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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대체로 현실과 다른 곳에 있다. 현실을 반영하긴 하는데, 또렷하지도 선명하지도 않다. 때때로 굉장히 구체적이고 선명한 상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생생하다고 해도 어딘가 살짝 핀트가 나가 있다. 이를테면… 꿈속에서 누군가와 몹시 애절하게 사랑하는데, 대단히 절절한 애정을 주고받는데, 눈앞의 상대는 현실 세계의 애인이 아니라 관심도 없던 근육질 가수라든지, 애인은 애인인데 엉덩이에 하얗고 풍성한 꼬리를 달고 있다든지… 하는 식이다. 근육질 가수의 영상을 보고 잠이 들었다거나 애인과 강아지 산책을 시키고 잠들었다는 현실이 적당히 반영되기도 하지만 그다지 의미가 없을뿐더러 의미가 있어도 깨고 나면 거의 아무 영향력도 남기지 않는다. (이번 호에서 계속 얘기한 것 같은데) 나는 꿈을 잘 꾸지 않는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꿈은 누구나 꾸지만 기억하느냐 마느냐의 차이일 뿐이라지만, 어쨌든 꿈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래서 눈을 뜨고 꿈이 생생히 기억나는 아침이면 부랴부랴 연필을 쥐고 뭐라도 적는다. 놀랍도록 빠르게 휘발되는 꿈의 끄나풀을 어떻게든 붙잡기 위해.
<수면의 과학>(2006) 주인공 ‘스테판’은 나와 정반대 세상에 산다.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한다. 꿈으로 초대받는 일이 적은 나와는 달리 현실이 꿈이고 꿈이 현실인, 다소 복잡한 세계에 살고 있다. 스테판의 꿈엔 현실 세계에서 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옆집으로 이사 온 ‘스테파니’라든지, 함께 일하는 ‘기’ 등이다. 실제로는 아무 이성적인 교류가 없는 직장 동료와 발가벗고 욕조에 누워 있기도 하고, 어느덧 연심이 생긴 스테파니에게 용기 있게 청혼하기도 한다. 스테판은 현실보다 꿈에서 좀더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꿈에 도취되어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탓에 보는 이를 자주 안타깝게 한다. 말짱한 현실을 자꾸 다르게, 비딱하게 바라보고 잘못 해석하면서 착각과 오해를 낳는다. 스테파니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 자신을 버렸다고 착각하고,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았다고 오해한다. 현실 세계에선 스테판이 스테파니와의 약속을 저버린 게 전부인데. <수면의 과학>을 보면서 생각한다. 이토록 현실에 뿌리를 두고 생생하게 반영하는 꿈이라면 현실과 꿈을 착각하는 것도 이상하지만은 않겠다고. 꿈과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살아가는 스테판의 하루하루는 얼마나 제멋대로일까. 삶이 결코 녹록치 않으며 제대로 풀리는 일이 얼마 없을 거라는 내 걱정이 오지랖만은 아닐 성싶다.
가끔 잠자는 사람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눈을 감은 채 눈동자가 도르르 굴러가는 걸 볼 수 있다. 그럴 때면 그냥 ‘꿈을 꾸나 보다.’ 했는데, 이 장면을 보며 ‘정말인가 보다.’ 생각하게 됐다. R.E.M.이라니. 정확히 설명할 순 없어도 용어를 알고 있는 것만으로 뭔가 멋진 사람이 된 기분이다. 이 장면을 본 뒤로 잠든 사람의 눈동자를 유심히 보곤 한다. 바지런히 구르는 눈동자를 보면 꿈에서도 바쁘구나, 생각하게 되고, 잠잠한 눈동자를 보면 꿈도 없이 잘 자는구나, 여기게 된다. 눈동자는 어쩌면 꿈의 나침반인 셈일까. 어딘가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면 키가 큰다는 속설이 있다. 많은 사람이 한 번쯤은 높은 데서 뛰어내리는 꿈을 꿔보지 않았을까. 그런 꿈을 꿀 때 우리의 안구는 하염없이 아래를 향해 있을까? 할 수 있는 한 가장 아래쪽을 향한 채 하강의 공포와 자유로움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조금 무서워진다. 꿈을 꾸는 채로도 우리가 여전히 깨어 있다는 걸, 분명히 알게 된 기분이다.
