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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다정함
오랜만에 《AROUND》 8호를 꺼냈다. 내가 처음으로 원고료를 받고 쓴 글이 실려 있다. 남미를 여행하며 느낀 것에 대해 꾹꾹 눌러썼다. 지금, 다시 그 여행 이야기를 꺼내 본다.
조금 식상한 문장으로 시작해야겠다. 퇴사하고 여행을 다녀왔다. 오래전 일이지만, 불과 몇 달 전처럼 생생하다. 인생을 바꾸겠다는 식의 비장한 결심으로 회사를 그만둔 건 아니었다. 남미 여행은 오랜 소망이었다. 남미를 여행하자면 최소 6개월은 시간을 내야 할 것 같은데, 나에게 주어진 연차는 고작 1년에 15일 남짓이다.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막상 그만두고 나니 조금 비장한 마음이 생기긴 했지만, 평생을 자유로운 여행자로 살고 싶은 건 아니었다. 여행이 끝나면 살던 곳으로 돌아와 다시 비슷한 직장에 취업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재취업이 어려울 거라며 말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건 그때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
여행 준비를 제대로 했는지, 잊은 건 없는지, 크고 작은 걱정이 많을 때 지인의 소개로 조병준 시인을 만났다. 여행 선배인 조병준 시인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체력을 기르고 맛있는 걸 많이 먹어두라고 했다. 준비해야 할 건 그것뿐이라고.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리고 지나가듯 장기 여행이 잘 안 맞는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여행은 그저 좋기만 한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던 내게 그 말이 무척 강렬하게 다가왔다. 회사까지 그만두고 가는 여행인데, 여행이 적성에 안 맞으면 어쩌지? 배낭을 메고 집 앞 정류장에서 공항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조금 후회도 했던 것 같다. 설렘과 걱정 그리고 후회. 온갖 감정이 뒤섞인 채 버스에 올랐다. 경유지 뉴욕에선 그 후회가 조금 더 커졌다. 이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메고 앞으로 6개월을 더, 잔뜩 긴장한 상태로 걸어야 한다는 거지. 아늑하고 안전한 나의 집에 가고 싶었다. 남은 6개월의 여정을 떠올리면 막막했다. 어서 6개월이 지나고, 무사히 여행을 마무리한 상태가 되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과테말라에서 시작한 여행은 멕시코, 쿠바, 콜롬비아… 중미를 거쳐 석 달 정도 지났을 때 남미 페루에 도착했다. 페루에서 여행을 시작하는 한국인이 많았는데, 그들은 완연한 여행자의 행색인 나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그때마다 나는 마치 숙련된 여행가가 된 듯 이런저런 정보를 알려주었다. 벌써 여정이 반이나 지났다니. 그 시기 즈음엔 생각했다. 집에 가고 싶지 않다고. 이 배낭 하나에 든 짐과 함께 영원히 길 위에서도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해보기 전엔 몰랐는데, 여행이 체질인 것 같다. 다행이다. 길 위에서 여행이 영 맞지 않는 여행자를 만나기도 했다. 당시엔 조금 놀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자신도 남도 속이지 않는 솔직함이 무척 멋있는 사람이었다. 이후 볼리비아, 칠레를 거쳐 마지막 여행지 아르헨티나에 도착했다. 이제 여행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처음엔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게 느껴지던 여정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여행을 시작하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여행에 대한 걱정과 불안은 내려두라고. 대신 다른 걱정이 고개를 든다. 집으로 돌아가면 나는 과연 재취업을 할 수 있을까. 어디서 살게 될까. 뭐 하고 살 수 있을까. 회사를 그만둘 때의 패기가 사라졌다.
