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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망틴 드샤바넥스 — 세라믹 아티스트
파리 1구, 팔레 루아얄Palais Royal과 레알Les Halles을 연결하는 19세기에 지어진 아름다운 파사주 베로도다Véro-Dodat를 걷다가 갤러리 뒤 파사주Galerie du Passage 앞에서 걸음을 멈추게 됐다. 꽃잎이 뒤덮인 소녀, 눈물을 흘리는 꽃, 담배와 과자를 달고 누워 있는 뾰로통한 표정의 강아지가 창 너머로 시선을 유혹했기 때문이다. 수줍게 ‘딩동’ 소리를 내는 작은 벨을 누르고 조금 기다렸다가 갤러리 내부로 입장하면, 팝아트 특유의 악센트 속에 마음을 녹이는 따뜻함을 가진 클레망틴 드샤바넥스Clémentine de Chabaneix의 유니버스와 마주하게 된다. 귀엽고 유머러스한 시각적 즐거움을 넘어, 최면에 빠져들 듯 잠시나마 현실을 도피하려는 내가 그 안에 함께 존재한다. 깊은 생각과 상상 속에 들어가도록 작가가 쳐 놓은 덫에 걸린 것이다.
주말인데 인터뷰와 촬영을 허락해 주어서 고마워요. 입구에 붙은 종이의 손 글씨에서부터 예술가의 감성이 느껴졌어요. 원래는 카페였던 건물을 매입해 작업실로 사용한다는 점도 흥미롭고요.
맞아요. 1930년대에 지어진 카페였어요. 장사가 잘 안됐는지 세입자가 장부를 들고 도망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한동안 가게가 비어 있었는데 매물로 나온 걸 알게 된 순간 바로 구매 의사를 전했어요. 집이 여기서 5분 거리라 접근성도 좋았고, 레스토랑과 조리 공간 두 곳으로 나뉘고 입구까지 따로 구분되어 있어 아티스트 두 명이 공유하기에 너무 좋은 구조였거든요. 마침 음악가 친구와 함께 쓸 작업실을 찾던 중이라 더없이 안성맞춤이었죠. 제가 쓰는 곳은 레스토랑 공간이에요.
30년대의 카페라고 하니 내부가 근사했을 것 같아요. 당시 흔적이 남아 있는 부분이 있나요?
벽의 나무 패널과 거울 정도가 전부예요. 실내 장식에 신경쓴 카페가 아니었어요. 바닥도 동일한 패턴이 아닌데 그게 좀 재미있어 보이기도 했고요. 물론 제 취향은 아니지만요.
시대 때문에 아르데코 스타일이 아니었을까 상상했어요.
전혀요. 여길 처음 왔을 때 내부 장식은 끔찍한 수준이었어요. 어떤 스타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길에서 아무거나 주워 와서 채운 듯한 느낌이라, 다 없애는 게 최선이었어요. 가구와 카운터를 전부 제거하고 난 게 지금 이 모습이에요. 물론 장점도 있었어요. 과거 파리 카페 건물들이 그랬듯 지하에 와인 보관용 창고가 있다는 점이요. 물론 저는 와인이 아닌 작업에 필요한 물건들을 보관하고 있죠.
파리 외곽의 젊은 도시 몽트뢰유Montreuil에 집과 작업실을 두고 생활하는 것은 어떤가요?
몽트뢰유를 정말 좋아해요. 60-70년대에 많은 공장들이 문을 닫으면서 아티스트가 몰려들기 시작한, 그래서 지금은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밀집된 곳이죠. 이 지역이 한창 인기가 좋았던 25년 전부터 살고 있는데, 다행히 막차를 탔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몽트뢰유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가격이 너무 올랐어요. 25년을 거주하다 보니 주변 예술가와 장인, 협회 등과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고, 1년에 두 번 정도 작업실에 초대해 행사를 벌이기도 해요.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자주 모여 기술을 공유하고 영감을 주고받는 기회가 많은 곳이라 정말 좋아요.
작업실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무슨 일을 하나요?
