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만난 작가들의 삶

그들의 세계

그림으로 만난
작가들의 삶

작가들이 보고 있는 네모난 창 너머로 함께 세상을 본다. 그들이 펼쳐놓은 세계로 들어가는 일은 작가 개인의 삶으로 초대받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림책을 펴는 순간 그들의 세계가 열린다.

베아트릭스 포터
Beatrix Potter

“피터의 엄마는 요리하느라 무척 바쁜 와중, 피터가 벗어둔 옷을 보며 그가 뭘 하고 돌아다닌 건지 궁금했어요. 그건 지난 2주 전 피터가 잃어버린 재킷과 신발이었거든요.”

우리의 주변 | 베아트릭스 포터는 우리 주변의 것을 비춘다. 농장의 당근을 뜯어 먹는 아기 토끼, 그들을 잡으려는 농장 주인 할아버지, 아기 토끼를 돕는 참새와 생쥐. 푸른 밭을 끼고 있는 집이라면 어디서나 만나볼 수 있는 대상이고 풍경인데, 포터는 그들의 모습을 더욱 생생하고 풍성하게 그려냈다. 토끼 피터, 맥 그레고리 할아버지, 고양이 톰, 다람쥐 넛킨. 자기만의 사정이 모여 하나의 삶이 이루어진다. 인간의 생과 전혀 다르지 않고, 그림책 안의 모습이라고 해서 완벽하지도 않다. 서툴고, 실수하고, 얄궂고. 다양한 모습이 그녀의 말을 빌려 눈앞으로 나타난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는 일처럼, 사소해 보이지만 결국 피부에 와 닿으니 말이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 | 베아트릭스 포터는 1866년 영국 런던의 작은 마을에서 외동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그녀는 수줍음이 많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동물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토끼부터 개구리, 고슴도치, 박쥐까지 다양한 동물과 집 안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들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녀가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 가족들과 영국 북서부 지역인 레이크 디스트릭트로 휴가를 떠났는데, 포터는 그곳의 아름다운 풍광과 고즈넉한 분위기에 푹 빠지게 되었고 이곳이 바로 훗날 《피터 래빗》의 탄생 배경이 된 장소기도 하다. 포터는 동물과 인간 사이에 교감의 다리를 뻗고, 계속해서 빈틈으로 이야기를 흘려보냈다. 그건 그녀가 제일 사랑하는 일이면서 가장 큰 기쁨이기도 했다.

그녀의 꿈 | 당대 여성들의 목표가 좋은 집안의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이었던 데 비해 포터는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만 몰두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탄탄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그녀는 자신의 힘과 가능성을 믿었다. 매일을 다른 날처럼, 매 순간 집중하며 자신의 감정을 증폭시켰다. 그렇게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한 그녀는 1902년 프레드릭 워런 출판사에서 《피터 래빗》을 처음으로 발간한다. 그녀의 첫 문학 소설이었다. 3년의 시간이 흘렀을 때 그녀는 레이크 디스트릭트로 거주지를 옮긴 후 그동안 모은 자신의 전 재산을 합쳐 그곳의 땅과 농장, 집을 구입했다. 그녀가 진정 사랑했던 레이크 디스트릭트가 개발 위기에 놓이면서 더 이상 파괴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숲속 친구들 이야기 | 포터는 어릴 때부터 동화와 구전민화를 무척 좋아했다. 그녀에게 영향을 준 수많은 그림 동화 뒤에 그녀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포터의 책이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 바탕에는 생동감 넘치는 그림이 있다. 인간의 손에 길들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자연 풍경, 작은 시골 마을의 모습 그리고 그녀가 동물들에게 부여한 알록달록한 모습들까지. 포터의 이야기는 교훈을 과잉 전달하지 않는다. 동물들도 실수를 하고 잘못을 저지르며 욕심을 부리는 게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그것으로 우리에게 가르치려 들지 않고, 혹은 위대한 교훈을 남기려 들지 않는다. 포터의 능숙한 그림체 속에는 담백하고 정직한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Recommended Books
베아트릭스 포터가 보여주는 세계는 작고 소담하다. 작은 것에도 놀라고 사소한 것에도 기쁨을 찾는 세계. 우리가 그동안 잊고 지낸 무언가를 되찾아준다.

피터 래빗 이야기
베아트릭스 포터 그림·글│소와나무

커다란 전나무 뿌리 밑 모래 언덕에서 엄마 토끼와 아기 토끼 네 마리가 살고 있다. 그중에 한 마리는 말썽꾸러기 피터. 맥그레거 아저씨네 정원만큼은 가서는 안 된다는 엄마의 말을 듣자마자 피터는 그곳으로 향한다. 손에 잡히는 맛있는 채소를 먹다가 아저씨에게 들키고 만다. 피터는 과연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까?

