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그 여자의 식탁

한 끼의 바구니

그 남자, 그 여자의 식탁

한 끼의 바구니

요나와 선근에게는 커다란 테이블이 있다. 그곳에서 남자는 바구니를 만들고 여자는 음식을 나눈다. 사람들을 불러 모아 식탁 가득 밥을 지어 먹고, 기억을 나누고, 여행을 꿈꾼다. ‘한 끼의 바구니’는 아주 작은 여행으로부터 시작됐다.

일요일의
낯선 사람들

겨울의 끝자락, 그러나 아직은 쌀쌀한 어느 일요일 오전에 요나와 선근의 집에 초대받았다. “헤맬 수도 있으니 도착하면 전화해요. 문 앞에서 기다릴게요.” 오래된 주택가 골목 멀리에서 선근이 손을 흔들었다. 선근은 예전에 《어라운드》에서 사진을 찍던 친구였는데, 그때보다 머리카락이 몇 배는 자라서 얼핏 인디언의 후손처럼 보였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인디언을 따라 집으로 들어서자 몇몇 낯선 사람들이 테이블에 앉아있었고, 그들 앞에는 기다란 등나무 뭉치가 물통에 담겨 몸을 불리는 중이었다. 게스트는 모두 여섯 명, 새벽부터 기차를 타고 올라온 부부를 비롯해 예전에도 바구니 수업을 들었다는 젊은 사람과 사뭇 진지한 표정의 중년 여성까지, ‘한 끼의 바구니’ 수업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오후 수업에는 카를로스라는 사람이 오기로 했어요.”, “그게 누군데요?”, “몰라요. 남미 사람인가.” 그러니까 성별도 나이도 국적도 다른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세 시간 정도 함께 바구니를 만들고 식사를 나누는 게 이번 수업의 계획이었다. 선근은 그들에게 따뜻한 차를 대접했다. 그러고는 특유의 어눌한 말투로 취지와 순서를 설명했다. 다행히도 커다란 창으로 해가 비춰 들어왔고 선근은 조금 웃었다.

몇 개월 전 우리는 이수역 근처에 있는 공방에 찾아가 작은 바구니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주먹 크기의 과일이 네다섯 개쯤 들어가면 꽉 차는 것으로요.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세 시간 정도 열심히 엮었더니 모양이 갖춰졌습니다. 그 바구니를 자랑했을 때, 가족들은(특히 엄마) 시장에 똑같은 게 있다며 대개 우습게 보는 편이었지만 좋아해주는 쪽도 분명 있었습니다. 초급반 과정을 마친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가 배운 걸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 했습니다. ‘등공예 기본기’ 같은 제목만이 어울릴 정도로 얕은 내용으로 채워져 있겠지만요. 하지만 시작이니깐 가벼운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매일매일
느리고 작은 부엌

선근이 바구니를 설명할 동안 요나는 부엌에서 여섯 명 몫의 점심을 준비했다. 당근을 다듬고 버섯을 볶았다. ‘곤드레 흑미밥, 감자 연근 스프, 킨피라 우엉 오믈렛, 파래 표고전, 양배추 샐러드, 애플 견과 크럼블.’ 이번에는 모두 스물아홉 개의 채식 재료가 한 접시에 담기는 모양이었다. “따로 메뉴를 정해놓지는 않고, 시장에 가서 그때그때 괜찮은 재료를 골라요.” 요나는 머릿속으로 재료를 조합하면 어떤 맛일지 저절로 떠오른다고 덧붙였다. 일종의 상상력이 필요한 일 같았다. 요나는 미술을 전공했다. 어쩌면 음식을 만드는 일은 물감을 섞는 일과 비슷한 기분인 걸까.

