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댄스 그리고 사랑을 담아

키미·일이 — 사랑을 그리고 쓰는 사람

키미와 일이는 문득 떠오른 질문을 이리저리 쪼개어 함께 고민한다. 보챔 없이 느긋하게 상대방의 말을 기다리다가 자신의 말도 살포시 얹는다. 마침내 완성한 키미의 그림과 일이의 문장, 그 위를 넘실거리는 분위기는 내 앞에 마주 앉은 그들과 꼭 닮아 있다. 하나의 이름이든 둘의 이름이든, 서로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각자의 예술을 응원하는 사이. 녹빛의 산과 중얼거리며 흐르는 천 사이에서 나는 몰래 시샘을 떠올렸다.

부산이라는 도시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어요? 

일이 저는 고향이 부산이에요. 서울에서 일을 하다가 부산으로 내려온 게 2014년인데, 키미 그러니까 희은이를 만나면서부터 이곳에서 함께 지내게 되었죠. 

키미 저는 울산에서 자랐어요. 울산은 공업 도시라 온 주변이 공장이에요. 그 공장 지대를 항상 벗어나고 싶어했어요. 그런데 제가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근처인 부산이고, 오빠의 고향이기도 하니까 친근감이 들더라고요. 물론 부산으로 내려와 지내면서 어떤 부분에선 한계를 느껴 서울에도 갔었는데, 어딜 가든 내가 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디에 있었든, 과거에 무얼 했든 언젠가 다 도움이 되기도 하고요. 

 

은 점도, 다른 점도 가진 두 사람이 ‘키미앤일이’라는 하나의 이름을 사용했죠. 이유가 궁금해요. 

키미 저는 원래부터 키미라는 이름으로 작게 그림도 그리고 물건도 만들었어요. 대일 오빠를 만나면서 같이 무언가 해보자는 마음으로 키미와 일이를 붙인 거죠. “나 키미 있으니까 그럼 네가 붙어라!” 하면서요. 사실 별생각 없이 지은 이름인데, 1-2년 지나니까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시고 찾아주시면서 아예 팀명처럼 굳어지더라고요. 그게 계속 이어져 온 거예요. 

 

년부터는 하나의 이름을 다시 둘로 나눠 가졌어요. 마음에 어떤 물결이 흘러왔기 때문일까요? 

일이 키미앤일이라는 이름이 올해로 9년이나 됐어요. 한 5년간은 제가 디자이너로서 열심히 활동했는데, 그 일이 점점 힘들어지더라고요. 실력이 바닥난 것 같고 흐름을 쫓아가기도 버거웠고요. 패션 전공을 하다가 시작한 디자인이다 보니 슬슬 밑천이 드러난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일을 멈추고, 키미에게 들어오는 일을 조율하는 걸 도맡았죠. 글을 쓰기도 하고요. 사실상 하는 일이 변했는데 이름은 그대로니까 혼란스럽더라고요. 용기가 나진 않았지만 무언가 결단이 필요했어요. 

키미 이런 애매모호한 상황이 결국에는 제가 가려고 하는 방향에도 걸림돌처럼 보이더라고요. 우리한테는 그냥 단순한 이름인데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다르니까.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키미 저는 계획적인 사람이 아니에요. 만약 운전을 한다고 치면, 예쁜 풀밭에서 좀 쉬었다 가고 싶고 저쪽 길도 구경해 보고 싶고 이 집도 예쁘고 저 나무도 궁금해요. 작업을 그런 방식으로 했던 거죠. 반면에 키미앤일이라는 이름은 저한테는 내비게이션 같았달까요. 내가 가야 하는 곳, 최적의 경로를 안내해 주니 물론 좋지만 그게 과연 내가 할머니가 될 때까지 하고 싶은 걸까 싶었어요. 이곳저곳 자유롭게 둘러보고 만끽하는 게 그림에 생동감을 주니까요. 그래서 처음의 마음을 따라가 보자고 선택한 거예요. 우리의 사이나 일상에는 변한 게 없는데 이름과 함께 앞으로의 할 일도 정리한 거죠. 

 

이름이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나를 정의하고 구성하는 방법 중 하나였네요. 

