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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곰
‘그림책’이기에
가능한 이야기
“기록되고 분석되고 요약되고 정리된 정보를 설명하고 논의하는, 그림이 첨부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한 딱딱한 표지를 씌운, 커버는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는, 머릿말, 소개, 목차, 인덱스가 있고 인간의 지식을 높이고 감정을 풍성하게 하며 계몽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시각 기관을 통해, 어떤 사람에게는 촉각 기관을 통해 전달되는 물건이요.”
영화 <세 얼간이>에서 란초가 교수에게 책을 설명하는 말이다. 손에 잡히는 작은 책은 이토록 많은 역할을 하며 그 형태와 재질 자체가 신비한 물질이다. 반드시 손으로 잡아서 봐야만 하며 어떤 내용이 저절로 뇌에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눈이라는 신체 부위를 거쳐 수많은 감정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책이라는 물성에 그림의 비중이 커지면 더욱 특별한 매체가 된다. 글을 깨치지 못한 어린이부터 볼 수 있으며 엄마나 아빠와 ‘함께’ 읽기에 그렇다. 엄마의 품에서 듣는 목소리의 온도, 무릎을 타고 전해지는 부드러운 촉감이 더해져 책장을 넘길 때마다 아이는 즐겁고, 함께 나누는 이야기에 소중한 기억이 쌓여간다.
‘책읽는곰’은 그림책을 보고 행복한 순간이 많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만드는 그림책 전문 출판사다. 우직하게 앉아 책을 만드는 편집자들의 모습과 책을 읽는 어린이의 모습이 곰과 유사해서 떠올린 이름이다. 어린이들이 책장을 넘기며 소리 내어 웃고 감정에 복받쳐 울며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기를 바라며 그림책을 만든다. 그래서인지 책읽는곰의 그림책은 유독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결국 그림책 독자와 소통을 하는 건 작가들이라고 생각해요. 어린이들에게 관심받을 수 있었던 건 어린이와 소통을 잘하는 작가와 계속 일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에요.”
좋은 책은 좋은 사람이 만든다고 생각하는 임선희 대표는 책과 작가와의 인연을 중요하게 여긴다. 90년대 이후 외국 번역 책이 들어오면서 그림책 시장은 성장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그림에 담아내는 우리 작가는 부족했다. 작가의 개성을 살려 창의적인 책이 나오기를 돕고 우리나라 고유의 시각적인 느낌과 모국어의 아름다움이 담긴 책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림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글과 그림으로 구성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작가가 만들어놓은 세계죠. 그래서 훌륭한 그림책 작가는 좋은 이야기꾼이에요.”
책읽는곰을 연 지 11년이 되었어요. 그림책 출판사를 설립한 이유가 있나요?
여러 가지 책을 만들어봤지만 그림책 만드는 일이 가장 재미있었어요. 만들어놓고 뿌듯하기도 했고요. 그림책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굉장히 특별해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죠. 출판사에서 보통 편집자는 나이가 들면 관리자가 되어 책을 직접 만들기보다 관리하는 일을 하게 돼요. 저는 편집자가 나이가 들어서도 작가와 늙어가면서 책을 만드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어요. 제가 편집자로 일한다기보다 편집자와 작가가 같이 백발이 되면서 책 만드는 회사를 꿈꿨죠. 그 당시에는 그런 출판사가 제가 보기에는 없었어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분야는 책 외에 애니메이션 같은 영상 매체도 많아요. 그들과 비교했을 때 그림책이라는 매체가 가진 장점이 무엇일까요?
책이라는 물성 자체가 책과 독자 간에 쉼을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요. 그 공간 안에 자기를 녹여서 스스로 해석하는 일이 가장 가능한 게 책이라는 형태잖아요. 애니메이션의 경우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인풋In-put이 중심인데, 책은 아웃풋Output이 반드시 따를 수밖에 없어요. 특히 어린이들의 경우 더 심하죠. 책을 읽으면서 자기 자신, 생활, 언어를 투여하면서 상호작용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림책의 경우 그림과 그림 사이, 한 장마다 연속성이 있진 않잖아요. 많은 장면 사이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을 창조해내죠. 그래서 어떤 매체보다 그림책이 아이들의 마음에 오래 남아있다고 생각해요.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 어우러진 독특한 예술의 형태예요. 그림책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꼽는다면요?