나는 가만히 앉아 요나의 솜씨를 지켜봤다. 그녀는 서두르지 않았다. 천천히 조금씩 만들었다. “사람들이 요나의 음식을 두고 건강한 음식이라고 하지 않아요?”, “스스로 건강한 음식을 만든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그렇게 느낀다는 건 스스로 건강하지 못한 걸 먹는다는 반증이잖아요. 그게 좀 슬퍼요.” 그러면서 요나는 예전에 자신이 섭식 장애를 앓았으며, 음식을 왜 먹어야 하는지 강한 의문을 가졌다고 고백했다. 그러다 자기 몸에 맞는 음식을 실험하듯 먹으면서 식도락의 즐거움과 건강까지 함께 챙겼다고 했다. “원수였던 게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된 거네요?”, “제가 미식을 추구하는 사람은 아닌 거 같고요. 

살아가는 데 음식이 꼭 필요한 거라면, 기왕이면 기분 좋게 매일을 살자는 느낌으로 음식을 대해요.” 매일매일 즐겁고 건강한 한 끼를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는데 선근이 부엌으로 들어왔다. 그는 연신 차를 들이켰고, 배가 고프다며 미간을 찌푸렸다. “선근이는 배고프면 예민해져. 밥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더 그런 거지. 그런데 어쩌겠어. 바구니 서둘러 만든다고 밥 빨리 먹을 수 있는 거 아니거든.”

내일이라도
떠날 수 있다면

작년 여름, 요나와 선근은 제주에 가고 싶었다. 항공권이 필요했다. 무슨 뾰족한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생각지도 못했던 등나무 공예 수업 문의가 들어왔다. 선근이 취미로 배운 바구니 사진이 SNS를 통해 유명해진 덕분이었다. “비행기 티켓이나 벌어볼까 시작하게 됐어요. 원래는 한 번만 하고 떠나려고 했는데, 사람들에게 바구니 짜는 법 알려주고, 함께 식사하는 모습이 좋아서 계속 이어나갔죠. 오, 그럼 왕복 티켓? 이러면서.” 선근의 말을 들으며 청춘들의 로드무비가 떠올랐다. “그러면 여행을 떠나는 순간 이 다큐멘터리는 끝나는 거 아니에요?”, “아무것도 정해진 건 없어요. 그저 잘 끝내고 싶어요. 시작이 여행 때문이었으니까 제주에 가게 된다면 잘 끝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시작이 거창하지는 않았지만 종착점을 각오하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 사실 오래 선근을 지켜보며 그가 참 마음이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생활 역시 자유로운가 묻는다면 그건 선근 외에는 아무도 대답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불안함과 경제적인 어려움 같은 것들. “사실 엄청 많이 고민하죠. 둘 다 택할 수는 없는 거니까. 하지만 알 수 없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요. 그냥….” 선근은 조금 망설였다. “울어?”, “뭘, 울어. 그냥 매일 따뜻한 밥 먹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끝을 생각해본 적은 없는 거 같아.”

바구니 수업이 끝나고 사람들이 식탁에 둘러앉았다. 나는 요나와 함께 음식을 날랐다. 폭이 좁고 기다란 식탁이었고, 사람들은 음식을 먹으며 맞은편 사람과 대화를 나눴다. 그게 친구든 연인이든 혹은 세 시간 전 처음 만난 사람이어도 상관없이, 그 시간만큼은 서로에게 조금 더 다정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요나와 선근은 사람들이랑 함께하는 식탁이 즐거워요?” 나는 둘 모두에게 물었는데 그들이 무슨 대답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문득 집 냉장고에 어제 먹다 남은 양념통닭이 떠올랐고, 다음에는 음식을 남기지 않아도 되는 식탁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은 언제나 빠르니까 곧 봄이 올 텐데 그때 한 해가 줬던 것들이 그리워지지 않도록 온 몸으로 온 마음으로 기억해두면 좋겠습니다. 오늘 당신의 가방 안에는 작은 바구니가 담기게 됩니다. 집에 도착하면 어떤 물건을 담아 놓으실 건가요?

한 끼의 바구니
H. instagram.com/yonayonakoh
O. 홈페이지에 공지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에디터 김건태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