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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날마다 축제》, 《먼 북소리》
헤밍웨이와 하루키는 각기 청년기와 중년기에 긴 여행을 떠났다. 그들은 일상을 살 듯 이국에서 체류하며 글을 썼다. 떠나고 싶지만 당장 떠날 수 없는 몸인 나는 그들이 남긴 기록을 읽으며 긴 여행을 꿈꾼다. 낯선 도시의 침대에 내 체취가 배고, 창밖의 풍경이 익숙해지고, 골목에 단골 가게를 만들고, 지도를 보지 않고도 거리를 거닐 수 있게 될 긴 여행을.
얼마 전에 만난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다. 결혼하면서 너무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고. 그래서 결혼 11년 차인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도 결혼을 하면서 무언가를 포기했었나? 없다. 전혀 없다. 놀라운 일이다. 어쩌면 내게 결혼에 버금갈 정도로 큰 야망이나 꿈이 없었기 때문인지 모르고, 또 어쩌면 결혼을 한 후에도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고 내 멋대로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단지 딱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긴 여행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것에도 구속되지 않은 채로 여기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면. 낯선 도시의 낯선 방에서 깨끗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여행하는 것처럼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처럼 여행할 수 있다면. 생활에 함몰되지 않은 채 생활을 즐기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면. 새로운 이웃을 만들고, 새로운 단골집을 발굴하고, 새로운 산책로를 걸을 수 있다면. 정해진 시간이 끝나면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떠날 수 있다면. 그렇게 삶 속에서 태어나고 죽는 일을 경험할 수 있다면.
겉장이 파란 공책 한 권, 연필 두 자루와 연필깎이, (주머니칼은 너무 비효율적이다) 대리석 상판 테이블, 코끝을 간질이는 커피 향, 이른 아침 카페 안팎을 쓸고 닦는 세제 냄새, 그리고 행운. 이것이 내게 필요한 전부였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파리는 날마다 축제》 중에서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젊은 날 파리에 체류하며 글을 썼다. 첫 번째 아내 해들리와 함께였다. 무명의 헤밍웨이는 파리에서 자신의 작가적 기반을 마련했다. 그가 매일 카페나 작업실에서 열심히 글을 쓰는 동안 아내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공원을 산책하며 보냈다. 두 사람은 젊고 가난했고 행복했다. 젊음과 가난과 행복. 그것이 파리에서의 두 사람의 생활을 설명할 수 있는 완벽한 단어였다.
“우리 같이 나가서 그 서점에 들렀다가 강변로를 산책하자.”
“화랑과 상점 진열장도 볼 수 있게 센 거리 쪽으로 내려가요.”
“그러지. 어느 쪽으로 가든 상관없어. 그리고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도 없고, 우리가 아는 사람도 없는 카페에 들러 한 잔씩 하자.”
“두 잔 마실 수도 있죠.”
“그리고 어디 좋은 곳에 가서 식사도 하자.”
“그건 안 돼요. 서점에 돈을 갚아야 하잖아요.”
“좋아. 그럼, 식사는 집에 와서 하기로 하고, 건너편 협동조합에서 본 질 좋은 포도주를 한 병 사고, 괜찮은 요리를 만들어 먹기로 하자. 창문을 통해 여기서도 진열대에 표시된 가격을 볼 수 있잖아. 그러고 나서 책을 좀 읽다가 잠자리에 들어 사랑을 나누자고.”
“우리, 한눈팔지 말고 우리만 사랑하기로 약속해요.”
“물론이지.”
– 어니스트 헤밍웨이, 《파리는 날마다 축제》 중에서
젊은 연인이 함께 청춘을 보내면서 성장해나간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영화 <그녀>의 주인공 테오도르가 헤어진 아내 캐서린을 잊지 못하는 이유도 그 강렬한 체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치즈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이라는 단편소설에서 두 개의 선로가 만났다가 헤어지는 사이의 삼각지대 위 낡은 집에 사는 젊은 부부에 관한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집이 어처구니없는 장소에 있어도, 기차가 지날 때마다 온 집안이 덜컹거려도, 아무 상관이 없다. 그들은 젊고, 서로 사랑하니까.
그런데 젊음은 영원하지 않고 사랑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 안타까운 진실이다. 헤밍웨이와 해들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헤밍웨이에게 다른 여자가 생기면서 끝난다. 그 후로 헤밍웨이는 세 번의 결혼을 더 했지만 평생 해들리에 대한 죄책감을 덜지 못했다. 해들리가 다른 남자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게 되자 그제야 마음의 짐을 조금 덜 정도였다.
