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거나 또는 부르거나

겨울을 누리는 네 가지 방법

잠을 마주하는 고민은 대체로 두 가지다. 두 고민 모두 인간의 나약한 의지만으로 해결하기엔 어려운 터라, 우리는 곧잘 커피와 술에 기대를 건다. 무거운 눈꺼풀을 올려주길, 온몸에 긴장을 풀어 나른해지길 바라며 마시는 한 모금은 씁쓸하기도 알딸딸하기도 하다. 커피와 술을 한 번에 맛볼 수 있는 공간을 소개한다. 잠에 대한 어떠한 고민이든 이곳에 내려두자.

푸어링아웃

검은 밤 속으로 무작정 걸음을 옮겨보곤 한다. 이건 잠을 부를 때나 쫓을 때나 마찬가지다. 잠이 나의 말을 도무지 듣지 않으니, 몸을 움직여 어르고 달래다 겁을 줘 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이미 깜깜해졌다. 문을 닫은 상점들과 고요한 골목을 아쉬운 마음으로 바라보다가 어디든 불빛이 새어 나오는 곳으로 다가가 본다. 그렇게 발견한 장소가 바로 푸어링아웃. 

한낮이었으면 차와 사람으로 붐볐을 연희동 골목에서 한 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푸어링아웃이 보인다. 다크 초콜릿색 의자와 테이블은 정연하게 놓여 있고 공간에는 누군가의 신청곡이 울려 퍼진다. 에스프레소 메뉴를 훑어보다 플랫화이트를 주문했다. 작은 컵 안에서 우유와 샷이 층을 만드는데, 스푼을 넣어 경계를 무너뜨린 후 한 모금 마시면 고소한 풍미가 퍼진다. 아이덴티티 커피 원두 중 견과류의 뉘앙스를 살린 칠린 블렌드를 사용한 점도 진한 맛에 몫을 더한다. 부쩍 선선해진 탓인지 컵과 소서를 든 채로 뱅쇼를 마시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레드 와인에 시나몬 스틱, 레몬과 오렌지, 사과 등을 넣고 한소끔 끓인 뱅쇼는 술의 색과 향은 여전하지만 알코올이 흩어져 가볍게 마시기 좋다. 특히 푸어링아웃의 뱅쇼는 찾는 이들의 취향을 아우르기 위해 단맛을 충분히 살렸다. 차갑게 마시는 것도 가능하지만 따뜻한 편이 싱그러운 과육과 씁쓸한 끝맛이 여운을 남기고 컵에서 전해지는 온기도 즐길 수 있다. 음료 한 잔을 비우는 일에 온전히 집중해 보자. 잠을 떠올리며 애태우던 마음이 어느새 잠잠해질 테니.

선선한 계절과 어울리는
커피와 뱅쇼

신청곡을 비롯하여
몰입을 이끄는 음악이 재생되는 플레이어

A.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11나길 7-7 반지층
H. instagram.com/pourinlg_outl
O. 매일 10:00-22:00

무용소

옥인동 좁은 골목을 걷다 보면 유난히 시선을 끄는 공간이 있다. 동그라미를 네 조각으로 잘라놓은 듯한 테이블과 매거진 여럿, 반대쪽 벽을 차지한 위스키까지, 이 모든 것을 끌어안은 무용소다. 무용소는 술과 여행, 디자인 등 주인장의 취향이 스며든 비정형의 공간으로, 프리랜서 에디터로 활약하는 그가 일상에서 즐기는 위스키를 한자리에서 소개한다. 싱글몰트 위스키 중 하나인 글렌피딕을 주문하자 둥근 컵에 황금빛 액체를 담아 초콜릿과 함께 건넨다. 버번과 셰리 오크에서 숙성되어 달콤한 풍미를 가진 글렌피딕은 기간이 오래될수록 부드러워진다는 설명이 곁들어졌다. 한 모금 마셔보니 꿀의 향과 맛에 씁쓸함이 더해졌는데, 정도가 날카롭지 않아 온몸에 기분 좋은 열기가 돈다. 

