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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녕 ㅡ 콘텐츠 크리에이터
우연히 한 유튜브 채널에서 어떤 이의 일상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영상으로 자신을 기록하는 고건녕은 수수한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서서 직접 요리를 해 먹고 가족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며 일을 한다. 그러다가도 혼자서 훌쩍 길을 나선다. 걸음 닿는 곳은 영 낯설지 않지만 자기 자신과 일상을 소중하게 대하는 그의 태도는 흔치 않고 귀중하다. 나의 마음에 귀 기울일 줄 알기에 기꺼이 혼자가 되었다가, 사랑하는 존재들의 이름을 연신 불러보는 그의 곁에 잠시 머물러본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고 있는데 직접 만나니 반가워요.
저도 반가워요. 말씀하신 것처럼 ‘덱시Dexy’라는 채널을 통해 일상과 생각을 담은 영상을 만들고, 최근에는 프리랜서 번역도 시작한 고건녕입니다. 자기소개가 별거 없죠? 영상에서는 혼자 있으니까 편안하게 말하는데, 누군가를 앞에 둔 채로 말하려니 기분이 다르네요.
본명이 ‘건녕’이라는 건 처음 알았어요. 독특하고 매력적이네요.
발음이 쉽지 않다 보니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항상 두 번씩 알려줘야 했어요. ‘안녕’ 할 때의 ‘녕’이라고 짚어주거나요(웃음). 남자 이름 같다는 소리도 자주 들어서 어릴 때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제 이름을 좋아하게 됐어요. 오늘도 건녕이라고 불러주세요. 여기 대추차랑 간식도 드시고요.
구수하면서도 달큰한 맛이 좋아요. 건녕 씨 가족도 소개해 줄래요?
저와 남편, 반려견 마농이까지 세 식구예요. ‘연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남편은 지금 회사를 갔는데 아마 오늘 대화 중에 이름이 자주 등장할 것 같네요(웃음). 저희가 서울로 오기 전엔 제주에 있었는데, 마농이는 그때부터 함께 살았어요. 저와 연이가 직장인일 때는 집을 비우는 시간이 기니까 새로운 가족을 맞을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결혼 후에는 제가 퇴사하게 되면서 마농이를 데려왔죠. 유기견 센터에서 만난 친구라 다섯 살로 추정해요. 마농이라는 이름은 떠오르는 단어들을 한가득 모아두고 그 안에서 골랐어요. 제주 방언으로 ‘마농’이 마늘이라는 뜻이더라고요. 마침 마농이가 마늘색이기도 하고요.
방금 마농이가 제 다리 위에 얼굴을 올려뒀어요. 아, 정말 귀엽네요(웃음).
에디터님이 마음에 들었나 봐요. 쓰다듬어주는 것도 좋아해요.
반려동물을 키우는 분들은 일과가 그 친구들에게 맞춰지기도 하더라고요. 건녕 씨는 어떤가요?
에디터님이 오시기 바로 직전에도 산책을 다녀왔는데, 언제나 아침은 마농이와의 걷기로 시작돼요. 가끔 몸과 마음이 무겁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로 일어날 때가 있잖아요. 하다못해 날씨가 궂은 날이거나요. 그럴 때 마농이와 산책을 잘 다녀오면 하루의 시작이 거뜬해져요. 그 이후의 일과는 정확히 짜여 있다기보다 꼭 해야 할 일만 정해두는 편이에요. 아침 챙겨 먹기랑 운동은 빼놓지 않는 일과이고, 6월쯤 제가 처음으로 번역한 책이 출간될 예정이라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번역 작업 이야기를 좀더 들려주세요.
영미권 에세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이에요. 2020년에 7급 공무원을 퇴사한 뒤에 내가 가진 걸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고민했어요. 외국어를 좋아하고 책을 읽거나 글 쓰는 걸 좋아하니까 단번에 떠올린 게 번역이었죠. 이번 작업이 번역 아카데미를 수료한 후 정식으로 처음 해본 거라 저와 잘 맞는 일인지 살펴보는 중이에요. 책이 나오면 성취감은 있겠지만 조금 부끄러울 것 같아요(웃음).
