하고. 그런데 그럴 때마다 쑥스러워한다는 게 느껴져요.
내가 자아를 들어낸 것은 의도된 거였어. 세상이 자꾸 겸손하라고 말하고, 자기 드러내는 걸 나쁘다고 하잖아. 기자들은 나를 드러내지 않고 사실에만 접근해야 하고, 시인들은 겸손해야 한다고 하고. 난 그런 게 싫었어. 뻔뻔하게 ‘나 미남이야.’ 하는 또라이도 좀 있고, 기자들도 그대로 받아 적는 게 아니라 ‘내 생각은 이런데 니 생각은 왜 그따위야?’라고 묻는 애들도 생겨야지. 그래야 문화가 다양해지는 것 아니야? 그게 더 정확하게 우리가 원하는 하나의 진리에 가까워지는 행위가 아닐까? 지금 시점에서 나를 드러내는 것은 중요해. 그걸 부끄러워하고 터부시했던 측면이 우리 문화의 큰 지형도 안에 있어. 요즘 덧글 때문에 더 그래. 길 가다가 누가 나한테 “씨발놈아!” 하면 비판이니까 당연히 지나쳐야 해? 익명성 안에 묻혀있다고 생각해. 자기를 드러내는 방식을 모르는 거야. 자꾸 구석으로 몰아내고 그 안에서 놀게 가두는 방식이지.
그런 맥락에서 솔직하게 쓰고 싶거든요. 솔직하게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내 생각에 솔직함은 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인 것 같아. 솔직하지 않으면 자기 입장도 없고, 사실도 의미가 없어. 그리고 솔직하게 내 생각을 얘기하는 것엔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거든. 누구보다 솔직하게 이 사안에 대해 쓰겠다는 의미. 그 의지를 갖는 게 제일 중요하지. 그다음에 용기가 필요하고. 최종적으론 솔직하게 쓴 게 읽는 사람에게 득이 되어야지 실이 되어서는 안 돼, 근데 그것도 결국은 나를 드러내는 학습이 먼저 필요해.
나를 드러내는 학습… 학습?
글 안에서 나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나를 어느 정도 드러내는 게 옳은 것인가. 그건 사람마다 다를 것 같아. 자기에게 맞는 정도의 드러남. 그 정도의 자기 학습.
의지를 갖고, 용기를 내서 하나의 글을 썼어. 그런데 한 문장 정도는 자신도 모르게 솔직하지 않을 수 있잖아요. 기술적인 부분이 그렇게 만들 수도 있고.
야, 세상에 완벽한 건 없어. 만약에 그 문장을 다시 솔직하게 고친다? 고쳐질까? 고칠 수 있다면 고치면 좋겠지만, 아니면 그냥 둬. 어찌 됐건 그 안에는 솔직하려 했던 의지가 담겨 있잖아. 맥락 안에서. 그게 중요한 것 같아. 그 한 문장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반드시 고쳐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우리가 쓰는 글은 완성된 어떤 것을 쓰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그 글은 영원히 찾을 수 없는 것일 수도 있고. 나처럼 완벽한 사람도 있지. 하지만 그건 굉~장히 드물다.
(웃음) 그럼 잘 쓴 기사는 뭘까요?
나도 똑같은 고민을 계속하고 있어. 하지만 조금 먼저 시작한 사람으로서 기준은 생겼어. 나는 쓰는 이가 변하지 않는 자신의 캐릭터나 매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작년에 쓴 기사와 올해 쓴 기사가 같으면 문제가 있지. 이건 문장의 문제가 아니야. 머리의 문제지. 성장이든 퇴보든. 판단과 생각이 달라지는 지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게 없으면 글을 잘 쓸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니야. 하다 보면 문장을 잘 다룰 수는 있게 되지.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야. 이건 글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야. 포토그래퍼, 디자이너… 모두가 고민할 문제지.
이제 그만두잖아요. 언젠가 잡지로 다시 돌아갈 거예요?
이게 이제는 내 고향이야. 여길 떠날 수도 없고, 떠나지도 않을 거야. 그리고 이 모든 게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다 하나지. 올해 책도 좀 나와. 인세도 욕심내지 않았어. 계약서 쓸 때, 내 인세 낮추고 그림 그리는 분한테 나눠주고 그렇게 했다. 나 착하지? 수익금의 일부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쓴다고 말하고 싶어. 근데 미리 말하긴 쪽팔려. 안 팔리면 어떡해. 역시 미리 이렇게 말하는 건 좀 그렇지?
가르치는 우성이
처음 이우성의 수업을 듣던 날, 그는 “제가 글에 대해 뭘 가르치겠어요.”라고 말했었다. 글은 배운다고 되는 게 아니지만 같이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자신도 고민하는 사람이기에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말끝마다 “그래도 전 잘 써요. 전 미남이니까요.”라는 식의 말들을 덧붙였다. 말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분명 어떤 것들을 배웠다. 수업은 한 주제로 글을 써가면 선생님이 첨삭해주고, 그걸 갖고 모두가 토론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수업의 이름은 ‘무엇이든 잘 하게 만들어주는 글쓰기’이고, 그는 이제 이 수업을 그만하려 한다. 7월 8일에 시작되는 그의 마지막 수업에 대한 정보는 mediact.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에디터 박선아
포토그래퍼 안선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