피터래빗 이야기, 110주년 기념판

《피터래빗》의 110주년 기념을 맞이하여 특별하게 제작된 버전으로, 영화 <노팅힐>의 배경으로 유명한 서점에서 판매했다. 책의 테두리를 반짝이는 파란 금장으로 덧씌워 감각적으로 디자인했다.

톰 키튼 이야기
베아트릭스 포터 그림·글│소와나무

하루 종일 흙구덩이에서 뒹굴고 낮잠 자기를 좋아하는 고양이. 엄마의 친구 고양이 아줌마들이 놀러 오는 날, 예쁜 옷으로 갈아입고 얌전히 놀아야 하는 미션이 주어진다. 하지만 꼬마 톰 키튼은 여동생들과 담장 위로 올라가 오리 가족을 구경하게 된다. 옷의 운명이 궁금해진다.

벤자민 버니 이야기
베아트릭스 포터 그림·글│소와나무

피터 래빗의 한 수 위 말썽꾼 토끼 벤자민에 관한 이야기다. 멕그레거 아저씨네 텃밭에서 외투와 신발을 잃어버린 피터가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자 벤자민이 함께 찾아주기 위해 텃밭으로 향한다. 과연 둘은 외투와 신발을 무사히 찾을 수 있을까?

존 버닝햄
John Burningham

“작품을 할 때 어린이들을 염두에 두고 그리진 않아요. 제가 말하고 싶은 세상을 그릴 뿐이에요.”

간결한 글과 자유로운 그림 | 엉클어진 머리에 무표정한 모습으로 지각한 어린이, 엄마의 심부름에서 만난 동물들을 재치 있게 따돌리는 아이, 외로운 아이 곁에서 도움을 주는 토끼…. 존 버닝햄의 책에는 어딘가 수줍고 조용한 아이가 등장한다. 어린이들은 현실의 공간이나 권위적인 어른의 행동에 큰 움직임이 없지만 그들이 무엇을 원하고 바라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내 그림책은 세계 어디에 살고 있는 어린이라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만들어져있다.”라고 말하는 그는 반복되는 사건의 리듬으로 어린이처럼 정형화되지 않은 그림을 그린다. 그의 그림은 딱히 선명하지도 않고, 그리다 만 듯한 선으로 감정을 표현하거나 여러 가지 재료를 혼합하여 자유분방함을 보여준다. 그것이 놀이의 자유로움을 보여주고 상상할 여지를 남겨두기 위한 그의 작품 세계다. 

시시덕대는 일 | 막내로 태어난 버닝햄은 진보 성향이 강한 부모님 밑에서 자유롭게 자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학교를 아홉 번 옮겨 다녔는데, 학창 시절 부모는 종종 카라벤을 어느 학교 앞에 대고, 버닝햄이 학교에 적응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지를 조심스레 살폈다고 한다. 그림을 잘 그리던 어머니는 기숙학교에 지내는 동안 그림 편지를 보냈고 목사인 할아버지는 글을 쓰고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학창 시절 다양한 교사와 여러 수업을 접했고 최종 정착한 서머힐 대안학교에서는 내내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 학교를 옮기는 사이 시골의 외딴 마을에 머문 적이 있는데 흥미로운 사건이 없던 그 생활은 자신만의 세계를 형성하고 이후 예술 활동을 하는 데 큰 영향을 줬다고 말한다. “지금의 나를 만든 건 억압받지 않고 자란 어린 시절의 경험과 과정 덕분이에요. 시시덕대는 일은 모든 이에게 가장 중요하죠.”

그를 둘러싼 모든 것으로부터 | 영국의 센트럴 예술 학교에서 일러스트레이션과 그래픽 디자인과정을 배웠다. 그때 아내인 헬렌 옥슨버리를 만났다. 옥슨버리 역시 버닝햄의 영향으로 그림책 작가가 되었는데 《곰 사냥을 떠나자》 등 정감 있는 유머와 친근한 책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가족뿐 아니라 그를 둘러싼 모든 것에서 작품의 소재를 얻는다. 작품에 나오는 캐릭터는 버닝햄의 초상으로 《우리 할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와 딸 에밀리의 모습을 보고 그렸으며,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의 검피 씨는 자신의 미래를 예언한 캐릭터였다. 《알도》의 토끼나 《내 친구 커트니》도 자신이 키우거나 일상에서 마주하는 동물들에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상상으로 전달하는 메시지 | 버닝햄 그림책 속 어린이는 현실과 상상 세계 사이를 자유롭게 오간다. 현실에서는 작고 나약한 존재지만 상상 속에서는 무한한 힘을 발휘한다. 기러기, 개, 여우, 광대, 구름나라의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뒤범벅된 캐릭터들은 놀랍고 익살맞고 부조리한 모험을 즐긴다. 그림책에 나오는 어른들은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나 《우리 할아버지》 같이 어린이의 놀이를 이해하고 동참해주는 어른도 있지만, 《지각대장 존》, 《장바구니》, 《알도》처럼 어린이의 말을 들어주지 않고 현실의 편견에 사로잡힌 어른들이 대부분이다. 그 과정에서 자유로운 놀이를 잃어버린 어른의 세계와 어린이들의 외로움, 관계의 단절 같은 깊은 주제를 가볍고 간결하게 표현한다. 그의 모든 작품은 어린이의 세계를 인정하며 자유로움을 허용하고자 하며 달콤한 만족감이나 행복한 결말이라는 관습에 기대지 않는다.