아까 제주에서 살았다고 했는데 서울로 오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제가 세종시에서 일하다가 제주로 발령받았어요. 같은 시기에 남편도 지금 일하는 회사에서 제주로 발령받게 되어서, 그곳에서 지내게 된 거죠. 시간이 지나고 제가 일을 그만두었을 때 마침 남편이 다시 서울로 이동하게 되면서 꼭 제주에 머물러야 할 이유가 사라졌어요. 처음에는 경기도의 아파트에서 지내다가 주거 공간에 대한 아쉬움을 느껴서 독립적인 공간을 찾아보게 됐죠. 저는 아파트가 다 똑같이 생기고 답답한 느낌이 들어서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럼 여기 녹번동은 원래부터 잘 알던 동네였어요?
전혀 아니에요. 마땅한 집을 찾으려고 발품 팔다가 처음 알게 됐어요. 녹번동은 젊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 곳에서 쭉 사신 어르신들이 많아요. 오래된 맛집도 많고요. 쌓인 시간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만큼 살기 좋은 곳이라는 뜻 같아서 좋았어요. 이 집은 50년 된 단독 주택이라 이곳저곳 낡긴 했지만 보자마자 마음에 들어서 여기로 와야겠다 싶었죠. 공간 전체를 채운 나무 소재와 부엌 입구의 아치형 문처럼 인상 깊은 곳은 그대로 두고, 오래된 벽과 타일을 뜯어내며 고쳤어요. 작년 이맘때쯤 한 달 동안 저와 연이, 가끔씩 친구들까지 불러가며 완성한 집이에요. 우리 취향에 맞게 집을 고치는 건 아직 현재진행형이라 부엌 한편에 페인트를 잔뜩 쌓아뒀어요.
두 분의 손길이 닿은 집이다 보니 유독 애정이 가는 공간도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부엌이랑 욕실에 공을 많이 들여서 가장 먼저 떠올라요. 저는 먹고 씻는 일상적인 행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기분 좋은 하루들의 공통점을 떠올려 보면, 일어나자마자 경건하게 씻고 내가 좋아하는 옷 입고 일을 시작했다는 거예요. 연이는 항상 출근하니까 말끔한 상태인데, 저는 아무래도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다 보니 특별히 나갈 일이 없으면 씻지 않고 잠옷을 입은 채로 지낼 수도 있잖아요. 그럴수록 마음의 에너지가 떨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지금은 낡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이 아름답지만, 혹시 오래된 집이라 꺼려지진 않았어요?
음, 집이든 옷이든 물건이든… 오래된 걸 좋아해요. 누군가 쓴 흔적을 보면 그 뒷면의 이야기가 궁금하더라고요.이 집엔 어떤 사람들이 살았을까, 이 물건을 쓰는 사람들은 어땠을까. 오래된 무언가가 지닌 시간이 마음에 와닿아요.
이 집에 기록될 세 식구의 시간도 기대되네요. 특별히 정해진 일과는 없다고 했지만 요즘의 하루 중 마음에 드는 순간이 있다면요?
2층 테라스에서 곧잘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작은 의자와 테이블을 두었는데 거기서 마농이랑 밥도 먹고 책도 읽고 바깥 구경도 해요. 옆집 할아버지네 마당에 라일락처럼 큰 나무가 많거든요. 테라스에 앉아 있으면 제 모습을 나무들이 슬쩍 가려주고 철마다 피고 지는 초록 풍경도 감상할 수 있어요. 그냥 지나치면 이웃집 담장에 무엇이 피는지도 모르고 살지만, 일 년에 한 번 볼 수 있는 것들이잖아요. 오면 반갑고, 지나가면 아쉬운 것들이요. 서울 도심에서 얻기 힘든 경험이라고 생각하다 보니 더 애틋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사소한 기쁨을 잘 줍는 일상처럼 느껴져요. 건녕 씨는 남편분과 연애를 꽤 길게 한 뒤 결혼한 걸로 알고 있어요. 소개팅으로 만났다고요.