도착하자마자 음악을 틀고, 점토를 준비해요. 점토를 힘껏 내리치는 과정을 거치면 몸이 풀리고 체온도 오르죠. 그리고 테이블 여러 개를 돌아가면서 작업해요. 작업물의 사이즈와 흙이 마르는 상태에 맞춰 순서대로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노련하게 전체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해요. 사이즈가 큰 작업물은 아랫부분이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는 너무 높게 위로 올릴 수가 없거든요. 어느 정도 흙이 마른 뒤에야 상단 부분 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마르는 동안 다른 테이블로 옮겨 다른 작품을 진행해요. 계절마다 차이가 커서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대처하고요. 예를 들어 습한 겨울에는 마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건조한 여름에는 너무 빨리 마르기 때문에 시간을 늦추고자 비닐로 작품을 꽁꽁 감싼 뒤 퇴근해야 해요.
세라믹 작업의 여러 단계 중 특별히 좋아하는 순간이 있을 것 같아요.
싫어하는 순간을 말해도 되나요(웃음)? 에나멜을 입히는 순간이 가장 까다롭고 결과물을 예측하기 어려워요. 독학으로 기술을 익혔기 때문에 전문가처럼 최신 기계들을 사용하는 데 미숙한 면이 있어요. 에나멜 작업도 기계로 하면 간단하다고들 하는데, 전 작은 수영장 안에 작품을 놓고 에나멜을 도포하거든요. 제 몸에 범벅이 되기도 해요. 친구들이 왜 기계를 안 사고 이런 원시적인 방법을 쓰냐고 타박해서 조만간 구입하려고요.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흙을 가지고 모양을 만드는 성형 작업이에요. 흙이라는 물질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움과 연약함이 손으로 전달되는 느낌은 환상적이에요. 마치 명상을 하듯 그 제스처에 빠져들게 돼요. 세라믹 작업은 차분하게 오랫동안 같은 템포의 움직임이 필요하기 때문에 성격이 급한 저 같은 사람에게 교훈을 주기도 해요. 가끔 작업 중에 서두르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 스스로 ‘안 돼.’라고 타이르며 심호흡을 다시 하곤 하죠. 이때 도움이 되는 게 플레이리스트예요. 음악으로 작업에 필요한 긴장감과 차분함을 적절하게 유지하고 있어요.
세라믹 외에 청동으로 제작된 작품들도 보여요.
청동은 최근에 시도해 본 작업이에요. 작은 사이즈의 시리즈물을 제작하려고 청동을 선택했죠. 세라믹으로는 동일한 작품을 여러 개 제작할 수 없거든요. 개인적으로 청동보다 세라믹 작업에 더 집중하고 있어요. 보통 성형과 건조, 채색, 초벌구이, 에나멜 작업, 재벌, 다시 채색, 재벌 이렇게 여러 단계를 거쳐야 완성되는 까다로운 작업이지만 그래서 저에겐 세라믹이 훨씬 더 매력적이에요.
어떻게 세라믹에 매력을 느끼게 된 건가요?
약 십여 년 전이었어요. 레진으로 작업을 했는데 재료에 거부감이 생기면서 흙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그래서 메종 포퓔레르Maison Populaire라는 교육 기관에서 제공하는 세라믹 조각 수업에 등록한 것이 시작이었어요. 그런데 첫 작품을 만들어 가마에 넣고 ‘짜잔’ 하고 가마 문을 열었는데 학생들의 작업 대부분이 깨져 있는 거예요. 모두 절망했고 수업 분위기도 좋지 않았죠. 그런데 옆 교실의 도예 수업은 음악 소리도 들리고 분위기가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세라믹 조각 수업 대신 도예 수업으로 반을 옮겼어요. 물레 성형이 익숙하지 않아 제가 만든 그릇은 대칭이 맞지 않았지만 그 수업을 들으며 점토의 성질과 흙을 다루는 방법, 건조와 가마 사용법까지 기본 중에 기본을 익힐 수 있었고, 그렇게 작가로서의 활동으로 이어졌죠.
세라믹 작가로 활동한 지 7-8년 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느지막이 작가의 길에 들어선 셈이네요.
