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변화하는 존재로

신시연 — 콘텐츠 크리에이터

그를 처음 만난 건 영상 속이었다. 편안한 차림새에 유쾌한 몸짓으로, 손에 쥔 책에 열광하던 사람. 콘텐츠 크리에이터 ‘쩜’이 들려주는 책 이야기에 종종 귀 기울이다, 영상 너머의 신시연이 궁금해졌다. 뜨거운 여름날 만난 그는, 책에서 만난 삶으로 나를 이루어가는 중이었다. 마음을 움직인 문장에 삶의 궤도를 용감하게 바꾸며, 얼마든지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존재였다.

영상으로 자주 보던 공간에서 만났네요. 소개로 시작해 볼까요? 

반갑습니다. 스물여섯, 사람 신시연이에요. ‘신’이라는 이름으로 댄서, 안무가, 강사로 활동하고 있고, 동시에 ‘쩜’이라는 이름의 크리에이터로 다양한 SNS 채널에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어요. 처음엔 코미디 영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가, 춤을 거쳐서 지금은 책을 중심으로 영상을 만들어요. 

 

방 안에는 작은 도서관도 보이네요. 

원래는 옷방으로 마련된 공간인데, 이 집을 처음 봤을 때부터 여기에 책을 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책을 둘 다른 공간도 부족했거니와 나를 닮은 방을 만들고 싶어서요. 좋아하는 ‘토토로’ 인형도 두고, 뮤지션 장기하 씨 사진도 붙여두었죠. 파란색 책만 모은 책장도 있고요. 팬분들, 출판사 관계자분들에게 받은 편지도 보관해 뒀어요.

예쁘게 꾸려진 공간이에요. ‘신’과 ‘쩜’, 이름 각각 무슨 뜻인가요? 

‘신’은 제 성이면서도 동시에 다양한 뜻을 담은 한자예요. 육신의 신, 하늘에 있는 신, 귀신의 신까지 모든 의미가 마음에 들었어요. 춤출 때마다 다른 뜻의 ‘신’으로 무대에 오르면 좋을 것 같아서 그렇게 정했죠. 크리에이터 ‘쩜’은 틱톡 시작하고 생긴 이름이에요. 구경이나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틱톡을 깔았던 거라, 이름을 적는 칸에 마침표 하나만 찍고 가볍게 영상들을 올렸는데요. 그 상태로 많은 사람들이 제 영상을 보기 시작했고 쩜, 점, 온점, 도트라고 다양하게 불렸어요. 그중 ‘쩜’이 제일 어감이 좋고 기억에 남아서 크리에이터 이름으로 쓰고 있어요. 

 

오늘은 크리에이터 쩜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해요. ‘쩜 님’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본명으로 불러주세요(웃음). 시연이요. 

 

좋아요. 책을 주제로 시연 씨가 만드는 영상들, 늘 재밌게 보고 있어요. 

감사해요. 저는 인스타그램, 유튜브, 틱톡에 영상을 올려요. 요즘은 유튜브를 열심히 하는데 ‘독서 결산’ 콘텐츠를 다들 좋아해 주세요. 한 달에 한 번, 매달 읽은 도서를 소개하고 있어요. 제 채널은 책 좋아하는 분들만 보는 건 아니라 독서에 입문하는 방법이나 ‘독서템’ 소개, 브이로그 같은 영상도 올려요. 

 

독서와 춤, 두 가지를 동시에 좋아하는 사람은 흔치 않은 것 같아요. 

둘의 성격을 명확히 나누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즐길 수 있는 것 같아요. 독서는 조용한 취미라거나, 춤은 끼 많고 외향적인 사람이 해야 한다고 구분하지 않았죠. 그냥 춤추고 싶을 땐 추고, 책 읽고 싶을 때 읽으니까 자연스럽게 두 가지가 제 안에서 섞였어요. 저는 독서도 충분히 활동적이고, 무대에 서는 것도 정적인 활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책은 어떻게 주요한 콘텐츠 소재가 된 거예요? 

틱톡에서 우연히 한 외국인이 말없이 큰 제스처로 책을 리뷰하는 영상을 봤는데, 너무 재밌더라고요. 나도 해볼까 싶어서 따라 해본 영상이 꽤 인기를 얻었어요. 시간이 흐른 뒤 그 콘텐츠를 한 번 더 찍어서 올려봤는데 반응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책 콘텐츠를 계속 만들게 됐죠. 책은 어릴 때 좋아했지만 사춘기가 오고 나선 잘 안 읽었는데요. 스무 살 초반쯤 코로나가 시작됐어요. 갈 곳도 없고 집에서 할 것도 없으니 다시 독서를 시작한 건데 지금까지 꾸준히 좋아하게 됐어요. 

 

책 소개 콘텐츠를 만들 때 처음이나 지금이나 중요하게 생각해온 점이 있다면요? 

