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책의 얼굴을 아나요?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 작품.” 마음에 깊게 남은 책 한 권을 떠올리며 고전이라는 단어의 뜻에 끄덕여본다. 원고 뭉치에서 출발한 하나의 기록은 문화의 벽을 훌쩍 뛰어넘고 세계 곳곳의 독자들에게 사랑받으며 어느새 여러 얼굴을 갖췄다. 이야기의 가치를 발견한 출판사들이 저마다 마음을 실어 새 옷으로 단장한 덕분이다. 이곳에 놓아둔 여섯 권은 그러한 기록의 예다. 우리의 사랑을 듬뿍 받은 책,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éry의 《어린 왕자》다.

1943년, 한 프랑스 공군 비행사의 손에서 탄생한 소설은 그가 평생 가보지 못한 대륙과 도시에 뿌리를 내렸다. 소설의 주인공은 작은 행성 ‘B-612’에 사는 어린 왕자. 그가 들려주는 순수하고 신비로운 이야기는 30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어린 왕자》가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된 때는 1956년. 불문학자 안응렬 교수가 한 신문에 번역본을 연재하면서부터다. 이후 문예출판사의 손을 거쳐 1972년 단행본이 출간되었고, 300여 곳이 넘는 출판사에서 새롭게 책을 펴냈다지. 저마다 다른 개성을 지녔기에 《어린 왕자》 수집이 취미인 이들도 적지 않다. 하나의 이야기, 여섯 권의 책. 같은 문장, 다른 번역. 각각의 면면을 살피다 보면 내게 꼭 맞는 어린 왕자가 손을 흔들 것이다.

소설 너머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국내 최초로 《어린 왕자》 단행본을 발간한 문예출판사가 작가 탄생 120주년을 맞이해 선보인 ‘갈리마르 에디션’. 프랑스어 초판본을 만든 갈리마르 출판사éditions Gallimard에서 출판 7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판본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작가의 소장품 사진과 지인들의 회고록, 《어린 왕자》에서 삭제된 미공개 원고가 수록되어 소설을 더욱 풍성하게 즐길 수 있다.

“내 비밀이 이거야. 아주 간단해. 오로지 마음으로 보아야만 잘 보인다는 거야. 중요한 건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거야.”

정장진 옮김 | 문예출판사

어린이도 어른도

《어린 왕자》가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는 동화지만 어른에게도 묵직한 울림을 준다는 점이다. 어린이책 전문 출판사 비룡소는 2000년, 생텍쥐페리 탄생 100주년을 맞아 아이와 어른 모두 즐겁게 읽기를 바라며 이 책을 출간했다. 표지에는 등장인물 조종사가 자신이 주인공을 그린 초상화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고 표현한 작품이 실렸다.

“잘 가. 참, 내 비밀을 말해 줄게. 아주 간단한 건데… 그건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야.”

박성창 옮김 | 비룡소

색다른 표지로 보기

《어린 왕자》(교보문고 특별판) 표지에는 흔히 주인공의 모습이 실리지만, 열린책들은 책 속에 등장하는 ‘코끼리를 소화하는 보아뱀’을 담았다. 더는 보아뱀을 보지 못하는 어른들, 즉 보이지 않는 중요한 것들을 잊은 사람들이 이 그림을 통해 동화의 아름다움을 곱씹어 보길 바랐다고. 금색 카드집에 꽂힌 검은색 필름을 옆으로 밀면 모자와 보아뱀이 교대로 나타나며 그림이 변한다.

“내 비밀은 이거야. 아주 간단해. 마음으로 보아야만 잘 보인다. 중요한 것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황현산 옮김 | 열린책들

삽화의 재해석

《어린 왕자》에는 생텍쥐페리가 직접 그린 삽화를 그대로 수록하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이 책은 조금 다르다. 아동문학계에서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알마상, 안데르센상에 노미네이트된 이탈리아 삽화가 베아트리체 알레마냐Beatrice Alemagna의 그림이 실린 것. 처음 보는 어린 왕자의 모습을 감상하다 보면 익숙한 B-612 별이 낯선 풍경으로 다가온다.

“잘 가. 비밀을 말해 줄게. 아주 간단해.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정연복 옮김,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그림 | 시공주니어

자수로 꾸민 이야기

한 땀 한 땀 자수를 놓은 어린 왕자도 등장했다. 프랑스 유학 중이던 민혜숙 작가는 그저 어린 왕자가 좋아서 책을 읽으며 2년 동안 수를 놓았다. 문학과지성사는 자수 조각을 모아 새로운 판본으로 선보였다. 작품에 대한 애정을 원동력 삼아 창작자들이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야기를 다시 표현한다니. 《어린 왕자》가 얼마나 큰 사랑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잘 가. 내 비밀은 이거야.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인다. 정말로 중요한 건 눈에 안 보인다. “

이경혜 옮김, 민혜숙 자수 | 문학과지성사

이야기가 책 밖으로 나온다면

원전의 아름다움을 색다르게 표현하고자 제작된 팝업북. 아르헨티나의 팝업북 아티스트 제라르 로 모나코Gerard Lo Monaco가 3년여에 걸쳐 제작한 것을 문학동네가 한국에 소개했다. 바오바브나무가 책 밖으로 튀어나올 듯 펼쳐지고, 모자 그림을 열면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 나오는 등 정교한 장치가 읽는 재미를 더한다.

“그럼 비밀을 가르쳐줄게. 아주 간단한 거야. 오직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김화영 옮김, 제라르 로 모나코 제작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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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차의진

자료 제공 문예출판사, 문학과지성사, 문학동네, 비룡소, 시공주니어, 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