그림책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인 거 같아요. 예를 들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그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가지는지에 따라 보는 사람의 감정이입이 달라지잖아요. 노래에 삶에 대한 이야기가 녹아 있으면 굉장히 흥미롭고요. 그림책도 마찬가지죠. 가장 중요한 것은 글과 그림으로 구성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작가가 만들어놓은 세계죠. 그래서 모든 작가에게 가장 필요한 건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질이라고 생각하고요. 좋은 그림책 작가는 좋은 이야기꾼이에요. 재미있는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 교훈 이야기 이렇게 나눠질 뿐이죠.
하나의 책에 글과 이미지를 유기적으로 담으려면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아요. 하지만 일반적으로 글밥이 적고 책 두께가 얇으면 빨리 작업 된다고 오해하는데요, 그림책 한 권이 나오려면 얼마의 시간이 걸리나요?
1년에서 3년 정도 걸려요. 하지만 1년에 한 권, 꾸준히 자신의 창작물을 낸다는 건 굉장히 베테랑이어야 가능하죠. 쉽지 않은 일이에요. 오래 걸릴 땐 2~3년씩 걸려요. 짧은 글과 그림이 연결되어서 쉽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시와 유사하다고 보면 돼요. 다듬고 다듬어서 정제한 형태를 보여줘야 하죠. 함축한 걸로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하니 굉장히 내공이 필요한 작업이에요. 늘 고민에 빠지는 게 어른이면서 어린이성을 가지고 어린이와 소통해야 하니 그게 가장 어려운 부분인 것 같아요.
출판사 도서 목록이 작가별로 분류되어 있어 좋았어요. 책읽는곰은 백희나, 최숙희, 김영진 작가 등 작가 중심의 출판사로도 알려져 있어요.
제가 출판사를 만들 때만 해도 한국 그림책은 작가 중심이 아니었죠. 존 버닝햄이나 앤서니 브라운 등 외국의 유명 작가들이 한국에 알려진 한참 뒤에도 우리 작가들에 대한 인식은 많이 없었어요. 하지만 저는 처음부터 그림책은 작가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작가 이름이 알려지는 마케팅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래서 작가들과 지속해서 관계를 맺는 게 중요했죠. 백희나 작가의 경우 ‘일상의 틈새에서 판타지를 꽃피우는 작가’, 최숙희 작가는 ‘엄마와 아이의 마음을 가장 잘 헤아리는 작가’ 등 작가가 구현하고자 하는 것을 언어로 만들어서 많이 알리려고 하고 있어요.
작가들의 작업 방식도 다 다를 텐데요. 작가들과의 유대관계를 잘 유지하는 비결이 있나요?
작가마다 색깔이 다른데, 한 사람의 편집자가 한 분의 작가에게 맞춰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게 쉽지 않겠죠. 비결이라 면 고민을 참 많이 해요. 그 작가에 대해서, 작품과 구현하고자 하는 세계에 대해서 집단으로 내부적으로 생각을 많이 하고, 작가와 끊임없이 깊게 이야기하죠. 관계가 깊어지면서 이야기도 다양해지고 작가들이 조금 더 솔직하게 마음을 열면서 그 안에서 작품을 끄집어내는 거 같아요. 또 저희 편집자들이 그림책을 굉장히 좋아해요. 출판사라는 게 작가들의 첫 번째 독자 집단이잖아요. 작가들이 그 부분을 인지하면 출판사도 좀 편해지죠. 세월이 흐르고 함께 다양한 책을 만들다 보면 그만큼 신뢰가 형성돼요. 그래서 저는 편집자가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행히 저희는 11년 동안 편집부가 많이 바뀌지 않았어요. 작가들도 내 책을 만드는 편집자와 지속해서 소통하면서 작업할 수 있으니 좋은 거겠죠.
그림책은 어린이부터 보는 책이지만 책을 고르는 사람은 부모나 어른인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흔히들 두 명의 독자를 만족시켜야 하는 책이라고도 하고요.
그림책이 가진 특수한 상황이죠. 사려고 책을 집는 그 순간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그 순간만 지나면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은 어른이건 아이건 할 것 없이 마음을 흔들었다는 얘기죠. 또 어린이들이 마르고 닳도록 좋아하는 책은 결국 엄마가 좋아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책들이 훨씬 더 오래가고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기도 하고요. 저는 그림책을 만드는 사람이자 어린이의 엄마로서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여겨요.
