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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강에서 서로의 행복을 승인하다
끈적이는 비닐 메뉴판
라인강에서 서로의 행복을 승인하다
우리 집은 지상파 3사 방송만 본다. 케이블 채널을 구독하지 않아서 그렇게 됐다. 스카이라이프도, IPTV도 없다. 그렇다고 내가 텔레비전을 바보상자 취급한다든지, 그래서 지성의 칼날을 곤두세워 시청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텔레비전은 좋은 친구다. 우리 가족은 토요일마다 〈무한도전〉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나는 틈만 나면 뭉그적뭉그적 TV 앞으로 기어가서 가장 쓰잘머리 없어 뵈는 쇼를 찾아보곤 한다. 멍하니 드러누워 뇌를 흐물흐물하게 녹이기에 저녁 뉴스와 예능 프로그램만큼 좋은 게 없다.
유료 서비스를 신청해서 채널을 늘리는 선택에 관한 내 의견은 유보적이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평소 반찬 세 개를 놓고 밥을 먹는다고 가정하자. 어느 정도 만족하지만, 반찬의 종류와 양이 살짝 아쉽다. 달걀찜이나 낙지볶음 같은 별미를 한두 개 갖추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된다면 더 좋은 식사가 되리라. 하지만, 반찬 종류를 100가지로 늘리면 어떨까? 압도적인 그릇 숫자는 식욕과 만족감을 극적으로 끌어올릴까? 어쩌다 한번 즐기는 백 첩 반상은 눈 호강이겠으나, 매 끼니를 그렇게 늘어놓고 먹다가는 식사가 곧 고문이 될 터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나에게만 해당하는 괴상한 성향이다. 집집마다 베란다에 위성 안테나 접시를 내건 모습을 보건데, 나만 빼고 다들 수백 개의 케이블 채널이 넘실대는 매체의 향연 속에서 매일 저녁 TV를 끌어안고 파뤼타임을 보내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우리 가족은 호텔에 투숙하거나, 부모님 댁을 방문할 때면 평소 못 보던 케이블 채널을 게걸스럽게 돌려본다. 아이들은 어디 정글 같은 오지에서 사느라 평생 만화영화 한 번 못 본 사람처럼 텔레비전에 빨대를 꼽고 종일 도라에몽 극장판을 무서운 기세로 빨아들인다. 할머니가 토이저러스에 가자고 꼬셔도 꿈쩍 않는다. 정신적 면역 항체를 갖추지 못한 채 ‘어린이 채널’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숙주의 표정을 짓고 있다. 흥미가 생기기는 나 또한 다르지 않다. 별 이상한 주제를 다루는 채널이 다 있네. 코미디, 스포츠 채널도 있고, 온종일 게임 중계만 틀어주는 방송국도 있어! 천국이잖아.
올겨울 가족 여행에서 가장 즐거웠던 활동으로 숙소 소파에 파묻혀서 〈맛있는 녀석들〉이라는 방송을 시청한 일을 꼽을 수 있다. 물론, 겉으론 이런 사정을 말하지 않는다. “제주도 다녀오셨다면서요. 뭐가 재밌었어요?”라고 묻는 사람에게 “텔레비전 실컷 봤습니다.”라고 대답하긴 창피하다. 이런 경우에는 “일출봉에 올라 새해를 맞는 각오를 다졌습니다.”라고 얘기해야 체면이 선다. 아무튼, 제주도에 머무는 동안 나와 아내는 늦은 밤 〈안녕 자두야〉를 시청하던 아이들이 잠들면, 그제야 슬그머니 채널을 돌려 〈맛있는 녀석들〉을 찾아봤던 것이다.
〈맛있는 녀석들〉은 요즘 흔히 말하는 ‘먹방’(먹는 방송)이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 보고 그 단순 명쾌 통쾌함에 감동했다. 유명 희극인 네 명이 어떤 맛집을 찾아가서 한없이 먹어 젖힌다. 먹으면서 먹는 얘기를 나눈다. 한 명이 급한 일을 참지 못해 화장실에 간다. 더 먹는다. 그리고 자리를 옮겨 다른 맛집에서 계속 먹는다. 이 얼마나 본능에 충실한 방송인가. 존경스럽다. 음식과 먹는 행위에 오롯이 집중할 뿐, 다른 사항은 개의치 않는다. 200회를 넘긴 거로 봐서는 꽤 알려진 방송인 듯한데, 나만 까맣게 모르고 지냈다. 하긴, 세상의 수많은 즐거움 중에 내가 모르고 사는 것이 비단 이것뿐이랴. 나중에 공중파로 옮겨서 방영해주시면 안 될까요. 굽신굽신.