일이 그러게요. 이름 하나를 둘로 나눠 가지는 게 별일인가 싶었는데 느낌은 조금 다르더라고요. 설명하기 어렵지만 흐름이 달라진 것 같아요. 이제 누군가가 너는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어보면 “저요? 저는 뭐 하는 사람일까요.”라고 답해요. 나의 이름으로 무얼 하고 싶은지 이것저것 시도해 보려고요. 

키미 하나의 이름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으니까 나만의 전문성이나 진지한 고민 등을 미뤘던 것 같아요. 이제는 

 

스스로 고민을 풀어보고 각자 역할을 찾는 데 힘을 써야죠. 그래도 여전히 서로의 존재가 큰 응원일 텐데요. 어때요? (서로를 바라본다) 

일이 우리는 항상 하는 표현이 있어요. 그냥 베스트 프렌드. 최고의 친구라고요. 

 

이 집으로 얼마 전에 이사 왔다고 했죠. 짐 정리는 끝났나요? 

키미 딱 일주일 되었어요. 급하게 결정한 집이라 가구를 어디에 놓고 무얼 꾸미고 이런 걸 생각할 시간이 많지 않았어요. 그저 우리의 목표는 무조건 인터뷰 전까지 끝낸다는 거였죠(웃음). 덕분에 정리도 모두 끝났네요. 인터뷰 아니었으면 한 달 동안 난리 났을 거예요. 

일이 한 달이 뭐야, 지난 집에서는 일 년째 못 푼 박스가 있었어요. 잘 쓰지도 않고 버리지도 못하는 그런 짐들. 

 

부산에서도 외곽에 자리한 정관읍이라는 마을이에요. 뒤에는 산이 서 있고 앞에는 천이 흐르네요. 어떻게 이 마을로 오게 됐어요? 

일이 여기는 정관읍에서 두 번째 집이고 첫 번째로 살던 집이 있었어요. 그때 저희가 남프랑스에 여행을 갔는데 코로나19가 터진 거예요. 처음으로 팬데믹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위기가 마구 부풀어 오를 때였죠. 그러니 프랑스에서도 전부 봉쇄되고 숙소 안에서만 지냈어요. 비행기도 취소되고요. 

키미 숙소가 2층이었는데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면 마당 있는 옆집이 보였어요. 가끔 할아버지가 나와서 식물에 물을 주는데 자기 집이 있다는 게 참 안락한 거라는 걸 크게 느꼈죠. 

일이 그래서 한국 오면 집을 사야겠다고 마음먹고 그중에서도 테라스 있는 집을 찾아봤어요. 막 찾다 보니까 정관읍이 눈에 보이는 거예요. 가격도 합리적이라 이곳에서 평생 살자는 마음으로 샀죠. 

키미 그런데 집이 너무 안락하고 편하니까 그냥 그대로 있고 싶은 거예요. 작업도 하고 새로운 걸 보면서 살아야 되는데, 누가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아무런 자극도 의욕도 불편함도 없이 지낸 거죠. 그림도 도무지 뭘 그려야 할지 모르겠고 이렇게 나이가 드는 건가 하다가 이게 맞나 하는 의문이 떠올랐어요. 우리가 하고 싶은 게 뭔지 고민하면서 거길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고요.

도대체 어떤 집이었길래 일시 정지 상태가 된 걸까요? 

일이 베란다 창문을 열면 테라스가 있고 그 뒤로는 산책로가 보여서 풀도 많고 나무도 많고 고양이들도 다녔어요. 외부 소음도 전혀 안 들리고 자동차 소리 같은 것도 없고 공간도 넓어지니 작업하기도 좋았죠. 뭐든 충만한 곳이었어요. 

키미 은퇴한 노부부처럼 살았던 거죠. 소파도 하필 깊고 푹신한 거라 누우면 빨려 들어가듯 일어나기가 힘들었고요. 소파 앞에 테이블 펼쳐 두고 밥 먹고 다 먹으면 다시 소파로 올라가고. 시공간이 멈추고 우리만 있는 기분이었어요. 

일이 공간이 우리 성향과 똑 닮아서 오히려 자극 없는 생활이 되어버렸던 것 같아요. 다른 성질의 성향이 필요했어요. 

 

그곳에서 쉼이 아닌 일상을 보내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프랑스로 떠날 계획을 세웠다고요. 

