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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
글로 사진을 쓴다면
존 버거
존 버거는 미술평론가이자 사회비평가이며 소설가다. 그리고 사진에 관해 글을 쓴 사진이론가다. 시각의 언어를 문학의 언어로 자유로이 치환한 사람. 우리는 그의 글을 통해 사진 없이도 사진을 보았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글로써 사진을 써내려간 그를 다시 더듬어본다.
언어와 언어 아닌 것을
동시에 말했던 사람
글 김하나
2000년대 초반의 일이다. 광고회사에 카피라이터로 입사해 일한 지 2년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햇살이 길게 비쳐 들어오는 조용한 오후에, 나는 공용으로 쓰는 널찍한 테이블에 신문을 펼쳐놓고 읽고 있었다. 내 오른편에 있던 디자이너 선배가 내 왼편에 있는 다른 디자이너에게 말했다. “와… 이것 좀 봐라.” 선배는 내가 보고 있던 신문 위쪽, 테이블의 남는 공간에 잡지의 한 페이지를 펼쳐서 툭 내려놓았다. 나는 별 생각 없이 그 잡지로 눈길을 던졌다. 사진이 하나 보였다. 내 왼쪽에 있던 디자이너는 그 페이지를 보면서 “이야… 뭐 이런… 거 참… 와….” 같은 조용한 감탄사들을 중얼거렸다. 나는 다시 한 번 그 사진을 유심히 보았다. 뭐가 그리 대단하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은 가운데 잡지를 놓고 분명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나누는 대화의 한복판에 있었지만 아무 말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마치 자기장의 중심에 있는 것처럼, 분명 무언가 많은 정보가 오고 가고 있다는 건 알겠는데 도무지 캐치할 수 없었다. 햇살이 길게 들어오던 그 조용한 오후의 사무실에서 일어난 이 작은 사건은 내게 아주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무렵 나는 희미하게 무언가를 깨달아가고 있었다. 광고회사의 디자이너(아트 디렉터)들은 나를 비롯한 카피라이터들과 다른 방식으로 말한다는 것을. 말로 설명하기 힘든 이 미묘한 차이를 거칠게 표현해보자면, 카피라이터들은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명확히 하려고 애쓴다면 디자이너들은 ‘뉘앙스’가 어떻게 풍겨야 하는지가 더 중요한 느낌이었다. 카피 하나를 놓고도 나는 이 문장의 ‘의미’를 말하고 있는데 디자이너는 ‘여기 들어간 쉼표’에 대해 말하는 식이다. 디자이너들의 말하는 방식이 본질이 아닌 주변을 자꾸만 얘기하는 것 같아 답답했다. 그러던 차에 앞서 말한 조그만 사건이 일어났고, 나는 내가 알 수 없는 언어를 사용해 대화를 나누는 저 디자이너들의 세계에 강렬한 호기심이 일었다. 그것은 시각적인 대화였다. 명사와 동사, 주어와 서술어로 이루어진 말이 아닌 색깔과 형태, 균형과 질감을 바탕으로 하는 대화.
시각예술 전공자가 아닌 한, 우리는 학교에서 시각의 언어를 배우지 않는다. 특히나 우리 집안은 시각 언어를 습득하기 힘든 환경이었다. 부모님은 두 분 다 다독가였고 그분들에게 세계는 글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글자는 항상 무언가를 의미했고 그 의미를 해독하는 것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었다. 그런 집안에서 자라난 나는 어떤 부분에서는 꽤나 고지식한 문자 언어파가 되어 있었던 것 같다. 미술을 대하는 방식도 마찬가지였다. 미술관을 많이 다녔고 그에 관한 책도 제법 읽어 어디 가서 그리 어렵지 않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정도였지만 어디까지나 인문 교양 차원에 지나지 않았다. 미술을 글로 배운 셈이다.
디자이너들의 언어에 호기심을 느낀 이후로 나는 디자이너들과 함께 일하고 어울리면서 그들을 인류학적으로 관찰했다. 내게 큰 영향을 준 디자이너 친구 몇몇도 만나게 되었다. 그 세월 동안 실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내가 주변으로 치부하던 것들이 사실은 본질이었음을 깨달아갔다. 뉘앙스라는 게 얼마나 더 정확한 ‘메시지’이며 사실은 얼마나 더 풍부한 것인지도. 그리고 그 모든 깨달음은 결코 말로 표현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것은 은밀했고 사적이었으며 ‘의미’로 고착되는 것을 거부하며 끝끝내 수수께끼로 남았다.
0과 1로 딱 떨어지게 정의되지 않는 그 사이의 무수한 회색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세상을 보고 겪는 방식에 대한 배움이었다. 오랫동안 세상을 읽어내는 것에만 익숙하던 나에게는 온통 새로운 차원이 열리는 경험이었다. 짜여 있던 매트릭스 바깥으로 빠져나온 것 같았다. 우리의 언어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필터였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미리 그곳에 존재해 있던 프로그램. 효율적이고 친근하며 우리의 사유와 경험을 옭아매는 족쇄. 나는 그 무렵 언어도단言語道斷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그리고, 존 버거가 다가왔다. 그는 참으로 불가사의하였다. 그는 내가 도저히 언어로 포획할 수 없으리라 느끼던 것들을 언어로 정확히 전해왔다. 그는 시각언어와 문학언어를 동시에 근사하게 구사하는 바이링구얼 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화가이자 소설가이자 미술비평가였다. 시각예술의 미묘한 뉘앙스를 캐치하는 사람이 문자를 다룰 줄 알 때, 독자는 행복해진다. 그의 글은 온갖 미묘함으로 가득 차 있지만 언어로 그것을 내리누르지 않고 오히려 되받아낸다. 그 결과물은 항상 기적 같다. 그는 언어와 언어 아닌 것을 동시에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나에겐 너무나 큰 선생님이었다.