아이들이 그림책을 사랑하는 지점은 다 달라요. 모든 아이가 모든 책을 좋아할 순 없잖아요. 바람직하지도 않고요. 대중적인 책이라는 게 많은 아이가 좋아한다는 거지 안 좋아하는 아이들도 있죠. 제가 만든 책 중에도 판매가 많이 되지 않았지만 저희 아이가 무척 좋아하는 책이 몇 권 있어요. 애들마다 다르죠. 많은 책을 보여주기보다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을 잘 골라서 그 책들을 정말 사랑할 수 있게 아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른이 되어서도 떠오르는 책이 된다면 삶에 큰 도움이 되겠죠? 자기 마음속에 남는 책이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어요?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책을 고르는 방법도 추천해주세요.
가장 좋은 방법은 도서관에 가는 거예요. 도서관처럼 좋은 공간이 없어요. 여러 권 비치된 책은 아이들이 많이 찾은 책이겠죠. 전집에도 좋은 책이 있지만, 실패하는 책도 많기 마련이고 들어간 돈에 비해 아이가 책을 보지 않으면 엄마가 속상하잖아요.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아이가 좋아하는 단행본은 구매해서 오랫동안 볼 수 있게 해주면 좋죠. 지금은 큐레이팅에 너무 의존하다 보면 마케팅에 현혹되기가 쉬워요. 안목을 키워야 하는데 쉽지 않죠. 좀 더 편한 방법은 인터넷 서점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은 책을 찾아서 보는 법이 아닐까 싶네요. 상 받은 책이나 바로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보다 오랜 기간 사랑받은 책이 좋은 책일 가능성이 높아요. 가까운 서점을 자주 찾아 아이와 함께 책을 고르면, 아이와 부모 양쪽 다 책 보는 안목이 생길 거 같아요
11년 동안 그림책을 만들면서 가장 기쁘거나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나요?
가장 좋았던 순간은 《연이네 설맞이》라는 첫 책이 나왔을 때예요. 겨울이었어요. 인쇄하고 제본하면서 눈이 아주 많이 왔어요. 첫 책이 세상에 나올 때 감격스러움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사업적으로는 늘 좋다고 할 순 없지만 너무 힘든 순간은 없었던 거 같아요.
《알사탕》의 경우 좋은 작품이라 생각했고 자신감도 있었지만 예상보다 더 반응이 좋았어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아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거에 놀랐어요. 이런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했던 부분도 아이들 나름의 경험에 비추어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물론 어른 독자들의 마음도 건드리지만요.
최숙희 작가의 《엄마가 화났다》는 나오자마자 엄마들이 정말 좋아했어요. 엄마들이 공감하고 마음을 보듬어줄 만한 책이 필요하구나, 생각했던 기억이 나요.
《연이네 설맞이》, ‘온고지신’ 시리즈 같은 우리 문화를 담은 작품 외에도 한국 작가들의 창작 그림책이 대부분이에요. 우리 그림책만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요즘은 아이들이 외서보다 우리 그림책을 더 좋아하더라고요. 잘 만든 우리 책이어서 그렇게 호응하는 거겠죠. 그림책은 특히 문화적인 차이를 무시할 수 없는 거 같아요. 우리나라 사람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가 소통의 접점이 더 많을 테니까요. 물론 칼데콧 수상작에도 좋은 책이 많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꼭 읽혀야 한다고 생각되지 않은 책도 있어요. 미국적인 정서가 많이 반영되고 그 사회의 당대성이 담겨 있어요. 작품성이 어디에 초점을 두고 있는지도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고요. 안녕달의 작품 중에 《수박 수영장》이라는 책이 있어요. 우리의 일상적인 환경에서 판타지를 능청스럽게 표현하고 있잖아요. 그건 우리 작가들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그림책에서 표현하는 판타지는 아이들이 가진 세계와 마찬가지예요. 아이들은 자기가 생각하는 세계가 현실과 같다고 여기죠. 어떤 놀이를 할 때 여기에 뭐가 있다고 하면 어린이들은 그냥 믿고 이야기를 해요. 자신이 진짜 공주라고 생각하고요. 어린이들의 공간이 결국 이중 공간인 거죠. 일상적인 공간에 있지만 그 안에 자기만의 판타지가 어린이들 속에서 늘 만들어져요. 안녕달이나 백희나 작가를 아이들이 좋아하는 건 매일 마주하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그 부분을 가장 잘 포착해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출판계가 불황이라고는 하나 그림책에 관한 관심은 커지고 콘텐츠도 확장되고 있어요. 출판사에서 바라보는 그림책의 현재와 미래는 어떤가요?