일이 장기 비자를 받아서 떠나려고 1년 동안 프랑스어도 열심히 공부했어요. 서류 심사를 기다리며 집을 처분하고 정리하기 시작했죠. 짐을 점점 줄이던 와중에 승인이 불가하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키미 살던 집에는 이미 친구가 들어오기로 했으니, 차라리 빨리 다음 액션을 취하자고 했어요. 바로 이 집을 보고 그다음 날 계약을 한 거예요. 이왕 짐까지 가벼워진 김에 우리 그냥 여기저기 가고 싶은 데서 살자면서요. 여행 온 것처럼요. 

 

여행자의 마음으로 도착한 이곳에서는 어떤 하루들을 보내는지 궁금해요. 

키미 사실 이사 때문에 한동안은 온종일 청소에만 몰두했어요. 그래서 앞으로의 루틴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웃음) 그럼 내일부터의 일상을 들려줄래요? 

일이 저희가 달리기를 꾸준히 하고 있어요. 그리고 세 달 전부터 수영을 시작했거든요. 새벽에 일어나서 식사 간단히 하고 달리기를 한 후에 아침 6시 반 수업을 들으러 수영장으로 가요. 오전을 운동하며 보냈으니 오후에는 점심 든든히 먹고 작업을 시작해요. 

 

하루를 부지런히 시작하네요. 달리기를 하게 된 계기가 있어요? 

키미 보통 운동할 때, 잘 맞는 선생님을 만나는 게 좀 어렵더라고요. 수업을 꾸준히 듣는 것도 쉽지 않고요. 여기 앞이 좌광천이라고, 달리기 좋은 산책로가 있거든요. 별다른 준비 없이 할 수 있는 거라서 시작했어요. 제가 처음에는 5분도 못 달렸거든요. 근데 꾸준히 하니까 되더라고요. 지금은 한 시간에 10킬로미터 정도 달릴 수 있고 얼마 전에 마라톤도 나갔어요. 달리다 보면 고통스러운 순간이 오지만 목표 지점까지 달성하고 멈추고, 이런 행위를 반복하다 보니까 일상에서 힘들 때마다 괴로움을 참고 끝까지 간 걸 떠올리게 돼요. 할 수 있다고 마음을 다잡고요. 

 

그 김에 수영도 시작한 거고요? 

일이 프랑스에서 머물려고 했던 곳이 니스였어요. 당연히 거기 바다에서 놀아야지 하면서 배웠죠. 원래 우리는 물놀이를 안 좋아한다고 생각했어요. 수영을 배우고 나니까 아니더라고요. 수영을 못했을 뿐이지 물은 좋아했던 거예요. 비록 프랑스엔 못 갔지만 그걸 계기로 얻은 게 되게 많아요. 

 

그렇네요. 두 분이 함께 하니 운동도 더 재미있게 느껴질 것 같고요. 

키미 오빠가 저한테 라이벌 의식이 있어요(웃음). 제 수영 실력이 이만큼 발전하면 자기도 이만큼 더 발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일이 그럼요! 희은이가 운동 신경이 좋은 편이에요. 수영에서 평영 같은 건 저보다 좀 잘하거든요. 그럼 제가 “너 이거 어떻게 했어?” 물어보면서 견제하죠.

방금 눈빛에서 질투가 느껴졌어요(웃음). 키미와 일이가 되기 전, 그러니까 희은이와 대일이의 인연의 시작을 묻지 않을 수 없네요. 

2008-09년 언저리니까 꽤 오래전 이야기네요. 부산에서 열린 플리마켓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그때 희은이도 나와서 서로 아는 사이가 됐죠. 

키미 모르는 사람에서 그냥 아는 사람. 

일이 이후에 제가 서울로 일하러 가게 됐어요. 희은이와는 블로그 이웃이니까 거리가 멀어져도 근황을 나눌 수 있었죠. 제가 뭔가를 시작하면 희은이가 응원해 주고, 반대가 되면 제가 응원을 보내고요. 그러다가 희은이가 친구 보러 서울 온 김에 만나서 밥도 먹고 놀다가 잘 곳도 얻어줬어요. 저는 직장 다닐 때니까 얘보다는 여유가 있었거든요. 잘 가 하고 헤어졌는데, 며칠 후에 택배가 하나 도착했어요. 열어보니 희은이가 고마워서 작은 선물을 보낸 거죠. 만년필과 쪽지요. 