미술 학교에 진학하고 예술가로 데뷔하는 전통적인 과정을 걷지 않았어요. 자라온 환경에서 예술이 너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미술 교육의 필요성을 못 느꼈던 것 같아요. 남들보다 훨씬 일찍 아티스트라는 직업이 무엇인지, 그들의 작업실은 어떤지, 어떻게 작품이 만들어지는지, 심지어 동물의 형상이나 꽃의 모습을 어떻게 입체적으로 제작해야 하는지 같은 디테일한 부분까지 조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직접 보고 배웠으니까요. (클레망틴의 조부모는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부부 조각가로 알려진 클로드 & 프랑수아자비에 라란Claude & François-Xavier Lalanne이다.)
그렇다면 은연중에 어릴 적부터 아티스트가 될 거라고 알고 있었겠어요.
가족 모두가 예술가였어요. 조각가, 배우, 가수, 사진작가처럼 분야도 다양했죠. 가족들을 보면서 예술가라는 직업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됐지만 막상 어느 분야에 집중해야 할지 정하는 게 고민이었어요.
세라믹 작품을 만들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카페에서 웨이트리스, 아네스베agnèsb에서 판매원으로 일을 했어요. 여성 작가들의 모임을 만들어 그룹 전시를 도모하는 등 아티스트로서의 작업을 병행하면서요. 배우로 일을 한 경력도 있어요. 광고에도 출연했지만 많은 배우 지망생이 그렇듯 생활비를 충당할 만큼 벌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죠. 대신 극단 일을 하면서 멋진 인연들을 만났어요. ‘테아트르 드 뤼Théâtre de rue’라는 거리 연극단에 들어가 스물다섯에서 서른 명 가까운 팀원들과 전국을 돌며 공연을 했는데 음악, 안무, 의상, 무대 연출, 디자인까지 종합 예술이 그 안에 있었고요. 테아트르 드 뤼를 경험한 뒤에는 길거리와 공공시설들이 평범하게 보이지 않는 심미안을 갖게 됐죠. 공공장소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대규모 공연을 하면 엄청난 희열이 선물로 따라와요. 거기에서 무대 장식을 제작하는 일도 했거든요. 창작에 관해 대단한 열정과 전문가적 기술을 지닌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라 무엇이든 제작이 가능했고, 그러면서 다양한 기술을 배우게 됐어요. 나중엔 도쿄 에르메스 뮤지엄의 인테리어를 맡았던 디자이너 힐턴 매코니코Hilton McConnico에게 작업 의뢰를 받을 만큼 손재주와 기술을 인정받았죠.
예술적 직업의 범위를 벗어난 적이 없었네요. 다양한 예술적 경험이 새로운 재료와 기술을 터득하도록 도운 셈이고요.
새로운 재료를 다루는 법과 장인 정신에 대해 항상 호기심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세라믹에 집중하는 이유는 가죽, 청동, 유리 등 어떤 재료와 혼합해도 어울리기 때문이에요. 여기 청동으로 제작한 붓순나무 꽃은 외할머니인 클로드 라란한테서 배운 테크닉 그대로 제작한 피스예요. 이 작은 청동 조각을 세라믹 작품에 더했을 때 큰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게 좋아요. 이 기술은 할머니가 딸과 손녀들에게 대물림해 준 무형적 유산이에요. 라란의 조각 작품들은 너무 웅장하고 특수해서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기엔 부담스러운 시간이 있었는데, 지금은 조부모님 덕에 저의 예술적 유산이 형성된 것을 인정하게 됐어요. 가족한테 물려받은 재능이 온전히 제 일부분이 된 것을 깨달았죠.
클레망틴 드샤바넥스라는 이름으로 이미 존재감이 충분하지만, 라란과 당신의 작업 간 연결 고리가 존재하는 건 당연한 거겠죠.
