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연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내가 줄이기 전에 모르던 것들

어릴 적 집 안 곳곳을 내 물건들로 잘 어지르고 다녔다. 귀지를 닦아낸 면봉은 화장대 앞에, 마시고 난 우유팩은 책상 위에, 먹고 난 과자 봉지는 TV가 있는 거실에, 항상 내동댕이쳐놓았다.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어머니의 잔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네 건 네가 좀 치워라! 우찌된 게 맨날 머라 캐도 안 되노! 어지럽히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노?” 이 말소리가 귓가를 스쳤지만 그 습관은 잘 고쳐지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에서 돌아오면 내가 어지른 물건과 쓰레기들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렇게 어지럽히는 습관은 스무 살을 넘겨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해 한창 일할 때였다. 프랜차이즈 피자 가게에서 일했는데 본사의 로고가 예쁘게 새겨진 종이컵을 매장 사람들 모두 사용하고 있어 나도 하루에도 몇 개씩 새 종이컵을 꺼내 썼다. 그렇게 쓴 종이컵은 또 매장 곳곳을 어지럽혔다. 하지만 그날 마감 청소를 하는 누군가가 정리를 해주면 다음 날 또 새 종이컵을 사용하기 일쑤였다.

그런 일상을 반복하던 어느 날, 우연히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게 되었다. 전 세계에서 버리는 휴대폰, TV, 전자레인지 등의 전자폐기물을 정말 가난한 마을에서 고사리 손을 가진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동네의 모든 사람들이 중금속들을 걸러내고 분류하는 모습이었다(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중국 같다).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헉 하고 놀랐다. 흔히 보던 내 친구의 휴대폰 기종이 꼬마 아이의 손에 들려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더 충격은 그 아이는 앙상하게 말라 있었고 심지어 중금속에 중독되어 피부병까지 생긴 지경이었다.

다큐멘터리를 본 그날 밤 내내 ‘내가 쓰고 버리는 물건과 쓰레기를 치우지도 못하면서 버릴 자격이 있을까?’라는 때 아닌 반성을 하게 되었고, 내가 쓰고 버리고 어지르던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쓰는 모든 것들이 쓰레기가 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렇게 버린 쓰레기는 바다로 흘러 들어가 떠돌며 동물들이 먹게 되고, 우리나라에는 이제 더 이상 쓰레기를 묻을 땅이 없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렸다.

그 모든 쓰레기를 줄이고 싶었다. 최대한 안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쓰레기를 줄이겠다고 마음먹기 무섭게 실패했다. 편의점에 들러 물을 사 마시면 페트병이 남았고, 심부름을 하러 시장을 갔다 오면 비닐봉지가 한가득 쌓였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찾아 조금씩 줄여나갔다. 포장되지 않은 채소와 과일 등을 사서 내 가방에 넣으면 비닐봉지 사용을 충분히 줄일 수 있었다. 이미 비닐봉지에 둘러싸인 것들은 애초에 사지 않았다.

그렇게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자연스레 일상의 모습이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요즘 나는 이렇게 산다. 아침에 눈을 떠 헝클어진 머리 그대로 화장실에 간다. 잠을 깨기 위해 비누로 세수를 한다. 칫솔에 물을 적시고 녹차가루와 베이킹소다, 죽염가루를 섞어 만든 가루 치약을 묻혀 양치를 한다. 종이로 포장된, 샴푸로 쓸 수 있는 비누로 머리를 감는다. 뻑뻑해진 머리는 식초와 린스를 푼 물에 헹군다(아직 린스를 완전히 못 뗐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 귀이개에 얇은 거즈를 말아 물기 묻은 귓속을 닦아낸다(사용한 거즈는 모아두었다가 손빨래를 한다). 도톰한 수건으로 머리를 말린다. 옷을 갈아입고 텀블러와 손수건을 챙겨 집 밖으로 나선다. 아! 오늘 외부 강연에서 도시락을 나눠 준다고 했지. 다시 집에 들어가 젓가락과 빨대까지 들어 있는 주머니를 챙겨 들고 나온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텀블러에 물을 또르르 받아 마신다. 외부 강연을 나가서는 챙겨 간 젓가락으로 식사를 했다. 그리고 열심히 일을 하고 퇴근한다. 집에서 저녁을 먹고 결명자를 몇 알 띄워 물을 끓여놓는다. 다음 날까지 식혀서 냉장고에 넣어둔다. 

이렇듯 내 생활은 티 나지 않게 바뀌고 있다. 하지만 모든 부분에서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생활은 단기간에는 가능하지만 장기간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지금부터라도 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주변 사람들과 더 많이, 자주 대화를 나누는 기회를 만들고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오늘 빨대 안 쓰고 김밥도 통에 가져왔어요.”
생활이 조금씩 바뀌면서 집 안 곳곳 어지르는 습관이 자연스레 고쳐진 것이다. 스스로 내 물건을 정돈하는 습관이 점점 몸에 배기 시작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우리 어머니가 내 뒤를 따라 치우는 노고를 모른 채, 한 번 쓰고 버리는 종이컵도 아까운 줄 모른 채, 모든 쓰레기를 무심하게 버리며 정돈되는 삶의 모습을 모른 채 살고 있지는 않을까.

매거진 《쓸》

‘포장하지 않는 일상, 제로웨이스트 라이프스타일을 전하다.’ 매거진 《쓸》은 쓸 수 있는 자원에 대해 생각하며 생활하는 ‘제로웨이스트 라이프’ 이야기를 담은 잡지입니다. 제로웨이스트 라이프란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보이는 것에 매이지 않는 자연스러운 삶을 이야기합니다.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글 배민지(매거진 《쓸》 편집장)

사진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