 

마음이 간질간질한데요. 혹시… 서로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던 건 아닌가요? 

키미 아니에요. 단호하게 그런 건 없었어요(웃음). 제가 보낸 선물에 오빠가 답장과 선물을 보내고, 저도 답장을 보내고 그럼 또 답장이 오는 거예요. 이후에는 손으로 쓴 편지만 오갔던 것 같아요. 편지로 다양한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되게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됐고 가까워졌어요. 맹세코 처음에는 특별한 호감은 없었어요. 

일이 각자 꿈이 있고 그걸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상황이었다 보니까 서로 잘 이해하고 공감했던 것 같아요. ‘네가 잘되길 바라!’라는 마음도 들고요. 

 

응원에서부터 자라난 사이네요. 서로 비슷하다고 생각한 지점은 무얼까요? 

키미 그야말로 어떤 형태의 대화가 간절했는데, 그런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었어요. 예를 들어 제가 지금 손으로 둥근 받침을 만들고 이런 모양의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하면 오빠와는 가능했죠. 그게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했어요. 

일이 무언가를 바라보고 대하는 태도가 비슷했어요. 같이 살면서부터는 우리가 다른 점도 많다는 걸 깨달았지만, 덕분에 상대방을 폭 넓게 이해하게 됐죠. 

 

6년 전쯤에는 남해에 머무르기도 하셨죠. 어쩌다가 남해로 가게 된 거예요? 

일이 키미앤일이로 활동을 시작한 2014년도에는 부산에 살면서 일이 많이 없었어요. 그런데 1년 정도 지나니까 알음알음 일이 들어오고 점점 더 많은 의뢰가 오기 시작한 거예요. 

키미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현명하지 못하게 일을 마구 받아서 했던 것 같아요. 오면 오는 대로 온갖 힘을 쥐어짜서 해내고. 그런다고 잘되는 게 아닌데도요. 번아웃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그걸 못 견디겠으니까 맨날 울고, 울면서도 마감이 있으니 일을 했어요. 정말 여기만 아니면 된다, 어디든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었어요. 그래서 둘이 지도를 보면서 아무데나 가보자면서 고른 게 남해였어요. 둘 다 남해라는 곳에 좋은 기억이 많았거든요. 바람 쐬러 남해에 가는 길에 괜히 월셋집 찾아보고, 간 김에 둘러보다가 바로 계약해 버렸어요. 

 

그야말로 훌쩍 떠난 거네요. 

키미 맞아요. 아마 계절이 좋았기 때문일 거예요. 남해 들어가는 길에 나무가 양쪽에 늘어져 있어서 엄청 예쁘거든요. 날씨도 맑았고요. 

일이 남해 삼동면이라고 그냥 논밭 사이에 있는 마을인데요. 해가 지면 자고 해가 뜨면 일어났어요. 일상이 복잡하지 않고 단순해지니까 이게 사람 사는 거구나 생각했어요. 스트레스가 었죠. 

 

또 무얼 하며 지냈어요? 

키미 그때 《바게트 호텔》을 옮겨 놓은 스토어를 열었어요. 《바게트 호텔》은 제가 만든 그림책인데, 한 공간에 불특정한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모습대로 존재함을 전하는 그림책이에요. 다양한 장소 중에서 호텔로 정한 건 손님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방문하기 때문이었어요. 예를 들어 식당은 어떤 음식을 파느냐에 따라 손님들의 특징이 획일화될 수 있잖아요. 각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적한 동네에 있는 작은 호텔을 배경으로 삼아 쓴거죠. 우연히 남해에서 비어 있는 공간을 둘러보게 되었는데, 순간 그림책이 펼쳐지는 것처럼 구상이 마구 떠오르더라고요. 스토어를 열어보자고 마음 먹고 오빠가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 저는 《바게트 호텔》 2권을 준비하고 외주도 했어요. 

 

그런데도 남해를 떠나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어요. 

