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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말리온
영화의 얼굴을 드러내는 건 어떤 일일까. 책 속의 첫 구절, 시집의 제목, 그림의 중심 같은 것. 영화 속 의미를 덧대고 덜어내면서 완성된 그 얼굴을 보고 싶었다. 영화 포스터를 제작하는 곳, 피그말리온을 찾았다.
Interview
그래픽 디자이너 박재호, 이유희
피그말리온의 활동이 궁금해요.
이유희 피그말리온은 주로 영화 포스터 디자인을 하고 있어요. 드라마나 뮤지컬, 음반처럼 그 외의 포스터를 만들기도 하는데 주된 업무는 그래도 영화 포스터 작업이에요.
영화 포스터는 어떤 단계를 거쳐 만들어지나요?
박재호 한국영화와 해외 수입 영화는 진행 과정이 조금 달라요. 외국영화는 완성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이미 개봉을 하고 국내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서 스크리너*를 보고 난 후에 작업을 시작하는 편이죠.
완성되어 있다는 것은 포스터를 말하는 걸까요?
이유희 그렇죠. 외국 블록버스터의 경우 포스터를 새롭게 만드는 건 거의 불가능해요. 가이드가 철저해서 변형이 쉽지 않거든요. 물론 가끔 가능한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이지는 않고요. 다양성 영화*는 스틸컷 같은 먼저 작업한 결과물을 받고, 국내 정서에 맞게 새로 만드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스틸이나 해외 포스터에 쓰인 이미지를 활용해서 다시 제작하는 거죠. 만약 소스가 많지 않으면 본편을 캡처해서 사용하기도 해요.
본편을 캡처하면 해상도 문제가 있을 것 같아요.
이유희 해상도가 좋진 않죠. 좋은 방향은 아닌데 너무 상징적인 영화 장면이라면 그런 작업 방식이 또 맞을 때도 있어요.
국내 영화는 과정이 어떻게 다른가요?
박재호 국내 작품은 영화가 꾸려지는 과정에서 시나리오 북을 먼저 만들어요. 그 커버도 저희가 디자인 작업을 하고요. 시나리오 북을 작업하면서, 영화가 어느 정도 진행이 되었을 때 홍보팀, 배급사 등등 다 같이 모여서 포스터 회의를 해요. 어쨌든 본편을 보지는 못하고 시나리오 북을 기반으로 발전시키는 거죠. 그리고 결정한 콘셉트대로 사진을 찍고요.
그럼 외국영화의 포스터 작업이 조금 더 자유로운 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유희 해외는 한정된 소스로 작업하는 거고, 국내는 처음부터 저희가 착안해서 회의를 거치며 작업하는 거라서 둘의 성격이 아예 달라요.
박재호 없는 걸 만들어내는 게 한국영화 작업이고, 있는 자료로 만드는 게 외국영화 작업인 거죠.
피그말리온의 고유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이유희 사람들이 피그말리온의 작업으로 많이 알고 있는 영화가 <마미>와 <캐롤>이에요. 감성적인 예술영화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런 종류의 작업을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장르만 작업하는 건 아니거든요. 블록버스터도 작업하고 한국영화도 하고요.
박재호 예전에는 외국영화를 오리지널 버전에서 한글로 바꾸는 작업이 주였었죠. 저희가 이전에 한국영화를 주로 작업하던 회사를 다녀서 그랬는지, 이런 방식을 외화에 접목하면 좋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외화 포스터를 국내 버전처럼 새롭게 만드는 걸 시작했어요. 그 부분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피그말리온의 포스터 중 다양성 영화가 많이 떠오르나 봐요.
이유희 작은 예술영화는 대부분 포스터를 새로 만드는 게 많아요.
박재호 <몽상가들> 재개봉 포스터를 저희가 다시 만들었어요. 그때는 재개봉이 별로 없던 시기라서 예전 포스터에 ‘몇 월 며칠 재개봉’이라는 문구만 달아서 나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저희는 스틸을 활용해서 다시 만든 거죠. 포스터를 새롭게 만든 건 <몽상가들>이 거의 처음이었어요. 재개봉 영화 중에서 현재까지 최고 스코어를 달성한 영화는 <이터널 선샤인>이에요. 포스터 반응도 좋고 흥행 스코어에도 반영되면 저희도 뿌듯하죠.
포스터는 영화의 얼굴이기도 해요. 포스터 작업을 할 때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궁금해요.
이유희 다 중요하긴 한데(웃음). 영화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건 포스터잖아요. 그래서 대중이 어떤 영화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에 너무 반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박재호 스크리너를 보고 포스터를 만드는데, 영화를 보지 못하고 만드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 영화를 접했을 때 느껴지는 느낌, 감정이 담긴 컷을 고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디자인적으로는 로고 디자인이 제일 중요하긴 하죠. 영화 상징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거든요.