연애는 7년, 결혼 5년째예요. 20대 초반에 대학 연합 동아리에 들었는데, 거기서 친해진 친구가 자신의 제일 친한 친구라면서 소개해 준 사람이 연이였어요. 둘이서 처음 만났는데 캡모자 눌러쓰고 패딩 입고 나왔더라고요(웃음). 저를 보자마자 하이파이브를 하길래 겉으로 잘 보이려고 욕심내지 않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사귀면서 연이를 좀더 알아가게 됐을 때는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사이라고 생각했죠.
어떤 부분에서의 결핍인지 들려줄 수 있나요?
연이와 저는 성장 환경이랄까요, 부모님의 육아 방식이 좀 달랐어요. 저는 첫째인데 부모님은 제가 원하는 걸 다 해주시면서 저에게 거는 기대가 컸어요. 그만큼 말도 잘 듣고 공부도 잘했고요. 남편의 부모님은 방목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키우셨대요. 그래서 연이는 부모님이 배움이나 경험의 기회를 많이 줬다면 현재의 자신은 좀더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하더라고요. 반면에 저는 내 생각을 조금이라도 더 존중해 줬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고요.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에서 느낀 아쉬운 부분을 서로는 잘 이해하고 메워줄 수 있었죠.
건녕 씨가 생각하기에 두 분은 닮은 점이 많은 사이인가요?
사실… 오랫동안 서로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요. 작년이 되어서야 우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르다는 걸 알게 됐죠(웃음). 보통 제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도록 연이가 양보하고 이해해 주는 편이라 우리가 닮았다고 오해했던 것 같아요. 작년은 집 공사부터 해서 각자에게 변화가 많은 시기였는데 서로 예민해지니까 갈등이 자주 생기더라고요. 나와 다른 부분이 드러나는 게 보기 싫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예를 들면 자기 자신에게 너그러운 연이와 달리 저는 엄격한 편인데, 사람은 자신의 기준을 쉽게 다른 사람한테 적용하게 되잖아요. 무언가를 함께 할 때 연이가 좀더 열심히 해줬으면 좋겠고, 내가 원하는 걸 같이 해주지 않거나 반기지 않으면 괜스레 서운해지면서 나를 사랑하는 게 맞는지 속상했어요. 하다못해 제가 좋아하는 영화를 함께 봐주지 않을 때도요.
어떤 마음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공통점이 많아야 완전한 관계처럼 느껴지잖아요. 그게 아닐 수도 있는데요. 같다고 생각했던 게 사실은 완전히 다른 거였는데, 어떤 방식으로 차이를 좁혀 나갔는지 궁금해요.
연이와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눴어요. 부딪치고 대화하다보니 우리의 다른 부분을 이해하게 돼서 자신을 조금 내려놓게 됐고, 서로 존중하려고 노력하죠. 저는 제가 제일 중요한 사람이었어요. 연인을 만나든 결혼을 하든지요. 예전에는 내가 나를 사랑해야 되는 이유가 나밖에 없었다면, 이제는 애정을 주는 사람들과 관계를 더 잘 맺기 위해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한 사람을 오래 보았다고 해도 그 사람의 세계를 전부 알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상대를 계속해서 공부해야 하나 봐요. 애초에 관계의 모든 면면을 우리가 처음부터 알 수도 없지만요.
건녕 씨에게 남편분은 어떤 의미를 가진 존재예요?
내가 더 좋은 나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에요. 에디터님, 혹시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2021) 보셨어요? 그 영화를 보면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남자가 여자에게 이런 말을 해요. 내가 너와 헤어지고 나서 후회되는 게 있다면 네가 얼마나 멋진지 깨닫게 해주지 못한 거라고요. 그 대사를 듣는데 연이는 언제나 나를 새롭게 깨닫게 해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반면에 저는 그렇게 하지 못해서, 연이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더 알려주고 싶어요.