일이 다시 정신없이 바빠지기 시작했거든요. 아마 그때부터 모든 게 어그러졌던 것 같아요(웃음). 그렇게 바빠지니까 남해라는 도시의 장점이 불편함으로 바뀌더라고요. 집에 돌아와서 요리를 안 하면 편의점뿐이고, 그마저도 10시에 닫아요. 배달은 안 되고 마트에 가려면 운전해야 하고요. 잡초도 조금만 한눈을 팔면 무성해져요. 지금은 일을 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하면서 해운대로 돌아왔어요. 

키미 남해를 안 갔다면 분명히 어떤 시골에 가서 똑같은 일을 겪었을 거예요. 주어진 환경이 아니라 내 마음을 다루는 게 제일 중요한 건데 그걸 몰랐으니까요.

터전을 옮기는 게 간단한 일은 아니잖아요. 두 분은 변화를 시도할 때 주저함이 적은가 봐요. 

일이 우리는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디서든 우리가 하는 일은 똑같을 테고 해낼 수 있으니까. 보는 게 달라지면 새로운 영감이 될 수도 있고요. 

키미 머물던 자리를 옮길 때 이곳에 있던 걸 정리하게 되잖아요. 내가 가지고 있던 것들이나 해오던 것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면서 버릴 건 버리고요. 그러면서 우리 일에 대한 생각도 함께 다듬어요. 오히려 터전을 옮기면서 생기는 그런 기회를 이용하는 것 같아요. 

 

키미 님의 개인 작업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눠볼게요. 개인전 이름이 <Green, Dance, Love>였죠. 서로 다른 성질의 단어들이 한데 모여 부드럽게 융화된 전시였어요. 

키미 그린은 제가 살고 싶은 세상이고, 댄스에는 춤을 추는 무용수를 동경하는 마음을 담았어요. 그리고 사랑은 우리 둘의 주된 대화 내용이에요. 모든 것은 결국 사랑이라는 이야기를 하거든요. 전부 제가 좋아하는 단어들이기도 한데, 그림에 보이는 것들을 나열하니 세 단어가 꼽아지더라고요. 

일이 희은이는 춤을 정말 좋아해요. 현대무용을 배워보는 게 올해 목표일 정도로요. 

 

정말요? 멋진 목표예요. 춤의 어떤 부분을 좋아하는 거예요? 

키미 어떤 감정이나 주제에 맞춰서 형식 없이 움직이는 행위가 아름답게 느껴져요. 그림을 그리려면 붓과 종이가 필요하고, 캔버스도 물감도 다양하게 있어야 하잖아요. 작업에 필요한 것들을 챙기다 보면 한 번씩 부대끼는 기분이 들어요. 그런데 춤은 달라요. 나의 몸만으로도 생각과 마음을 표현할 수 있고 심지어 발가벗고 춰도 괜찮죠. 항상 무용수의 마음으로 작업하고 싶다고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저는 전시에서 무용수들이 춤추는 그림이 가장 좋았어요. 감정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에서 이유 모를 위로도 받았고요. 두 분은 어떤 작품에 가장 애정이 있을까요? 

키미 전시하기 전부터 떠올리던 이미지인데, 두 손에 청포도를 한가득 들고 있는 그림이에요. 작업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아서 싱그러운 것들을 막 찾던 때인데, 그냥 그 시기를 지나면 괜찮아질까 하면서 막연한 희망으로 버텼어요. 그러다가 곧 청포도의 계절이 오니까 나한테도 주렁주렁 풍성한 열매가 열리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렸어요. 

일이 저는 하트 보이끼리 안고 있는 그림. 그냥… 좋았어요. 희은이가 그린 그림을 보면서 이거 예쁘다고, 내가 산다고 말했죠. 

키미 돈은 아직이네요(웃음). 언제 줄 거야?

(웃음) 키미 님이 맨 처음 그림을 그려보자고 마음먹은 계기가 궁금해요. 

