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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복원가 김주삼
그의 손을
빌렸다
미술품 복원가 김주삼
‘손을 빌린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상황을 표현하는 관용어다. 전시회에서 큰 어려움 없이 마주할 수 있는 그림에, 아무도 모르지만 우리가 빌리고 있는 손이 있다. 작품에 숨결을 불어넣는 손, 거친 도구와 섬세한 시선으로 예술을 세대와 세대 사이로 흐르게 하는 손, 미술품 복원가 김주삼 소장의 손이다.
INTERVIEW
미술품 복원가 김주삼
예술로 향한
청년
대학 시절 원래는 화학 전공을 하셨다고요. 미술품 복원이라 하면 보통 미술계 계통 출신이라고 생각하는 편인 것 같아요.
제가 공부할 때만 해도 국내에 미술품 복원에 관한 인식이 체계화되어 있지 않았거든요. 용어부터 과정까지 정립이 필요한 단계였어요. 무엇이든 기본 개념이 가장 중요하잖아요. 아는 내용이라고 쉽게 풀어만 낸다고 해서 금세 이해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래서 프랑스 파리 1대학으로 유학을 떠났죠. 프랑스의 경우 미술품 복원이 무언지 기본적으로 잘 알고, 사람들의 관심도 높았어요.
미술품 복원가라면 복원과 관련된 작업만 하는 건가요?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제가 하는 일을 중심으로 설명하자면 사고나 시간에 의해서 작품이 손상됐을 때, 작가가 최초에 품었던 생각을 전달할 수있게끔만 도와주는 것을 복원이라고 봐요. 이따금 복원이라고 하면 새로 그리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재창조처럼요. 그렇다기보다는 치료 개념이라고 보면 돼요. 작품에 갑자기 상처가 났다고 생각해봅시다. 작품 속에서 균열이 났든 구멍이 났든 색이 바랬든 그 부분은 작가의 의도가 전혀 아니잖아요. 원래 작품의 일부였던 모습처럼 치료하는 거죠. 미술작품 자체가 굉장히 섬세하기 때문에 그림의 재료나 기법에 따라서 복원 방식도 섬세해져야 해요. 또 작품의 컨디션 체크를 하기도 해요. 어마어마한 가치의 작품들이 비행기를 타고 넘어 오잖아요. 비행기에 실리기 전부터 컨디션 리포트를 만들기 시작하죠. 떠나기 전 이 작품이 어떤 상태였는지 기록하는 거예요.
복원뿐만 아니라 컨디션 체크를 하는 일도 복잡하겠네요.
책임 소재 때문이에요.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는지, 운송 중에 문제가 있었는지 과정을 잘 파악해야 하니까요. 실제로 컨디션 체크를 하는 사람들과 호송인이 작품과 비행기에 같이 타요. 그래서 미술관에 전달이 되면 한 번 더 컨디션 체크를 하고요. 전시 기간이 지나면 또 출발 전에 확인을 하죠. 이런 컨디션 체크는 미술품 거래에서도 진행돼요. 작품의 상태가 건재하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증명서가 필요하니까요.
국내에서 복원가로 활동을 하면서 어려운 점도 있을 것 같아요.
한국은 문화재 복원의 역사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어요. 필요성을 자각한 게 얼마 안 됐으니까요. 외국은 100년도 넘은 과거부터 진행해왔거든요. 우리는 내전도 겪었고, 문화적 가치나 역사성 등을 고려하기 보다는 돈이 되는지 골동품인지를 재는 시선만 있었던 거예요. 발굴사업을 하면서 철기 시대 유물이 나오면 그제야 복원사업을 착수하는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었죠. 어떤 규칙이나 체계를 깔끔하게 갖춘 경우가 거의 없었다는 것은 그 분야에 대해서 확실히 공부했던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렇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거기서 파생되는 부작용도 많았죠. 요즘에는 국제 교류도 많이 하고, 이 분야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서 제대로 공부해보려는 친구들도 많이 나오고 있어요. 고장 나면 버리고 마는 게 아니라 고쳐서 복원할 수 있구나, 작업을 통해서 예방을 할 수 있구나 혹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구나 등 국민의식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미술품 복원의 선진국이라고 하면 유학으로 다녀오신 파리를 꼽을 수 있을까요?