권윤덕, 권정생 작가 등이 활약했던 1995~6년, 《만희네 집》, 《강아지똥》이 발표되면서 창작 그림책이 본격화되었어요. 그 시기를 기점으로 그림책 작가들의 역량이 눈부시게 발전했어요. 일본은 이미 그림책에 100년의 역사가 있어요. 오래되고 다양하고 작품성 있는 책이 많아요. 그런데 다른 아시아 국가를 보면 대부분 일본 책이 휩쓸고 있어요. 홍콩이나 태국, 심지어 중국 서점도 유아 책의 상당 부분을 일본 그림책이 차지하고 있죠. 유일하게 한국은 우리 작가의 창작 작품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서 아이들이 많이 접하고 있어요.
이제는 어릴 때 그림책을 봤던 세대들이 점점 부모가 되고 있어요. 그림책을 보며 자란 작가들이 부모가 되고 있고요. 그러니 얼마나 찬란하게 꽃을 피우겠어요? 어릴 때부터 그림책을 보던 어린이가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되고 작가가 되니까 앞으로 미래는 더 밝고, 그동안 축적된 것도 많겠죠. 하지만 불황에다 아이들 인구가 줄어드니까 절대적으로 그림책의 수요가 부족해요. 작가들에게는 쉽지 않은 시기고 아쉬운 부분이죠. 그럼에도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어요. 작가들의 창작 역량이나 독자의 질적인 부분이 많이 성숙하고 있어서 앞으로 더 많이 사랑받지 않을까 생각해요.
지속해서 뒷받침해주는 환경이 주어져야겠네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자기 나라에 다른 나라의 책이 많다는 건 불행한 일이에요. 예전 어린 시절 보던 만화는 사실 일본 만화가 대부분이었죠. 하지만 그 속에서 ‘태권브이’라든지 우리 만화가 있었다는 데 의미부여를 많이 하잖아요. 책 안에는 문화와 시대성, 역사가 모두 담겨 있어서 우리 정서가 담긴 작품을 보고 크는 게 중요해요. 지금 그림책 작가들이 자신의 분야에 집중하려면 국가적인 지원이 필요해요. 도서관에 우리 작가들이 쓴 좋은 작품이 많이 들어가는 게 국내 작가를 지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또 그 책들을 아이들이 읽는 시스템이 되면 좋겠죠. 현황은 충분하지 못해요.
북스타트도 오래전부터 하고 있지만 모든 작가의 작품이 골고루 들어가긴 쉽지 않고요. 물론 좋은 외국책도 많이 봐야겠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건, 우리 작가들의 좋은 책을 읽은 어린이들이 성장해서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어서 자신의 아이들에게 손녀에게 다시 이 책을 읽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건 엄마가 읽었는데, 할머니가 읽었는데, 하면서 하나의 책을 가지고 나눌 수 있는 대화가 얼마나 풍성할까요? 아주 좋은 모습이죠. 그렇게 되려면 우리 작가들이 오래 작품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겠죠. 조금만 힘을 발휘하고 신경 쓰면 어렵지 않은 부분인 거 같은데 쉽지 않네요.
그림책이라는 영역의 경계는 확장되고 있지만 아직은 독립적인 형태로 자리 잡지 못한 거 같아요.
아쉬운 부분이에요. 그림책을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데 비해 그림책 자체가 장르가 되어있지 않아요. 애매한 위치죠. 그림책 작가들이 가장 많이 말하는 게, 네이버에 검색하면 그림책 작가가 아니라 동화 작가라고 되어 있다고 해요. 그림책이라는 장르 자체를 좀 더 독립적으로 인정해주면 좋겠어요. 웹툰의 경우 나라에서 엄청난 지원을 하잖아요. 그림책도 수출을 많이 하고 있어요. 물론 규모가 조금 작긴 하지만요. 조금 더 지원해주고 보호해주면 좋겠어요. 그러면 확실한 분야로 자리매김하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 창작 그림책의 범위가 넓어지고 풍성해지면 우리 어린이들의 삶도 달라지겠네요.
그렇죠. 이는 작가만 보호하는 게 아니에요. 그림책이라는 장르를 보호한다는 건 미래의 어린이까지 보호한다는 거거든요. 여러 노력이 필요해서 작가들이 많이 움직이고 있어요. 지원을 통해 작가들이 작품만으로 생계가 유지되면 힘을 발휘해 더 좋은 그림책이 많이 나오겠죠.
책 만드는 사람으로서 그림책의 세계를 풍요롭게 즐기기 위한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책 읽는 게 자유로웠으면 좋겠어요. 억지로 읽는 책은 절대 마음에 남지 않아요. 많이 읽는 것보다 자기 마음에 남는 책을 아이들이 볼 수 있게 아이들 주변에 책을 놔두고 아이가 읽으면 읽는 대로 읽지 않으면 읽지 않는 대로 두는 거예요. 공부도 마찬가지로 아이가 자기의 마음이 다해야 하잖아요. 자기 마음을 다해 책을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중간에 좀 안 읽으면 어때요. 창의성을 주려면 생각할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여겨요.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공간과 공간 사이에서 아이들에게 쉼터를 줘야 해요. 아이들이 책을 보도록 엄마들이 편안한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하죠.