Recommended Books
머리나 마음속에만 맴도는 어린이들의 기분을 실재 눈에 보이게 그려낸 그의 그림은 책을 여는 순간 살아 움직인다.

깃털 없는 보르카
존 버닝햄 그림·글 │비룡소

처음 일러스트레이션의 포트폴리오를 들고 만난 편집자에게 거절당하고 스스로 보르카에 관한 글과 그림을 그렸다. 깃털 없이 태어나 무관심 속에 살아온 보르카가 메칼리스터 선장의 배려로 큐가든에 살게 된다. 온갖 기러기들이 살고 있는 큐가든의 동료들은 보르카를 보고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실제로 존재하는 지명인 큐가든에 가면, “보르카, 보르카!”라고 부르는 어린이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보르카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살아있다.

우리 할아버지
존 버닝햄 그림·글 │비룡소

버닝햄이 할아버지와의 기억과 딸 에밀리와 자신의 아버지가 나누는 대화를 엿듣고 쓴 작품이다. 할아버지와 어린 손녀가 보낸 사계절의 나날을 담았으며 함께 씨앗을 심고, 해변을 걷고, 물고기를 잡고, 눈에서 노는 모습을 잔잔히 그렸다. 언제나 지속될 것 같은 시간이 끝나고 할아버지가 늘 앉아있던 녹색 의자는 텅 비어 있다. 인간의 삶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무거운 주제를 단순한 그림과 유머러스한 글로 풀어냈다

지각대장 존
존 버닝햄 그림·글 │비룡소

선생님은 지각한 어린이의 이름을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라고 부른다. 이는 재판소에서 피의자 이름을 부르는 관습을 적용했다고 한다. 지각한 존에게 “이 동네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며 타박하는 권위적인 선생님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지각을 할수록 선생님은 점점 커지고 상상 세계를 억압당하는 어린이는 점점 작아진다. 책의 마지막, 고릴라에게 잡힌 선생님의 부탁을 거절하는 존을 보고 통쾌감을 느끼는 건 어린이뿐만은 아닐 것이다.

비밀파티
존 버닝햄 그림·글 │시공주니어

어느 여름날 밤, 잠에서 깬 마리 일레인은 고양이 말콤이 멋진 옷과 모자를 차려입은 것을 본다. 마리는 고양이만큼 몸이 줄어들어 비밀 파티에 함께하게 되면서 신비하고 환상적인 경험을 한다. 밤에는 생생한 고양이들이 낮이 되면 졸리는 이유를 어린이의 시선에서 담은 익살스럽고 기발한 상상이 유쾌하다. 콜라주 기법과 사진, 색연필, 물감 등을 섞은 자유로운 그림체는 밝은 상상의 세계를 잘 드러내 주며 먹의 강약 조절로 밤의 느낌도 생동감 있게 전해준다.

다시마 세이조
Tashima Seizo

“우리들의 모습은 아무도 볼 수 없겠지만, 여러분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전쟁 이야기를, 여러분과 똑같이 살았던 우리들의 이야기를.”

마음이 여린 소년 | 다시마 세이조는 1940년 일본 오사카에서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났다. 2차 대전 당시 집이 불타는 바람에 산골 마을로 이사하면서 그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그의 마음을 지켜준 것은 호젓한 풍경 속의 작은 들벌레와 나뭇가지, 계절마다 변하는 꽃송이와 푸른 날씨였다. 자연을 곁에 두고 가까운 곳에서 관찰하면서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자연과 인간 사이에 말로 묶을 수 없는 유대감 비스름한 것이었을까. 그는 자연 그대로의 것을 사랑하는 소년이었다. 자연에 가장 어울리는 단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면 아마 그는 ‘평화’라고 대답했을 거다. 그의 작품에도 그런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자연을 위한, 자연을 사랑한 | 다시마 세이조의 그림책은 대부분 ‘환경’과 ‘평화’라는 단어와 가깝다. 자연은 느리고 천천히 시간을 보낸다. 인간의 성급함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도 더러 생긴다. 그대로 놔두어야 제대로 된 길을 찾아갈 수 있는 일들, 그 자체여야만 의미가 있는 현상들. 세이조는 그런 자연의 말소리에 귀 기울였다. 그가 살던 도쿄의 한 지역에서 폐기물 처리장이 생긴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망설임 없이 불도저 앞으로 향했다. 땅에 누워 반년 내내 시위를 한 것이다. 누워 지내면서 그가 얻은 것은 숲과 소통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언어적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었지만, 어디선가 그를 향한 생명의 응원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아마 자연을 진정으로 걱정하고 염려하는 사람에게 주어진 특권 같은 거였을지도 모르겠다.