많아 나아지고 있다고는 했지만 경제성장에 비해서 한국은 여전히 미흡한 부분이 있어요. 누군가 이런 말을 했어요. 미술품 복원은 미술작품이 처음에 만들어지는 단계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벽에 그려진 작품인데 5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가 많이 악화되었어요. 그래서 최근에 복원한다고 전체적으로 거둬내고 그랬다는데 이런 상황이 유럽이나 미국에 많으니까 미술품 복원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어떤 시대든 당대 작품에 대한 중요성도 잘 인식했을 테고요. 일종의 관심사였죠. 서양은 유화작품이 복원의 역사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어요. 손상이 되면 고치는 법과 더불어서 앞으로 손상되지 않는 법도 찾으려고 애썼죠.
그곳에서 느낀 문화충격도 있었을 것 같아요.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던 시절, 미술 동아리 활동을 아주 열심히 했어요. 늘 작은 미술사 책 안에서 도판을 보았어요. 사진만 본 거죠. 처음에 파리를 가서 퐁피두 센터를 갔는데 페르낭 레제 작품이 있었어요. 분명 제가 아는 작품이었는데, 그전에는 작은 것만 봤잖아요. 그런데 이게 하나의 벽인 거예요. 그 충격은 말로 할 수 없었어요. 그간 열심히 색감을 얘기하고 구도를 얘기한 게 더 믿기지 않았어요. 작가들은 작은 규모의 것과 큰 규모의 것을 그리는 데 마음가짐이 달라요. 그렇다면 작은 그림과 큰 그림을 보는 사람들의 감명도 다를 것 아니에요? 파리 1대학에서 미술사 수업을 들어야만 했어요. 조를 나눠서 발표를 해야 하는데 주제가 ‘칸딘스키’라면 며칠, 몇 시에 퐁피두 센터에 있는 칸딘스키 앞에서 만나자고 해요. 그럼 그 앞에서 친구들을 만나 토론을 하죠. 충격적이면서 부러웠어요. 주어진 환경이 다르니까요.
시간을 돌리는
손
소장님의 저서 《문화재의 보존과 복원》을 보면 미술작품이 훼손되는 다양한 요소가 등장해요. 환경적 요인, 사고의 요인, 시간의 흐름이 있었는데 그중 무관심이 있더라고요.
작품을 복원할 때 보면 가장 큰 문제점은 보관과 관리예요. 어떻게 생각하면 보관과 관리는 포괄적인 것 같아요. 자연스러운 노화 과정으로 작품이 손상될 수 있지만, 길을 가다가 쿵 찧을 수도 있잖아요. 어떤 경우든 누가 관리를 잘 하느냐에 따라서 작품의 영속성이 달라지죠.
미술품 복원에 관련해서 대중적인 인지가 필요하겠어요.
사고는 사실 잘 관리한다면 피해갈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작품을 많이 접하고 함께하다 보면 신중함이 무뎌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더라고요. 안전불감증과 비슷하달까요. 그런 부주의함을 조심해야 해요. 최근에 한 화랑에서 마티스 드로잉을 창고 어딘가에 보관한 거예요. 그러면 그 안에 습기를 흡수해버리거든요. 완전히 곰팡이가 슬었는데 거두어 갈 때까지도 곰팡이가 여전히 살아있더라고요. 가슴 아픈 일이었죠. 중요성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무관심했기 때문이죠.
복원가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모든 것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작품에 대한 존중이요. 그래야 내가 더욱 신중하고 조심스레 다루고요, 상처를 안 내려고 노력하겠죠.
작가에게 감정 이입하는 게 가장 중요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작품을 복원하는 데 작가의 마음을 먼저 이해하는 게 필요할 것 같아서요.
작가의 입장을 이입해보는 게 오히려 더 위험해요. 내가 마치 장인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니까요. 의사의 마인드가 필요하죠. 의사가 환자의 입장이나 혹은 환자의 무언가 때문에 결정을 왔다 갔다 하면 안 되잖아요.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상황을 볼 줄 알아야 하거든요. 얼마나 위대한 작가가 그렸고,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겁을 먹고 벌벌 떨게 된다면 정보를 알고 있는 게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거예요. 평정심을 잃게 되죠. 무던해져야 해요. 필요 이상으로 감성적일 필요는 없거든요.
