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만드는 작업실

그림책 작가 이진희·일러스트레이터 강영민

그림을
만드는 작업실

그림책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작업실은 어떨지 궁금했다. 옛날 집, 다락방, 나무계단, 갈색, 케케묵은 가구와 창문, 식물, 무성한 풀이 자란 옆 뜰, 발코니라고 하기엔 촌스러운 2층 베란다. 그녀들의 묘한 작업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INTERVIEW

그림책 작가 이진희·일러스트레이터 강영민

따뜻한 작업실
그리고 잔잔한 사람들

언제부터 작업실을 함께 사용했나요?

이진희 3~4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작업실을 도토리라고 부르시더라고요. 별명인가요?

이진희 제가 예전 연남동 작업실에 대해서 글 써놓은 게 있어요. 책으로 만들려고…. 작업실에 갈색 가구가 많아요. 새로 산 제품도 그렇고 할머니한테 받은 것도 그렇고. 그리고 제가 작업하는 공간이 작거든요. 그래서 작고 갈색인 도토리를 생각했던 거죠. 연남동 작업실을 토대로 생각했던 것인데 공교롭게도 이 작업실에도 갈색이 참 많아요. 바닥부터 벽까지 전부 갈색(웃음).

작업실의 분위기가 참 따뜻해요.

강영민 옛날 가구가 많아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전 주인분이 사용하시던 가구들도 있어요. 두고 가신 것을 그냥 사용했는데, 이 공간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잖아요. 거기에 빈티지한 가구들을 사서 두었고요. 새 물건들 말고 사용했던 물건들로 공간을 채워서 따뜻한 분위기가 더 나는 것 같아요.

누가 살던 곳이었는지 궁금하네요. 왠지 분위기가 비슷할 것 같아요.

이진희 두 분이 10년 정도 이 집에서 사셨는데, 잘은 모르지만 그분들도 책 만드는 분들이었던 것 같아요.
강영민 책이 책장에 가득 꽂혀있고, 바닥에도 쌓여있었어요.

신기하네요. 공간을 이어받은 느낌이 들 것 같아요. 이 집엔 식물이 참 많네요.

강영민 제가 식물을 좋아해요. 예전에 꽃 수업도 들었고 꽃 시장 가는 것도 좋아해요. 식물은 어떤 공간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기분을 좋게 하잖아요.

옆 뜰에 자란 풀들도 집과 잘 어울려요.

이진희 저기는 잡초투성이(웃음)….
강영민 풀이 아주 잘 자라요.
이진희 그런데 이 친구가 정말 식물을 좋아해요. 식물을 주제로 작업도 많이 하고 그림도 그리고요. 저도 영향을 좀 받았죠. 저는 식물을 잘 못 기르거든요. 예전에 작업실에서도 화분을 하나 키웠었는데, 시름시름 죽어가기에 들춰봤더니 화분 속에 개미가 집을 짓고 살고 있더라고요. 열심히 키워도 잘 안 되더라고요.

맞아요. 저도 식물을 잘 기르지 못하는데, 똑같은 방법으로 키워도 잘 키우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이진희 맞아요. 저기 창틀에 놓인 화분이 무화과나무거든요. 영민이가 주인이에요. 근데 영민이가 부산에 잠깐 가 있을 때, 저랑 작업실 같이 쓰시는 또 다른 분이랑 번갈아 가면서 물을 줬어요. 둘이서 주다 보니까 소홀해졌나 봐요. 나무가 되게 생생했었는데 쭈그러든 거예요. 다행히 주인이 와서 보살펴주니 다시 살아났어요.
강영민 내년에는 열매를 꼭 맺어서 따 먹어보고 싶은데 되려나 모르겠어요(웃음). 화단은 정리를 한 번 해야 할 텐데….

 

저대로 두어도 좋을 것 같아요. 집과 잘 어울려요. 개인적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있는 풍경이 떠오르기도 해요.

이진희 저는 집에서 세 마리를 키우고 있어요. 그런데 예전 작업실도 그렇고 이곳도 그렇고 고양이들이 나갈 위험이 있어서요. 여기도 마음만 먹으면 화단이랑 연결된 모기장을 뚫고 나갈 수 있거든요.
강영민 동네에 고양이가 많아서 자주 왔다 갔다 해요. 얼마 전에도 저기 화단에서 절 보고 있더라고요(웃음).

그림 이야기를 해볼게요. 주로 어떤 그림을 그리세요?

이진희 책을 만들면 책에 맞는 주제로 그림을 그리게 되잖아요. 그런데 평소에는 주제를 많이 바꿔서 그려요. 작업 스타일을 한 가지로 꾸준하게 가는 성격이 아니라서요. 재료도 자주 바꿔서 사용해요. 주로 별이나 우주 같은 것에 관심이 많아요.

아, 우주요?

