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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 콘텐츠 에디터
누군가 그를 보며 취향이 또렷하다 말한다면, 또 다른 누군가가 그의 기록을 보며 부지런하게 쏘다닌다고 말한다면 에디터 김정현은 아마 이렇게 답하지 않을까. 솔직하게 말해서 취향은 잘 모르겠고 부지런함과는 거리가 멀다고. 자신의 마음과 시선이 머무는 것을 모아 콘텐츠로 만드는 그는 부러 감추거나 더하지 않은 원본의 애정을 기록한다. 경험에서 기쁨을, 공유에서 더 큰 기쁨을 만끽하는 그는 좋아하는 게 참 많은 사람이다.그리고 그게 나다운 건지는 몰라도 재미있게 사는 법이라는 건 분명히 안다.
반가워요. 오늘 인터뷰를 위해 정현 씨에게 함께 가볼 카페 한 곳을 추천해 달라고 했는데 여기, ‘룩백커피’를 말씀하셨죠.
안녕하세요. 연희동에 자주 오는데 그중에서도 룩백커피를 좋아해요. 다른 단골 카페 사장님께서 이곳이 곧 문을 연다는 소식을 알려주신 덕분에 오픈 전부터 지켜봤고 지금까지 즐겨 찾는 곳이 되었죠. 룩백커피를 취재해 콘텐츠를 만들기도 했고 여기서 작업도 곧잘 해요.
사장님이 보자마자 주문할 메뉴를 알아채시더라고요. 필터 커피, 따듯하게, 워시드 용법으로 과테말라. “늘 먹던 걸로”라고 주문하는 손님처럼 보였어요(웃음).
다른 건 몰라도 유일하게 커피에 대해선 입맛이 까다롭거든요. 보통은 가벼운 느낌에 산미가 있고, 과일 단맛이 나는 필터 커피를 좋아해요. 필터 커피는 따뜻하게 마셔야 향이 더 섬세하게 느껴진대요. 예전에는 쓴맛 나는 진한 커피만 찾았는데 카페를 이곳저곳 다녀보고 사장님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입맛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룩백커피는 플랫화이트나 라떼도 맛있어요. 다음에 드셔보세요.
꼭 기억할게요. 그럼 자기소개로 시작해 볼까요?
네. 저는 전북 익산에서 나고 자라 지금은 서울에서 12년째 살고 있는 김정현입니다.
뮤직 &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BGM》 에디터, 디지털 매거진 <디에디트> 객원 필자, 에세이집 《나다운 게 뭔데》 지은이처럼 하고 있는 일이 많아서 무어라 소개할까 궁금 했는데, 생각보다 간단해요.
요즘 들어서 자기소개를 해달라고 했을 때 일 이야기부터 꺼내는 게 흔쾌하진 않더라고요. 의례적으로 자신을 소개할 때 직업이나 하는 일에 관해 말하긴 하지만, 그것 말고도 나를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 정체성을 이룬 부분에서 중요한 게 지방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 와서 살고 있다는 거예요. 이외에는 안경을 쓰고 수염을 기르며, 커피와 수다를 즐기고, 밖을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삼십 대 아저씨라 말하고 싶어요.
이번 《AROUND》는 쓰는 사람, 나아가 자신의 흔적을 다른 이들과 활발하게 공유하는 이야기를 모아요. 정현 씨는 스스로 기록을 즐기는 사람이라 생각하세요?
제가 지금껏 해온 일은 한 마디로 경험한 걸 사람들에게 소개하거나 공유하는 건데요. 그 기반은 평소에 찍는 사진이나 메모, 하다못해 네이버 지도에 별표로 공간 저장해 둔 것들이니까 기록하는 사람이라 생각해요. 그런데 수기로 기록을 남기는 일은 아이디어를 가다듬을 때를 제외하면 거의 없고 대부분 노트북을 사용하죠. 제 노트북 메모장에는 항상 ‘작성 중’이라는 제목의 페이지가 있는데요. 마구 메모해 둔 걸 왼쪽에 띄우고, 오른쪽에 ‘작성 중’이라는 새 페이지를 열어 초고를 쓰곤 해요. 글을 쓰게 만드는 좋은 동력이자 가끔은 피하고 싶은 기록 도구가 매일 마주하는 빈 페이지예요.
만약 노트북이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요?
