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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동 40키친
스물 일곱 살 40키친의 주인 조영주씨는 전문적으로 요리를 배운 적이 없다. 무작정 떠난 일본유학에서 생활하기 위해 배운 요리가 전부다. 한국에서 일본 가정식 식당을 연 그는 일본에서의 추억을 더듬으며 음식을 만든다. 타지에서의 생활이 외롭고 행복했을 때, 친구와 가족을 위해 요리했던 기억 앞에 순번을 달아 레시피로 만들었다. 그의 음식에는 소소한 생활에서 우러 나온 깊은 기억이 스며있다.
연남동 젊은 사장
화려한 하와이언 셔츠와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는 사진 속 그를 보고는 익살스럽고 가벼운 사람 일거라 생각했다.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가진 그가 정말 사장일까 하는 의문이 든 게 사실이었다. 일단 나이가 어려 보였고, 아무리 봐도 음식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상상한 요리사의 모습은 두터운 손과 볼록 나온 배를 가진 테디베어 같은 사람이었으니, 그 반대가 ‘그’라 해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십 대라는 싱그러운 무기를 가졌기에 가능했던 걸까,
이른 나이에 자신의 가게를 낸 젊은 사장에 대한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그를 찾아갔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진지한 태도에 당황한 건 내 쪽이었다. 다소 차분한 캐릭터가 그려진 맨투맨 티셔츠를 입은 것부터 내가 예상한 그의 모습이 아니었다. 스냅백을 거꾸로 쓰고 피어싱한 젊은이를 상상했던 나는, 그에게 조금의 공감을 얻고자 입었던 세일러 카라 원피스가 머쓱해져 괜히 외투를 더 여몄다. 내가 그의 복장에 주목했던 건 그가 패션디자인을 전공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와 요리사. 공통점이 전혀 없을 것 같으면서도 의외로 비슷한 점이 많았다. ‘맛으로 한 번, 눈으로 또 한 번’은 가게를 운영하는 동안 변하지 않을 그의 신념이다. 그에게 요리란 맛뿐만 아니라 보이는 것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디자인의 연장선인 것이다. 그렇기에 그가 친누나를 따라간 일본유학에서 패션이 아닌 요리를 배운 것도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아직도 그는 어느것 하나 놓지 않았고, 가게가 자리를 잡으면 꼭 패션디자인 일도 동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것이 비록 청년의 흔한 패기나 꿈이 될지라도 보기 좋았다. 그와 대화를 나누고 그가 내어준 음식을 맛본 뒤로, 좀 전에 느꼈던 가벼운 감정은 젊은 청년의 건강한 마음에서 나온 자신감이라 여겨졌다. 분명 나이를 지긋이 먹은 장사에 능숙한 사장이었다면 느끼기 어려웠을 신선함이 있었다.
틈새 가게
연남동 골목 구석에 자리잡은 40키친은 오픈한 지 4개월 된 신생식당이다. 그럼에도 이미 여러 매체에서 취재를 한 상태였고, 가게를 찾는 손님도 꾸준히 있는 편이었다. 이제는 모습을 감춘 동진시장 앞, 평坪은 작지만 평評이 좋은 가게들이 자리를 잡는데에 40키친도 한몫한 셈이다. 작은 규모의 가게가 그렇듯 이곳도 아기자기한 느낌이 있었지만, 한마디로 형용할 수 없는 묘한 인테리어로 그저 빈티지한 느낌을 어설프게 따라 하는 여느 가게와는 달랐다.
“요리만큼 인테리어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가게를 구상할 때 머릿속에서 인테리어가 백만 번 정도 바뀌었어요. 잡지 스크랩, 인터넷 검색은 기본이고, 일본에 있을 때 마음에 들었던 가게들도 떠올려 봤죠. 60-70년대 영화를 보며 영감을 받기도 했고요.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론을 냈어요. ‘오래된 가정집 분위기를 내자.’라고.”
이 가게가 연남동에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무리 상상해봐도 신사동, 삼성동, 대치동 같은 곳에 있는 모습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에게 연남동을 선택한 이유를 물었는데, 돌아온 답이 웃겼다. “버스를 잘못 탄 바람에 할 수 없이 정류장에 내리고 보니깐 동진시장 앞이었죠. 한창 가게 자리를 보고 있었는데, 시장 뒷골목의 정겨움이 제가 추구하는 식당의 이미지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사라진 ‘하나 미용실’과 ‘연탄 불고기 집’도 연남동으로 오라며 손을 살살 흔들었죠.”
그는 연남동을 서울의 낭만이 살아있는 동네라 했다. 항상 사람들이 넘쳐나는 홍대를 조금 빗겨가는 곳이라 그랬을까, 내가 생각한 도시의 낭만과도 닮아 있었다. 아직은 사람들의 발이 많이 닿지 않아 조용한 골목에 자리한 조금 어수선한 가게들. 그곳에 앉아있는 나를 상상했다.
