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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다행히도, 후회가 잦은 편이 아니다. 설령 하더라도 길게 끄는 성격도 못 된다. 그럼에도 딱 하나 그래야 했는데 싶은 게 있다. 꾸준히 일기를 써야 했다는 거다.
어느덧 50살에 가까워진 탓일까. 기억이 흐릿하다. 어린 시절 추억을 오직 머리로만 되새김질하려니까 분명한 한계를 절감한다. 나한테도 직접 쓴 일기가 없지는 않다. 그중 대부분이 밀린 방학 숙제를 ‘급조’한 것이지만. 신뢰성 바닥이다. 이런 건 왜 또 기가 막히게 기억나는지 모를 일이다.
항상 주장하는 게 있다. “기억은 기록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진심 그렇다. 나는 인생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는 천성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거의 확신한다. 이유는 이렇다. 애석하게도 당신과 나는 천재가 아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단 하나, 근면해지는 것 외에는 없다. 읽고 또 읽고, 공부하고 또 공부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게으른 나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부지런한 자들을 경계하라. 그들이 바로 최종 보스다.
관심과 관찰에 근면해자. 우리는 모두 영감을 찾아서 헤맨다. 그것이 글쓰기를 위한 것이든 내 삶의 풍요를 위한 것이든 우리는 공히 영감에 목말라 있다. 그렇다면 부지런히 관심 갖고 관찰해야 한다. 그리고, 기록해야 한다.
“내 머리에 다 담기겠지.” 여긴다면 오산이다. 만약 당신이 흥미를 느껴서 관찰하기 시작했다면 당부하건대 기록하기를 바란다. ‘관찰 기록’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관찰 기억은 아무리 봐도 좀 이상하다.
나는 이것을 ‘3관법’이라고 부른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재미가 있다. 하나는 휘발하는 재미, 다른 하나는 의미로 전환할 수 있는 재미다. 전자는 예로 들자면 내가 사랑하는 <무한도전> 같은 거다. 낄낄 웃고 즐겁게 흘려보내는 재미다. 후자는 기록해서 붙들어 놓아야 하는 재미다. 그러니까 재미, 즉 흥미를 느꼈다면 ‘관심’을 갖고 ‘관찰’을 해서 그 대상과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의미 있는 무언가를 길어내야 한다. 세상은 이걸 영감이라고 부른다. 영감은 기록을 통해 우리에게 도착한다. 기억만으로는 무리다.
내 컴퓨터에는 ‘메모장’이라는 폴더가 있다. 책을 읽다가 인상적인 표현이나 구절이 나오면 몽땅 여기에 옮겨 적는다. 그러고는 틈날 때마다 이 폴더를 열어서 그냥 쭉 읽는다. 그 표현이나 구절을 그대로 쓰면 표절이기 때문에 그냥 내 몸속에 둥둥 떠다니게 만들어 놓는 나만의 의식인 셈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내 글쓰기의 조합과 바탕을 형성한다.
아직 한참 모자라지만 이걸 습관화한 뒤로 조금이나마 글쓰기가 나아졌다고 믿는다. 뭐, 믿는 것 외엔 도리가 없긴 하지만 말이다. 다음은 내년 한국대중음악상 후보 선정을 위해 올해 미리 기록해 놓은 노래 몇 곡이다. 2024년 나만의 결산 리스트에 반드시 들어갈 음악들이라고 보면 된다. 이것도 그때그때 기록해 두지 않으면 연말 다 돼서 기억하기가 힘들다.
무거운 톤으로 냉정하게 말하듯 노래하다가도 순식간에 격정으로 들끓는 스크리모Screamo 를 들려준다. 필요한 자세는 딱 하나. 이 격차를 온몸으로 받아내겠다는 각오뿐이다. 격차를 내면화하는 일이야말로 이 훌륭한 밴드의 팬이 되는 길이다.
2022년 ‘입춘’이 발매되고 화제를 모으면서 내 주위의 모두가 스타 탄생을 예감했다. 부디 소포모어 징크스 따위 겪지 않기를 바랐다. 완전 기우였다. 이 곡이 증명한다.
유력한 신인상 후보다. 힙합을 기초로 수많은 장르를 섞어내지만 어색함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재능 덩어리들이 한데 모였다는 이런 느낌, 참 오랜만이다.
이 곡이 실린 단편선 순간들의 앨범 [음악만세] 는 내가 꼽는 2024년 최고작이다. 기왕의 무속적, 연극적 기반 위에 노이즈, 사이키델릭, ECM 풍 재즈 등을 다양한 편곡으로 영리하게 섞어냈다. 이 곡은 타이틀이라 고른 것일 뿐 음반 전체를 추천하고 싶다.
올해의 도입부다. 사비나앤드론즈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순간 집중력의 볼트가 0에서 100으로 곧장 충만해질 것이다. 이런 시작,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다.
글 배순탁―음악평론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