복원에 있어서 중요도가 있을 것 같아요. 모든 작품이 복원되지는 않으니까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문화재를 통해서 후대들이 지금까지 먹고살고 있는 것은 그 당시에 돈 있고 여유있던 사람들이 예술의 가치를 향유했기 때문이에요. 공예가를 가정한다면 그 사람이 그릇을 만들고 도자기를 굽는 것이 취미는 아니거든요. ‘내 밥그릇이 없네? 내가 며칠 동안 고생하고 땀 뻘뻘 흘려 만든 걸로 밥 먹어야지!’라고 하지 않잖아요. 잘 만들었으면 팔아야죠. 오히려 그는 오래된 질그릇에 음식을 두고 먹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미적인 역량을 넘어서서 그것을 향유하고 지속시킨 것은 높은 계급의 사람들이었던 거죠. 이율배반적이죠. 역설적이게도 문화 속에는 어쩔 수 없이 계층이 생기게 마련이에요. 누가 얼마큼 인정해주느냐에 따라 금전적 가치가 올라가기도 하고요. 그런 중요도에 따라서 이 작품을 더 오래 지속시키려는 일도 강조될 수밖에 없죠.
가장 뿌듯한 순간이 궁금해요.
작업을 하면서 가끔 ‘복원다운 복원이다.’라는 말을 해요. 누가 봐도 아주 제대로 망가진 작품들이 있어요(웃음). 절대 살릴 수 없는데, 그걸 그대로 살려놓았을 때 뿌듯해요. 저도 만족스럽지만 보는 사람들도 기뻐하니까요.
소장님께서 2011년에 쓰셨던 칼럼에서 반달리즘Vandalism에 관한 이야기를 보았어요. 사람들이 문화재에 낙서하는 행동을 비판하는 내용이었죠. 대중이 문화재를 대하는 태도나 방식에도 성숙한 의식이 필요하다는 의미일까요?
반달리즘은 보통 문화유산이나 예술품 등을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행위를 말해요. 작품에 충격을 강하는 경우도 있고, 테러, 낙서 등도 있죠. 문화재 파손을 보면,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일도 있고, 막기 쉽지 않은 것들도 있어요. 대표적으로 숭례문 화재사건이 있죠. 막을 수도 있었지만, 막을 수 없었을 수도 있어요. 불을 낼 때, 화염병을 던지고 도망가거나 폭탄을 설치할 수도 있잖아요. 그 방화범은 국가를 향한 분노가 있었고 그것이 자신에게 부당하다고 느껴서 화풀이를 한 거죠. 일반적으로 화풀이에서 나오는 반달리즘은 주목을 많이 끌 수 있는 걸 해요. 살면서 작정함과 동시에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있거든요. 자기 정제만이, 개인의 양심만이 지킬 수 있어요. 하지만 낙서의 경우는 교육을 통하여 막을 수 있는 일이겠죠.
흠결을
바라보는 시선
복원작업에는 원본을 훼손하지 않는 최소한의 개입만이 필요하다고 들었어요.
그럼요, 당연하죠. 예를 들어서 종이가 이만큼 울었어요. 이걸 펴는 방법도 여러 가지예요. 살살 구슬려서 펴는 방법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배접해서 한꺼번에 쭉 펴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 경우에는 손대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 작업하게 되거든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자의 방식을 지향하는 거죠.
본래 복원가가 작가와 아주 똑같이 구현하기는 어려울 텐데, 원본이 훼손된다는 기준이 있나요?
저희는 ‘눈속임’이라는 말을 많이 해요. 무슨 말이냐면 작가를 흉내 낸다는 게 아니라 작품의 일부가 가급적이면 손상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눈속임을 한다는 거죠. 작품을 고치는 일인데 복원을 했다는 사실을 감출 필요도 없고요. 작가의 생각이나 사상을 그대로 재현해내는 개념이 아니라, 작품 감상 시에 거슬리는 부분이 최대한 없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쉬워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등장해요. 19세기 프랑스의 건축가 비올레르뒤크Eugene Viollet-le-Duc가 말하길 옛 건축물을 복원할 때 당대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 그 건물을 변형하거나 역사적 가설을 사용함에 망설일 필요가 없다고 요. 그래서 교회 건물을 더욱 웅장하게 보이기 위해 첨탑을 설치한다거나 건물의 구조를 변경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덧붙였죠. 최소한의 개입과 정반대되는 이야기인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분야에서 비올레르뒤크의 주장은 안 좋은 사례로 자주 등장하는 편이에요. 그는 고딕 양식의 최고로 권위 있는 건축가였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히 멋진 사람 정도가 아니라 당대에 가장 인정받는 사람이었어요. 모든 건축물, 특히 고딕양식에 있어서 그 사람의 조언을 무조건 받아야 할 정도였죠. 이 사람은 어떻게 생각했냐면 자연재해나 폭격에 의해서 문화재에 문제가 생기면 그 시대의 관점이 아니라 현재의 시각과 생각으로 덧붙이고 보수를 하는 것도 무방하리라 나름대로 확신했던 거죠. 그의 주장은 오늘날의 기준과는 잘 맞지는 않아요. 다만 모든 것을 연구하고 기록하는 과정에 기록을 남겨서 탄탄한 기초를 세워주었어요.