우리가 어떤 사건에 의미를 둘 때, 그 의미는 알려진 것뿐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것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의미와 수수께끼는 뗄 수 없는 것이고, 둘 다 시간의 흐름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확실성은 즉각적으로 전해질 수 있지만, 의심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의미는 이 둘에서 나온다. 사진에 담긴 어떤 순간은 보는 이가 그 순간을 넘어 확장된 시간의 지속 안에서 그것을 읽어낼 때에만 의미를 얻는다. 어떤 사진이 의미가 있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 사진에 과거와 미래를 덧붙이는 것이다.
– 존 버거, 《사진의 이해》 중에서
그의 글에서 의미와 수수께끼는 한자리에 있다.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은 그가 카메라 아닌 글로 찍은 사진집이다. 사진은 제일 처음에 한 컷밖에 없다. 짧은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얇게 저며서 말린 뭔가를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다가 갑자기 어떤 향이 훅 풍기는 것 같은 글들이다. 그 순간, 우리는 사진 없이도 사진을 본다. 그것은 우리 각자가 그려내는 이미지이며 모두가 옳다.
그 순간 나는 플랫폼의 끝에서 당신을 보았다. 당신은 바지 차림이었다. 계곡 지방의 늦은 오후, 희게 부서지는 넓은 확산광 속에 멈춰 선 기차 옆의 플랫폼에서, 당신은 아주 작은 모습이었다. 당신의 그 조그만 나타남으로 인해 모든 것은 달라졌다. 철로 아래로 뚫린 통로에서 지고 있는 해에 이르기까지, 열차 시각표에 씌어져 있는 아라비아 숫자에서 지붕 위에 앉아 있는 갈매기에 이르기까지, 눈으로 볼 수 없는 별들에서 내 입 속의 커피 맛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이 달라진 것이다. 오래 전에 내가 닿았던 우연의 세계는 이제야 하나의 방의 모습을 이루었다. 나는 집에 돌아온 것이다.
– 존 버거,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 중에서
존 버거 방식으로
사진 보기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존 버거 | 열화당 | 2005 | 151쪽
‘여러 달이 지난 후 마리사 카미노는 자두나무 아래서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거기 우리의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곁에 선 나무가 남긴 흔적보다 더 흐릿했고 모호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우리가 떠나려는 것인지 돌아오는 것인지, 나타나는지 사라지는지, 또 산 사람인지 죽은 혼인지조차 알기 힘들었다.’
존 버거는 이 글들을 ‘포토카피(사진 복사)’라고 이름 붙였다. 그는 자신이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 찍듯 산문으로 생생하게 그려냈다. 글의 주인공은 아일랜드 시골의 버스에서 만난 소녀부터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까지 다양하다.
본다는 것의 의미
존 버거 | 동문선 | 2000 | 286쪽
‘카메라는 우리에게서 기억이라는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신처럼 우리를 꼼꼼하게 살피며,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대신하여 꼼꼼하게 다른 것들을 살펴주게 된다. 하지만 이제까지 그 어떤 신도 그토록 냉소적인 적은 없었는데, 그 까닭은 카메라는 잊기 위해 기록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본다는 행위를 넘어서 그 이면에 담긴 의미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하는 책이다. ‘왜 동물을 구경하는가?’, ‘사진술의 이용’, ‘체험된 순간들’, 책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으며 존 버거만의 독창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을 엿볼 수 있다.
다른 방식으로 보기
존 버거 | 열화당 | 2012 | 192쪽
‘비록 모든 이미지가 하나의 보는 방식을 구현하고 있긴 해도, 어떤 이미지를 보고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는 것은 각자의 보는 방식에 달려 있다.’
1972년 BBC에서 방영된 텔레비전 강의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미술사와 미술비평에 있어, 기존의 표준적인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보기’를 제안한다. 미술의 영역뿐만 아니라 사진, 그리고 우리 삶의 영역에도 유효한 생각들이다.
사진의 이해
존 버거 | 제프 다이어 엮음 | 열화당 | 2015 | 248쪽
‘하루에도 몇 번씩 겪는 경험, 즉 사진을 바라보는 경험을 왜 이토록 복잡하게 설명할까?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그 경험을 대할 때 보이는 단순한 태도가 소모적이고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진을 예술작품처럼, 혹은 특정한 진실에 대한 증거처럼, 초상화처럼, 뉴스처럼 생각한다. 각각의 사진은 현실에 대한 총체적 관점을 시험하고, 확정하고, 구성해나가는 수단이다. 따라서 이데올로기 투쟁에서 사진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무기, 그리고 우리를 향하고 있는 무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제프 다이어가 존 버거가 기존에 쓴 사진 관련 글들을 모았다. 《사진의 이해》는 이전 존 버거 책에 실린 글들과 전시회를 위해 쓴 글들, 도록의 서문이나 후기, 혹은 존 버거와 사진가들과의 대화를 새롭게 엮은 책이다.
말하기의 다른 방법
존 버거, 장 모르 | 눈빛 | 2004 | 288쪽
‘사진이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어떤 시각 이미지의 형태보다 뚜렷하게 이미 사라진 것의 모습을 되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사진은 사물의 생김새를 간직하고 전달할 수 있게 해주었다. 사람들은 단순히 기술에 놀랐던 것이 아니었다.’
존 버거와 사진가 장 모르가 함께 만든 사진에 관한 책이다. 총 5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존 버거의 에세이와 장 모르의 사진이 교차한다. 존 버거는 이 책에서 “사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사진은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사진은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가?” 등 사진에 대한 물음에 답을 구한다.
에디터 김혜원
사진 제공 열화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