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코하마

The Second Time Around

요코하마로 가는 전철을 기다리는 플랫폼에서 나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애써 참으며, 오지 않는 전철을 기다렸다. 사실 나의 도쿄여행에 요코하마는 변수였다. 여행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때도, 계획을 짜고 있을 때도, 공항에서 티켓팅을 하는 그 순간에도 여행계획에 요코하마는 없었다. 오로지 ‘도쿄’였다. 그저 도쿄에서 얼마간 머무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도쿄에서의 마지막 3일을 뒤로한 채 요코하마행 전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정말 예상 밖의 일이었다. 요코하마행 전철이 경적소리를 내며 플랫폼으로 진입하자 그제서야 덜컥 겁이 났다. 분노를 원동력으로 호텔을 예약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내 손에 들려있는 것은 달랑 카메라 하나와 급히 적어 온 호텔 이름이 전부였으니까. 허겁지겁 전철에 올라 손짓발짓 해가며, 이 열차가 요코하마행임을 옆자리 승객에게 확인받았다. 조금 안심이 되었지만 크게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분노가 긴장으로 바뀌고 나서야, 내가 한 끼도 못 먹었다는 것과 호텔로 가는 길을 미리 알아보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걱정이 마음에 가득 차 있으니 요코하마의 아름다운 경치가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요코하마 사쿠라기쵸역 앞에서 나는 커다란 지도를 활짝 펼친 채 호텔로 가는 길을 맹렬하게 찾았다. 사람이 당황하면 기본적인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했던가, 영어로 빽빽하게 적힌 지도에서 ‘워싱턴 호텔’을 발견한 순간, 내 입에선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왔다. 호텔은 역 앞, 바로 내 눈앞에 서 있었다. 프런트를 세 번이나 오가는 우여곡절 끝에 겨우 입실에 성공한 나는, 풀썩, 작은 침대에 쓰러지듯 걸터앉았다. 밖은 7월의 일본이었다. 기대에 부풀어 요코하마 여행을 택한 게 아니다 보니, 더운 날씨를 뚫고 여행을 할 의욕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지도를 펴 보았지만, 딱히 가고 싶은 곳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그러다 하얀 벽지가 눈꺼풀로 뒤덮여 잠이 들 무렵, 문득 전철비와 호텔비가 아까워졌다. ‘이 여행을 위해 몇 달을 일했던가!’ 나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섰다. 그제서야 요코하마의 명물인 대관람차가 보이고, 아득하게 풍겨오는 바다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시계는 벌써 오후 네 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나는 무작정 바다 쪽으로 향했다. 역에서 챙겨온 지도를 펼쳐보니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아카렌가’라 써진 붉은색 벽돌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림으로까지 그려놓은 것을 보니 꽤 유명한 곳이겠거니 하며, 지도의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마음이 조금 누그러져서일까? 길가의 작은 것들이, 저 멀리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깨끗하네…’ 하고 중얼거리며 작은 다리를 건너니 손바닥보다 작았던 대관람차가 어느새 아주 가까이 와 있었다. ‘관람차를 가까이서 볼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배고픔이 목전까지 올라와 있었기 때문에 발걸음을 돌렸다. 눈앞에 있는 맥도날드가 그 순간 나에겐 더 중요했으니까. 햄버거 하나를 손에 들고, 아카렌가 창고로 가는 길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배가 어느 정도 불러오자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기 시작했을 정도. 심지어 길가의 작은 가게에 들러 꽃무늬 티셔츠를 흥정하기까지 했다. 나는 그렇게 조금씩 요코하마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아카렌가 창고는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 계단에 걸터앉아 음악을 듣는 사람, 발길을 재촉하는 사람부터 가족과의 피크닉을 여유롭게 즐기는 사람까지. 유유자적한 현지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참 좋아 보였다. 주변을 한참 돌아보고 나서, 창고 안으로 들어가볼까 하다, 작은 창문까지 꽉 메운 인산인해에 도무지 들어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여행에서 얻은 허리 통증이 조금씩 밀려오고 있기도 했고…. 아픈 허리를 부여잡으며 잠시 벤치에 앉았다. 저 멀리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자니 요코하마에 분노를 품고 온 것이 조금 미안했다. 빛으로 일렁이는 파도가, 조용하게 떨어지는 저녁 노을이, 바닥 사이에 옹기종기 자란 풀들이 온몸을 바쳐 나에게 요코하마를 소개하고 있는데, 내 마음 그릇에 그들을 담을 여력이 없던 것 같아서. 

