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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의 중요한 일을 그르친 날이었다. 카페에 앉아 바싹 마른 목을 축이기 위해 마신 커피는 무지 썼다. 커피마저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눈썹 사이를 한껏 좁힌 채, 머리카락을 두어 번 쥐어뜯었다. 딸랑, 맑은 종소리가 울리며 누군가 들어왔고 나와 잠시 눈이 마주쳤다. 저 사람은… 내가 아는 그 사람인가? 어떻게 여기서 만나지? 신기한 마음에 슬쩍 볼을 꼬집어보는데 아픈지 모르겠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잠시 후, 옆자리에 앉은 그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마쓰우라 야타로 씨 아닙니까?”
“젊은이들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프로페셔널.” 흔히들 그를 설명하는 말을 단 한 줄로 끝낸다. 긴말은 필요 없다는 듯. 먼 곳으로 가보고 싶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마쓰우라 야타로는 그곳의 서점 문화에 매료되었다.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여행하는 서점’을 콘셉트로 오사카와 나고야, 교토 등을 넘나들며 트럭에서 책을 팔았다. 2002년부터는 오래된 독립 서점 ‘카우북스COW BOOKS’를 운영한다는 점, 7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잡지 《생활의 수첩暮らしの手帳》을 비롯하여 다수의 매체에서 편집장을 지냈다는 점도 그가 걸어온 길에 방점을 찍는 이력이 되었다.
하지만 그를 설명하는 말이 한 줄로 끝나게 된 것은 이력 따위 때문이 아니다(이후의 것을 강조하여 말하고 싶을 뿐, 실은 무척 대단한 이력인 걸 알고 있다). 마쓰우라 야타로는 일과 일상의 기본을 지키는 사람이다. 자신이 입고 먹는 것, 생활하는 공간과 일하는 공간,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에서 ‘나다움’을 발견하는 사람이다. 이를 테면 ‘한 가지에만 집중하기’, ‘시간과 노력 안에 숨은 재미를 발견하기’부터 ‘말하기 전에 듣기’, ‘깨끗하고 단정하게’, ‘조용하고 침착하게’ 등 말은 쉽지만 실천은 까다로운 것들을 기본 생활 태도로 세워 지킨다. 그에 따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에 모두가 원하는 것, 모두가 알고 싶은 것이 들어 있다고. 단순한 명제를 특별한 가치로 받아들이는 태도야말로 그가 가진 보석이다. 그러니 어느 누가 닮고 싶지 않으랴.
아차, 생각이 길었다. 깔끔한 셔츠를 입은 그는 가방을 의자에 가지런히 두었다. 쉬는 날엔 재킷 안에 소지품을 넣고 빈손으로 다닌다고 하니 아마도 업무 중간에 온 모양이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나의 눈을 바라보던 마쓰우라 씨는 이내 나의 머리를 본다. 아차차, 방금 머리를 쥐어뜯었지. 옅은 웃음과 함께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물음이 돌아왔다. 손으로 빗질하던 나는 오늘의 실패에 대해 말했다. “회사의 주력 상품에 대해 기획안을 제출해야 했어요. 아, 먼저 인사가 늦었습니다. 제 이름은 J입니다. 어쨌든 기획안을 맡겠다고 나섰지만 기한 안에 마치지 못해서 팀원과의 불화가 생겨버렸어요. 도미노처럼 할 일이 불어나다 보니 자꾸 이런 실수를 하네요.”
우리가 매일 겪는 실패는 영 지루한 것들이라, 듣는 이는 가벼운 답 또는 쉬운 공감을 보내곤 한다. 나 역시 그것을 기다리며 덧붙였다(마쓰우라 씨의 진지한 얼굴에 머쓱해진 탓도 있다). “물론 기한 안에 할 생각이었습니다만….” 마쓰우라 씨는 좀 전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할 생각이다’라는 말은 개인적인 생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이랬더라면 좋을 텐데’ 하는 애매한 소원에 불과합니다.” 엎질러진 물이라면 깨끗하게 인정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이란다. 조금 따갑지만 마쓰우라 씨는 나의 잘못을 무심하게 탓하는 것이 아니다. 사건이 발단과 전개를 넘어 위기로 나아가기 전, 동료들에게 솔직하게 양해를 구했다면 앞으로의 과정을 함께 논할 수 있었을 테니까. 내가 나의 업무량을 진작에 제대로 파악했다면 여력이 부족한 일도 맡지 않았을 테다.