위스키를 좀더 가볍게 마셔보고 싶다면 담백하고 깔끔한 무용소만의 하이볼을 추천한다. 세 종류를 반 잔씩 마셔보며 비교할 수 있는 ‘위스키 테이스팅 샘플러’, 평일 오후 6시 이전에 주류를 주문하는 이들에게 2천 원씩 할인해 주는 ‘해피 아워’도 진행 중이다. 메뉴판 한편에는 애정하는 동네 카페의 원두로 내린 드립 커피와 헬카페의 콜드 브루, 두 가지의 차도 마련되어 있다. 보통 위스키 등 높은 도수의 술을 연달아 마실 때 입가심을 위한 음료나 술을 ‘체이서Chaser’라 부르는데, 무용소에서는 커피를 술의 대척점이 아닌 같은 선상에 두고 체이서로 활용해 보길 추천한다. 곧잘 무용하다고 여겨지는 커피나 술을 꼭 끌어안은 채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해본다.

얼린 포도와
곁들이기 좋은 위스키

주인장이 소개하는 매거진과
도서, 엽서 등의 굿즈

A. 서울 종로구 옥인길 26
H. instagram.com/mooyongso
O. 화-목요일 15:00-4:00, 

    금·토요일 15:00-22:00,
    월·일요일 휴무

오무사

황정은의 소설 《百의 그림자》에는 ‘오무사’라는 이름의 전구 가게가 등장한다. 머리칼이 하얗게 세어버린 주인은 손님이 부탁한 전구를 찾기 위해 가게 안을 천천히 더듬는다. 급한 기색 하나 없이 정성스레 포장하고, 혹여 전구가 말썽일지도 모르니 하나를 더 얹어주는 다정한 가게다. 서촌 통인시장 근처 야트막한 오르막 너머에는 전구 가게의 이름을 빌린 작은 바 하나가 있다. 

누구도 아침을 기다리지 않는 듯, 어둑한 공간에서 밤을 즐기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오무사만의 칵테일과 위스키, 와인 그리고 디저트까지 다양한데, 메뉴판을 넘겨 보다 ‘백의 그림자’라는 이름의 칵테일과 핸드드립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소설 속 문장처럼, 전구 가게의 백발 주인처럼 ‘서두르는 법 없이, 그렇다고 망설이는 법도 없이’ 두 잔의 음료가 테이블에 올려졌다. 쑥으로 만든 압생트와 화이트 와인을 섞은 ‘백의 그림자’는 향으로 먼저 맛보았다. 와인의 산미가 만드는 상큼함을 느끼며 마침내 입으로도 흘려보니 향긋한 허브 내음이 맴돈다. 붉어지는 볼을 모른 척하며 꼴깍꼴깍 마시기도, 잔의 얇은 목을 감싸 쥐며 영롱한 연둣빛을 감상하기도 좋다. 차가운 커피는 칵테일보다 단순하고 깔끔한 맛이다. 스페셜티 원두를 일주일 단위로 바꿔가며 사용하기 때문에, 강배전부터 약배전까지 들를 때마다 다채로운 한 잔을 즐길 수 있다. 곁들일 디저트로는 피스타치오 케이크를 추천한다. 단단한 크림과 시트가 쉽게 뭉개지지 않아 음료와 즐기기 알맞다. 무거운 격식을 내려둔 채 느긋한 마음으로 당도하는 오무사에서 한 잔의 시간이 무르익는다.

한가로이 저녁을 보내는
편안한 자리

향긋한 칵테일과
고소한 피스타치오 케이크

A.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9길 1
H. instagram.com/bar.omusa
O. 월-목요일 17:00-24:00, 

    금요일 17:00-1:00,
    토요일 14:00-1:00, 

    일요일 14:00-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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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명주

포토그래퍼 김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