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정기용 ― 건축가

그럼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건축가 정기용

한 남자는 39년이라는 시간 동안 공익 앞에서 의사醫師로, 자연 앞에선 인문학자로, 죽음 앞에선 철학자로 많은 일들을 건축했다. 자신의 직업을 ‘사람들의 삶을 섬세하게 조직하는 일’이라 여겼고, 공공건축에 대해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 아니라 ‘사건이 일어나고 회상할 가치가 있는 기억의 보고’라 표현했다. 어떤 의미에선 우리가 잊고 있던 기억을 발굴하는 사학자의 역할을 한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많은 수사 중 그를 대변할 수 있는 건, 단 하나일 것이다. 그는 이 모든 역할을 건축으로 표현한 최초의 건축가였다.

말하는 건축가

2분이 채 안 되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예고편을 보고 나는 막연하게 ‘참 좋은 사람을 발견했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영상 속에 등장하는 노인을 건축가라 불렀지만, 그는 노련한 소설가처럼 나의 마음을 울렁거리게 하는 달언을 쉽게도 뱉었다. 그러니까 나는 건축가의 구조물이 아니라 언어에 반한 것이었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영화의 제목 또한 <말하는 건축가>였다. 나는 평소답지 않게 합법적인 경로를 통해 영화를 다운받았고, 주저 없이 재생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결국 이렇게 그에 대해서 글을 쓰게 되었다. 인생의 좋은 선생님을 만난 것처럼 주변 사람들에게는 그에 대해 떠들었지만, 대화의 끝에선 그와 마주할 수 없다는 사실에 다시금 침울해졌다. 

항상 한 발짝씩 늦는 나를 자책하는 대신, 나는 그가 쓴 책과 건축물들을 직접 찾아보기로 했다. 건축가로 39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사람이 남긴 것들은, 당연하게도 참 많았다. 베게 삼기 좋은 두께의 책 여섯 권과 몇 개인지 세지도 못할 건축물들 그리고 아쉽게도 보지 못한 두 번의 관련 전시. ‘이 많은 것들이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 내게는 그저 시멘트 덩어리일 뿐이었던 건물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질 줄은, 나도 몰랐다.

“여기는 시간이 머무는 집인 거 같아. 도시에는 시간이 다 도망가버렸는데…… 공간이 있고, 시간이 있고, 자연이 있고…… 그러니까 도시에서는 감히 감각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이 스며있다고 이렇게…….”

자식을 잃은 어느 화가에게 지어준 집을 둘러보며 그가 중얼거렸던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도시의 시간은 어딘가로 도망가고 있었다. 지금 내가 있는 32층짜리 빌딩 밑으로 보이는 풍경은 낮이나 밤이나 화려했지만, 그 속에 내가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제5원소>나 <인 타임> 같은 미래도시에 관한 영화를 3D 안경으로 체험하는 것만 같았다. 한마디로, 나는 도시에 살았지만 어떤 의미에선 살고 있지 않았다. 고작 6층이 전부인 안양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일 뿐이었다. 작은 동네들을 버스로 몇 번이고 가로질러 천장이 낮고 익숙한 체취가 나는 방에 들어선 후에야 내 시계의 시침은 돌아가기 시작했다.

목욕탕이 생긴 일

그의 건축을 보기 위해 무주를 향한 것은 어려운 결심이 아니었다. 그는 12년간 무주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30여 개의 시설을 설계했고, 그 탓에 ‘공공건축가’, ‘공익봉사요원’이라는 수식어가 이름 앞에 따라 붙었다. 약간의 농담이 섞였다 하더라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공익을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려 했고, 봉사라고 해야 할 만큼 적은 돈을 받았으며, 어떤 작업에서는 아예 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세상이 그런 사람들에게 주로 ‘바보’라는 호칭을 붙여 선한 이미지로 그려내지만, 나는 그 단어를 쓰고 싶지 않았다. 일 년 동안 그의 모습을 찍은 한 시간 반짜리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느낀 건 그가 대단히 순수하지도, 헌신적이지도 않다는 것이었다. 다만 그에게는 유별난 열정이 있었다. 시민들을 위한, 약자를 위한 건축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 그것이 그를 빛나게 했고 또 그의 발목을 붙잡기도 했다. 