그건 어쩌면 테오도르가 아내를 잊지 못한 것과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와 남편 역시, 젊고 철없던 시간을 함께 보냈다. 행복하고도 고통스러운 시절이었다. 아마도 운이겠지만, 우리는 그 시기를 결국은 함께 버텨냈다. 그 시간이 지나니 우리는 둘 다 회사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고, 낡고 추운 주택에서 살게 되었고, 가난해졌고, 학부형이 되었고, 어른이 되었다. 만약 지금 나에게 새로이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 남편과 헤어져야 한다면 아마 내 팔이나 다리를 잘라내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는 이제 내 인생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찬란하고 고통스러운 청춘을 함께 다 보낸 내 인생의 동지이자, 증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엄청나게 운이 좋은 편이야.”
“그래요, 모든 일이 잘될 거고, 우리는 계속 잘해 나갈 거예요.”
아내와 나는 카페의 나무 테이블을 살짝 두드렸고 웨이터는 우리가 뭘 원하는 줄 알고 다가왔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도, 다른 누구도 가져다줄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카페 테이블의 나무를, 혹은 그 대리석 상판을 두드린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 밤 우리는 그것을 몰랐고,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파리는 날마다 축제》 중에서
마흔을 맞이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한다. 나이를 먹음으로써 새로운 것을 얻는 대신에 그때까지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던 일을 앞으로 할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어느 한 시기에 달성해야 할 무언가를 달성하지 않은 채로 세월을 헛되이 보내는 것은 아닐까. 그대로 여기에 있다가는 일상에 얽매여 속절없이 나이만 먹어버리고, 그러는 동안에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는 떠나기로 결심한다. 자신을 둘러싼 납득할 수 없는 유명세와 비판에서 벗어나 오로지 글쓰기에만 집중하기 위해 로마에서 시칠리아로, 그리고 그리스의 섬으로 긴 여행을 떠난 것이다. 작가로서 수입이 넉넉하고 미래가 완벽히 보장되어 떠난 여행은 아니었다. 이제 고작 이름이 알려진 그가 이런 여행을 계획한 것은 실은 도박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 나는 어느 날 문득 긴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던 것이다. 그것은 여행을 떠날 이유로는 이상적인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간단하면서도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어떤 일도 일반화하지는 않았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아득히 먼 곳에서, 아득히 먼 시간 속에서 그 북소리는 울려왔다. 아주 가냘프게.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 무라카미 하루키, 《먼 북소리》 중에서
하지만 휴양을 위해 떠난 여행이 아니라서 생활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로마에서 구한 지하방은 어둡고 축축하다. 시칠리아는 도무지 정이 안 가는 동네고, 겨울의 에게 해는 말도 못 할 정도로 춥다. 그곳에서 그는 똑같은 일상을 살아간다. 아내와 아침을 지어 먹고 책상에 앉아 하루 종일 글을 쓰고 산책을 하거나 달리기를 하고 저녁을 먹고서 잠이 드는 평범한 일상을. 성공할지 아닐지도 모를 소설을 쓰는 틈틈이 그는 하루하루의 생활을 가볍게 스케치한 글을 쓴다. 그 글을 모은 이 여행기는 좋은 기행문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대단한 곳에 가거나 엄청난 일을 겪지는 않는다. 매 순간 무언가를 깨닫고 반성하지도 않는다. 호들갑을 떨지도 않고 어떤 태도를 가장하지도 않는다. 착한 척도 나쁜 척도 하지 않는다. 어깨에 힘을 빼고 신기한 것은 신기하게, 즐거운 것은 즐겁게, 괴로운 것은 괴롭게, 덤덤한 것은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태도. 낯선 나라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개성 넘치는 시선. 좋은 기행문의 조건을 고루 갖춘 이 두꺼운 책은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마다 대리만족을 위해 집어 들기 충분하다.
냉장고에 아직도 뭐가 남아 있어? 하고 나는 묻는다. 스파게티하고 토마토 캔, 마늘, 올리브기름, 달걀, 포도주 반 병, 참치 통조림 그리고 쌀이 조금 있어. 그러면 점심은 생각할 것도 없이 참치 토마토 스파게티가 된다. 결국 철수전이란 그런 것이다. 괜찮다. 점심식사가 끝나면 우리는 여기를 떠나는 것이다. 점심식사에 무엇을 먹는가 따위는 대단한 문제가 아니다. 로라 니로의 오래된 카세트테이프를 들으면서 팬케이크를 다 먹고는 짐을 꾸린다. 그리고 짐을 정리하면서 문득 생각한다. 이 한 달 반이라는 기간은 나에게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하고. 이 철 지난 에게 해의 섬에서 나는 대체 무엇을 했던 것일까. 잠시 동안 거기에 대해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진짜로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다. 내 머리에는 군데군데 구슬 같은 공백이 생겨 있다.
어휴 도대체 무엇을 했더라?
