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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자신만만한 아티스트들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자신감이 떨어질 때가 있다. 남과 비교해서는 안 된다고, 남들의 평가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칭찬도 비난도 무시해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그들의 말에 나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래서 내가 이 모양 이 꼴로 사나 보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들의 마음속에도 열등감이라는 단어가 아프게 새겨져 있기에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스무 살 나에게 친구가 생겼다. 대학 신입생인 우리는 말 그대로 서로를 알아보았다. 그 애는 나를 좋아했고 나도 그 애를 좋아했다. 휴대폰이 없던 그 시절에, 그 친구는 밤늦게 집을 나와 공중전화 박스에 서서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는 1시간 동안 지치지도 않고 통화를 했다. 슬리퍼를 끌고 나온 그 애가 발이 시리다고 할 때까지, 들고 온 동전이 다 떨어질 때까지. 그때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우리는 마치 연애라도 하는 사람들처럼 만나고 전화하고 이야기했다.
급격하게 가까워진 사람들은 또 급격하게 멀어진다. 어느 순간부터 그 애는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내 모든 것을 트집 잡고 비판했다. 내게도 책임의 소재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반성해봐도 내 잘못은 그거 하나였다. 내가 그 애가 원하던 바로 그 사람이 아니라는 점. 그때부터 나는 그 애에게 분노와 열등감을 동시에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그 애를 원하면서도 미워했다. 나보다 더 똑똑하고 재능 많은 그 애를 질투하는 동시에 나 자신에게 열등감을 느꼈다. 무얼 해도 그 애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 애 때문에 대학 시절 내내 불행했다.
나는 아직도 나를 바라보는 그 애의 시선을 느낀다. 내가 어디 가서 잘난 척을 하거나 느끼하게 굴기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소탈한 사람인 척하는 이유는, 내가 그런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내가 그러려고 할 때마다 지금 이 자리에 있지도 않은 그 애가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 걱정되어서일지도 모른다.
이준익의 영화 <동주>는 여러모로 빼어난 작품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그리는 인물, 시인 윤동주가 워낙 빼어난 사람이기에 그의 매력만으로도 이 영화는 풍부한 가치를 갖는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윤동주의 성취가 아닌 좌절에 주목했기에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만 같다.
동주는 식민지 시대 북간도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사촌 몽규와 한 집에 살며 친형제처럼 자라는데, 두 사람은 판이하게 다른 성격이다. 몽규는 남자답고 웅변에 능하고 행동파다. 사람들을 이끄는 타고난 리더형이다. 동주는 정반대다. 섬세하고 내성적이다. 시 읽는 것을 좋아하고 시인이 되려는 꿈을 품고 있다. 모험보다는 하루하루 작은 것들에 감동을 받으며 살아간다.
아무리 노력해도 동주는 몽규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동주가 선망하는 신춘문예에도 몽규는 쉽게 붙는다. 심지어 몽규는 거기에 목을 매지도 않는다. 공부를 안 해도 몽규는 쉽사리 서울의 대학에 합격한다. 동주는 그러지 못한다. 동주는 자신의 마음만큼이나 작은 방에 틀어박혀 질투심에 괴로워한다. 왜냐하면 동주는 몽규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형제를 질투해야 하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대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것은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일까.
우리는 윤동주의 아름다운 시들을, 눈이 맑고 마음이 섬세한 식민지 문학청년의 시대적 좌절로만 읽어왔다. 이 영화를 보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윤동주의 인간적인,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들이다. 그래서 ‘윤동주’는 ‘동주’가 된다. 동주. 우리 옆집에 사는 청년일 것만 같은 동주. 자부심보다는 자괴감이 더 큰 동주. 자신보다 뛰어난 사촌 형제에 대한 질투심과 열등감을 어쩌지 못해 괴로워하는 동주. 그의 시는 불 끓는 열정이 아니라 상처받고 초라하고 뒤틀린 마음을 어쩌지 못해 쓰인 것들이다. 그 마음을 안고 육첩 남의 나라 방에 앉아 쓴 것이다. 우물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말할 수 없이 처참한 마음으로 들여다보며 쓴 것이다.