기운을 차리자 요코하마를 조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다섯 시 반. 걸어갈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싶어 지도를 살피다가 차이나타운 안에 있는 관우묘를 발견했다. 평소 삼국지를, 관우를 흠모하던 터라, 주저 없이 관우묘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생각보다 먼 거리라 몇 번을 되돌아갈까 고민하며 찾아간 차이나타운은 꽤나 잘 꾸며져 있었다. 거리를 화려하게 수놓은 노랗고 붉은 조명들 사이로 일본인, 중국인, 한국인들이 한데 섞여 저마다 바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간 도쿄 여행에 흔쾌히 자신의 자취방을 내어주었던 친구는 일본 여행객들 중 일본, 중국, 한국 3개국의 여행객을 구분하는 건 굉장히 쉽다며, 그들이 가진 ‘카메라’를 보면 된다고 했다. 일본인은 작은 카메라를, 중국인은 캠코더를 그리고 한국인은 DSLR을 가지고 있다고. 피식 웃으며 내 손에 들린 DSLR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 옆으로 뛰어가는 작은 꼬마 아이를 캠코더로 찍던 아버지의 입에서 거친 중국어가 튀어나오는 순간, 맥락 없이, 친구와의 다툼으로 피난하듯 찾은 요코하마에서,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 친구를 생각하고 있는 내 자신이 조금 바보같이 느껴졌다. 차이나타운을 두 번쯤 뱅뱅 돌고 나서야 관우묘를 찾을 수 있었다. 아뿔싸, 시간이 시간이었던 터라 이미 입장시간은 지나 있었다. 아쉬웠지만 별 수 있나, 준비하지 못한 내 탓이었다. 입구 언저리에서 기념사진을 몇 장 찍고 나니, 갑작스럽게 피곤이 몰려왔다. 호텔로 도저히 걸어갈 수 없을 만큼 허리도 아팠다. 차이나타운 앞의 버스정류장을 한참 들여다보았지만, 도무지 무엇을 타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튼튼한 두 다리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반쯤 넋이 나간 채로, 호텔로 발걸음을 옮기며 요코하마의 밤과 마주했다.

신기하게도, 여행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을 때, 예상치 못한 감동을 남긴다. 밤의 요코하마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버스를 탔다면 미처 마주치지 못했을 풍경. 호텔로 돌아갈 힘이 조금 생겨 순간을 즐겨보기로 했다. 조명이 하나 둘 켜지고, 바다가 하늘의 먹빛을 빨아들인 만큼 검게 변하던 그 시간, 무슨 생각이었는지, 난 호텔로 곧장 갈 수 있는 길 위에서, 조금 돌아가는 길로 방향을 선회했다. 길 아래 초연하게 빛나던 작은 가게들이 예뻐 보였기 때문일까? 굴다리 아래, 작은 옷 가게로 들어섰다. 시원한 에어컨의 냉기가 기분을 좋게 했지만, 상식을 벗어난 가격표 덕분에 멋쩍은 웃음으로 가게를 나설 수 밖에 없었다. 무안한 기분으로 다시 바닷가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다 문득 바다 위를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는 빨간 반딧불에 눈길을 뺏겼다. 저 멀리 날아다니던 빨간 반딧불에 홀려 걸어가길 수십 분, 그것은 가까이 갈수록 모습을 드러냈다. 낚싯대였다. “하하하!” 허탈해진 마음에 갑자기 크게 웃음이 터졌다. 낚시를 하던 아저씨들은, 커다란 카메라를 목에 건 여자아이가 뜬금없이 웃어대는 통에 다소 황당한 표정이었다. 오던 길을 되돌아 다시 호텔로 돌아가는 길, 갑자기 마음이 후련해졌다. 대단하다. 요코하마는 반나절 정도의 아주 짧은 순간에, 남아있던 감정의 찌꺼기까지 깡그리 말려버렸다. 호텔에 돌아와 친구에게 전화를 할까 잠시 망설이다, 곧 지도를 펼쳐 들었다. 그리고는 낮에 얼핏 보았던 ‘아카이구츠버스(빨간구두버스)’ 광고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설명이 전부 영어라 모두 이해할 순 없었지만 서울 시티투어버스와 비슷한 관광상품 같았다. 내일은 이 버스를 타고, 내리고 싶은 곳에 내려보기로 결정. 잠이 들기 전, 다시 한 번 친구에게 전화를 해야 하나 망설였지만, 피곤하다는 핑계로 잠이 들어버렸다. 