사무실 안에 타이포그래피 책이 많이 있어요.
박재호 포스터라는 게 이미지적인 부분도 있지만 타이포로 만들어지는 부분도 커요. 편집 디자인과 접목되는 부분인 셈이죠. 저희가 작업하는 영화는 캘리그래피를 직접 쓰면서 최대한 표현하려고 노력해요.
한 편의 영화를 가지고 포스터를 제작할 때 조율해야 하는 부분이 많을 것 같아요.
이유희 영화 홍보를 할 때 예고편 회사, 온·오프라인 홍보사, 수입사, 배급사, 투자사, 제작사 등등을 신경 써야 해요. 정말 많은 이해관계가 있죠. 그렇다 보니 디자인에 대해서 저희 의견을 어필할 수는 있지만 결정의 주체가 되기는 어려운 편이에요. 홍보사는 홍보를 위해 이런 부분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제작사는 다른 부분을 강조하길 바라면서 조금씩 충돌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어쨌건 영화가 잘되길 바라는 공통된 마음에서 비롯된 과정이니까 최대한 조율해서 결과물을 완성해야죠.
온라인에서 디자이너의 애환을 담은 이야기를 본 적이 있어요. 끊임없는 수정 끝에 ‘처음 걸로 할게요.’라는 답을 듣기 일쑤라고요.
박재호 현실에서 많이 일어나는 일이긴 한데, 사실 첫 시안에 가장 고민이 많이 들어간 건 맞아요. 이 방법, 저 방법, 이 컷, 저 컷 다 적용해보고 제일 좋은 걸 첫 시안으로 만드니까요.
이유희 수정이 많더라도 가장 좋은 걸로 나가면 상관 없어요(웃음).
다양성 영화가 한때 주춤하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몽환적인 영화 포스터의 이미지로 영화 진입의 문턱을 낮췄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유희 다양성 영화 중에서 100만, 1000만 넘는 영화도 있겠지만 사실은 영화가 무척 좋더라도 많은 관객이 볼 수 없는, 보지 않는 영화도 많아요. 그걸 옆에서 지켜보면 아쉽기도 해요. 아직 다양성 영화가 자리 잡기에는 힘든 시장이긴 하거든요. 포스터가 붐을 일으킨다고 해서 그게 시장성으로 연결된다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박재호 그런데 확실히 많은 사람들이 포스터를 궁금해하는 건 맞는 것 같아요. 포스터 크레딧에 포스터 제작사가 들어가는 경우가 적다 보니 관객들이 누가 이걸 제작했는지 알 방법이 거의 없거든요. 디자인 회사들끼리는 포스터만 보고 어디서 제작했는지 바로 알지만 일반 관객은 그렇게 알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니 전반적으로 포스터 제작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높아진 것 같기는 해요.
계속해서 무언가를 생각하고 만들어내는 작업인데, 보통 생각의 환기는 어떻게 하나요?
이유희 저는 뮤직비디오 보는 걸 좋아해요. 그래도 일단 영화를 볼 때 제일 큰 영감을 받아요.
박재호 어떤 영화를 작업할 때 다른 영화에서 받은 영감을 적용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영화를 제일 많이 봐요. 하지만 저희를 가장 리프레시해주는 건 우리 강아지들이에요.
근본적인 질문을 해볼게요. 사람들에게 영화가 왜 필요할까요?
박재호 개인적인 소견이지만 영상으로 접하는 게 더 오래 남는 것 같아요. 머릿속으로나 감정적으로나요. 시각적인 게 조금 더 직접적이니까요. 감성을 충족해주는 부분이 크기도 하고요.
이유희 영화는 시각적인 부분도 있지만 청각적인 부분도 있잖아요. 다양한 감각을 자극하는 매체라고 생각해요. 공감각적인 거죠.
앞으로 피그말리온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이유희 저희의 다채로운 색깔을 보여주고 싶어요. 많은 사람들이 저희가 감성적이고 따뜻한 포스터를 주로 제작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그런 결과물을 기대하며 의뢰하는 경우도 많고요. 하지만 저희는 더 다양한 디자인을 할 수 있어요. 앞으로 더 다채롭고 색다른 모습을 계속 보여드리는 게 목표예요.
박재호 관객이 소장하고 싶은 포스터를 만드는 게 궁극적인 꿈이죠. 방에 붙여놓는 포스터요.
*스크리너Screener
영화나 프로그램을 공식적으로 개봉·방영·배포하기 전에 비평가나 심사위원, 산업 관계자와 유통업자에게 미리 제공하는 것.
*다양성 영화
작품성, 예술성이 뛰어난 소규모 저예산 영화. 상업영화와 대비되는 의미로 사용.
에디터 이자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