이진희 (웃음)우주에 관심이 많아서 우주에 관련된 책을 모으기도 했어요. 지금은 사진첩 같은 느낌의 책을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했던 작업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에요. 전체적으로 작업에 변화를 많이 주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러고 보니 제가 그렇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네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는 재료도 중요하잖아요. 어떤 재료로 그림을 그리세요?

이진희 재료요? 정말 막 사용해요(웃음). 보통 다른 분들은 작업하실 때 주로 사용하는 재료들이 있는데, 저는 연필도 쓰고 과슈도 많이 사용해요. 잉크나 마카, 수채화까지. 예전에는 유화도 썼었고요.
강영민 저는 수작업을 할 때는 아크릴물감이나 마카를 많이 써요. 콜라주 작업을 할 때는 패턴을 만들어서 스캔한 다음에 컴퓨터에서 작업하는 경우가 많고요.

진희 씨는 책을 만드시고 영민 씨는 입체적인 엽서 같은 제품을 주로 만드시는 것 같아요.

이진희 책 작업을 주로 하죠. 일러스트도 하고요. 결과물을 만드는 것에 있어서 영민이는 낱장의 것이 나온다면 저는 좀 묶여있는 형태를 좋아해요.강영민 커팅기술을 사용해서 주로 작업해요. 꽃 엽서에도 커팅이 많아요. 예전에는 손으로도 많이 자르고 했는데, 엽서는 일일이 다 오리는 것이 불가능해요. 그런데 종이에서 입체감이 느껴지게 구현하고 싶었어요. 콜라주 작업을 좋아하거든요. 그런 건 사진이나 2D로 표현하면 느낌이 다르잖아요. 그래서 레이저 커팅이란 기술을 활용해요. 입체적인 일러스트를 표현하고 싶어요. 평면에 그리는 것도 재미있긴 한데, 입체감이 느껴지는 작업을 하는 것이 재미있더라고요.

꽃을 모티브로 한 작업이 정말 많네요.

강영민 꽃과 식물을 좋아해서 그걸 토대로 많이 작업하죠. 지금은 꽃보다 식물 자체에 관심이 많은데, 예전에는 꽃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꽃꽂이도 배웠었던 건데. 꽃꽂이 자체가 꽃으로 콜라주 작업을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꽃 이미지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더 관심이 생겼어요.

그림으로 할 수 있는 작업은 많잖아요. 진희 씨는 그림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을 한 계기가 있나요?

이진희 대학교에 다닐 때, 졸업작품으로 책을 만들게 되었어요. 서양화과를 나왔는데, 보통 졸업작품으로 그림책을 만들지는 않거든요. 그때 책을 완성했을 때 느꼈던 그 기억이 크게 작용한 것 같아요. 당시에도 고민했었어요. 그림책을 할지, 평면작업으로 할지요. 그때 그림책을 안 했으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그림동화를 정말 좋아했었거든요. 짤막짤막한 이야기를 즐겨 봤어요. 어떻게 보면 그림책이라는 장르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볼 수 있잖아요. 짧은 이야기지만 내 생각을 그 짧은 글과 그림 안에 표현할 수 있는 거니까요. 그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어요. 

회화랑 다른 점이 있다면요?

이진희 회화는 보통 전시를 하는데 그림책은 책이 나오잖아요. 제 성향이 제가 주인공이 되어서 드러나는 것보다 책 뒤에 있는 것을 훨씬 좋아하더라고요. 제 작업이 책으로 표현되는 것이 더 좋아요. 그리고 책의 물성을 좋아해요. 하나로 완성되어서 손에 잡히는 느낌이 좋더라고요. 생각해보니 어릴 때 기억이 크게 작용했네요. 공원에 작은 도서관이 있는 마을에 살았어요. 그곳에서 책을 많이 읽었는데, 서가에 그 많은 책이 꽂혀 있는 것이 너무 신기했어요. 이 책이 어떻게 여기 있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제본은 어떻게 했는지. 이런 것들이 굉장히 궁금했어요.

책에 대한 관심이 많았네요.

이진희 맞아요. 그리고 보이는 것은 여러 방식이 있잖아요. 영화나 전시, 음악 등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책이 가장 공격적이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책은 제가 제어할 수 있잖아요. 보다가 덮을 수도 있고, 그 후부터 이어나갈 수 있고요. 영화나 전시는 좀 더 공격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온전히 그 시간 안에 봐야 하는 거잖아요. 책은 정말 아날로그적이에요. 그리고 종이 질감도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출판사와 작업하다가 독립 출판을 해보고 싶었던 이유도 종이 질감부터 판형 같은 부분들도 온전히 혼자 만들어보고 싶어서였어요.

《너와 세계》라는 책은 독립 출판하신 건가요?