키미 오빠를 만나기 한참 전의 이야기인데요. 불어불문을 전공하다가 우연히 작은 그림 공모전에서 수상하면서 상금을 받았어요. 그걸로 한번 가보고 싶었던 프랑스로 떠났는데, 서점이나 전시를 많이 봤거든요. 알록달록한 그림책을 보는 게 재밌더라고요. 저도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졌고요. 돌아와서 찾아보니 일러스트레이션 학원은 서울에만 있었어요. 휴학하고 알바 하면서 학원에 등록했는데, 한 달 만에 그만뒀어요. 미술 선생님의 기술을 배우다 보니 자꾸 제가 그린 그림은 일러스트가 아니래요(웃음). 그래서 모은 돈으로 전시 보고 작업도 틈틈이 해보다가, 작은 무언가를 만들어서 팔아보고 했던 것 같아요. 이후에 조금씩 의뢰가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일이 초창기에는 실험적인 작품도 엄청 많아요. 손가락 두 마디만한 책인데, 한 장씩 다 그려가지고 몇 천원에 팔고… 그걸 보면서 제가 “니 정신 나갔나! 이거 하는 데 얼마나 걸렸노!” 이러면서 잔소리하고. 

 

그때는 그림에 주로 무얼 담았어요? 

키미 잠시 말했다시피, 제가 공업 도시에서 나고 자랐잖아요. 동네 사람들이 공장 근로자나 근로자의 가족이니 생활 사이클이 비슷했어요. 예를 들면 카페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다가 다음 교대 근무를 위해 갑자기 싹 빠져버려요. 아주머니들은 이 동네에서 결혼해서 안정적으로 살라고들 하셨고요. 어릴 때는 당연한 일이었는데 돌아보면 참 특이한 구조라고 생각해요. 그 안에서 나만의 것을 찾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때 집 앞은 공장인데 집 뒤로는 산과 개울이 있었거든요. 환경이 삭막하니까 푸른 걸 찾고 탐구해서 그렸던 것 같아요. 그게 저를 살게 한 거죠. 

 

그린이라는 키워드가 그때도 곁에 있었네요. 작업을 해온 시간이 쌓일수록 고민도 있을 것 같아요. 

키미 막연하게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지 뭔가 많이 배운 후에 시작한 게 아니잖아요. 나의 그림이 어떤 장르냐고 물어보면 무엇이라고 딱 말하기가 어려웠어요. 업으로 삼으면서도 의뢰받은 걸 그렸을 뿐, 뚜렷한 메시지가 있진 않았던 것 같고요. 그래서 내가 뭘 잘 그리고 그릴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커요. 기준이 단단히 세워지지 않은 느낌이라 변화도 잦았고 많이 갈팡질팡했고요. 지난 8-9년 동안 헤매고 있는데, 나만의 어떤 장르가 확실하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아직까지 답을 찾아가는 중이죠. 

 

작업이 잘 풀리지 않을 때도 곧잘 찾아오나요? 

키미 그럼요. 하루아침에 눈 뜨자마자 찾아올 때도 있어요. 손바닥만한 하얀 종이만 봐도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렇게 꽉 막혔을 때는 아예 다른 종류의 일을 하는 게 괜찮은 것 같아요. 뜬금없이 바느질을 한다든가요. 그 결실들이 집 곳곳에 놓여있어요. 일과 일상 사이의 중심을 찾기 위해 애를 쓰는데, 마음의 균형을 잡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내 마음대로 컨트롤이 안 되는 거라는 걸 인정하는 거죠. 그 밖에 방법이 있다면 누가 좀 알려줬음 좋겠네요. 

 

우리가 고민하는 것에 대한 해답을 언젠가 찾을 수 있을까요? 

일이 아마 평생 못 찾지 않을까요(웃음). 그래도 계속 고민하며 살고 싶어요. 

 

죽기 직전에 깨닫게 될지도 모르고요(웃음). 일이 님은 키미 님이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해요? 

일이 상대방이 힘들어 보일 때 무언가를 억지로 해주려고 하는 모습이 부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날 수록 자연스레 내버려 두는 게 서로에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예전에 희은이한테 “외주가 들어오면 그려달라는 대로 그려주면 되지. 힘들게 왜 그래?”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너무 괴로워 하니까요. 그런데 백지를 앞에 두고 내가 한번 그려볼까 하니까 갑자기 숨이 턱 막히더라고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 지 모르겠고 말은 쉽다는 걸 깨달은 거죠. 작업에 대한 생각 구조도 다를 테니까 제가 큰 도움이 안 될 거예요. 울고 있으면 괜찮다, 괜찮다 말해주는 게 최선이에요.