두 분은 부부가 될 때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저희가 7년을 연애하면서 한 번도 결혼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데요. 더 이상 떨어져 있기 싫으니까 자연스레 함께 살기로 마음먹게 됐죠. 흘러가는 대로 한 거다 보니 결혼식이 저희한텐 별로 의미가 없더라고요. 일단 버진로드라고 부르는 그 길을 모든 사람의 주목을 받으면서 걸어가는 것 자체가 정말 싫었어요(웃음). 그냥 우리 둘이 잘 살면 되는 걸 큰돈 들여서 모두에게 공표한다는 게 괜한 일처럼 느껴졌고요. 그래서 결혼식 할 돈으로 제주에서 살던 집을 뜯어고치고 웨딩 사진도 독채 숙소를 하나 빌려서 어머니가 찍어주셨어요. 반지 대신에 서로의 이름을 작게 타투로 새겼는데, 시아버지가 연신 설득하셔서 원데이 클래스에서 하나씩 만들었죠.
‘이기적인 결혼에 대한 변’으로 시작하는 웨딩 카드도 인상적이었어요. “그저 우리 둘만이 주인공이 되는 결혼을 하고 싶었습니다. 다소 이기적일지는 몰라도, 우리만의 이야기가 담긴 그런 결혼”을 하고 싶다고 적어두었죠.
남들이 보기에는 이기적일 수도 있잖아요. 특히 가족 어르신들에게는 아는 분들 초대해서 감사 인사를 건네고, 마음이 오가는 자리이기도 하고요. 결혼식을 성대하게 하지 않은 것, 반지를 제대로 맞추지 않은 것, 그런 건 후회하지 않지만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은, 저와 연이가 주변 사람들에게 제대로 감사 인사를 하지 못한 점이 아쉬워요. 그때는 주위에 결혼을 한 사람도 없고 식 자체에 부정적이었기 때문에, 가까운 사람들을 챙길 자리를 간과해 버린 거죠. 이제는 결혼식이 꼭 보여주기 위한 행위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언젠가는 고마운 사람들을 모아 소소하게라도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그렇군요. 결혼은 연애와는 확실히 마음가짐이 다르던가요? 두 사람은 변하지 않았는데 새로운 역할만 주어진 거잖아요.
저는 좀… 다른데 연인과는 다른 ‘부부다움’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와 연이를 부부 같지 않고 연인 같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연인은 더 풋풋하고 로맨틱한 느낌이 있는 단어로 다가오니까 처음에는 그게 기분이 좋았거든요. ‘결혼은 의리로 하는 거다.’라는 말도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작년에 둘 사이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면서, 영원한 사랑은 없다는 걸 느꼈어요. 그러니까 우리 사이에 있는 사랑이 의리나 배려, 정, 애증처럼 모습을 바꿔가며 존재한다는 거죠. 콩깍지가 씌어서 별 노력을 하지 않아도 유지되는 풋풋한 애정보다 서로를 위해 성숙해져서 배려하고 노력하는 사랑이 더 로맨틱한 게 아닐까 싶어요. 부부 사이가 그렇고요.
사랑은 여러 모습을 아울러 부르는 말인가 봐요. 건녕 씨는 아이를 키울 계획이 없다고 했는데,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 아이를 낳아서 잘 기를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 있어요. 내가 한 사람으로서 좀더 독립적이고 바로 선 후에야 아이를 보듬을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요? 연이도 같은 생각이었는데 얼마 전 제 조카들과 시간을 보내더니 넌지시 이야기를 꺼내더라고요(웃음). 요즘은 조금씩 제가 바로 서고 있다는 걸 느끼는 때라 아이 생각은 언제든 바뀔 수도 있어요.
건녕 씨의 지난 이야기도 듣고 싶은데요. 유튜브 채널을 ‘7급 공무원 퇴사 영상’으로 알게 된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공무원은 어떤 계기로 시작한 일이에요?