강호동, 하정우 같이 음식을 복스럽게 먹기로 유명한 사람은 한둘이 아니라지만, 〈맛있는 녀석들〉에 출연하는 유민상, 김준현, 김민경, 문세윤 같이 먹방 장인의 경지에 오른 인물은 드물다(심지어 김준현은 방송 내 별명이 ‘김 프로’다). 맛집을 소개하는 방송이나 영화, 드라마에 잠깐씩 비치는 식사 장면은 작위적인 느낌이 나기 마련이다. 상황은 부자연스럽고 연기자는 카메라를 의식한다. 아무리 탐스럽게 먹고 화려하게 반응을 보이더라도, 결국 카메라를 끄는 순간 입 싹 닦고 ‘수고하셨습니다’를 외칠 것 같은 느낌. 심지어 대놓고 억지인 경우도 있다. 빈껍데기 같은 먹방의 대표 격으로, 정치인이 시장을 방문해서 김말이 튀김을 하나 집어 먹는 장면을 들 수 있다. 아니면, 정치인이 배춧값 폭락을 막기 위해 김치를 먹거나, 정치인이 광우병 파동을 달래기 위해 소고기를 먹거나, 정치인이 방사능 오염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일본산 농산물을 먹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네 명의 장인에게는 가식이 없다. 단지 먹어서 즐겁다는 느낌을 줄 뿐이다. 일하기 위해 먹는지, 먹기 위해 일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다. 관심사와 직업이 동일하다는 의미인 ‘덕업일치’의 표본이랄까. 소문에 따르면 그들이 촬영 장소에서 실제로 해치우는 음식 분량이 방송에 보이는 식사량보다 많다고 한다. 대단하잖아. 먹기에 몰두하고 집중하는 모습으로 맑은 해방감과 풍성함을 선사한 그들에게 감사한다. 팬심을 담아 ‘배달의 민족’ 쿠폰이라도 보내드려야겠다.
〈맛있는 녀석들〉 에피소드 열 편 정도를 탐닉하고 나니, 전에 몰랐던 새로운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텔레비전은 온통 먹방투성이더라. 식도락을 주제로 하는 방송도 많고, 먹기 쇼를 부록처럼 끼워 넣는 방송은 더 많다. 지역 탐방하는 중에 먹기, 장인의 솜씨를 엿보며 먹기, 요리사가 바로 만들어주면 먹기, 음식을 연구하며 먹기, 유명한 스타가 깨작깨작 먹기, 이명박 서민 음식 먹기, 전투적으로 위장의 한계를 시험하며 먹기, 여행 중 먹기, 해외여행 중 먹기, 오지 탐험 중 먹기, 문화 체험하며 먹기, 게임하며 먹기 등등. 이것뿐만이 아니다. 아프리카TV, 유튜브에서 자신이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개인 방송이 무려 수천 개에 이른다. 개인 먹방 채널은 그 수와 종류가 많은 만큼 먹어 치우는 식품과 방법도 각기 다양하다. 세상 재밌는 구경이 싸움 구경과 불구경이라고 했는데, 이제 여기에 ‘먹는 구경’을 추가해야 할 때가 됐다.
먹방 시청의 재미를 알아버렸지만, 막상 맛집을 찾아가는 경우는 드물다. 다른 사람이 먹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즐거움과 내가 직접 먹으며 느끼는 즐거움은 서로 같을 듯싶으면서 전혀 다르다. 이 경험의 간극은 어디서 발생하는 걸까? 시청각과 미각과 후각이 다르게 작동하는 탓일까? 감각기관의 차이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그것을 주된 이유로 볼 수는 없다. 보는 재미와 먹는 쾌감은 방아쇠와 총알처럼 서로 연결돼있다. 사람은 음식 이미지를 보는 순간 과거의 유사한 경험을 끄집어내어 맛과 냄새를 상상하게 된다. 여기서 발생하는 미각, 후각적 상상이 먹방에서 오는 즐거움의 발판이 된다.
우리는 방송 이미지를 미각적 상상력으로 변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맛있는 시청과 맛있는 식사는 별개다. 먹방으로 부푼 기대를 맛집에서 온전히 채우기는 어렵다. 세상 모든 사람이 나처럼 냉소적이진 않겠으나, 두 경험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간혹 유명 프로그램에 소개된 맛집에 가더라도 기대한 만큼 감동한 적은 없었다. 일반적인 기준에서 맛있긴 하다. 하지만 굳이 먼 길 찾아가서 줄 서서 기다릴 정도인가 싶다. 오히려 생각지 못한 번거로움이 닥친다. 손님이 많아서 피곤하고, 예상보다 비싼 가격이 기분을 짓누른다. 먹는 행위만 감상하는 방송과 달리, 실제 맛집 현장은 소란스럽기 일쑤다. 놓을 자리 없는 온갖 식기며 일회용 물티슈, 끈적이는 비닐 메뉴판, 기다리는 시간, 뒷사람과 맞닿은 좌석, 부적절한 조명, 차디찬 화장실……. 카메라 시야 밖에 숨었던 온갖 환경이 드러난다. 그곳에 앉은 내 상태도 문제다. 하루 일정을 견딘 끝에 이제는 집에 가고 싶을 뿐이다. 두피에는 미세먼지가 쌓였고, 맞은편에는 예의를 갖춰야 할 동행이 있다. 얘깃거리는 오는 길에 이미 바닥났는데. 침묵하긴 어색하고. 애꿎은 물잔에 손이 가네. 방바닥에 널브러져서 HD 화질로 광택을 낸 음식 이미지에 집중할 때와 비교해 모든 정황이 칙칙하다. 드디어 주문한 요리를 받아 한 입 먹으면, 음……. 글쎄, 이건 그냥 복잡미묘한 고기 맛이잖아.