어떤 의미에서 나는 갈 곳을 잃었다. 끝없는 러시아의 설원을 터벅터벅 계속 걸어가는 피폐한 병사처럼.
– 무라카미 하루키, 《먼 북소리》 중에서
어딘가 먼 곳으로 떠나고 싶다. 최소 2주일에서 최대 1년 정도는 그곳에서 살아보고 싶다. 아침이면 여기가 어디인지 어리둥절해하면서 잠에서 깨어날 것이다. 잠시 후에 어쩐지 다른 느낌의 햇살과 창밖에서 들려오는 낯선 언어에 비로소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차릴 것이다. 대충 눈곱을 떼고 빵 냄새를 따라 거리를 걸을 것이다. 해야 할 일도, 가야 할 곳도 없는 하루하루. 오로지 나 자신과의 약속에 의해서만 굴러가는 인생. 단골 빵집에서 빵 하나를 사고 넉넉해진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와 커피를 내리고 달걀 프라이를 만들고 갓 구운 빵을 잘라서 테이블 위에 올려둔다.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식사를 한다. 좋은 음악을 틀어놓은 채로. 있어야 할 것들만 있는 주방에서 필요한 것들을 설거지해 물이 빠지도록 선반 위에 죽 늘어놓은 후에는 일을 시작할 것이다. 헤밍웨이처럼 조용하고 아는 사람이 없는 기분 좋은 카페에서 일할 수도 있고, 하루키처럼 집에 놓인 작은 책상에 앉아 집중해서 일할 수도 있을 것이다. 헤밍웨이와 하루키가 그렇게나 다른 사람이라는 것에 어쩐지 웃음이 난다.
어찌 됐든 해가 지기 전까지는 일을 마칠 것이다. 저녁이 찾아오는 시간이면 거리를 산책할 것이다. 헤밍웨이는 글쓰기에 더 집중하려면 쓰던 글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머릿속을 비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으니까. 카페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사람들을 몰래 훔쳐보다가 들고 온 책을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빌 브라이슨처럼 상점의 쇼윈도 앞에서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로 서서 ‘대체 저건 어디에 쓰는 물건일까’ 궁리도 해볼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슈퍼마켓에 들러 맛 좋은 과일과 채소와 치즈 같은 것들을 사올 것이다. 그것으로 요리를 해서 혼자서, 또는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나누어 먹을 것이다. 은은한 불빛 아래서 우리는 술 한 잔 또는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TV를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할 것이다. 그리고 잠이 들 것이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잊어버린 채로. 그런 식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나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밖으로 나와서 언덕을 조금 올라가 처음 눈에 띈 카페니온에 들어가 찬 맥주를 주문한다. 골이 띵할 정도로 아주 차가운 맥주였다. 조용한 오후, 따뜻한 빛. “레스보스 섬은 그리스에서 맑은 날이 많기로 유명합니다”라고 관광 팸플릿에 나와 있다. 순찰 보트가 항구로 들어오는 것이 보인다. 청과 백의 그리스 국기가 바람에 나부낀다. 마치 인생의 양지와 같은 하루. 누군가가 우리를 그려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향을 멀리 떠나온 서른여덟 살의 작가와 그의 아내. 테이블 위의 맥주. 그저 그런 인생. 그리고 때로는 오후의 양지바른 곳을.
– 무라카미 하루키, 《먼 북소리》 중에서
“만약 당신에게 충분한 행운이 따라 주어서 젊은 시절 한때를 파리에서 보낼 수 있다면, 파리는 마치 ‘움직이는 축제’처럼 남은 일생에 당신이 어딜 가든 늘 당신 곁에 머물 거라고. 바로 내게 그랬던 것처럼.”
– 어니스트 헤밍웨이, 《파리는 날마다 축제》 중에서
파리는 날마다 축제
어니스트 헤밍웨이ㅣ이숲ㅣ368쪽
헤밍웨이가 젊은 시절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면서 마주하게 된 특별한 경험과 평범한 일상이 한 데 뒤섞여 있다. 파리 한쪽에 거주하고 있는 예술가들과의 인연, 첫 부인 해들리와 아들 존과의 사랑, 아름다운 골목 풍경과 단골 카페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까지. 하나의 회고록으로 낯선 시절을 맞닥뜨리게 된다.
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ㅣ문학사상사ㅣ509쪽
여행이란 결국 자신의 곁으로 흘러간 시간을 거슬러 되돌아보는 일이다. 끊임없는 고민과 자성이 긴밀하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약 3년 동안 유럽을 여행하면서 문학과 인생, 소설쓰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글로 담았다. 이 3년 동안 그는 《노르웨이의 숲》과 《댄스 댄스 댄스》를 완성했다.
글 한수희
사진 이자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