일의 성사를 요리에 비유하곤 하는 마쓰우라 씨는 좋은 재료를 구비하기 위해 채소 가게를 살피듯, 사람간의 관계망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동료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나 인사를 제대로 하는” 등 일상의 태도가 관계망을 탄탄하게 만들어준다며, ‘지금이다!’ 싶은 찰나의 호의는 쓸모가 없다고 꼬집었다. 그렇게 소재를 다 모았다면 조리 도구와 조미료를 배치하듯, 책상과 업무 도구를 정리한다. 도구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마음 대신, 쓰는 이와 잘 맞고 선호가 닿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고. “일하는 자세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드러납니다. 작은 일을 소홀히 여기고 대충 하는 사람이 중요한 업무를 잘할 수는 없어요.” 서랍에 던져넣은 무뎌진 가위와 오래되어 겉면까지 끈적이는 테이프가 약 올리는 듯 떠오른다. 말도 안 되지, 그걸로 어떻게 대단한 요리를 만든담.
마쓰우라 씨에게 일의 기본이란 ‘고르는 것’과 같다. 기본이라 여겨지는 것을 전부 끌어안기보다, 나를 중심에 두고 나와 결이 닮은 가치를 골라내어 지키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에, 흔들리지 않고 단단해 보인다. 그는 목소리를 낮추더니 말한다. “이건 비밀 작전인데, 업무상 무리한 부탁을 할 때 나는 대부분 꽃다발을 들고 찾아갑니다.” 잠시만, 회사에서 꽃다발을 안은 마쓰우라 씨라니. 이건 조금 웃기잖아!
카페 점원이 내가 앉아 있는 테이블에 마쓰우라 씨의 케이크와 찻잔을 올려두고 돌아갔다. 함께 대화를 나누니 일행인 듯 보였나 보다. 이윽고 초면인 사람과의 길어진 대화가 불편하지 않을까 싶어, 조심스레 눈치를 살폈다. 그런 기색이 전혀 없는(혹은 연기마저 뛰어난 걸까?) 그는 자신의 테이블을 내 쪽으로 좀더 붙였다. 찻잔을 들어 몇 모금 마시기도 했다. 손목시계를 보니 어느덧 오후 3시 15분. 마쓰우라 씨는 아무리 바빠도 오후 3시쯤 차와 간단한 간식을 곁들여 쉬는 시간을 보낸다더니, 그것마저도 사실이었다. 문득 그가 왜 일과 생활의 기본을 두는지 궁금해졌다. 기본의 존재가 누군가에게는 꽤 깐깐한 규칙일 수도 있으니까. “기본이라는 건 매우 심플합니다.” 마쓰우라 씨는 다시 차 몇 모금을 마셨다. “무엇을 입고 먹고 생활하고 어떻게 일을 하느냐가 나를 규정하는 모든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마쓰우라 씨의 말을 따르면 기본을 찾는 것은 ‘나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 역시 20대 시절에는 “나다움 같은 건 조금도 없었”단다. 나보다 타인의 시선을 살폈기에 시답잖은 겉치레만 가득했고, 매일이 피곤했다. 피곤하지 않으려면, 즉 나의 삶을 살고 싶다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멋있다고 느껴지는 누군가의 태도를 전부 따라 해보기도 했다고.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를 알았다면 이후에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고, 생활 속 자신만의 기본으로 삼는 것이야말로 나다움”이다. 이게 나다운 건지, 나다운 것의 둔갑을 한 건지 “마구 뒤엉킨 실타래 같은 생각”을 차근차근 풀어나가다 보면 막막한 문제가 주어졌을 때도 자신의 기본을 잃지 않을 거라며, 마쓰우라 씨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렇다면 나, 이제부터 마쓰우라 야타로처럼 살면 되는 거 아닐까? 아뿔싸, 속마음이 입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소리 내어 웃던 그는 곧 나의 이름을 불렀다. J씨, 이야기의 “목적은 기본에 대한 답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기본을 예로 들어, 나의 기본은 어떤 것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며, 그것을 출발선으로 삼아”주길 부탁하는 거라고. 잠시 뒤, 앉은 이의 흔적은 말끔히 사라졌다. 가방이 앉아 있던 의자도 제 자리로 들어갔다. 오늘의 만남은 꿈일까, 생시일까. 아무래도 좋지. 완벽히 완성된 그림 대신 빈 종이와 연필을 받아든 기분으로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본을 발견하는 사람과의 선명한 대화를 곱씹으며.
글 이명주
일러스트 추세아 자료 제공 인디고(글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