그럼 폰을 쓰죠.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금세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상황이나 타이핑하기 어려울 때가 있잖아요. 예를 들어 볼일을 보거나 샤워하는 중일 때요. 그럴 땐 음성 메모 앱을 켜서 말로 녹음해 두고, ‘클로바노트’에서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한 뒤 메모장에 옮기면 아주 유용해요. 그리고 최근엔 영상에도 재미를 붙였는데, 아이폰 기본 카메라의 비디오 설정이 60 프레임이라면 24 프레임으로 바꿔 가로로 찍으면 움직임이 끊기는 듯하면서 뭐랄까, 영화적인 느낌이 더해지더라고요. 바람에 흔들린 나무들이나 지나가는 고양이, 서울의 여러 장면을 담아 15초씩 영상을 만들어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고 있어요. ‘좋아요’는 별로 없지만 혼자 뿌듯해하고요(웃음).
기록하는 모습을 더 상상해 보고 싶은데요. 글 쓸 때 꼭 필요한 게 있다면요?
주로 카페에서 작업하다 보니 그곳에선 커피가 필수지만, 집에서라면 씻고 난 후 시원한 물을 한 잔 갖다 두고 시작해요. 만약 일기처럼 감성을 북돋거나 내밀한 이야기를 담는 글이라면 일본의 피아니스트인 ‘하시모토 히데유키Hashimoto Hideyuki’의 [Room] 앨범을 재생하죠. 무척 좋아하는 앨범인데 그 노래들을 듣다 보면 분위기에 충분히 젖어들거든요. 반대로 경쾌한 톤의 캐주얼한 글을 써야 한다면 영국 뮤지션 ‘톰 미쉬Tom Misch’의 [Beat Tape 1]을 들어요.
최근 연희동에서 라이프스타일 커뮤니티 ‘스웻데이즈Sweatdays’와 함께한 산책 프로그램 ‘워키 토키 Walkie Talkie’가 인상 깊었어요. ‘시티 털보 따라 걷는 연희동 골목길’이라는 소개도 기억에 남고요.
서울에서 마포, 종로, 서대문을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연희동은 카페도 많고 혼자 걷기가 좋아요. 고즈넉한 주택가에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소규모 상점들이 있고, 높은 건물이 없어 하늘을 올려다보기에도 알맞죠. 주민들의 자연스러운 생활 풍경도 엿볼 수 있고요. 제가 여기저기 쏘다니는 것처럼 보이지만 즐겨 찾는 동네에서 하는 일은 이런 게 전부예요. 카페나 식당, 편집숍처럼 어떤 지역의 매력적인 공간들을 묶어서 다니는 걸 좋아하니까 그걸 글이나 영상 콘텐츠로 옮긴 건데, 바깥에서 직접 해보자는 스웻데이즈의 제의를 받아서 산책길의 호스트가 되었죠. 신청하신 분들과 주말에 모여 한 시간 반 동안 연희동의 랜드마크인 사러가 쇼핑센터와 ‘메뉴팩트 커피’를 지나 서연중학교 담장을 따라 걸었어요. ‘다크에디션 커피’에서 필터 커피 한 잔씩 테이크아웃해서 공원과 독립서점, 편집숍까지 둘러봤죠.
낯선 사람들과 함께한 산책은 어땠어요?
정말 재밌었어요. 그분들이 신청한 이유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밑바탕에는 ‘시티 리포터’를 자청하는 저 사람이 어디를 갈까 궁금해서 와주신 거니까, 제가 풀어두는 동네 이야기나 경험을 경청해 주시더라고요. 바로 곁에서 좋아하는 걸 나누는 재미가 굉장히 컸어요. 깃발만 안 들었을 뿐 서울 투어 가이드나 마찬가지였죠.
자신의 시선에서 좋은 공간이라 안내할 만한 곳들의 공통점이 있어요?
좋다는 말의 기준을 다시 방문하고 싶다는 것에 둔다면, 첫째는 변함없는 편안함이에요. 공간을 지키는 사장님이나 직원분들의 태도가 불편함을 주진 않는지 가장 먼저 고려하게 돼요. 과하게 환영해 달라는 게 아니라, 활기차든 아늑하고 차분한 분위기든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환영받는다는 감각을 얻는 게 중요하니까요. 시각적인 면모에선 공간에 힘을 잔뜩 줘서 너무나 매끈하고 무게감 있는 곳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조금은 투박할지라도, 사장님이 무얼 좋아하는 사람인지 드러나는 곳을 자주 가고 싶어요.
‘김정현’이라는 사람 한편에는 언제나 내가 사는 곳, 내가 머무는 장소를 향한 호기심이 있는 것 같았어요. 10년 넘게 일상을 보내고 있는 서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어릴 때부터 넓은 세계로 가고 싶었기 때문에 늘 동경의 대상이었어요. 대학교 진학을 위해 서울에 처음 오자마자 홍대를 비롯해 여기저기 탐구하러 다니면서 개성적인 문화에 매료되었죠. 지금은 좀… 애증인 것 같아요. 이 도시는 바쁘고 빠르고 경쟁도 치열하고 돈이 없으면 살기 힘든 곳이라 생각하거든요. 저에겐 여기 살면서 얻는 것도 많지만, 반면에 잃을 것도 많아요. 삶의 질이나 경험에서 저울질을 하며 지내야 되는 곳이죠. 예전에는 평생 서울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면, 이제는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는 생각도 해요. 되게 미워하면서도 좋아하는 도시예요, 저한테는.