한국인이 요리한 일본 가정식
가장 궁금했던 건 일본 가정식과 한국 가정식의 차이점이었다. 얼핏 알 것 같으면서도 ‘주식이 쌀이면 일본이나 한국이나 거기서 거기겠지’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는 그런 내게 차분히 설명해주었다. “한국은 재료를 오래 끓여 깊은 맛을 내는 반면, 일본은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 간단한 조리방식을 택하는 편이에요. 식당에 가면 더 큰 차이점을 느낄 수 있어요. 반찬의 개수부터 다르거든요. 한국이 푸짐한 한 상이라면 일본은 소박하고 간소한 편이죠.”
혼자 욕심 넘치게 주문한 세 개의 음식들이 차례대로 나오면서 친절한 설명이 이어졌다. 소박한 일본음식 중 하나는 ‘오차즈케’라 했다. 오차즈케는 간단히 말해 밥에 녹차를 부어 먹는 음식이다. 일본인이 즐겨 먹는 음식 중 하나로, 기호에 따라 우메보시(절인 매실), 명란젓, 연어를 올려 먹는다고. 내가 주문한 건 소담히 쌓인 밥 위에 분홍빛깔 우메보시 하나가 올라간 것이었다. 커다란 보온통을 열고 하얀 쌀밥 위에 녹차를 살포시 부었다. 그러자 눈사태가 난 듯 밥알들이 뜨거운 온도에 못 이겨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귀찮은 끼니를 때우기 위해 물에 밥을 말아 먹는 것 같은 밍숭한 맛일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차분하고 담백한 맛이 났다. 주문한 음식 중 가장 기대하지 않았지만 가끔 ‘노인네 식성’이라는 말을 듣는 나로선 손이 가장 많이 간 음식이었다.
두 번째 음식 ‘롤캬베츠’는 영화 <호노카아 보이>에 나와 유명해진 음식이다. 만두피같이 부드러운 양배추로 싸인 롤 안에는 다진 고기소가 가득 들어있고, 그 위에 진한 크림소스가 듬뿍 뿌려져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이 롤캬베츠의 배를 갈라 베어 문 장면을 기억하는 이상 무조건 먹어야겠다며 시킨 요리였다. 크림에 두둥실 떠 있는 두 개의 롤은 머리만 내놓고 물에 잠긴 섬처럼 보였다. 그만큼 얹어 먹을 수 있는 소스의 양이 많았다. 느끼할 것 같았지만 롤을 다 먹고도 소스를 숟가락으로 박박 떠먹을 만큼 맛있었다. 그는 이 음식이 가게에서 가장 잘 나간다고 했다.
“롤캬베츠는 영화에 소개되어 많은 사람들이 먹어보고 싶어하지만, 직접 만드는 데 손이 많이 가고 시중에 파는 곳이 없어 아쉬워했던 분들이 자주 찾아주는 것 같아요. 맛을 보고 ‘아, 이런 맛이구나’ 하는 손님들을 보면 저도 참 뿌듯해져요.”
마지막으로 주문한 음식인 ‘토마토 나베’까지 해치웠다. 일본식 샤브샤브로, 토마토 육수를 끓여 베이컨과 소시지, 버섯과 각종 채소를 넣고 익힌 뒤, 치즈를 얹어 먹는 음식이었다. 그의 추천대로 갑자기 추워진 초겨울에 먹기 좋았다. 뜨끈하고, 새콤한 맛이 세련된 양식을 먹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햄, 버섯, 양배추 순으로 재료들을 냄비에 넣어줬다. 괜히 연출하는 것 아니냐는 짓궂은 질문에 소스가 끓으면 손님들 옷에 튀길 수 있어 항상 재료를 넣어준다고 답했다. 다 먹고 나면 밥까지 볶아준다며 자랑스러운 웃음을 보였지만, 금방이라도 배가 ‘펑’하고 터질 것 같아서 함께 웃어줄 수 없었다.
그 밖에 40키친에는 특별한 일본 가정식 요리가 더 있다. 어렸을 때 먹어본 촌스럽지만 따뜻한 맛이 나는 ‘나폴리탄 스파게티’부터 한 끼로 충분한 ‘포테이토 명란’, 가쓰오부시를 올려 먹는 ‘네코맘마’ 등 다양하다. 일본유학시절 요리의 ‘요’자도 모르는 누나에게 의지할 수 없었기에 시작한 요리는 그를 연남동 작은 골목까지 데려왔다.
만약 그가 누군가에게 요리를 배웠다면 이런 가게를 낼 수 있었을까. 먼 길을 돌아 결국 엄마가 해준 음식이 가장맛있다고 느끼는 건, 그 음식에는 생활에서 배운 맛의 지혜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의 요리도 마찬가지다. 2년 반이라는 그리 길지 않은 유학시절을 통해 그가 지금의 음식을 만들기까지, 짧은시간에 비례하는 노력을 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재료로, 가장 맛있게 요리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과정에서 그는 ‘교육’이 아닌 ‘생활’에서 배웠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같은 이십 대로서 그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마음으로 요리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을 해주었다. 빈 그릇을 보이며 ‘잘 먹었습니다’라고.
에디터 이혜인
포토그래퍼 박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