솔직하려고 해요. 영상에서 하는 모든 이야기는 얼마든지 지어낼 수 있잖아요. 예를 들어 누군가 필사를 어떻게 하냐고 물었는데, 제가 실제로 하지 않는 방법을 답할 수도 있어요. 아무리 별로였던 책도 제가 좋았다고 말하면 좋은 작품이 돼버리는 거니까, 나를 진솔하게 돌아보고 어떤 이야기를 할지 고민해요.

SNS 소개 글은 이렇게 쓰여 있어요. “현존하는 모든 예술과 재미나는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 이 문장 속 ‘예술’에는 책도 당연히 포함되는 거죠? 

그럼요. 머릿속에서 출발한 생각이 활자로 옮겨지고, 그 글이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번역되어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과정은 우리가 예술을 향유하는 방식과 일치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에게 책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예술의 하나예요. 장르 상관없이. 


책을 왜 좋아하는지도 궁금해지네요. 

혹시 ‘키자니아’라는 곳 아세요? 어린이 직업 체험 공간이에요. 그곳에서는 소방관도 파일럿도 사육사도 될 수 있어요. 키자니아의 목표는 아직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 잘 모르는 아이들이 이것저것 체험하면서 자신을 찾아나가는 일이겠죠. 독서의 목표도 똑같다고 생각해요. 페이지를 펼치면 내가 경험하기 어려운 세계에 들어갈 수 있고, 등장인물의 가감 없는 생각을 모두 알아챌 수 있어요. 그렇게 간접 경험을 계속하면서 등장인물이 주는 교훈, 그 사람의 태도 같은 것들을 하나둘 모아 나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책을 좋아하고, 계속 읽으려고 해요. 


독서 취향이 궁금해지네요. 좋아하는 장르, 손이 잘 가지 않는 장르를 이야기해 볼까요? 

좋아하는 장르는 소설이에요. 자주 읽지 않는 장르는 에세이고요. 지금 살아 있는 사람보다 죽은 사람들 이야기에 더 관심이 가서요. 요즘은 에세이 읽기를 시도해 보고 있는데 역시 자주 실패하곤 해요. 《리타의 정원》, 《애정 행각》,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는 재밌게 읽었어요, 저도 제 취향을 잘 모르겠네요(웃음). 


소설은 왜 좋아하나요? 

깨달음을 주려고 한 것 같지 않은 대목에서 깨달음을 얻게 될 때가 많아요. 알베르 카뮈의 《행복한 죽음》에서는 한 연인이 영화관에서 다투는 장면이 나와요. 그때 주변에 있는 관객이 “곧 영화가 시작되니 조용히 해달라.”고 말하는데, 저는 그 대목에서 예술을 대하는 태도를 배웠어요. 실제 내 앞에 있는 사람과의 불필요한 언쟁이 아닌 영화, 즉 예술로 바로 눈을 돌려 몰입하는 태도가 정말 감명 깊었거든요. 영화는 대본으로 만든 가짜 현실인데도 말이에요. 


내 삶에 가르침을 준다는 느낌을 받은 거네요. 

머릿속에서 뭔가 풀리지 않은 채 응어리져서 계속 떠돌아다닐 때가 있어요. 그에 대한 해답을 책이 돌려 말하지 않고 명확하게 제시할 때, 책은 진짜 삶을 담고 있다는 걸 깨닫고 더 빠져들게 돼요.

소설을 더 재밌게 감상하는 나만의 방법이 있는지도 듣고 싶어요. 

어울리는 배경음악을 반드시 틀어요. 그럼 몰입도가 달라져요. 그런데 음악에 가사나 반복되는 멜로디가 있으면 안 돼요. 유명한 클래식도 안 되고요. 제가 따라 부르거나 몸이 자꾸 움직이거든요. 최근에 우주가 배경인 서맨사 하비의 《궤도》를 읽을 때는 이런 음악을 들었죠. (노래를 튼다.) 

 

오, 앰비언트 뮤직이네요? 우주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들어요(웃음). 책 좋아하는 분들은 독서 모임에 꼭 참여하더라고요. 시연 씨도 함께하는 모임이 있어요? 

네. 저랑 친구, 친구 동생이 함께하는 독서 모임이에요. 그달의 책을 각자 읽고 모여서 호스트나 주제 없이 자유롭게 이야길 나누는 방식이에요. “나는 이 문장이 좋았어.”, “이 부분은 내 삶에 빗대볼 수 있을 것 같아.” 이런 식으로요. 철칙은 ‘딴 얘기하기’예요. 주제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해도 괜찮고, 어떤 말이라도 그걸 다시 책과 연결해 생각해 봐요. 너무너무 재밌는 시간이에요. 

 

구성원마다 책 취향이 조금씩 다를 텐데, 읽을 책 정하는 게 어렵진 않아요? 

