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법칙

Music Around Us

내 직업은 음악평론가다. 방송작가이기도 하다.

주말 제외 매일 MBC에 출근해 그날 방송될 음악을 선곡한다. 틈날 때마다, 특히 주말을 이용해 그 밖의 일을 하나둘 처리한다. 칼럼을 쓰거나 번역을 하거나 책 작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즘 내 삶의 만족도가 굉장히 높다. 너무 높아서 이러다 대형 악재가 덮치는 게 아닐까 불안할 정도다. 술을 줄이고 운동을 더욱 꾸준히 한 결과다. 덕분에 일도 잘된다. 글에서 수차례 강조했듯이 육체가 정신을 다스린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건 최민수 형이나 가능할 경지다. 명심하고 명심하자.

글쓰기에 대해 말하고 싶다. 어쨌든 내 직업의 본령인 까닭이다. 모두가 글을 잘 쓰고 싶어 한다.《AROUND》 독자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핵심만 요약하면 이렇다. 여기, 두 명이 있다. 한 명은 이 세상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었다. 대략 100만 권쯤 읽었다고 치자. 그러나 글을 써본 적은 드물다. 다른 한 명은 전 세계 평균에서 조금 더 읽은 정도다. 대신 글쓰기를 습관화했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후자 쪽이 가까운 미래에 글을 잘 쓸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습관을 이길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거의 없다. 은은하면서도 완강하게 배어 있는 습관이야말로 당신의 미래를 열어주는 최후의 문지기다.

기술적인 부분을 설명할 차례다. 내가 지키려 애쓰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먼저, 단문을 쓰려고 애써봐야 한다. 보편 법칙은 아니지만 아마추어의 글은 대개 길고, 프로의 글은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짧다.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단문을 칠 줄 알면 장문도 칠 수 있다.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는다. 단문이 꼭 정답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단문과 장문, 이렇게 선택지를 두 배로 늘려줄 수 있다. 적시하면 단문 2, 3개에 장문 1개가 내 이상적인 글쓰기다. 느낌표와 말줄임표를 남발해서도 안 된다. 전형적인 아마추어 글쓰기다. 이삭 바벨Isaac Babel 의 다음 말을 되새기자. “어떤 강철못도 적당한 자리에 찍힌 마침표만큼 차갑게 인간의 심장을 꿰뚫을 수 없다.” 

다음은 어미다. 이게 정말 중요하다. 어미의 경우 겹치는 문장이 2개를 넘어가면 안 된다. 그러면 글을 읽는 맛, 김훈식 式으로 말해 글의 전압이 뚝 하고 떨어져버린다. 물론 예외가 없지 않다. 어떤 주제를 강조하고 싶을 때다. 이때는 연속적 단문과 동일한 어미로 쭉쭉 치고 나가도 괜찮다. 단 단문 3개, 많아야 4개가 한계다. 어미를 문장마다 바꾼다는 건 주어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다는 뜻이다. 선택지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이 글을 쓰면서도 어미를 다르게 쓰려고 노력했다. 체크해 보기 바란다. 

이제 가장 중요한 진실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글을 쓴다는 행위가 뭐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글 속에 ‘진짜 그 사람’이 있을 거라는 건 완전 착각이다. 허상이다. 환상이다. 글은 자신을 보다 근사하게 전시하기에 참 좋은 도구다. 그렇다. 영화는 영화고 인생은 인생이다. 글은 글이고 사람은 사람이다. 직업은 직업이고 인간은 인간이다. 언제나 되새기려고 한다. 내 직업에 과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저 최대한 공들여 쓰고, 철저하게 마감 지키면 그뿐이다. 프로페셔널한 자세만 당신에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하긴, 이 세상 어떤 직업이 안 그렇겠나.

‘소리’

윤상

한국어로 글 쓰는 사람 중 내 마음속 넘버원은 문학평론가 신형철이다. 그는 윤상 광팬으로 유명하다. 나도 윤상을 사랑한다. 신형철의 책 《인생의 역사 》 를 보면 그가 쓴 윤상에 대한 글을 만날 수 있다. 그가 선택한 윤상 최고 앨범은 [Insensible]이다. 나는 [이사(移徙) ] 를 꼽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 곡, ‘소리’의 존재 때문이다.

[이사(移徙)](2002)

‘Tiny Dancer’

Elton John

고등학교 시절부터 음악으로 글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1990년대 초반이었고, 자료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어렵게 손에 넣은 해외 음악 잡지를 붙들고서는 사전을 뒤져가며 이해하려 애썼다. 본고장인 영국과 미국의 음악평론가는 나에게 영웅이었다. 캐머런 크로Cameron Crowe라는 음악비평가가 있다. 1970년대 《롤링 스톤》에서 글 잘 쓰는 걸로 유명했다. 나중에는 영화감독으로 더 유명해져서 근사한 사운드트랙을 여럿 쏟아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올모스트 페이머스〉(2000)다. 이 영화를 봤다면 이 곡 ‘Tiny Dancer’를 잊을 수는 없다.

[Madman Across the Water] (1971)

‘Robbed’

Rachel Chinouriri

그런 음악이 있다. 지금까지 내가 쓴 글, 내가 한 얘기, 다 무시해도 좋다. 하지만 제발 이 음악만큼은 시간 내서 감상하라고 애걸하고 싶은 그런 음악. 바로 이 곡이다. 요즘 이 곡에 빠져서 휘청대고 있다. 듣자마자 이건 어떤 식으로든 글로 옮겨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첫 글을 여기에 쓴다.

[What A Devastating Turn of Events]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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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배순탁―음악평론가 · 〈배철수의 음악캠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