평화를 말하며 | 다시마 세이조의 그림책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에서는 전쟁터에서 죽은 어느 병사가 영혼이 되어 온 세상을 다시 내려다보는 시선을 담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을 찾아가고, 마저 전쟁을 치르는 동생에게 말을 걸고, 전쟁의 피해자가 된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무엇을 위한 전쟁인지, 전쟁으로 사람들이 어떤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인지, 전쟁 과정에서 발생하는 살생이 얼마나 잔인한지 등 많은 의문을 품고 격렬하고 생생하게 전쟁의 잔혹성을 드러낸다. 그는 실제로 베트남 어린이를 위한 모임과 반전 운동에 참여하며 평화를 지키기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그의 목소리 | 세상을 사랑하는 다정한 다시마 세이조의 목소리를 듣는 방법은 단연 그의 그림책을 두루 읽어보는 일이다. 그의 그림책은 감각적인 그림과 스토리텔링의 흥미로운 진행 방식이 탄탄한 얽음새를 띄고 있다. 자유롭지만 강한 힘이 느껴지는 그림체는 사실 처음부터 환호를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삐뚤빼뚤 정갈하지 않은 색칠 방식이 낯설어 초기에는 사람들로부터 혹평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에 전혀 굴하지 않았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정립하면서 지금의 세이조의 작품이 완성될 수 있었다.

Recommended Books
그의 그림책을 보면 담담한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왜인지 모르게, 아이의 목소리인 것만 같다. 그가 담은 시선이 아마 그럴 것이다.

염소 시즈카
다시마 세이조 그림·글│보림

나호코네 집에 온 하얀 염소 시즈카. 풀을 먹고, 말썽을 피우고, 어른이 되어 새끼를 낳고, 또 새끼를 다시 떠나보내며 어느덧 듬직한 어른이 되어 있다. 생애를 둘러보며 염소 시즈카가 어떻게 성장하는지 침착하고 고운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다.

쿨쿨쿨
다시마 세이조 그림·글│보림

생명은 잠에 든 채 성장한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시간,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시간, 모두가 숨을 죽이는 시간이다. 하지만 잠을 자면서도 모든 생명은 자신의 감각을 곧추세워 세상을 느낀다. 잠을 자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왜 모두 잠에 드는 것일까. 그는 간단한 질문에서 시작했다.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
다시마 세이조 그림·글│사계절

전쟁 없는 삶의 모습은 어떨까. 그건 전쟁하는 삶의 모습을 먼저 들여다보면 가늠하기 더욱 쉬울 거다. 전쟁과 함께 가족을 잃고, 복수를 하고, 새로운 살상이 자행되는 세상의 모습은 끔찍하기 그지없다. 미움과 분노로 점철된 전쟁이 우리에게 남기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뛰어라 메뚜기
다시마 세이조 그림·글│보림

자연은 냉혹하다. 먹이사슬 관계 안에서 살아남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닌 것이다. 먹고 먹히는 숙명적인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메뚜기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친다. 살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생생하게 드러난다. 메뚜기의 펄떡이는 생명력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에드워드 고리
Edward Gorey


“그는 별일을 겪지 않은 사람이다.그러나 저 건너편에 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우울과 몽상 | 미국식 고딕소설을 덧입은 19세기 영국의 일러스트레이션, 에드워드 고리의 기묘한 세계는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그의 말대로 “우스우면서도 우울한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는 이 세상”이 계속되는 한 말이다. 고리의 작품에서 주인공은 늘 불가해한 상황에 휘말린다. 음울하고 잔인한 내용은 고딕 양식을 기반으로 하지만 죽음의 공포를 대면하는 태도와 위트 있는 서사에서 보다 철학적이라는 평을 받는다. 어린 시절부터 책에 파묻혀 지낸 고리는 자신이 읽은 작품에 등장하는 비극적인 인물에게 매력을 느끼며, 창백하고 병약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그중에서도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작품 세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펜과 잉크 | 독학으로 그림을 그린 고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대했다. 이후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뉴욕의 출판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틈틈이 그림을 그렸는데, 1953년 《현 없는 하프》를 잡지에 실으면서 이름을 알렸다. 찰스 디킨스, 사무엘 베케트, 존 업다이크, 버지니아 울프 등의 책을 장식했으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100여 권의 작품을 집필했다. 소설가이자 화가인 고리의 정체성은 펜과 잉크로 대변된다. 간결하고 상징적인 문장, 흑백의 선으로만 구성된 그로테스크한 그림, 한 글자 한 글자 손수 작업한 타이포그래피는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그의 작품에는 종종 흥미로운 장치가 숨어있다. 문자의 순서를 바꾸는 아나그램Anagram으로 가명을 만들거나 의미심장한 단어들로 지명을 붙이는 등 문학적 변주를 통해 읽는 재미를 더한 것.