내가 무주에서 처음으로 찾은 곳은 ‘안성면민의 집’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주민자치센터 안에 있는 목욕탕. 갑자기 웬 목욕탕이냐고 묻는다면, 글쎄 나도 그에게 묻고 싶은 마음이다. 아마 그에게 물어도 답은 하나였을 것이다.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 만들어진 건축을 할 뿐이다.”라고. 그가 면사무소 설계를 의뢰받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예산을 짜는 것도, 설계도를 그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곳에 사는 주민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묻는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면사무소는 뭐하러 짓는가? 목욕탕이나 지어주지.”라는 답을 했다. 목욕탕이 없어서 날을 잡아 다 같이 봉고차를 타고 대전으로 가야만 했던 것이다. 그들에게 노동으로 인한 고된 육체를 씻는 일이란 일종의 행사가 되어버렸다. 그는 그런 노인들의 사정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했고 군수와의 오랜 대화를 통해 센터 안에 대중목욕탕을 만들기로 했다. 그는 말을 잘하는 건축가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말을 잘 들어주는 건축가이기도 했던 것이다. 

영화 중간에 그가 직접 목욕탕을 이용하는 장면이 나온다. 뜨거운 물에 노곤한 몸을 담그는 모습이 내겐 퍽 시원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그래서 나도 그곳을 체험하고자 세수와 양치질이라는 기본적인 예의만 지킨 채 면사무소로 향했다. 천 원짜리 한 장을 내고서 갈색 커튼을 젖히고 들어갔다. 그런데 분명 내가 상상했던 그림은 한가롭게 탕 안에서 몸을 녹이는 것이었는데, 금세 나는 하얀 오리 무리의 ‘미운 오리 새끼’ 또는 난쟁이들 사이에 서 있는 ‘걸리버’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거울을 통해 모종의 눈빛을 주고받는 할머니들의 뜨거운 감자가 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젊은 처자가 여길 왜 왔댜?’ 하는 표정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이었다.

우리 동네 찜질방의 겨우 산소방만 한 규모가 그곳의 전부였다. 작은 탕 두 개와 그보다 작은 사우나 하나. 그마저도 이미 할머니들에게 점령당한 후였다. 나는 조용히 미지근한 탕에 앉아 눈만 데굴데굴 굴리며 그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거의 모두가 할머니였고, 엄마의 때 미는 억센 손길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아이 두 명 그리고 수상한 젊은 여자 한 명이 있었는데 그게 나였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맨손으로 목욕하러 온 젊은이에게는 샴푸, 린스, 바디클렌저 하다못해 수건 한 장도 없었다. 물만 끼얹고 갈 수는 없었기에 나는 세상에서 가장 넉살 좋은 얼굴로, 한 할머니께 샴푸를 빌렸다. 다행히 24시간 화나 있을 것같이 생긴 할머니는 린스까지 툭 던져 주셨다. 그렇게 나는 옷을 꿰입는 순간에도 그저 이 상황이 우스워 혼자서 피식피식 웃었다. 

급하게 나오느라 덜 말린 머리를 털어가며 나는 본격적으로 면사무소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특별한 것은 없지만, 모나지 않은 건물이었다. 좋았던 게 있다면 바로 커다란 창. 그곳으로 들어오는 빛은 둥근 천장에 반사되어 전체적으로 넓게 흩어졌는데, 그 덕분에 건물 안의 전구는 몇 개를 제외하고 모두 꺼져있었다. 인공적인 빛이 필요 없던 것이었다. 건축가의 작은 지혜가 에너지 낭비를 줄이고, 건물 안의 사람들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주고 있었다. 

2층은 볕이 더 좋았다. 자판기와 창을 향해 놓인 높은 의자가 있는 쉼터, 이상하게 생긴 땅콩 모양의 인형 탈이 있는 창고, 푹신한 카펫이 깔려있고 조화가 수북이 쌓여있는 피아노가 자리한 작은 강당. 어느 하나 빠짐없이 죄다 촌스럽고 투박했지만, 그마저도 좋았다. 아마 그도 이 모습을 보았다면 미소 지었을 것이다. 그가 원했던 건축은 거대한 조형물 바라보듯 귀하게 쓰이는 게 아니라 인간이 주체가 되어 꾸미고 기억하는 공간이었기에. 흔적이 축적되고, 그 흔적은 기억이 되고, 결국은 삶이 되는 그런 공간 말이다.

