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엄마가 된다

그렇게 엄마가 된다

양말처럼 신고만 다니던 신발에 첫 흙이 묻는다. 아이는 스스로 걸음을 옮기고도 신기한지 활짝 웃으며 다시 한 발을 뗀다. 무릎 조금 넘어오는 나의 작은 아기. 아이와 화천의 장을 누빈다. 아이는 다시 가만히 서서 꼬옷 꼬옷 말하며 펼쳐진 좌판을 가리켰다. 아이가 부르는 것은 모두 봄풀이다. 나는 신이 나 아이가 가리킨 좌판 앞으로 바짝 다가가 달래와냉이를 보여주었다. “한번 만져볼래? 냄새 맡아봐. 나은이 눈에는 풀도 꽃처럼 보이는구나!” 가만히 내 말을 듣는 아이의 새까만 머리 위로 시장의 오색 파라솔 빛이 떨어졌다. 엄마, 드디어 나은이가 걸어요.

교복 치마를 둘둘 허리춤 안으로 접어 입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때부터였다. 치마를 둘둘 말아 입으면 주름 없는 교복 치마 위로 물결이 파도쳤다. 잘 보이고 싶은 누군가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남녀공학을 다니는 사춘기 소녀가 자신감을 갖는 방식이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멀리서도 단박에 알아차렸다. 집과 학교 사이에는 시장이 있었고 엄마는 꼭 하교 시간에 맞춰 어린 동생의 손을 잡고 나와 장을 보고 계셨다. 

“멸치 같은 다리를 드러내고 어디를 신나게 가시나?” 

엄마는 도망가는 나를 불러 세워 둘둘 말린 치마를 풀어 내리고서 검은 봉지들을 건넸다. 저녁 반찬 거리였다. 시장은 작았지만 사람이 많았고 물건도 넘쳐났다. 저녁 찬거리를 사러 나온 엄마들과 하교하는 학생들이 썰물처럼 만나면 시장은 더 활기가 넘쳤다. 동생은 막 튀겨낸 어묵을 들고 있었고, 나는 호떡 아니면 핫도그를 먹으며 집으로 돌아왔다.엄마는 엄했지만 나는 포기를 모르는 아이였다. 콩나물 봉지와 신발주머니를 들고도 은근슬쩍 다른 한 손으로는 풀어진 허리를 말아 접으며 뒤뚱뒤뚱 걸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시장에서 집으로 향하는 길은 키가 큰 플라타너스가 교목으로 심어진 오래된 초등학교로 이어졌고 학교의 담 옆을 걸으면 담 높이가 일정하지 않아 운동장이 보였다 사라졌고 다시 또 보였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동생은 자신의 교실을 보고 싶다고 떼를 부렸지만 나는 웃으며 

“보고 싶으면 너도 얼른 커.”

라고 말했다.집으로 돌아와 엄마는 열심히 저녁을 지었다. 먹성이 좋아 늘 사랑받는 동생과 엄마의 저녁 밥 짓는 냄새를 맡고 도마 소리를 들었다. 우리는 엄마의 나물과 어묵 볶음을 좋아했다. 엄마가 손바닥만 한 두툼한 어묵을 써는 동안 동생은 엄마 옆에서 제비처럼 입을 아, 아 하고 벌렸고 자신의 것을 다 먹고 나면 

“언니 꺼는?” 

하고 꼭 내 몫의 어묵을 받아왔다. 동생은 꼭 한 입 베어 문, 절반 남은 어묵을 내밀었다. 작은 주방은 따뜻했고 엄마 밥은 늘 맛있었다.내가 하복을 입고 첫 등교를 하는 날, 엄마는 큰 옷 가방을 들고 나를 따라나섰다. 아버지와 오래 다투었고 결국 서로 마음을 풀지 못했다. 엄마는 시장 앞에서 택시를 타고 외할머니 댁으로 갔다. 곧 돌아오겠단 말을 했지만 결국 부모님은 이혼을 결정하셨다. 아버지는 자식 욕심이 많았고 우리를 희망으로 여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를 양육하는 것이 엄마와 화해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지적하는 사람이 없어도 한결같이 학교를 열심히 다녔고 씩씩하게 먹성 좋은 어린 동생을 돌봤다. 부모의 다툼이 선사하는 불안보다 시원한 이별을 응원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늘 어린 동생을 앉혀놓고 밥을 먹으며 말했다. 

“괜찮아. 이혼 가정도 다양한 가정 형태 중 하나야.” 

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멀리 가지 못했다. 우리를 자주 보러 오기 위해 경주에 터를 잡았고 그곳에서 식당을 했다. 우리가 대학을 다닐 때도, 시집을 가서 소꿉장난 같은 신혼살림을 할 때도 반찬을 지어 보냈다. 더운 날에는 반찬 위에 얼음을 넣어 보내고도 반찬이 상할까 염려되어 종일 휴대전화를 붙잡고 있던 당신. 열 달 입덧으로 엄마 밥을 고스란히 먹은 것을 게워냈을 때도 웃으며 밥상을 다시 안방에 차려준 엄마. 나은이를 낳은 후 미역국을 수개월 끓여 보낸 친정 엄마. 우리는 엄마 밥을 오래 먹었고 여전히 그 밥을 먹고 자라고 있다. 엄마가 없었어도 엄마 없는 순간이 없었다.나은이와 봄을 앞두고 엄마가 계신 경주로 내려가 한 달을 지내다 왔다. 머리 까만 아기를 가슴에 달고 엄마와 동네 시장으로 향했다. 

“친정 엄마와 시장에 와서 빈 입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란다. 뭐라도 먹고, 음식으로 입을 가셔야 딸이 잘 산대.” 

“에이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누가 그래요?” 

“네 외할머니가.” 

엄마는 평소에 잘 먹지도 않는 핫도그를 사려고 긴 줄을 혼자 섰다. 명태도 사고 미역줄기도 사고 나물거리도사고 나은이 먹을 뻥튀기 과자도 사서 돌아오는 길. 내 손에 들린 핫도그가 탐나는지 아이는 계속 손을 뻗고 있다. 

“엄마 맘마, 맘마.” 

아이에게 빵의 보드라운 속을 뜯어 맛보기로 건넸다. 점점 살이 올라 무게가 느껴지는 아이, 가슴 앞에 달려 포기를 모르고 쉼 없이 핫도그를 달라는 아기를 안은 채 빨간 시장바구니를 끌고 앞서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본다. 너무 까맣고 성성한 머리, 파마약 냄새가 퐁퐁 나는 엄마의 휑한 머리 위로 봄볕이 떨어진다.

화천시장

화천 오일장은 우리나라 가장 북쪽에 위치한 전통 시장이다. 시장은 화천 군청과 공영버스터미널 사이에 위치해 있다. 매월 3, 8일마다 장이 열리고, 화천 읍내 사람들은 장이 서는 날에 맞춰 식재료를 사고 이웃과 안부 인사를 나눈다. 화천은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격전지였다. 전쟁이 끝난 후 북쪽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주민들이 화천에 정착하게 되면서 1953년 화천시장을 개설하였다고 한다. 최근 화천 거주 인구가 증가하여 시장의 규모도 커졌고 시설도 정비하여 오일장과 더불어 현대식 상설 시장을 구경할 수 있다.

•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하리 44-41 5일장(매월 3, 8일), 상설 시장은 상시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글·사진 전지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