오히려 그게 더 큰 사랑의 표현 같은데요? 두 분의 사랑은 세상을 향하기도 해요. 낭비 없는 삶을 살고 고기 섭취를 하지 않는 것으로요. 

일이 쓰레기를 최소한으로만 만들며 살고 싶다는 게 둘의 생각이었어요. 저와 희은이는 어릴 때부터 물이든 물건이든 무언가 낭비되는 걸 보면 마음이 쓰였어요. 예를 들어 친구네 집에 가서 물이 그냥 틀어져 있는 걸 보면 그게 고통스럽다고 느껴지는 거죠. 그리고 남해에 살 때 폐기물을 버리러 처리장에 갔는데, 거기서 쓰레기 산을 보고서 정말 충격받았어요. 남해군에 사는 사람이 버린 쓰레기가 이만큼인데,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버린 쓰레기 양은 도대체 얼마나 되는 건지 회의감이 들었고요. 희은이와 마음이 통하니까 어떻게 실천해 볼까 고민했어요. 물을 사 먹는다고 할 때 일주일만 지나면 페트병이 수북하게 쌓이잖아요. 두 개 쓸 것도 한 개만 써보자고 마음먹고 최대한 안 할 수 있는 건 하지 않았어요. 

키미 작업할 때 쓰는 종이도 한번 더 써보려고 해요. 코팅되지 않은 종이를 찢어서 물에 불리고 핀 후에 말리는 거예요. 옛날 방식으로 새 종이를 만들어보는 거죠. 이외에도 작업에 쓰일 도구들은 지속가능하고 튼튼한 소재로 만들어진 걸 쓰려고 해요. 

 

말로야 간단하지만 행동으로는 쉽지 않죠. 큰 결심이었네요. 비건 생활은 어떻게 시작했어요? 

키미 덜 해로운 것들을 찾아가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어요.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생활 방식을 고민해 봤을 때 고기는 먹을 이유가 없더라고요. 자료를 찾아보면서 비건에 대한 생각이 확고해졌고 실천한 지는 5-6년 정도 됐어요. 

일이 희은이가 언젠가 비건 생활을 제안할 거라는 걸 짐작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올 것이 왔다 싶었죠. 굳이 이유를 묻지 않고 그렇게 하라고 했어요. 다만 저는 먹어야 할 것 같다고도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까 나는 먹고 너는 안 먹고, 이게 좀 이상하더라고요. 결국 저도 안 먹겠다고 했어요. 이런 게 저희만의 사랑의 방식인 것 같아요. 

 

키미와 일이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무얼까요? 

일이 이 질문에 대해서 희은이와 생각을 많이 해요. 대화도 자주 나누고요. 그때마다 결론을 못 내렸어요. 실없는 농담도 해보는데 어떤 과정을 거쳐도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쉽지 않은 질문이에요. 

키미 그래도 우리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잖아요. 사랑이 무엇인지 찾게 될지 말지 모르겠지만, 이것 또한 평생 답을 찾아가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럼 이 정도 질문은 어때요? 이 넓디넓은 부산에서 두 분이 가장 애정을 보내는 건 무엇인지. 

일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희은이. 

(일동 웃음을 터뜨린다.) 

키미 이러면 나는 뭐라고 해야 해(웃음)? 음… 저는 부산 사람들 간의 공기나 온도요. 어떨 때는 너무 깊숙이 관여하는 느낌이 불편할 때도 있는데, 반대로 생각해 보면 지금 같은 때에 경험하기 힘든 인간적인 모습이잖아요. 낯선 곳에 머물렀다가 돌아오면 분위기가 친근하고 편안하게 느껴져요.

인터뷰를 마친 후 두 사람에게 ‘하는 일’을 무엇이라 쓰는 게 좋을지 물어보았다. 일러스트레이터, 작가처럼 보통의 답을 예상했던 나는 의외의 말을 들었다. 사랑을 그리고 쓰는 사람. 우리가 나눈 대화의 중심에는 사랑이 있으니, 영 낯선 것만은 아니겠다. 키미와 일이가 주고받은 말과 행동을 톺아보던 나는 집으로 돌아와 일기장을 펼쳤다. 그리고 크고 동그란 하트를 그려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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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명주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