하나뿐인 운동장

정기용은 군수에게 또 다른 부탁을 받았다. 공설운동장을 살려달라는 얘기였다. 본부석에만 차양이 있는 탓에 행사가 있어도 주민들은 거의 찾지 않는다고 했다. 대부분의 운동장이 그러했지만, 군수는 이를 변화시키고자 운동장 주변에 등나무 240여 그루를 심어 놓았다. 길게 늘어지는 등나무 꽃으로 자연스러운 그늘을 만들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생각보다 빨리 성장하는 등나무의 방향을 잡아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고민을 들은 정기용은 주민들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군수의 마음에 감탄했고, 사람과 식물이 서로 감응할 수 있다는 것에 또 한 번 감탄했다. 군수가 생각해 놓은 ‘그림자 프로젝트’를 현실이 되게 도와주는 번역가 역할을 자처한 그는 식물이 주인이 되는 건축을 설계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먼저 등나무의 구조를 이해하고, 원호 모양의 파이프를 설치해 등나무가 스탠드 방향으로 자라날 수 있게 했다. 또 등나무가 구조물을 쉽게 타고 올라가도록 얇은 와이어로 엮어주었다. 그 구조물들은 등나무 가지의 굵기 정도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튀지 않고 함께 어우러졌다. 그는 자신의 책 『감응의 건축』을 통해 이곳을, 10여 년 동안 진행한 무주 프로젝트 중 가장 인상에 남는 곳, 자신을 많이 가르친 곳이라고 표현했다. 어느 봄날 보랏빛 등꽃이 하늘하늘하게 흐드러진 운동장을 바라보던 그의 표정은 어딘가 미묘해 보였다.

당연하게도 내가 찾은 운동장은 휑했다. 앙상하게 남아 엉켜있는 가지들이 하늘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그가 말했던 오월에 찾았다면 꿈 같이 황홀한 풍경을 즐길 수 있었을 텐데’, ‘두 눈으로 보았다면 아마 나도 그와 같은 표정을 짓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운동장을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 유독 길게 그림자가 진 운동장 한쪽 면과 마주했다. 계단에 조금 올라서자 등나무를 가리고 있는 거대한 구조물이 보였다. ‘개 같은 새끼들’이라며 그를 분노하게 했던 주인공이었다. ‘녹색성장’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워 건축가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태양열 집열판을 세운 것이다. 그 구조물은 등나무가 흡수해야 할 빛을 앗아가고있었다. 분명 어떠한 공존이 깨지고 있는 듯했다. 그건 자연의 문제만이 아니었고, 어느 건축가에게도 해당되는 일이었다. 

그는 건축가의 손을 떠난 건축의 완성도는 자연이 결정하는 것이라 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자연의 흐름을 차단해버리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곤 한다. 그의 말대로 시간의 변화를 기억하는 건 자연의 역할이고, 또 그것을 통해 삶의 순환을 익히는 게 인간의 몫인데 자꾸 반대방향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건축으로 한 시대를 걱정하고 한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던 사람이 그리웠다.

그날 어느 누구도 내게 말 걸지 않았지만, 나는 속 깊은 대화를 나눈 기분이었다. 오로지 일직선으로 뻗은 밋밋한 길, 촌스럽고도 따뜻한 건물, 주름에 가려진 작지만 다정했던 눈이 무주의 단상으로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정기용과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정기용이 무주를 닮은 건지도 모르지만, 그는 인간을 압도하지 않으며 쉬운 언어로 이뤄진 낮고도 착한 건축을 하고 있었다.

건축가는 호흡한다

지금껏 내가 살던 집은 총 다섯 번 바뀌었다. 다섯 채의 집에 관한 기억은 잘 정리된 포장박스 안에 담겨 머릿속에 숨어있다가 어느 날 난데없이 떠오르곤 한다. 그게 당황스럽다가도 ‘어릴 때 바비인형에 집이라며 꾸며줬던 아빠의 양주상자까지 기억이 나는데 어떻게 내가 살던 집을 잊을 수 있나.’ 하는 생각에 미소 짓게 된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공간도 꾸준히 관찰하고 애정을 주려 노력한다. 방바닥에 누워 언제 붙였는지도 모르는 오래된 야광별을 세기도 하고,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아이들 소리에 따라 베란다에 고개를 내놓기도 하고, 대청소가 하기 싫을 때 가족들 몰래 장롱에 들어가 좁은 문틈으로 들어오는 빛을 어루만지기도 한다.