이진희 독립 출판은 그 책 하나예요. 제가 콘텐츠를 전부 만든 것은 아니고, 다른 작가분들의 내용과 그림을 받아서 만들었어요.

색다른 경험이셨을 것 같아요. 편집자의 역할이 힘들지는 않았나요?

이진희 제가 책에 대한 열정이 크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리고 책은 정말 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던 분야였는데, 만드는 경험을 하고 나니 재미있었지만, 예전에는 그림책이 쉽다고 생각했었다면 지금은 굉장히 어려워진 것 같아요. 1~2년 정도는 슬럼프가 올 정도로 작업에 고민이 많았어요. 지금은 책이란 것에 대해 진중하고 깊게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책을 만든다는 것은 책임이 따르는 일 같아요. 저도 그림책은 조금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을 했었거든요. 글이 있기는 하지만 그림으로 더 표현하는 책이니까 의미를 전달하는 부분에서는 좀 더 자유롭고 포괄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강영민 한 권으로 묶는다는 것 자체가 어렵고, 판매부터 디자인, 마케팅까지 해야 하잖아요. 옆에서 지켜보면서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진희 제가 첫 책을 만들 때 에너지가 가장 넘칠 시기였거든요. 거의 골방 같은 작업실에서 2년 정도를 책 만들면서 생활했어요.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거든요. 그래서 독립 출판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본 것 같아요. 책 만드는 분야에서요. 독립 출판은 취미활동처럼 작게 이어나갈 생각이고 개인 작업은 출판사나 전문가의 감독을 받으면서 하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웃음).

영민 씨도 《너와 세계》의 작가로 참여하셨잖아요.

강영민 저는 즐겁게 작업했어요(웃음). 책으로 나오는 과정을 옆에서 다 봤잖아요. 재미있었어요. 판형이나 종이도 계속 바꿔보고. 그걸 바꿈으로써 느낌이 정말 달라지더라고요. 제 그림을 가지고 샘플을 잡아봤거든요. 처음에 좀 크게 만들었는데 너무 이상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어떻게 해볼지 고민을 하다가 지금의 판형으로 만들어봤죠. 그랬더니 그림이 확 사는 거예요. 그런 경험들이 굉장히 신선했어요. 저도 서양화를 전공했는데, 회화과는 전시를 주로 하잖아요. 그런데 이게 시간이 너무 짧다고 느껴지는 거죠. 전시는 길게 해도 올 수 있는 사람은 한정적이잖아요. 물론 의미는 매우 크지만요. 그런데 책이나 출간물이나 엽서 등 어떤 형태로 만들어지는 것은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것 같아요. 장소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요.

자신이 드러나는 것보다 작업 뒤에 있고 싶단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도네요.

강영민 아티스트의 성향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자아를 표현하는 작업을 하시는 분들은 당연히 자신이 드러나야 하지만 저는 그런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식물을 그리는 것도 저를 표현해줘서 그리는 것은 아니고, 그게 좋아서 그리는 거니까요. 일단 제가 좋으니까 다른 분들도 좋지 않을까 하는 간단한 생각일 수도 있고요. 그리고 둘 다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에요(웃음).
이진희 맞아요. 개인적인 성향인 것 같아요. 학교에서도 뒤에서 잘 안 보이게 생활하던 아이였어요.
강영민 주목받으면 도망가고 싶고(웃음).
이진희 저희는 그게 편한 사람들인 것 같아요.

독자들이 그림책이나 작업을 보고 느끼는 것은 천차만별이잖아요. 전달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그대로 전달되기가 힘든 것 같아요.

이진희 저 같은 경우는 전달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진 않아요. 책이라는 것은 제 개인 작업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편집자와 같이 조율해야 하는 부분도 있고, 읽는 사람이 있어야 완성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제가 아직 ‘책을 읽는 분들이 어떤 것을 느꼈으면 좋겠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라고 생각하면서 만들기보다는 제가 생각하는 것을 온전히 책에 담는다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 같아요. 읽는 사람마다 느끼는 부분은 다 다를 테니까요. 책이라는 분야는 저한테 반응이 잘 전달되지도 않아요(웃음). 그래서 그저 제가 어떤 생각을 책에 담고 싶고 그것이 완성도 있게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그게 좋은 책인지 아닌지는 보시는 분들이 판단하는 거니까요. 또 그림은 개인 취향이 너무 큰 분야잖아요. 그래서 일단은 제 마음에 드는 책을 만들고 싶어요.

강영민 저는 메시지를 전달한다기보다 작업에 좋아하는 것을 담아서 공유한다는 개념인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의 그림을 봤을 때, 좋아서 한 작업을 보면 저까지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순수미술처럼 의미를 전달하고 싶은 것은 아니고 제가 좋아하는 것, 제가 느꼈던 것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큰 것 같아요.

이진희

H. leejinhee.kr

강영민

H. papersalad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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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정혜미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