식민지 시대에 태어난 청년은 유목민처럼 떠돈다. 만주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교토로, 교토에서 도쿄로, 그리고 후쿠오카로. 그러면서 청년은 시를 쓴다. 투명하고 슬프고 아픈 시를. 사회적인 아픔과 개인적인 아픔이 모여 윤동주의 걸출한 시들을 낳았다. 그 시대의 누구나가 이런 시들을 쓰지는 못했다. 그것은 윤동주의 개인적 재능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만약 윤동주에게 송몽규가 없었더라면, 윤동주는 이런 시들을 쓸 수 있었을까. 열등감이라는 것은 우리의 인생에서 어떤 일들을 할까.
적극적 항일운동을 위해 시 따위는 써서는 안 된다고, 항일정신을 고취시킬 수 있는 산문을 써야 한다는 몽규에게 동주는 따지듯이 말한다. “시도 자기 생각 펼치기에 부족하지 않아.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살아있는 진실을 드러낼 때 문학은 온전하게 힘을 얻는 거고, 그 힘이 하나하나 모여서 세상을 바꾸는 거라고.” 동주와 몽규는 그렇게나 다른 사람이었다. 이 둘에게 서로의 삶의 방식을 인정할 만큼의 세월이 주어졌더라면 정말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젊디젊은 나이에 일본의 감옥에서 비참하게 죽었다. 동주의 아름다운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그가 죽은 후에야 출간되었다.
파티에서 피아노 연주를 해서 돈을 버는 가난한 청년이 있다. 재킷이 없어 프린스턴대학교의 재킷을 빌려 입고 연주하던 청년은 한 부호를 만나는데, 그는 프린스턴대학교를 졸업한 아들 디키 그린리프를 아느냐고 묻는다. 청년은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인다. 실은 그는 프린스턴대학교를 다니지도 않았고 디키를 알지도 못한다.
<리플리>는 한 청년의 거짓말이 파국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다. 가난하지만 재능은 넘치는 톰 리플리는 이탈리아에서 한량처럼 놀며 지내고 있는 아들을 데려다 달라는 부호의 부탁으로 1,000달러의 보수를 받기로 하고 이탈리아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는 디키와 그의 여자친구 마지를 발견한다. 리플리는 잘생기고 멋지고 근사하고 부유한 커플의 휴가 같은 인생에 순식간에 빠져든다.
디키는 뭐든 다 가졌다. 하고 싶은 건 뭐든 다 할 수 있다. 돈이 있으니까. 매력이 있으니 여자들도, 남자들도 다 그를 좋아한다. 그는 오만하고 부유하고 무책임하다. 톰은 디키의 그런 젊음을 사랑한다. 그 부티 나고 가벼운 젊음을 갖고 싶다. 디키처럼 살고 싶다. 그래서 톰은 수줍은 듯 이렇게 외친다. 네 삶의 방식이 다 좋아!
돈이 많지만 돈을 멸시한다고 말하는 부자들. 해변을 돌다 마음에 드는 집이 있으면 바로 계약할 수 있는 부자들. 낮이면 바닷가에 드러누워 몸을 태우다 밤이면 재즈클럽에서 내일은 없는 것처럼 신나게 놀 수 있는 부자들. 재능도 없는 색소폰을 불겠다며 설레발을 치다 이젠 드럼으로 바꿔볼까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부자들. 그러다가도 스키를 타러 가겠다는 부자들. 고급 양복을 입고 고급 가구를 들여다 놓고 아무리 흉내를 내봐도 쫓아갈 수 없는 부자들. 그들 인생의 울타리 속으로 아무나 들이지 않는 부자들. 태어나기 전부터 부자였고 죽고 나서도 부자일 부자들. 인생이 불공평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존재들.
