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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비원
꽃비가 내리는 과수원에서
꽃비원
땅은 모든 것의 근원이다. 생명이 숨을 쉬는 가장 가까운 곳이며, 계절이 향하는 가장 마지막 종착지이기도 하다. 물을 머금어 강과 호수, 바다를 만들고, 뿌리를 가진 것들에게 삶을 준다. 생을 마친 것들이 영면을 취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가장 최초의 것을 떠올리는 삶은 어떨까. 꽃비가 내리는 과수원을 찾기로 했다. 땅에 물음을 갖는 삶은 그곳에 놓여 있었다.
땅을
궁리하는 일
논산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 두 시간 남짓. 기차역에서 다시 이동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린다. 어쩐지 도심에서 벗어난 거리만큼의 결심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새로운 삶을 찾는 일을 끊임없이 상상해 왔지만, 실행하기 영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잘 알았기 때문이다. 가늠하기 어려운 마음을 계속 돌이켜 보다 어느덧 ‘꽃비원 키친’이 있는 연무읍에 도착했다.
‘꽃비원’은 정광하 씨와 오남도 씨 가족이 꾸려 나가는 과수원이다. ‘꽃비가 내리는 과수원’이라는 이름에서 해사함이 느껴진다. 학교 선후배로 만난 부부는 모두 농대 원예과 출신으로 농촌의 삶을 꿈꾸며 비슷한 관심사를 갖고 있었다. 땅에 관한 이야기는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연결되었고, 무엇보다 모든 존재의 가장 근원이기도 했다. 미국에서 3년 동안 농업 관련 회사에다니면서 귀농을 차근히 준비하던 중, 부부에게 아들 원호가 생긴 것을 안 순간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맡길 터전을 찾았고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하고 농사짓기 적합한 환경의 논산을 선택했다.
오남도 씨는 텃밭이 딸린 직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상추 씨를 뿌리고 솎아서 점심에 비빔밥을 해 먹으며 직접 키우는 것으로 하루를 채워가는 기쁨을 깨달았다. “저는 꼭 시골 생활을 해봐야겠다고 오래 생각해 왔어요. 제가 직접 농사를 짓는 건 아니지만 농업 관련 단체에 있었으니 여기저기서 많은 것을 보내줘요. 집에 가서 엄마한테 ‘이건 어디에서 어떤 농부가 보내준 거다.’라고 전하면서 그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또 그 재료가 밥상에 올라오는 게 너무 재미있고 즐겁더라고요. 그때 생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계절을
말하는 삶
“부모님 세대는 보통 농업을 돈 버는 수단으로 여기는 관점에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렇지만 저희가 바라본 시골은 조금 차이가 있어요. 여기서 아이도 키울 거고, 우리 가족의 터전이 되는 만큼 삶이 그대로 들어가는 거예요. 단순히 돈을 벌고 일만 하는 게 아닌 거죠. 세대가 바뀌면서 시골을 바라보는 관점도 바뀌는 것 같아요.” 아들 원호와의 자연 친화적이고 흙에 가까운 삶을 살고 싶었던 정광하 씨는 귀농에 대한 자신의 소담한 생각을 담았다.
꽃비원은 다품종 소작농을 추구하며 사계절 동안 90여 종을 재배한다. 처음에는 사과와 배를 키우는 과수원으로 시작했지만 요리에 관심이 있던 터라 조금씩 자급자족의 마음으로 심기 시작하니 어느덧 50종으로 차올랐다. 농작물에 따라 월동을 해서 자라는 것도 있고 겨울을 나는 종도 있다.
농사를 짓다 보면 초반에 실패도 많이 경험하기 마련이다. 농대에서 배운 기본적인 탄탄한 지식이 도움이 되었을 것 같지만, 오히려 그들을 성장시킨 건 땅 위에서 벌어지는 날 것 그대로의 일들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학교에서 말한 것들은 농사일에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아요. 큰 도움이 된 건 이곳에 어르신이나 현장에 계신 분들이 조언하는 것들, 농사를 지었던 아버지의 말씀이에요. 그리고 실패요. 실패도 중요해요. 자연에서 배우는 건 결국 이런 게 쌓이는 거죠. 저희도 6년 차니까 오랜 시간이 흘러 보여도 농사를 다섯 번 밖에 안 지어본 거예요. 게다가 저희는 한정된 땅 안에 다양한 것을 재배하니까 종마다 세세하게 알기는 어렵죠. 가끔 씨앗을 뿌려놓고 까먹기도 해요(웃음).”
어쩌면
모두의 연결고리
모든 테이블은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제철 음식을 챙겨 끼니를 채우고, 계절과 날씨에 따라 취향으로 요리한다. 생산자가 소비자의 테이블을 생각하지 않고 농산물을 재배할 수 없고, 소비자 또한 생산자의 마음을 돌이켜 보지 않고 재료를 사들일 수 없다. 이런 마음으로 꽃비원은 관계가 엮은 끈끈한 삶을 생각한다. 유기농 식품에 관한 홍보 범람 속에서, 여전히 가장 중요한 것은 재료가 궁극적으로 어디로 도달하는지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희는 생산자기도 하지만 소비자이기도 해요. 마트에 가면 모든 상품이 유기농 마크와 함께 균일하고 예쁘게 놓여 있어요. 그런데 이따금 그게 유난스럽게 느껴지곤 하거든요. 사실 꽃비원에서도 농약을 사용하면서 더 편안하게 농사를 지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농사라는 것이 결국 자급자족을 기반을 두고 나온 거라, 저와 저의 아이, 가족들, 친구들, 이웃들이 먹는 거거든요. 주변인과 나누는 것이기 때문에 유기농 마크와 별개로 재료의 목적지를 생각하는 거예요. 유기농 마크는 충분히 받을 수 있지만, 그 인증을 통해 비싸게 파는 게 저희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닌 거죠.”