다음 날 아침. 몸은 어제보다 개운했지만, 스멀스멀 올라오는 미안함과 죄책감 때문인지 오히려 더 무겁게 느껴졌다. 난 그저 꾸역꾸역 짐을 챙겨 버스정류장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버스 정류장엔 2대의 버스가 서 있었다. 아마 노선이 다른 것 같았지만 나에겐 별 상관이 없었다. 간단하게 버스를 선택하고, 요금을 낸 후, 맘에 드는 정류소를 캐치하기 위해 창가 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창밖으로, 어제 보았던 아카렌카와 그림 그리는 할머니를 지나 버스가 한적한 2차선 도로의 언덕 위를 올라섰을 때 가방을 챙겨 내렸다. 정류장 앞으로는 작은 공원이 있었고, 뒤로는 어디로 갈지 모를 차도 위 노란 택시가 서 있었다. ‘노란 택시는 행운을 불러준다’란 생각에 택시가 선 방향으로 가다 보니, 자그마한 레스토랑이 있었다. 요기를 해야 했기에 문을 밀고 들어섰다. 곱게 빛나는 원목식탁과 빨간 체크무늬 식탁보가 예쁜 홀이 나왔다. 

자리에 앉아 대충 메뉴를 시키고 멍하니 홀을 둘러보다 주방의 요리사와 눈이 마주쳤다. 요리사는 이른 아침, 외국인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혼자, 이 외딴 가게에 와서 요리를 시키는 것에 적잖이 호기심이 동한 모양이었다. 요리를 내오며 그는 나에게 어디서 왔느냐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답하니 자신의 친구도 한국에 있다며, 일본에 친구가 없는지 물어왔다. 왜인지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에 친구가 보고 싶어졌다. 요리사에게 전화를 빌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건너편으로 오랜 시간 수화음이 울렸다. 글쎄, 돌이켜보면 다투는 게 당연했다. 작은 원룸의 공간을 20일 동안 공유해야 했으니. 게다가 그 녀석은 유학생, 나는 여행자. 생활의 무게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매일 밤 맥주 파티를 하고 싶어하는 나의 들뜬 기분은 그 녀석에게 어떤 부담이었을까. “모시모시.”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친구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반가웠다. “뭐하냐.” 건조하게 응수하는 나의 말에 친구는 “하라주쿠로 와, 2시까지”라고 답했고 우리의 짧은 다툼은 마침표를 찍었다. 미안하다는 말은 없었지만 마음이 풀린 것쯤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나의 요코하마행은 서로에게 아주 적절한 타이밍의 외로움과 휴식을 주었나 보다. ‘그래, 이유 없는 여행은 없지.’ 향긋한 커피가 한 번 더 잔에 채워지고,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여유를 즐기려던 찰나, 곧 출발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간을 물었더니 벌써 정오가 넘었단다. ‘네 놈이 내 상황을 배려해 약속을 잡았을 리가 없지!’ 헐레벌떡 계산을 마치고, 내리 쬐는 햇볕 아래를 전속력으로 달려야 했지만 글쎄, 썩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는 오늘도 분명 까불거리며 나의 신경을 긁을 것이 분명하지만, 어쩌겠는가. 요코하마에서 한 뼘 더 자란 내가 배려하는 수밖에!

요코하마에 간다면

도쿄에서 요코하마로 가려면, JR 시나가와역에서 게이힌도오쿠센 노선으로 환승한 뒤 사쿠라기초역에서 하차하면 된다. 뜻밖의 기쁨을 주었던 아카이구츠 버스는 사쿠라기초역을 출발하여 미나토미라이 지구, 추카가이, 야마시타 공원, 미나토미에루오카 공원까지 순환하는 투어버스로 2가지 노선을 운행하고 있다. 또 이번 여행에서 추천하고 싶은 아카렌가 창고는 요코하마의 상징과 같다. 1913년에 준공된 것으로, 당시 해상 무역을 통해 오가던 화물을 보관하던 창고로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갤러리, 쇼핑몰, 레스토랑 등이 모여있는 문화시설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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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오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