미술품 복원가라는 직업은 숲보다는 나무를 봐야 하는데, 복원을 통해서 사람들이 나무보다는 숲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같아요. 전체를 볼 수 있도록요.
맞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생각보다 예민해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또 매의 눈으로 보잖아요. 중고로 뭘 샀어요. 여기서 생활상처 같은 것을 감안하죠. 하지만 미술품의 경우 구멍이 빵 나면 생활상처고 나발이고 안 통하잖아요. 복원 잘했다는 이야기는 고사하고 아무 이야기만 없어도 다행이죠(웃음).
작품을 복원하는 과정에 환경이나 작품의 상태가 열악한 경우 복제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어요. 일부에서는 복제가 예술의 배반이라는 의견을 내기도 하고요.
엄밀하게 말해서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에 복제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지금도 논란거리인데, 미술품 보존이나 복원에 있어서 가장 큰 중심축은 바로 ‘오리지널리티’에 있어요. 제가 그린 그림을 누군가 똑같이 그렸다고 해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사진을 찍은 것과 다른 게 없는 거죠. ‘모나리자’가 너무 많이 상해서 잘 복사를 하거나 사진을 찍어서 미술관에 건다고 하면 그걸 수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반 고흐의 불 같은 색감을 보고 싶은데 복제하는 사람들의 재주를 음미하러 미술관에 가지는 않잖아요. 물론 조선 왕조의 영정 같은 경우 손상이 너무 심각할 때 복제를 하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그 사람을 기록하는 의미가 큰 거니까요. 모사를 해도 나름의 의미가 있는 거죠. 서양에 자기복제는 있어요. 누군가 자신에게 그림을 한 점 더 그려달라고 부탁을 받았을 경우 똑같이 그려주던 경우는 있거든요.
그림 뒤편에 서있는 기분은 어떠신가요?
미술관에서 일했을 때, 미술보존 연구실은 땅 속에 있었어요. 미술관은 지상에 공간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가죠. 보존실로 가려면 다른 사무실을 통해서 어렵게 들어가야 했어요. “왜 이렇게 들어가는 게 힘들죠?” 하고 물으면 변명 삼아 “우리 보존실 사람들은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고 하죠(웃음). 아까 미술작품을 향한 존중이 중요하다고 했잖아요. 미술작품이 제일 우선이에요. 운명이에요.
모든 것이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건 당연한 수순인 것 같아요. 복원가는 이 원칙을 역행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거슬러 올라가는 거죠.
오르세미술관에 있는 작품들이 아무런 관리 없이 내내 그 모양일까요? 보통은 누더기예요, 누더기. 복원이 되어 전시되어 있는 거죠. 그게 손상이 되었을 때, “에구, 손상이 되었네. 안타깝다. 하지만 안녕!”이라고 하지 않잖아요. 이런 사실을 다음 세대의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겠죠. 쉽게 이야기하면 역사적인 증거물에 대한 영속성을 위해서는 복원이 필수적이에요. 안 그러면 그 시대가 지금까지 이어지지 않고 끊어져 버리니까요.
앞으로 어떤 복원가로 남고 싶은가요?
복원이 저의 주된 업무지만 그 외에도 관심사가 있어요. 미술품에 대한 재료 기법 연구를 더 체계적으로 하고 싶어요. 작품이 어떤 재료로 어떤 방식으로 그렸나 등을 돌아볼 수도 있거든요. 복원에 있어서 기록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자료를 축적해나가고 싶어요.
에디터 이자연
포토그래퍼 박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