이 연결고리를 탄탄하게 하도록 꽃비원은 소비자의 얼굴을 마주하기 위해 나섰다. 농작물을 자동차 가득 실어 ‘마르쉐@’로 향한 것이다.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고 공통의 관심사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르쉐@에 나오기 전, 꽃비원에서는 특별한 것을 준비했다. 바로 어린 당근이었다. 채 다 자라지 못해서 크기가 작았고, 어린 당근잎이 귀엽게 피어올랐다. 도시 사람으로 살 적에 당근에 잎사귀가 자란다는 사실도 몰랐던 그들에게도 당근의 어린 모습이 무척 사랑스러웠고, 누군가는 이 시기의 당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 세 다발의 작은 당근을 가져갔다. 그리고 어느 누군가 이 당근이 무엇인지 묻고는 행복한 마음으로 사갔다.
“이런 게 너무 신기한 거예요. 이렇게 작고 사소한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들어서는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요. 교집합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거겠죠. 우리가 얼굴을 마주 보잖아요. 눈을 보고 이야기를 하잖아요. 거기서 비롯한 새로운 관계가 나온다는 게 신기하죠. 커다란 마트에 가면 재료가 모두 규격화되어 있어요. 적정한 시기에 수확하고, 포장해야만 소비자에게 돈을 받을 수 있거든요. 하지만 계절과 시기마다 농작물들은 갖가지 모습을 갖고 있고, 각기 맛도 달라요. 언제는 잎이 연하고, 또 언제는 뿌리가 튼튼하죠. 많은 얼굴을 갖고 있어요.”
맛있게
오래오래 살아요
마르쉐@를 나가 여러 활동을 하고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었다. 꽃비원이 고안할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였다. 농장 규모를 늘리는 것과 현재의 적정 규모를 유지하되 하고 싶었던 다른 일을 해보는 것. 하지만 규모를 늘리면 지금 같은 생산이 버거워질 것 같아 그들은 후자를 선택했다. 그렇게 그들은 꽃비원 키친의 문을 열었다. 공간을 빌려 자신의 이야기를 녹이려고 했고, 농사를 위해 예약제로 운영했다. 농사가 기본 바탕이라는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제철 채소를 활용한 식단이 무척 매력적이다. 봄에는 냉이의 향을 느낄 수 있는 냉이바지락 파스타가 내어지고, 여름에는 호박이나 가지를 이용한 여름 채소 파스타가 만들어진다. 가을이 되면 구운 채소 커리밥이 나와서 뜨끈하게 가을맞이를 할 수 있다.
이런 생활을 반복할 즈음 그들을 기다린 것은 ‘계절 있는 삶’이었다. 여름에는 일찍 일어나고, 겨울에는 마음껏 게으름을 피웠다. 봄, 여름, 가을에 열심히 일하면 겨울에는 갈무리하고 푹 쉬었다. 해가 금방 뜨거워지는 여름에는 자연스럽게 이른 새벽에 눈이 떠졌다. 해의 순환을 따라 하루를 보냈고, 고된 노동으로 농장을 채웠다. 알람 없이도 거뜬히 시간을 들이는 방법을 체득해 나갔다. 흙과 가까운 삶이 만들어낸 장면이었다.
농장 안에서 나고 자란 것들은 거두었을 때 그 자체로 가장 맛있다. 감자를 캐서 굽기만 해도 달고 담백하다. 땅과 햇빛, 바람의 세기를 굳건히 견디고 자란 것들이 가진 힘이다. 과수원 주변에 자라고 있는 앵두나무나 뽕나무는 판매용이 아니다. 일하다가 입이 심심하면 꽃비원의 다정한 부부가 종종 따먹기 위한 목적이다. 모두에게 시간은 흐른다. 한 해를 시작하고 정리하기까지 같은 길이의 절기가 주워지고, 느닷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시기와 하릴없이 하늘만 바라보는 느긋한 시간이 있다. 자연이 흘러가는 딱 그만큼의 시간. 꽃비원 안으로 스며드는 것은 그런 것들이다. 심심하고 슴슴한 생활. 하지만 활기차고 생기 넘치는 일들이 가득하다. 꽃비가 내리는 과수원, 그곳을 통해 많은 사람이 맛있고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3월에는 말이에요
FOR YOUR MARCH
꽃비원이 전하는, 당신의 3월을 위한 추천입니다.
겨우내 힘겨웠던 시간을 잘 이겨낸 나물로 밥상을 향긋하게 채워 보세요.
원추리
“백합 같은 꽃이에요. 봄에 순이 올라오면 수확해서 무쳐 먹기 좋아요.”
달래
“달래장만 만들어서 밥에 비벼 먹어도 맛있어요. 달래장아찌도 매운맛이 나는데 아삭하고요.”
두릅
“살짝 데쳐서 먹기 좋죠. 물론 튀겨 먹거나 전으로 해 먹어도 좋고요!”
오가피 순
“오가피나무가 약재로 많이 쓰이는데 봄에 순이 올라오거든요. 그걸로 장아찌를 해 먹으면 쓴맛이 강해서 입맛을 돋우어요. 김밥 쌀 때 넣으면 맛있어요.”
에디터 이자연
포토그래퍼 오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