작가들의 작가 | 영화감독 팀 버튼, 그림책 작가 모리스 센닥, 만화가 모로호시 다이지로 등에게 영향을 준 고리는 장르를 분류할 수 없는 독보적인 스타일로 20세기 후반을 ‘Edwardian Period’로 만들었다. 책 작업뿐 아니라 무대 미술,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으며, 연극 <드라큘라Dracula>의 무대미술과 의상을 제작해 토니상을 받기도 했다. 작가 수전 손택은 인터뷰에서 그를 ‘Campy(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멋진)’하다고 표현한 바 있다. Gorey와 동음이의어인 ‘Gory’는 ‘유혈이 낭자한’이란 뜻인데, 이름에서 느껴지는 기괴함도 190센티미터에 이르는 큰 키에 발목까지 오는 털 코트를 입고 고양이와 책에 둘러싸인 모습에 비하면 평범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실제로 그를 알았던 사람들은 친절하고 밝은 성격이라고 회상한다. 고리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며, 그가 말년에 거주하던 200년 넘은 빅토리아풍 저택은 현재 박물관이 되었다.

그림과 그림자 | 고리는 해가 비출 때 모습을 드러내는 그림자처럼 죽음, 공포, 의심, 불안 같은 삶의 어두운 면을 외면하지 않고 도리어 수면 위로 건져 올렸다. 그의 세계에선 시시때때로 악마가 다가오고, 발아래 악어가 입을 벌리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섬뜩한 장면에서도 주인공은 초연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애써도 달라지는 것 하나 없는 결말에 쓴웃음이 나오는 고리식 유머에 익숙해질 때쯤, 더 이상 그림자가 두렵기만 한 존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인생은 원래 지루하고 위험하다. 어떤 순간에 바닥이 열릴 수도 있다. 물론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서 더 지루하지만.” 고리의 책에는 지독하고, 비굴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선이 승리하지 않는 부조리한 현실이 충격을 안긴다. 그리고 그 끝엔 판타지로 방점을 찍는다. “환상이란 언제나 현실이 가지고 있지 못한 타격을 선사하는데, 그것이 완전히 무책임한 것이기 때문이다.” 

 

Recommended Books
에드워드 고리의 작품은 그림책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라는 수식은 그림책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다.

수상한 손님
에드워드 고리 그림·글│황금가지

어느 가족의 인생에 끼어든 불청객, 긴 목도리를 두르고 운동화를 신은 존재가 집 안에 살고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생물은 매사 거슬리는 골칫덩이로, 사람들은 그와 마주칠 때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그렇게 17년이 흘렀지만 도무지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 지긋지긋한 존재는, 어느새 가족의 일원이 되고 늘 그렇듯 삶은 계속된다. 일상의 고민을 위트 있게 풀어낸 고리식 우화.

줄어드는 아이 트리혼
에드워드 고리 그림, 플로렌스 패리 하이드 글│논장

어린이책 작가 플로렌스 패리 하이드가 글을 쓰고 고리가 그림을 그린 ‘트리혼 시리즈’의 첫 번째 편. 평범한 꼬마에게 벌어지는 사건을 중심으로, 평소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어른들과 사회를 풍자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은 어느 날 갑자기 몸이 줄어들었다가 몸 색깔이 변하는 일을 겪은 트리혼의 하루를 그렸다. 그가 처한 비정상적인 상황과 이를 알아보지 못하는 주변의 어리석음이 웃음을 자아낸다.

펑 하고 산산조각 난 꼬마들
에드워드 고리 그림·글│황금가지

A부터 Z까지 이름을 불린 아이들이 등장하는 에드워드 고리의 ABC 노래. 마더 구스 동요나 어린이용 ABC책에서 한 번쯤 접했을 익숙한 흐름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이들이 차례로 죽음에 이른다는 것. 알파벳 수와 동일하게 스물여섯 명의 아이가 목숨을 잃을 위기에 놓이는데 도움을 줄 만한 사물이나 구해줄 어른은 어디에도 없다. 아이들은 무지하거나 무력할 뿐, 죽음 앞에 아무런 저항도 호소도 하지 않는다.