매체는 현실을 왜곡한다. 텔레비전이나 유튜브는 전후좌우 상황을 모두 보여주지 않는다. 아니, 보여줄 수도 없다. 우리가 방송을 통해 보고 듣는 것이라야 고작 좌우로는 사각형 액자 속 이미지와 핀 마이크에 포착된 소리뿐이고, 앞뒤로는 카메라가 켜진 순간부터 꺼질 때까지로 제한된다. 그마저도 중간중간 편집되고, 자막과 시점 변화로 양념이 뿌려진다. 방송 영상은 없는 사실을 지어내지는 않지만, 현실 중에서 일부를 취사선택하고 그걸 조각내고 다시 이어붙이는 방법을 구사하여 매끈하고 향기로운 허위를 지어낸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도배한 음식 사진은 이런 허위 중에서도 가장 기만적인 축에 속한다. 민주적 소통 창구인 SNS 타임라인은 지금 이 순간에도 최첨단 모바일 네트워크 기술을 발휘해서 단짠하고 기름진 음식 사진을 30초 간격으로 꾸역꾸역 밀어내기에 여념이 없다. 맛집 인증샷을 올린 사람 각자가 어딘가에서 황홀한 음식의 향연을 즐겼고, 그래서 잠시나마 호사를 누렸음을 의심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들이 맛집 탐방의 절정, 즉 요리가 테이블에 놓이고 스마트폰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몇 초의 순간에 이르기 위해 거쳐야 했던 삶의 난관과 그 후의 졸리고 불쾌한 포만감은 나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이렇게 전후좌우를 삭제한다는 특징은 영상 방송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쪽은 그런 허위의 엑기스를 수백 개씩 모아서 일렬로 줄 세워 보여준다는 면에서 먹방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소외감을 추가로 선사한다.
인스타그램이 토해내는 각 사진에는 ‘나의 행복을 인정해줘’라는 부탁을 에둘러 표현한 글이 적혀있다. 그 아래에는 작성자의 행복을 승인하는 ‘좋아요’ 갯수와 ‘네가 행복하다는 사실을 믿어줄게’라는 응원의 뜻을 담은 댓글이 달렸다. 간혹 성의 없게 ‘ㅋㅋㅋ’만 적어넣은 댓글도 있다. 상관없다. 뭐든 흔적만 남겨주면 작성자의 소중한 행복은 힘을 얻는다. 품앗이하듯 서로 행복을 묻고 승인해주는 타임라인의 강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노라면, 문득 나를 제외한 세상 모든 이가 매일같이 맛집에서 산해진미를 냠냠 섭취하고 있으리라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힌다.
인스타그램에 자랑할 만큼 멋진 외식은 일주일에 한 번이 고작이다. 거기에 올린 인증샷은 168시간을 힘껏 짜내어 이룩한 영광의 두 시간, 그중에서도 가장 찬란한 순간만을 포착, 선별해서 애지중지 필터 효과를 가미한 진액 중 진액이다. 어느 누가 일 년 열두 달 그렇게 흥청망청 지내겠는가. 하지만 민주적 SNS에서 개인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모두의 사진이고 모두의 사건일 뿐이다. 수천 명이 군침 도는 사진을 투척하고, 이는 거대한 타임라인이 되어 흐른다. 그 앞에 아무 약속 없이 집에서 평범한 반찬과 밥을 먹는 내가 있다.
질투 난다.
벼르고 별러서 맛집을 찾아 나선다. 인스타그램처럼 신나게 살 거야. 왜냐면 다들 그렇게 사니까. 모처럼 무리해서 맛있는(맛있어 보이는) 요리를 주문하고, 셀카를 찍고, 필터를 적용해서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먹스타그램 #욜로 #취향저격 #존맛탱 #강남 맛집. 그렇게 내 사진은 수천 장의 다른 사진과 함께 타임라인이 되어 도도히 흐른다. 그럼 너는 그 강물에 질투의 돌멩이를 던지겠지. 그래도 잊지 말고 ‘좋아요’는 눌러주는 센스.
글 이지원
일러스트 송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