톰에게 그들의 인생은 아찔할 정도로 황홀한 것이다. 조금만 팔을 뻗으면, 발끝을 치켜들면 잡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죽어라 노력해도 그들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도,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그들은 그 위에서 웃고 있을 것이다. 그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디키 그린리프가 되려면 아마도 엄청난 노력과 시간, 그리고 행운이 필요할 것이다. 그 지난한 길을 그는 단번에 뛰어넘어버리기로 결심한다. 거짓말을 통해서. ‘초라한 현실보단 멋진 거짓이 낫다.’ 톰을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재능은 많지만 현실이 받쳐주지 않는다. 거기에 열망은 너무나 강하다. 이 초라한 현실에서 도피해 멋진 거짓의 세계로 날아가고 싶은 열망이. 그것은 톰의 내면에 잠자고 있던 것들을 건드린다. 열등감, 질투, 탐욕 같은 것들을. 그래서 톰은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을 저지른다. 그는 끝내 이렇게 고백한다.
“사람은 아무리 끔찍한 죄악도 합리화하게 되어 있어. 누구나 자신은 착한 줄 알지. 과거를 창고에 꼭꼭 숨겨두고 자물쇠를 채우고픈 그런 기분 알아? 사랑하는 사람에겐 창고 열쇠를 주고 싶어. 문을 열고 들어가 보라고. 하지만 안 돼. 그 안은 어둡고 더러우니까. 그 추잡함을 들키면.”
<동주>와 <리플리>, 공교롭게도 두 영화는 모두 두 사람의 이름을 제목으로 썼다. 사건보다는 인간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두 사람은 자신의 재능을 다른 식으로 사용했다. 동주는 열등감에 괴로워하며 몽규를 흉내 내거나 몽규의 것을 가로채는 대신, 자신의 상처 입고 못난 마음을 시에 녹여냈다. 그러나 리플리에게는 자신의 것이 없었다. 리플리의 재능은 오로지 디키의 삶을 흉내 내고 쫓아가고 빼앗는 데만 쓰였을 뿐이다. 그래서 동주는 죽고 리플리는 살아남았으나, 후자의 삶이 더 비극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어 이제야 나는 나의 열등감을 받아들인다. 언젠가 친구의 남자친구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애는 너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끼는 것 같아.” 이제 나는 안다. 우리 둘이 서로에게 품은 동경과 미움과 질투심과 열등감은 알게 모르게 우리를 성장하게 했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너의 시선이라 생각하던 것은 사실은 내 안에 품은 너의 시선이었다. 그 시선은 나를 채찍질했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나 자신에게 정직해질 수 있도록. 너는 내가 필요로 하던 바로 그 시선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대단한 사람들은 아니지만 최소한 남에게 부끄러울 것은 없는 어른으로 자랄 수 있었다.
지금은 안다. 칭찬에도 비난에도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며 자신만만하게 충고하던 이들 역시, 거기에서 영원히 자유롭지 못하기에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그들 역시 남들의 평가에 흔들리고, 자신보다 더 잘난 사람들에게 열등감을 느낄 것이다. 어쩌면 그 뒤틀린 마음이야말로 창작의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열등감을 품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동주> 중 시 ‘자화상’에서
동주 DongJu; the Portrait of A Poet
이준익ㅣ드라마ㅣ한국ㅣ110분
이름, 언어, 꿈 그리고 한 줌의 생각마저 자유롭지 않던 일제강점기. 한 집에서 나고 자란 동갑내기 사촌 동주와 몽규는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고, 어둠의 시대 속에서 희망의 끝을 놓지 않는다. 절대 잃어선 안 되는 시대정신을 일깨워주는 그들의 이야기가 먼 시간을 지나 바람을 타고 그대로 전해온다.
리플리 The talented Mr. Ripley
안소니 밍겔라ㅣ스릴러ㅣ미국ㅣ139분
밤에는 피아노 조율사, 낮에는 호텔 보이. 딱히 내세울 게 없는 삶을 버텨내는 리플리는 서글픈 뉴욕을 떠날 기회를 찾게 되고, 어느 파티에서 피아니스트 흉내를 내다가 그린리프의 관심을 끌게 된다. 달콤한 인생, 자유와 쾌락, 상류사회, 부와 명예 그리고 아주 커다란 착각과 오해. 리플리는 어느 누구의 초상인 걸까.
글 한수희
일러스트 이영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