어머니는 저와 쌍둥이 여동생을 혼자 키우셨어요. 그래서 청소년이 될 때까지 우리 둘은 주말과 방학마다 할머니랑 할아버지 댁으로 보내졌죠. 두 분은 한집에 각자 작업실을 두고 생활하셨는데, 할아버지는 매끈한 동물 형상의 조각품을 차분히 제작하셨던 반면, 반대편 작업실은 할머니의 망치 내려치는 소리와 요란한 전동 절단기의 소음으로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어요. 두 작업실을 들락날락하며 구경하다가 지치면 메탈 조각이 흩어진 정원에서 심심하다고 외치는 게 우리 자매의 일상이었으니 재미있지요? 그렇게 스타일이 다른 두 분의 영향을 받아 동물과 식물을 좀더 저답게, 여성스럽게 다루는 작업을 하게 된 게 아닐까 싶어요.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스케치를 미리 하는 편인가요?
아니요. 주제와 형태 그리고 사이즈에 관한 전반적인 정보가 머릿속에 있으면 바로 작업을 시작해요. 제 작업의 특징 중 하나로 완성된 작품에 작은 오브제들을 마스코트처럼 부착하는 과정이 있는데, 여기에 사용하는 오브제들은 수첩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지만 기본 작업은 손으로 직접 이루어져요.
갤러리 뒤 파사주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과격한 부드러움에 대한 찬양Éloge de la Tendresse Radicale>에서 꽃잎이 뒤덮인 소녀 반신상이 인상적이었어요. 소녀와 꽃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시작됐나요?
일각수와 함께 있는 귀부인 문양 벽포Tenture de la Dame à la Licorne(클뤼니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15세기 태피스트리의 걸작)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태피스트리가 전시되어 있는 공간이 리뉴얼 된 후 방문했는데, 어두운 공간 속 아름다운 붉은색과 천 송이 꽃 배경에 눈을 뗄 수 없었죠. 그 이미지를 머릿속에 간직하고 이 소녀상을 만들었어요.
이렇게 서정적인 소녀 옆에는 익살스러운 표정을 한 강아지가 담배를 몸에 붙이고 누워 있어요.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모습으로요.
제 작업 대부분이 어릴 적 읽은 이야기책에 뿌리를 두고 있어요. 그중《잠의 나라 리틀 네모Little Nemo in Slumberland》 는 성장기를 함께한, 저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책이에요. 잠들기 전 항상 침대 안에 뭐가 있을까 무서워하는 네모라는 소년이 꿈속에서 침대를 타고 잠의 나라로 떠나는 모험 이야기인데, 1900년대 초반에 만들어 졌는데도 이미지가 무척 훌륭해요. 잠의 나라에서 보이는 동물들, 캐릭터들이 입고 있는 의상, 식물의 형태 그리고 화려한 색감까지 서커스장에서 느껴질 법한 시각적 즐거움이 존재해요. 현실과 꿈 사이를 이동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마치 저와 제 작업을 반영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고전이다 보니 또래 중에 ‘리틀 네모’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빈티지 오브제를 모으는 취미를 가진 엄마 덕분에 이 책을 접하게 됐고, 쉰 살이 넘은 지금까지 ‘리틀 네모’를 떠올리며 살고 있으니 엄마에게 감사해요. 모두에게 지금이라도 꼭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로 이 책의 팬이에요.
작업에서 토끼가 자주 보여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토끼의 형태, 특히 귀가 가진 표현력을 좋아해요. 동물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 귀는 꽤 중요한 요소인데 제가 원하는 표현력의 제스처를 찾는 과정에서 토끼라는 동물이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는 게 재미있어요. 이런 회화적 동물의 모습을 창조하는 게 가능했던 이유 또한 유년 시절의 경험 덕분이에요. 유치원에 가지 않고 배우였던 엄마를 따라 극단에서 함께 생활했거든요. 아직도 기억이 생생히 남아 있는데, 다섯 살 정도 되었을 거예요. 엄마는 당시 유명했던 ‘그랑 매직 서커스Le Grand Magic Circus’단에서 활동하셨고, 우리 자매는 덕분에 극단 구석구석을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었어요. 알록달록하고 화려했던 무대 의상과 가발을 써보기도 하고, 배우들의 백스테이지를 훔쳐보며 킥킥거리면서 말이죠. 그들의 안무와 조명에 황홀감을 느꼈어요. 그러다가 극단이 유치원 옆에 자리 잡았을 때는 담장 너머 놀이터의 아이들이 공을 주고받거나 미끄럼틀을 타는 걸 부러워하기도 했지만요. 어쨌든 이 시기에 입력된 동화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강렬한 시각적 충격은 오늘날 제 작업에 큰 영향을 주고 있어요.