그 영상이 머리도 안 감고 촬영한 건데 많이들 봐주셔서 깜짝 놀랐어요(웃음). 대학교 졸업할 즈음에 취업 준비를 하는데 잘 안돼서 너무 힘들었어요.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건넨 선택지가 공무원이었고, 이건 준비하면 붙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시작했죠. 일 년 공부하고 붙었는데, 애초에 저랑 조직 생활이 잘 맞지 않더라고요. 특히 상사에게 잘 보여야 하고 빈말을 수시로 해야 하는, 동료들과 굉장히 밀접한 관계가 필요한 조직이 어려웠어요. 회식을 하면 옷과 머리카락에서 고기 냄새가 풀풀 풍기는데 샤워하기도 싫고 널브러져서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싶었죠. 일은 잘해도 일에서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남들은 다 참고 다니는데 왜 나한테는 괜찮지 않을까,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걸까 싶었고요. 무언가를 잘 못하는 것도 스트레스인데 그런 나를 내가 바라보는 게 너무나 힘들어서 그만두게 됐죠.
문제의 모든 원인이 나한테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힘든 시간을 견뎠네요. 퇴사를 고민할 때 남편분은 어떤 반응이었어요?
내가 왜 괜찮아지지 않을까를 고민하면 연이는 저를 안아주면서 괜찮아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줬어요. 그 말이 참 고마웠죠. 제가 좀더 참고 다녀보겠다고 했을 때도 오히려 그만둘 거면 얼른 정리하는 게 좋겠대요. 연이 이외에 가족과 동료들은 그 어려운 걸 붙어놓고 왜 그만두냐면서 잔소리했죠(웃음).
그만둔 후에는 수입이 없다는 현실적인 상황이나 불안함이 고민으로 닿았을 것 같아요.
솔직히 저 혼자였다면 과연 퇴사를 할 수 있었을까요. 연이가 마음뿐 아니라 경제적인 지원도 해줬으니까 가능했을 테고, 그런 부분에서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해요. 저를 속상하게 했던 건 이 가정에 내가 보탬이 되고 싶은데 온전히 하고 있지 못한다는 기분이었어요. 일종의 자격지심이랄까요? 혼자였다면 담담히 감내했을 부분인데, 관계 안에 있으니 어떤 역할이라도 해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죠. 당장에 불안하니까 미라클 모닝처럼 일찍 일어나보기도 하고 없던 루틴도 만들어봤는데, 결국 내 옷이 아닌 걸 입는 것처럼 불편하더라고요. 과감하게 일상을 재정비하면서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명확하게 알아보기 시작했죠.
유튜브에 처음 영상을 만들어 올리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죠.
맞아요. 그런데 퇴사 즈음에는 동기 부여가 안 돼서 꾸준히 하진 않다가 제대로 마음먹고 시작한 건 일 년 반쯤 된 것 같아요. 예전부터 마음 한편에 창작에 대한 욕구가 있었어요.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해보고 싶지만, 예술가가 될 만한 창의성이나 능력은 없다고 생각했죠. 그 욕구를 영상을 편집하면서 해소하게 되더라고요. 영상에는 일상과 생각이 담겨요. 저는 집을 잘 가꾸고 건강하게 먹고 산책하는 것처럼 일상적이고 평범한 게 좋아요. 그래서 저의 하루도 어디 특별한 곳을 여행하고 유명한 곳을 찾아다니기보다 평범한 행위로 채워져 있고요.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는 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이자 저의 뿌리라서, 뿌리가 튼튼할수록 저 자신이 바로 서는 기분이 들어요. 혼자 있는 모습도 많은데 그 시간을 잘 보내야 다른 사람과 있을 때 나눠줄 에너지가 생기는 것 같아요.
저도 건녕 씨의 그런 일상이 좋아서 구독했어요(웃음). 한편으로는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도 있을 텐데, 울거나 속상해하는 모습도 담기더라고요.