고민이 조금씩 싹을 틔우고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을 때 즈음 남미 대륙 남쪽 지역, 아르헨티나 엘 칼라파테에 도착했다. 한국은 여름인데, 그곳은 한겨울이었다. 거리에 눈이 잔뜩 쌓여 있어서 발이 푹푹 빠졌다. 미리 검색해 둔 숙소인 후지민박에 도착했다. 문을 두드려도 아무도 나오지 않아서 앞에서 조금 기다렸던 기억이다. 여행하다 보면 자주 있는 일이라 당황하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어느 동양인이 다가오더니 문을 열어주었다. 숙소에 손님은 우리 일행뿐이었다. 바깥의 추위와는 다르게 집 안은 라디에이터 열기로 따뜻했다. 눈이 많이 오는 계절은 이곳에선 비수기다. 주인은 비수기를 틈타 고국에 다니러 갔다 했고, 문을 열어준 동양인은 겨울 동안 숙소를 지키는 일본인 매니저였다. 체크인 노트에 이름과 국적, 바로 전에 갔던 도시, 직업을 적으라고 한다. 이름을 적고, 그 옆에 국적을 적고, 이제 직업을 적어야 하는데, 머릿속이 하얘졌다. 뭐라고 적어야 할지 모르겠다. 한국에서 요리를 하던 친구는 ‘요리사’라고 적었고, 소설가 친구는 ‘작가’라고 적었다, 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고 마이너스 통장으로 여행을 나온 친구는 ‘회계사’라고 적었다. 우리는 모두, 일을 잠시 멈추고 여행 중인 여행자였지만, 나만 직업이 없다. 직장을 그만두니 직책을 잃었고, 직업을 잃었다. 더 이상 회사원도 과장도 아니다. 그래서 빈칸에 뭐라고 적었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때의 결심은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다. 이 여행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나도 꼭 직업을 가지겠노라고. 지금 요리를 하지 않아도 요리사이고. 며칠 글을 쓰지 않아도 작가인 친구들처럼, 나를 증명할 직업을 갖고 싶다고.
여행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여전히 직업도 직장도 없을 때, 어라운드의 청탁을 받아 여행에 대한 글을 한 편 썼다. 그리고 처음 원고료를 받았다. 차근차근 시간이 흘렀고 차곡차곡 문장이 쌓였다. 이제는 제법 글로 밥벌이도 한다. 누군가 “직업이 뭐예요?”라고 물으면 이제는 “아, 글을 써요.”라고 대답한다. 어떤 글을 쓰냐고 질문하면 “에세이 같은 거….”라며 말끝을 흐린다. 에세이뿐 아니라 뭐든 쓴다. 책도 출간하고, 이렇게 매체에 글도 연재하지만, 사실은 내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글을 제일 많이 쓴다. 굳이 말하자면 나의 현재 직업은 작가겠지만, 글을 쓴다고 다 작가인가? 실은 갈수록 더 모르겠다. 아무튼 직업이 생겼다. 후지민박에서 간절히 바라던 소망이 이루어진 건가.
작가라는 호칭이 조금 익숙해지고 나자,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욕심은 끝이 없지. 나는 죽을 때도 작가일 수 있을까. ‘[부고] 정다운 작가 본인상’이라는 부고 기사가 날 수 있을까. 그러길 바란다. 가능한 한 오래 쓰고 싶고, 더 많은 것에 대해 나만의 시선으로 쓸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바랐다. 어떤 글은 쓰면서 과거형이 되기도 한다. 작가로 죽고 싶단 이야기를 쓰고자 시작한 글인데, 쓰다 보니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글을 써서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고, 내 글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바라지만, 그게 솔직한 마음이지만, 사실은 그러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은 마음이 절반의 절반 정도는 된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이 좋다. 하루 중, 일주일 중, 한 달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예전의 나라면, 회사원이던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다녀온 후 작가가 되고 직업을 갖게 된 이야기로 마무리 지었을 이 글의 결말을 다시 쓴다. 이제는 회사원이 당연히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후지민박에 간다면, 나는 직업란에 거침없이 ‘없음’이라고 적겠다. 그 어떤 열등감도 없이. 언젠가 나 자신을 작가라고 부르기 더 어려워지는 날이 오더라도, 내가 하는 일을 하나의 직업으로 규정짓지 못해도, 어떤 종류의 일이든, 노동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걸 안다. 그 노동이 비록 돈으로 계산이 되지 않고, 사람들 눈에 잘 보이지 않아도 내가 나를 먹일 수 있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면 그게 직업이지. 아무렴.
쓰고 보니 걱정하느라 충분히 즐기지 못한 날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한 것 같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가장 빛나던 순간이기도 했다. 장기 여행을 막 시작하던 나에게 “너는 여행을 좋아하게 될 거고, 무사히 여정이 마무리될 거야.”라고 말해주고 싶은 것처럼, 자존감이 바닥이던 후지민박에서의 나에게 “머지않아 너에게 직업이 생길 거야. 글을 써서 돈을 벌고, 건강보험료도 제법 내게 될 거야.”라며 어깨를 두드려 주고 싶은 것처럼, 미래의 내가 지금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아마도 지금 쓰고 있는 글에 집중하라는 이야기이지 않을까. 미래를 걱정하는 대신에 현재에 집중하라고.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성큼성큼 걸어가라고.
글·사진 정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