현 없는 하프
에드워드 고리 그림·글│황금가지

수염을 기른 남자가 발목까지 오는 가운을 입고 서가를 헤맨다. 그는 매년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난다. 짐짓 진지한 작가 모임에 나가면서도 집에 돌아오면 스웨터를 거꾸로 입고 책상에 앉는 주인공. 외롭고 치열한 창작의 고통을 특유의 위트로 풀어나간 이 작품은 1953년 출간된 처녀작으로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무기력한 주인공 이어브래스 씨는 고리의 페르소나다.

크빈트 부흐홀츠
Quint Buchholz

“우리 눈에는 안 보이지만, 어떤 그림이든지 그 그림에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길이 하나씩 있는 법이란다.”

일상과 상상 | 사다리를 밟고 올라와 책 바깥으로 고개를 내미는 남자, 발끝으로 달을 딛고 올라서려는 아이, 거대한 달팽이 옆에서 첼로를 켜는 사람, 유리컵 가장자리에 꽂힌 만년필…. 독일의 삽화가이자 그림책 작가인 크빈트 부흐홀츠는 보이는 것 너머 생각한 것을 그린다. 문득 그의 그림이 실제보다 더 익숙하게 다가오는 지점이 있다. 일상적인 풍경과 상상의 오브제가 만나 정교한 세계를 구축하기 때문이다. 그 안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는 글처럼 천천히 읽히며 오래도록 시선을 붙잡는다. 그가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 건 어떤 ‘공간’이다. 불안이 부유하는 현실과는 또 다른 장소, 생각의 속도를 늦출 수 있는 고요한 공간. 그곳은 작가의 말을 빌려 ‘특정한 경험을 강요하거나 압도하지 않고, 잠시나마 평온함을 누리는’ 경험 그 자체다. 

끝없는 이야기 | 독일에서 나고 자란 부흐홀츠는 예술사를 공부하고 회화와 그래픽을 전공했다. 1988년부터 삽화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세계 35개국에서 출간된 철학 입문서 《소피의 세계》를 비롯해 그가 가장 아끼는 책으로 꼽은 로베르토 피우미니의 《마티와 할아버지》 등 많은 책들의 얼굴을 장식했다. 그의 곁에는 매일 동화를 들려주는 어머니가 있었고,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 그의 그림을 들여다보면 수평선과 지평선이 펼쳐져 있다. 텅 빈 하늘과 광활한 바다, 달빛의 영역을 그리는 차분한 시선은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로 초현실주의 작품을 떠오르게 한다. 그 경계에선 우리는 무엇이 진짜인지 판단하는 일을 미룰 수밖에 없다.

비밀의 비밀 | 부흐홀츠는 작업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종종 체코의 시인 얀 스카셀을 인용한다. “시인은 결코 시를 끝내지 않는다, 단지 포기할 뿐.” 작업에 오래 공들이는 그에게 속도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 주제와 관련된 정보를 끌어모으고 사진이나 스케치, 구성 등을 면밀히 살핀다.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 시간을 확보하는 일만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믿기 때문이다. 부흐홀츠에겐 기나긴 여정을 거쳐야만 도달할 수 있는 자신만의 섬이 있다. 그에게 그림책 작가의 삶을 열어준 작품 《그림 속으로 떠난 여행》에는 그곳에 이르는 방식이 여실히 드러난다. “우리 눈에는 안 보이지만, 어떤 그림이든지 그 그림에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길이 하나씩 있는 법이란다. 화가는 그 길을 꼭 찾아내야 해. 어떤 그림이든 비밀이 있어야 하지. 나조차 그게 뭔지 모를 수도 있어. 그리고 사람들이 내 그림에서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걸 발견할 수도 있단다.” 

그림으로 쓰는 시 | 부흐홀츠의 그림은 함축과 은유, 상징으로 가득하다. 특히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주제이자 소통의 매개는 ‘책’이다. 문명의 상징이자 개인의 내면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써 자연과 사회, 인간, 동물을 한데 잇는다. 텍스트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그의 작품이 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부흐홀츠와 함께 작업해온 소설가 마르틴 발저는 그의 작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 그림은 얼마나 다양한 해독의 가능성을 품고 있었는지…. 누군가는 어떤 해석도 꾸며내지 않으며, 단지 언어가 그림을 정확히 재현해낼 수 없다는 점만을 음미하고 있을 수도 있다. 반면 그림을 보고 바로 유희로 돌아설 수도 있다. 규칙은 다양할 것이고. 보는 사람이 규칙마저 만들어내어도 좋은 것이고.” 