마지막으로 책읽는곰은 그림책을 통해 어떤 사회를 구현하고 싶나요?
구성원들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얼마나 소통하느냐가 사회의 품격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림책이라는 게 어릴 때 보는 책, 어쩌면 처음 보는 책도 되겠죠. 작가들은 한 권의 그림책에 자신을 소중히 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타인을 배려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고… 그런 올바른 가치관을 담으려고 노력해요. 이러한 가치관이 아이들에게 씨앗처럼 몸에 심길 거 같아요. 그 씨앗이 커서 나중에 다양한 꽃을 피울 테고요. 좋은 그림책을 읽은 아이들이 좋은 가치관을 키우지 않을까요?
어릴 때 책을 읽으면서 거기서 봤던 인물과 이야기를 보면서 자신만의 생각이 형성되기 때문이죠. 책과 소통하는 아이는 다른 사람과도 충분히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좋은 사람을 만드는 일에 조그마한 힘이라도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한 권의 그림책이 만들어지기까지
1 아이디어 구상
작가는 일상생활 속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도 하고, 오래전에 구상해둔 아이디어를 다시 끄집어내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자료를 모으고 공부를 해서 만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이 과정에서 편집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지금이 이 이야기를 해야 할 때’라는 확신을 얻곤 한다.
2 손톱 스케치(썸네일)
영상 매체 제작에 널리 쓰이는 스토리보드와 유사한 개념이다. 머릿속으로 구상했던 스토리와 이미지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작은 그림으로 그려 종이 한 장에 담는다. 작품의 전체적인 짜임새와 흐름을 정리하기에 좋다.
3 스케치
스케치 작업은 작가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그림을 그리기 편한 용지에 러프 스케치를 여러 차례 하면서 스토리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장면 연출과 흐름을 찾아낸 뒤 책과 같은 크기로 본 스케치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스케치를 묶어 책자 형태로 만든 것을 ‘더미북’이라고 한다. 작가에 따라 아예 수첩이나 공책에 스케치하는 경우도 있다. 더미북은 실제 책처럼 넘겨 보면서 장면 연출과 흐름을 점검할 수 있어 여러 차례 만들어본다. 특히 입체 그림책은 나중에 스토리나 장면 연출을 수정하기가 까다롭기 때문에, 썸네일과 더미 단계에서 기본 스토리와 장면 연출을 되도록 최종 상태에 가깝게 정리해둔다.
4 캐릭터 작업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만드는 작업은 아이디어 구상부터 본 스케치 전까지 꾸준히 이루어진다. 이야기에 적합한 등장인물 캐릭터를 만들어 편집자에게 모니터링하고 아쉬운 부분을 다듬어 나간다.
5 채색 또는 세팅
평면 작업을 하는 작가는 이야기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채색하여 원화를 완성한다. 완성한 원화는 스캔 업체에서 드럼 스캔을 받아 디자인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이미지 파일로 만든다. 컴퓨터로 채색하는 경우에는 스캔 과정이 생략된다. 입체 작업을 하는 작가는 각 장면을 연극 무대처럼 세팅하고 주인공을 배치한 뒤 사진 촬영을 한다. 사진은 조명이나 각도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므로 한 장면을 여러 차례 촬영하여 작가의 의도에 맞는 장면을 골라낸다.
6 디자인 작업
스캔 받거나 촬영한 이미지를 가장 보기 좋게 자르고, 이미지와 스토리에 맞는 서체를 고른다. 이후 이미지와 텍스트가 잘 어우러지게 배치한다.
7 최종 원고 및 디테일 수정
1차 디자인 작업이 끝난 원고(정판)를 살펴보면서 이미지와 텍스트의 배치가 조화로운지, 텍스트에서 덜어내거나 보탤 부분은 없는지, 오탈자는 없는지 여러 차례 점검하고 상의해 수정한다.
8 인쇄와 제본
글과 그림이 새겨진 최종 데이터를 인쇄소로 보낸다. 인쇄된 낱장의 종이를 접고 자르고 묶으면 비로소 한 권의 그림책이 탄생한다.
에디터 김현지
포토그래퍼 HaeRan 자료 협조 책읽는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