<수면의 과학>을 보지 않았다면 이게 다 무슨 소리인가, 할 테다. 스파게티? 골든 포니 보이? 셀로판 조각? 영화 설정을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하면 글이 끝이 나지 않을 게 빤하다. 꿈도 그렇다. 내 꿈에 왜 이런 장면이 나왔는지 설명하기 시작하면 끝은 나지 않고 끝내 이해도 시키지 못할 것이다.
한때 반복되는 꿈을 꾼 적이 있다. 나는 항상 지하철역에서 출구로 천천히 걸어 올라간다. 하늘부터 보이는 풍경, 계절은 필시 한여름이다. 내리쬐는 태양과 작열하는 콘크리트 바닥 그리고 인도가 보인다. 빌딩이나 아파트 같은 건 보이지 않고, 야트막한 산과 작은 상점, 낮은 건물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단히 시골은 아니고 소도시 정도려나. 나는 그런 거리를 혼자 걷는다. 그러다 인식하지 못한 새 한 남자와 발맞추어 걷게 되는데 남자의 얼굴은 태양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나는 항상 스크류바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 아이스크림은 녹지도 않는다. 꿈이어서 그렇다. 그 남자는 주기적으로 내 꿈에 찾아오고, 나는 주기적으로 지하철역 출구를 오르며, 우리는 주기적으로 그 작은 인도를 나란히 걷는다. 한 번도 그 남자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 없지만 확실히 이전 꿈에 나타난 그 남자라는 걸 알 수 있다. 1년에 한 번, 혹은 두 번쯤 꾸는 꿈일까. 그렇게 3-4년을 계속 같은 꿈을 꾸었다. 최근에는 꾸지 않은 것 같은데, 그 꿈이 내 무의식 어떤 장면을 길어 올려 편집된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짐작도 안 된다. 그 남자의 정체도 여전히 알 수가 없다.
스테판의 대사를 오래 곱씹었다. 그랬던가? 기억에 남은 몇 꿈을 떠올려 보지만 장면만 있을 뿐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아, 딱 하나. ‘공포’만큼은 자주 느꼈다. 어릴 때는 유난히 귀신과 도깨비가 나오는 꿈을 많이 꿨다. 그런 밤이면 항상 나에게 속삭였다. “주연아, 이건 꿈이야. 깰 수 있어. 눈을 뜨자.” 자각몽이라는 단어를 모르던 시절에도 나는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어쩐지 알 수 있었고, 무서워질 때면 눈을 뜨자고 곧잘 되뇌곤 했다.
스테판은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다. 반대로 나는 꿈과 현실을 정확하게 구분한다. 현실과 꿈을 오가며 하나의 세계로 인식하는 스테판과 꿈과 현실을 나누어 정확하게 인지하는 나. 우리는 너무 다른 세계에 살고 있지만 나는 스테판이 꾸리는 세계가 좋다. 이해하고 싶지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지도 않지만, 그가 셀로판 조각들을 모아 바다를 만들거나 솜뭉치를 매달아 구름을 만드는 장면이 좋다. 피아노를 연주하여 “물체마다 독특한 파장이 있어서 그걸 찾아서 정확히 들려주기만 하면 알아서 떠오른다.”는 그런 대사를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현실에서 꿈 같은 무엇을 찾는 나와 꿈에서 현실을 찾는 스테판은 어쩌면 비슷한 사람이지 않을까, 오늘에야 문득 생각해 본다.
꿈결 같은 장면을 연출하는 두 사람. 스테파니의 대사를 곱씹으며 고갤 끄덕이려는 찰나 스테판이 먼저 소리친다. 죽음이라니, 그 재빠른 반응이라니! 곧장 이어지는 응답을 어찌 사랑의 속도라 말하지 않을 수 있나요.
느닷없는 청혼에, 준비 없는 고백에 단단한 벽을 만든 스테파니의 눈에서 읽은 게 슬픔이라면, 슬픔의 막을 거두면 사랑이 있다는 걸, 나는 어찌 알고 있나요.
살면서 보아온 숱한 사랑의 명장면 중 가장 아리따운 장면이었어요. “너 말곤 다 따분해.” 팔뚝에 오소소 소름 돋는 간지러운 대사들엔 눈물 지은 적 없는데 이 대사만큼은, 훌쩍….
소심하고도 강건한 이 대사는 무의식 속에서 현실이 되겠죠. 꿈에서라면 두 사람이 당장 일흔이 될 수 있음을, 언제고 함께할 것임을 알아요.
글 이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