Recommended Books
아스라한 안개가 한 겹 덮고 있는 것만 같은 그림 한 점. 일상의 피로와 압박감에 지쳐 있다면 부흐홀츠의 책을 추천한다.

그림 속으로 떠난 여행
크빈트 부흐홀츠 그림·글│보물창고

그림을 그리는 막스 아저씨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소년의 우정. 여행하며 보고 느낀 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막스 아저씨는 꼬마 예술가인 소년에게 작은 전시회를 열어준다. 이 책은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라가치 상을 수상하며 작가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작품이다. 원제는 ‘순간의 수집가Der Sammler der Augenblicke’이며, 연극 무대에도 오를 만큼 큰 사랑을 받았다.

책그림책
크빈트 부흐홀츠 그림, 밀란 쿤데라 외 글│민음사

출판사 한저Hansser의 편집인이자 소설가인 미하엘 크뤼거는 밀란 쿤데라, 수잔 손탁, 미셸 투르니에, 오르한 파묵 등 마흔여섯 명의 현역 작가들에게 부흐홀츠의 그림 한 점씩을 보내고 원고를 의뢰했다. ‘책’이라는 총체적인 매개를 통해 자유롭고 다양한 감상문이 쏟아졌고, 이를 다시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작가들의 펜 끝에서 기둥이었다가 비행기였다가 문이었다가 라디오로 둔갑하는 책의 변신이 흥미롭다.

잘 자라, 아기 곰아
크빈트 부흐홀츠 그림·글│비룡소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아기 곰은 달빛 아래 서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낮에 놀다가 두고 온 것들에 온통 마음이 쏠려 어서 아침이 오길 바라는 아기 곰의 모습은 어린아이를 꼭 닮았다. 잠자리에 들기 싫은 밤, 아이의 달뜬 마음을 어루만져줄 포근한 동화. 세 자녀를 둔 아버지이기도 한 작가의 마음이 느껴진다

호수와 바다 이야기
크빈트 부흐홀츠 그림, 마르틴 발저·요한나발저 글│민음사

헤세 문학상, 쉴러 문학상, 뷔히너 상을 받은 작가 마르틴 발저와 그의 부인이 글을 쓰고 부흐홀츠가 그림을 그린 책. 부흐홀츠가 그려낸 물가의 풍경은 고요하고 아름다운 침묵으로 가득하다. “우리 마음속에서 잔잔히 일어나는 동요에 우리는 마술에 걸린 것처럼 불현듯 무언가를 깨닫게 된다.”는 서문처럼 규정할 수 없는 자연만큼 신비롭고 다양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나무를 심은 사람
크빈트 부흐홀츠 그림, 장 지오노 글│민음사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의 단편 소설로, 오랜 세월 동안 홀로 수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황폐한 땅을 숲으로 일군 어느 양치기 이야기다. 묵묵히 희망을 실천하는 주인공의 숭고한 작업과 정직한 자연의 힘, 전쟁을 일으키는 인간의 이기심을 대조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서정적이면서도 처연한 고독을 그린 부흐홀츠의 삽화가 돋보인다.

존 클라센
Jon Klassen

“애니메이션의 경우 항상 몰입하도록 프레임을 채우며 넓은 세상을 보여주려 해요. 그러나 책은 반대죠. 이 그림이 이 페이지만을 위한 유일한 그림이길 원해요. 이것은 유일한 이야기이며 독자가 보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할머니 집 선반에 맞는 책 |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태어난 클라센은 두 남동생과 조부모님 집을 방문하여 많은 시간을 보냈다. 빈 들판이 있는 작은 목조 주택이었는데, 필립 디 이스트먼P. D. Eastman과 닥터 수스Dr. Seuss 등 그림책의 황금시대에 그려진 책들이 많았다. 그는 아버지의 오래된 방에서 이 책들을 탐독하곤 했다.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그 선반에 맞는 책을 만들고 싶은 욕구를 포착한다. 또한 유년 시절부터 개나 고양이와 함께 살며 감정을 표현할 다양한 방법이 없는 동물들의 작은 움직임에 익숙했다. 그들 안에서 인간의 감정을 찾아 작품에 투영하고 있다.