영감을 받기 위해 따로 시간을 내기도 하나요? 전시를 보러 간다거나 여행 같은 것들이요.
아틀리에에서 묶여 지내다 보니 안타깝게도 따로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영감은 주로 음악을 통해 얻어요. 개인적으로 음악만큼 좋아하는 건 현대무용인데, 마지막으로 본 것이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안무가 크리스털 파이트Crystal Pite 의 작품이었네요. 심장이 터질 만큼 인상적이었어요. 훌륭한 컨템포러리 댄스가 전달하는 힘과 에너지는 흡입력이 대단하거든요.
당신을 ‘요정’이라고 묘사한 프랑스 잡지의 기사를 봤어요. 그 표현이 마음에 드나요?
그 단어를 쓴 기자의 의도는 물론 이해해요. 하지만 저는 작업에 대해 설명할 때 동화나 요정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싶지는 않아요. 물론 첫인상에서 어린 시절이나 동화가 연상될 수도 있지만 제가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것은 부드러움 속에 담겨 있는 다양한 메시지예요. 작품 안에 숨겨진 심오함을 발견할 수 있도록 가벼움과 심오함의 밸런스를 맞추는 데 노력하고 있어요.
저는 오히려 요시토모 나라Yoshitomo Nara 의 작업이 연상되기도 했어요. 그 역시 귀여운 그림들을 그리지만 숨겨진 의도와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잖아요.
그의 작업을 무척 좋아해요. 작품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책도 여러 권 구입해서 보았을 정도로 팬이에요. 아마 언젠가는 요시토모 나라의 유러피안 사촌 정도로 불리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웃음)?
이미 일본에서 러브콜을 받고 전시를 한 적도 있잖아요.
반응이 좋았다고 들었어요. 2022년에 톤카치Tonkachi에서 운영하는 노코기리Nokogiri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아트 페어 도쿄Art Fair Tokyo에도 처음 참여했어요. 아시아에 처음으로 작품을 선보이는 기회였는데 관객들이 유럽과 다르게 직접적인 관심을 표현해 주는 걸 느꼈죠. 올해 4월에도 도쿄에서 개인전을 열고 아트 페어 도쿄에도 참가할 예정이라 무척 기대돼요.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작업이 있나요?
평생 세라믹 작업에 집중할 거예요. 평생을 배워야 그나마 제대로 한다고 말할 만큼 까다로운 기술이다 보니, 마스터의 시선에서는 저는 지금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기로 보일지도 몰라요. 그리고 야외용 대형 세라믹 작품에 도전하고 싶어요. 야외용 세라믹에 대해 ‘빨리 낡는다.’와 ‘그렇지 않다.’는 두 가지 의견이 있는데 그 부분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려고 해요. 미래의 작업실과 제 모습을 상상해 보았을 때 개인 작업을 꾸준히 하면서 외부 작업을 병행하는 모습이 이상적인 것 같아요. 아틀리에 밖에서는 새로운 외부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이를 통해 늘 새로운 에너지와 활력을 얻어 개인 작업에도 반영하고 싶어요. 요즘은 세대 전체가 대혼돈을 겪으면서 다들 피곤해하고 불안함을 호소하고 있잖아요. 그렇다고 해결 방안을 누군가가 제시해 주지도 않고요. 저도 물론 기적 같은 방법을 알려줄 만한 위인은 아니지만, 작품 활동을 통해 생명체들끼리 형성할 수 있는 고요하고 편안한 에너지를 전달하는 게 주어진 몫이라고 생각해요. 긍정적인 에너지를 매일 작품으로 승화하려고 노력하는 게 아티스트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기여가 아닐까요.
갤러리 뒤 파사쥬에서 열린 그녀의 개인전에서 만난 작품들.
에디터 양윤정
포토그래퍼 Jean L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