다 알고 계시네요(웃음). 사람이 어떻게 항상 행복하기만 하겠어요. 부정적인 감정이라는 이유로 보여주고 싶은 나와 그렇지 못한 나를 나누고 싶지 않았어요. 이왕 나의 일상과 생각을 나누기로 했다면 전부 보여주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해요. 물론 이건 저를 한정으로 두고 하는 말이에요. 연이와 오붓하게 보내는 시간은 최대한 사적인 영역 안에 두려고 해요. 연이가 먼저 부탁하기도 해서 그 마음을 존중하려고요.
익명의 존재들이 응원을 보내기도 하잖아요. 구독자와의 관계에서 의미를 발견할 때가 있을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하죠. 처음에는 제가 가진 모든 걸 퍼주고 싶을 정도로 감사했어요. 지금은 고마움의 크기는 똑같은데 바라보는 마음가짐이 좀 달라졌어요. 유튜브에 언제나 좋은 댓글만 달리는 건 아니거든요. 무심코 남긴 말 한마디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져야 해요. 그건 곧 부정적인 시선뿐 아니라 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도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죠. 제가 하는 무언가를 사람들이 좋아할까 또는 좋아하지 않을까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으니까요. 저를 무조건적으로 응원해 주시는 분들을 볼 때도 스스로 충분히 그럴 만한 사람이니까 사랑 받는 거라고, 그래서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유튜브는 구독자나 조회 수, 댓글 등이 숫자로 공개되는 플랫폼이잖아요. 그 숫자가 신경 쓰이진 않아요?
눈으로 보이는 지표라서 관심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올리고 나면 바로 마농이랑 산책 다녀오거나 다른 할 일을 찾아요. 그런 와중에도 이 일이 좋다고 마음을 다잡게 만드는 건 이 세상에 나랑 같은 채널은 또 없다는 자부심이에요. 다른 채널엔 없는 나만의 것이 분명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숫자에 대한 조급함을 조금은 내려둬요.
대화를 나누다 보니 건녕 씨는 자신에 대한 확신이 중요한 사람이라고 느껴져요.
어려운 일이 닥치면 나니까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려고 해요. 물론 처음부터 그런 믿음이 있던 건 아니고, 저도 제가 못나 보이고 싫을 때가 있죠. 퇴사 영상을 올리면서 제가 알을 깨고 나오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구독해 달라며 장담을 했는데, 애초에 그 알이라는 게 별거 없는 것 같아요. 어떠한 환경에 놓이든 지금의 나한테 만족하는 게 한 꺼풀 뚫고 나온 거죠. 흔들릴 때는 곁에 있는 사람들이 도와주고 스스로도 되뇌고요. 세상에 어떤 일이 벌어지든 나를 믿는 게 가장 최선의 방법 같아요.
나를 대할 때는 믿음이 중요하다면, 누군가와의관계에서는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사랑이 필요 없는 사람이 되는 거요. 그건 곧 스스로에게 사랑을 준다는 것과도 같은 말이에요.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끊임없이 외부에서 사랑을 갈구하게 돼요. 하지만 스스로에게 충만한 사랑을 주고 어여쁘게 봐준다면, 오히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가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볼 수 있게 되죠.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족이나 누군가와의 관계가 삐걱거린다면 우선 나를 먼저 돌아보려고 해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됨)’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거 같아요(웃음).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면 지금 건녕 씨에게 가장 중요한 관계는….
연이와의 관계죠. 가장 의지하는 사람이니까요.
마음 둘 곳을 찾았네요. 건녕 씨의 삶은 앞으로 어떤 모양일지 궁금해져요.
사람이 자신의 삶에 만족할 때 지금처럼만 계속되길 바란다는 말을 하게 되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인데 지금처럼 좋아하는 일상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각자 하루를 열심히 보낸 후에 연이와 만나서 저녁 먹고 마농이랑 산책하는 하루가 유지되길 바라요. 거창한 건 없어요.
에디터 이명주
포토그래퍼 임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