취향이 모두 달라서 오히려 좋아요. 저는 소설이라면 현대와 고전 상관없이 좋아하지만, 친구 동생은 고전 문학을 사랑해요. 현대 소설은 최진영 작가님 작품 빼고는 안 읽죠. 남은 한 친구는 독서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책을 조금 어려워해요. 셋 모두 생각이 비슷하지 않고, 같은 책을 읽어도 좋아하는 문장이 저마다 달라요. 친구는 이 문장이 왜 끌렸을까 싶어서 이유를 들어보면 충분히 납득이 되어서 재밌어요. 책 고를 땐 모두가 한 권씩 후보를 내고 룰렛을 돌리는데요. 어느 날은 친구가 추천한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가 뽑혀서 마지못해 읽었는데 이젠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 됐어요.

 

덕분에 새로운 취향을 발견한 거군요. 독서로 얻은 게 또 있다면요? 

독서하는 사람은 글쓰기에 대한 로망을 가진 경우가 많은데, 원래 제 신념은 ‘글쓰지 않기’였어요. 나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지 않아서요. 그런데 임지은, 니키리 작가님의 에세이 《애정 행각》에서 “신념이 강하면 유연하지 않고, 유연하지 않으면 섹시하지 않다.”는 문장을 보고 내 신념에서 벗어나 글을 쓰고 싶어졌어요. 이제는 이것저것 많이 시도해 봐요. 산책 일기도 쓰고, 인터뷰도 해보고, 거절해 오던 팬 사인회도 참여해 봐요. 그 작품이 제가 바뀌는 데 많은 도움을 줬어요. 

 

시연 씨가 쓰는 기록은 필사 노트도 있잖아요. 필사는 어떻게 해야 즐겁게 할 수 있을까요? 

나의 필사 노트를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걸 명심해야 해요. 한 글자라도 틀리지 않고 멋지게 옮겨 적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되죠. 저는 문장을 그대로 옮겨 적지 않을 때도 있고, 따라 쓴 문장에 자유롭게 댓글도 달아요. (필사 노트를 펼치며) 여기 보세요. “나는 사이코와 결혼했다.” 이 문장 아래에는 이렇게 덧붙였네요. “너희 잘 어울려. 열심히 살아, 응응.” 이렇게 하면 돼요(웃음).

몇 년 전부터 ‘텍스트힙Text Hip’이라는 말이 생겨났어요. 독서가 힙한, 멋지고 세련된 활동으로 인식되는 현상을 뜻하는데, 이 문화를 어떻게 바라보세요? 

그 단어를 좀더 쉽게 풀어보자면 책 읽는 자기 모습에 취해 있다는 말이겠죠. 그런데… 그렇게 나를 멋지게 바라봐야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나요? 한 번씩 나한테 취하는 타이밍도 있어야죠(웃음). 독서가 힙한 문화로 여겨지면서 누군가는 자신을 책 읽는 사람으로 꾸며내는 이들을 비판하지만, 저는 아무렴 독서는 좋다고 생각해요. 책 판매에 이 문화가 이용될 수는 있겠지만, 악용될 수는 없잖아요. 책 읽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내버려두면 좋겠어요. 

 

한 영상에서는 젊은 세대가 책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문화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풍자하기도 했죠. 

어떤 예능 프로그램에서 젊은 세대가 책을 두고 토론하는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그려놓은 걸 보고 찍어봤어요. 이런 시선은 그 프로그램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수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꽤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 지하철에서 책 읽는 모습에 반감이 있더라고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요. 타인의 책 읽는 모습을 신경 쓰는 게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영상에서 이야기해 봤어요. 

 

그런 시선을 가진 분들이 있다니… 놀랍네요. 

제 이야기에 공감해 주신 분들도 있고, ‘어쨌든 너희 자신에게 취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많았어요. 댓글로 논쟁도 활발한데, 저는 거기까지가 영상의 완성이라고 생각하고 댓글 창을 열어두고 있어요. 

 

독서를 본격적으로 좋아해 보고 싶은 사람에게 팁을 알려준다면요?

마음껏 실패해 봐야 해요. 고르는 것마다 성공할 수는 없으니까요. 좋아하는 책을 알려면 싫어하는 책도 생겨야 하고요. 읽으면서 ‘정말 별론데?’ 싶은 감정도 느껴보면서 재미를 찾아가 보길 바라요. 

 

앞으로 크리에이터 쩜으로서 어떻게 걸어가려 해요? 

무해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어린이를 낮추는 ‘책린이’라는 표현처럼, 편견이나 혐오가 섞인 단어를 말하지 않으려고 해요. 어떤 계층과 나이대에 속해 있든, 제 영상을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불쾌하지 않길 바라요. 언제든 무해라는 단어에 집중할 거예요.

책장을 펼치면 우리든 어떤 사람이라도 될 수 있다. 한 번도 본 적 없던 세계에서, 나와 전혀 다른 면모를 가지고 살아가는 인물일지라도. 내가 아닌 나가 되어 보는 경험은 모든 것이 빨라 나만을 생각하기도 벅차고, 원하는 정보만을 선별적으로 취하기 쉬운 이 시대에 참으로 귀한 일이라고 신시연을 보며 생각했다. 나의 경계를 성큼 넘는 일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종이를 넘기는 단순하고도 쉬운 행위로 가능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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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차의진

포토그래퍼 김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