내 집 안에 쌓인 추억과 애정 같은 것, 그런 것이야말로 정기용이 항상 말하던 ‘감응의 건축’이 아닌가 싶다. 각각의 인생에서 기억하고 있는 조그만 파편을 언제라도 다시 부를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주는 게 건축가의 일이라고, 조성룡 건축가는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정기용은 성공한 건축가나 다름없었다. 나는 그의 건축에서 어떤 날의 기억을 보았고 따뜻한 시선을 읽었기에. 그와 반대로 공부만 하는 곳, 일만 하는 곳, 잠만 자는 곳에서의 삶을 상상해본다. 그건 허술하게 마감된 신축아파트에 사는 마음과 비슷할 것 같다. 겉모양만 번지르르하고 안은 텅 빈 그런 공간에서 그저 하루를 흘려보내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정재은 감독이 목욕탕 앞 할머니들에게 이 건물을 지은 사람이 누군지 묻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자 노인들은 “우리는 잘 몰라~ 그냥 천 원이니깐 오는 거지.” 하며 다른데다 물어보라며 다소 엉뚱한 대답을 한다. 그런 무리 옆에 앉은 또 한 명의 노인은 몰라도 된다는 인심 좋은 미소를 짓고선 목욕 잘하시라는 인사만 건넬 뿐이다.

어떤 기자는 그 장면을 보고 섭섭함과 서운함이 복받쳤다 했지만, 나는 조금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 주민에게 이미 익숙해진 건축물과 그 모습을 지켜보는 건축가. 너무나 사소하고 일상적이어서 귀하게 여기지 못하는 모습은 그가 바라던 것이 아니었던가. 삶에 스며든 건축이란 이런 것이었다. ‘누가’ 만든 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누구’를 위한 것인지 고민하고 또 끝내 실현한 건축.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기용은 2011년 3월에 세상을 떠난다. 대장암과 싸우던 영화 속의 그는 성대결절로 목소리가 죄다 쉬어 버리고, 뼈에 살가죽만 붙어 바싹 마른 모습으로 시들어 간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서 반짝이는 빛이 보일 때가 있었다. 평생 본인의 집도 없이 세 들어 살던 건축가는 집안 한구석에 들어오는 가냘픈 빛을 보며, 초롱초롱한 눈으로 죽음과 마주하고 싶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며칠 뒤, 바퀴 달린 침대에 의존한 채 밖으로 나온 그는 지인과 제자들을 불러 세상과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나무도 고맙고, 바람도 너무 고맙고, 하늘도 고맙고, 공기도 고맙고, 모두 모두 고맙습니다.”

얼굴을 반쯤 가린 모자와 선글라스 때문에 그의 마지막 눈망울이 어땠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가지 확신할 수 있었다. 그의 상냥한 손길이 닿은 건축은 여전히 우리 곁에서 호흡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그의 흔적을 따라가려면

감응의 건축 
정기용 지음| 현실문화연구| 382쪽 

1996년부터 2006년까지, 10년 동안 진행한 무주 공공건축 프로젝트를 정리한 책이다. 버스정류장, 재래시장, 박물관, 납골당 등 무주 시민을 위한 크고 작은 30여 개의 건축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사진뿐만 아니라 건축가의 스케치나 배치도를 볼 수 있어, 건축이란 어떻게 완성이 되는지 그 과정에 대해 자세히 엿볼 수 있다. 또한 그의 철학은 단순히 건축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꼭 건축을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읽어볼 만한 좋은 책이다

말하는 건축가
다큐멘터리 | 95분 |감독 정재은

2012년 3월에 개봉된 <말하는 건축가>는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를 만든 정재은 감독의 작품이다. 1년간 정기용의 일상을 담은 한 시간 반짜리 다큐멘터리로 그리 긴 러닝타임은 아니지만, 오랜 여운이 남는다. 영화의 후반으로 향할수록, 건축가였던 정기용은 그저 죽음 앞에 선 한 인간이 되는데 그 일련의 과정이 머릿속에 깊이 남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잔잔한 피아노 연주의 배경음악도 좋으니, 총 9트랙이 담긴 앨범을 들어봐도 좋을 것 같다.

등나무 운동장

전북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 1199-3

무주공용버스터미널에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다. ‘한풍루(지남공원)’라는 문화재와 가깝게 있어 안내판을 보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물으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나뭇가지만 있지만 5월 초가 되면 머리 위로 연보랏빛 등나무 꽃이 흩날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꽃그늘 밑에서 가만히 그 광경을 지켜만 봐도 좋을 듯하다.

안성면 주민자치센터

전북 무주군 안성면 안성로 246-17

이곳은 안성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하차해야 한다. 시장 윗길을 따라 3분 정도 이동하면 주유소가 보이는데, 그 바로 뒤에 위치해 있어서 찾기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목욕탕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날짜를 잘 확인하고 가야 한다. 여자는 짝수, 남자는 홀수 날에 이용할 수 있고, 주말에는 정기휴일이다. 요금은 천원에서 천오백원 사이로 아주 저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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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포토그래퍼 이혜인

자료제공 다세포클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