하고 싶은 이야기 | 클라센은 셰리든Sheridan 대학의 애니메이션 과를 졸업했다. LA로 건너가 쿵푸팬더와 코렐라인, U2의 뮤직비디오 아트 디렉팅 등 다양한 작업을 했다. 특유의 건조한 유머와 등장인물 중심의 장면 연출은 애니메이션으로부터 시작된 셈이다. “시각적으로 아무리 훌륭해도 명확하게 구성되지 않으면 길을 잃고 이야기는 사라지기 마련이에요. 그림책 작가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림으로 아이들에게 스토리를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애니메이션과 책 작업 등 그가 하는 예술은 결국 무엇을 이야기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살아있는 장면│2010년 캐롤라인 스투슨Caroline Stutson이 쓴 글에 그림을 그리며 《고양이의 즐거운 밤》으로 첫 그림책을 만들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며 작업했지만 정말 즐거웠어요. 그림책과 함께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이후 그가 쓰고 그린 모자 시리즈 《내 모자 어디 갔을까?》, 《이건 내 모자가 아니야》, 《모자를 보았어》는 반복되는 말, 글과 그림이 일치하지 않는 블랙 유머와 감동으로 어린이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깊은 울림을 전달했다. 모두 동물 캐릭터가 등장하고 모자라는 물질에 대한 욕망과 내적 갈등, 관계를 눈을 통해 드러낸다. 글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그림으로 이야기를 담아내며 때때로 글 없이 그림으로만 페이지가 채워져 있기도 하다. 독자는 등장인물의 비밀을 안 목격자가 되어 캐릭터들의 눈동자 변화를 살피며 이야기에 집중한다. 반전과 긴장, 여운이 남는 그의 작품은 스토리 구성이 짜임새가 있어 마치 한 편의 동영상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함축과 상징 | 잉크나 과슈 또는 아크릴로 그림을 그리고 디지털로 마무리한다. 캐릭터는 선으로 간결하고 단순한 형태와 질감으로 표현한다. 그래서인지 몇몇 그림의 흑백 풍경은 수묵 담채화가 떠오르기도 한다. 절제된 색감으로 조금은 서늘해 보이지만 모자나 보석같이 상징성 있는 사물은 화려하게 강조해 의미를 담는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회상하며 아이디어를 구상해 아무리 많은 사람이 답습한 주제라 해도 관심을 갖고 집중해서 새로운 것으로 만들려 애쓰는 작가다.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기보다 의사소통에 필요한 상징을 단순하게 전달하는 기호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자세히 들여다보며 상징을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 


Recommended Books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물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 눈동자나 풍경, 사물의 작은 변화를 살피면서 보길 추천한다. 다음 장이 궁금하고 끝은 아쉬울 것이다.

이건 내 모자가 아니야
존 클라센 글·그림 │ 시공주니어

에드거 앨런 포의 《고자질하는 심장The tell tale heart》를 읽고 구체화한 아이디어다. 눈동자, 거품, 물결에 따라 움직이는 바다 및 식물들의 방향 변화로, 죄의식을 느끼면서 불안해하는 물고기가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심리를 표현한다. 큰 물고기의 분노와 작은 물고기의 순진한 독백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흐르며 긴장감을 준다.

모자를 보았어
존 클라센 글·그림 │ 시공주니어

모자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로 누구의 것도 아닌 모자를 두 거북이가 함께 보며 시작된다. 문제는 모자는 하나인데 거북이는 둘이라는 사실이다. ‘모자를 그냥 못 본 걸로 결정하자.’라고 했으나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세모 거북이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하지만 둘에게 어울리는 모자가 꿈속에 있다는 네모 거북이의 말에, 그들은 꿈속이라는 비현실 세계에서 ‘함께 쓰기’를 택한다. 까만 밤하늘 속에서 각자의 모자를 쓰고 걸어가는 모습은 별이 수놓은 하늘만큼이나 고요하다.

그날, 어둠이 찾아왔어
존 클라센 그림, 레모니 스니켓 글 │ 문학동네

레모니 스니켓의 섬세한 글과 존 클라센의 절제된 그림이 어우러진 작품. 어둠을 무서워하는 아이에게 어느 날 어둠이 찾아와 집안 곳곳을 함께 걷고 작은 불빛을 선물한다. 친절한 어둠의 말투는 두려움이 아닌 새로운 시선을 가지게 해준다. 어두운 밤, 커다랗지만 쓸쓸한 집 안 구석구석이 손전등을 비출 때마다 환하게 빛나며 대비를 이룬다. 어둠을 친근하게 바라보도록 손 내미는 책이다.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
존 클라센 그림, 맥바넷 글 │ 시공주니어

맥 바넷과 작업한 작품으로 할아버지의 집 앞에서 땅을 파던 기억에서 시작했다. 같은 듯 다른 샘과 데이브는 어마어마한 걸 찾을 때까지 땅을 파기로 한다. 빛나는 보석들을 피해 가며 지칠 때까지 판다. 까무룩 잠든 아이들은 집 주변에 떨어지고, 샘과 데이브는 집으로 돌아간다.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 모험의 끝에서 샘과 데이브가 말한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멋졌어.” 모험은 그 자체로 충분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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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현지, 오혜진, 이자연

포토그래퍼 안가람 일러스트레이터 손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