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없는 그림 에세이

책장 속 에곤 실레를 다시 꺼내다

그림 없는
그림 에세이

책장 속 에곤 실레를 다시 꺼내다

책장 속에 에곤 실레가 있다. 우울한 감정이 그리울 때마다 가끔 꺼내어본다. 그는 텅 빈 눈과 붉은 얼굴을 동시에 그리는 사람이다. 자기과장과 연민에 가득 찬 자화상을 보고 있으면 나 역시 한없이 깊은 곳을 찾게 된다. 그의 그림을 보며 함께 흔들리고 침잠했던, 어느 붉은 날을 기억하려 이야기를 쓴다.

네 그루의 나무
1917

지진이었다. 흔들리는 침대 위에서 ‘아, 지진이 왔구나’ 생각했다. 흔들림이 끝나길 기다린 다음 이불을 한쪽으로 치웠다. 침대 끝에 걸터앉아 손톱을 봤다. ‘언제 이렇게 자랐을까.’ 아마 그렇게 중얼거렸던 거 같다. 그 무렵 나는 우울증을 앓았다. 의사의 판정을 받은 적은 없지만 틀림없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잠들고, 지진으로 일어나 물을 마시고, 태풍으로 비가 들이친 거실에 등을 대고 누웠다. 쪼꼬는 그런 나를 보며 자주 짖었다. 배가 고파서 물을 마시는 것뿐인데 이런 태도라니. 어쩐지 억울해 나도 같이 짖었다. 어둠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노려보았다. 허공에 대고 쉿쉿, 바람 소리를 냈다. 그러면 개는 더 사나워졌다.

당시에 나는 소설을 전공했다. 얄팍한 재능을 믿고 퇴고도 없이 몇 개의 소설을 내보였다. 쓰레기 같은 글이었지만 나름 반응이 좋았다. 자만했고 자주 술을 마셨고 타인의 실수를 보며 즐거워했다. 어느 날은 함께 공부하던 누나가 술을 먹다 말고 다른 친구의 소설을 칭찬하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들이 그 말에 동의했다. 모래를 씹은 듯 입 안이 텁텁했다. “누나 넌 뭘 잘 몰라.” 빈 소주잔을 팽개치며 그렇게 말했다. 사람들의 눈빛이 싸늘했다. “병신 같아.” 그렇게 말하며 술집을 나왔다. 이상하게 자꾸 재채기가 터졌다. 마지막 말은 하지 말걸, 후회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그림 속 네 그루의 나무는 하나같이 올곧다. 가늘지만 단단하고 메말랐지만 규칙적이다. 그러나 바닥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검은 모래, 거친 입자로 일렁이는 능선. 무덤에 뿌리를 내린 나무는 어떤 숨을 쉴까. 그날 밤 나는 오래 전 헤어진 애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무래도 소설은 그만 쓰는 게 좋겠어.’ 그러고는 지진이 오기 전까지 아주 깊은 잠을 잤다.

포옹
1917

시계를 보며 숫자를 거꾸로 셌다.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노래를 흥얼거렸고, 쓸모없어진 메모를 버렸다. 여름이 밝아서 자주 눈이 시렸다. 불을 끄고 하나둘 기억을 더듬었다. 어둠 속에는 상자도 있고 최승자 시집도 있고 쥐가 물어가라고 손톱 조각도 몇 개 보였다. 그러다 문득 집 안에 식물이 없다는 걸 깨닫고 나는 식물도 없는 멍청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웃다가 울었다. 진짜로 운 건 아니고 누군가의 붉은 얼굴이 그리웠던 것 같다. 

‘포옹’에서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끌어안은 채 사랑을 속삭인다. 얼룩덜룩한 몸의 파동만으로도 그들이 얼마만큼 붉은 얼굴인지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그들은 채 드러나지 않은 얼굴 안에서 울고 있지는 않았을까? 사랑 때문에 서로를 죽여도 좋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그럴 때가 있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진짜 있다고 믿었던 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서로의 몸을 더듬는 것만으로 하루와 또 하루를 보냈던 붉은 얼굴의 시절 말이다. 

지금은 아니다. 몸 바깥을 지운 사람처럼, 취했지만 아무도 그리워하지 않는 날이 더 많아졌다. 무덤덤이라는 말이 무덤의 파생어라면 아마도 나는 무덤과 더 큰 무덤으로 몸 밖을 포위당한 사람일 것이다. 몸 안쪽 침묵에도 아직 응답하지 못했는데, 몸 바깥 더 큰 적막 때문에 귀가 먹을 것 같다. 일기에 그렇게 썼다 지우길 반복했다.

이중 자화상
1915

내가 나를 보기 시작했던 건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책상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편지를 쓰는 나의 정수리를 내려다봤다. 편지를 쓰던 나는 정수리를 내려다보는 내가 등 뒤에 있구나 생각하며 타자를 멈췄다. 우리는 대화를 나눈 적 없지만 서로를 의식하는 사이였다. 편지를 쓰는 나는 낮잠을 싫어하고 얌전하고 애인에게 시를 읽어주는 사람이었다. 정수리를 내려다보는 나는 그 모습이 얄미워 일부러 잠을 자고 책을 찢고 입으로는 바람소리를 냈다.

하나의 몸, 두 개의 눈빛. 에곤 실레의 ‘이중 자화상’에는 몸이 붙은 두 명의 인물이 나온다. 한 명은 불안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고, 또 한 명은 그의 불안을 바깥에서 안으로 감싸 안는다. 닮은 듯 다른 둘의 가장 큰 차이는 눈이다. 아래쪽 이는 눈과 눈썹이 가까워 적의의 감정을 직선적으로 드러내지만 위쪽 사람은 눈을 최대한 크게 뜨는 것으로 자신의 순수를 증명하려 한다. 

군대 시절, 헤어진 애인은 내게 에곤 실레의 전기를 보내며 ‘너와 닮아서 보낸다’라는 메모를 남겼다. 당시에는 그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는데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뒤, 그러니까 몸 안에 지진이 다녀간 이후로 나와 닮은 그림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아마도 나는 무언가 감추려 연기하는 자신이 미웠던 것 같다. 분노를 삭히는 것,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것,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을 말하는 것. 모두 거짓이라고 믿었다. 다행히도 이제는 순수를 주장하는 얼굴과 적의를 드러내는 얼굴 중 무엇이 더 내게 가까운지 조금 알 것도 같다.

작은 나무
1912

‘그리고 멀리 구름 떼가, 그 주름이 만들어 낸 멋진 눈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다.’

– 에곤 실레 《환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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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건태

그림 에곤 실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