어떤 공간에 머무는지가 삶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해요?
그럼요. 사람은 결국 자신이 놓인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걸요. 특히나 저는 긍정적으로 말하면 수용적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쉽게 흔들리는 성향이라, 좋은 환경에 저를 놓아두려고 노력해요. 아름다운 공간에서는 시각적인 자극을 얻고, 따뜻한 환대를 받은 곳이라면 그들의 마음가짐을 흡수하도록요. 그리고 상업 공간으로 한정한다면, 멋있는 공간에 속해 있을 때 나도 마치 그런 특성을 가진 것처럼 기분 좋은 허영심이 들어요. 과하지 않다면 어느 정도는 그 허영심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도록 밀어주잖아요. 10년 넘게 서울에 살면서 얻은 모든 경험이 지금의 저를 완성했다고 생각해요. 그게 제 일과 기록으로 이어졌고요.
― 김정현,
《나다운 게 뭔데》(RHK) 프롤로그 중에서
정현 씨의 기록 소재를 헤아려 보면 ‘좋고 싫은 것’도 빠질 수 없죠. 특히 재작년에 출간한 《나다운 게 뭔데》 속 에세이 소재는 음악, 커피, 춤, 산책… 마치 한 사람의 취향 목록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어요.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어요?
이 책을 처음 제안받았을 때 취향을 어렵지 않게 다루는 에세이를 써보자고 하셨어요.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다채롭게 펼쳐놓는 식이 탁월하지 않을까 싶었죠.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취향’이라는 단어가 남용되지 않길 바라요. 좋아하는 것의 동의어가 취향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즉각적인 기호나 충동, 욕망은 방향의 의미가 담긴 단어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내가 어떤 의도를 갖고 선택하는 게 아니라 사는 모양대로 자연히 쌓이는 게 취향인 거죠. 그 말은 결국 나다운 게 만들어지기까진 시간이 필수 조건이라는 의미일 테고요. 과거에 누군가 저에게 “너만의 뚜렷한 취향을 가진 것 같아서 부러워.”라 말하면 나도 모르는 게 보인다는 것 같아 곤혹스러웠거든요. 이제는 알아요. 취향은 나다운 모습들이 일정 시간 동안 쌓이고 조금은 변하기도 하고, 꽤 두꺼워지기도 하면서 만들어진 자연스러운 기록이라는 걸요. 가끔은 그 책에 쓰인 절 다시 보면 좀 부끄러울 때도 있는데요(웃음). 그 기록 역시 그때만의 생각이고 굉장히 생생한 마음이었으니까 서툰 모습을 이해하려 해요.
한때는 좋아하는 게 많은 걸 약점으로 여겼다고요.
내가 무언가를 진득하게 밀어붙여 본 경험이 있을까 싶었거든요. 아무리 생각해도 좋아하는 게 많아도 너무 많은데, 한 우물만 파는 게 아니니까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말과 같아 보였어요. 풍성하다, 다채롭다는 말이 뜯어보면 마법의 단어인 거 아세요? 나쁘게 말하면 산만하다는 뜻을 보기 좋게 포장해 주죠. 사실은 아직도 그걸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고민하다가도 내 성향이 이렇게 ‘생겨먹은’ 걸 어쩌겠나 싶어요.
관심 분야가 많은데 견고한가에 대해 묻고 싶어요. 《나다운 게 뭔데》에서 “앞으로 금기어는 ‘내가 감히’. 어제의 나를 유쾌하게 배신하겠다.”라고 적어두었잖아요.
지금도 전에 없던 내 모습을 발견하면서 깜짝 놀라곤 해요. 단순히 기호의 문제에서 보더라도, 오늘 제가 반지를 여러 개 끼고 화려한 패턴의 옷을 입고 있지만 이십 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이런 모습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몸에 액세서리를 치렁치렁 걸치는 것도 싫었고 옷도 검은색, 회색, 남색만 입었어요. 수염은 생각조차 안 했죠. 하다못해 이런 사소한 것도 바뀌는데 삶의 가치관은 어떨까요? 청소년기 때부터 내가 보고 듣던 경험이 넓어지고 만나는 사람이 달라지는데, 삶을 대하는 태도가 변하는 건 물론이고 앵글이 살짝씩 틀어지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것 같아요. 모든 삶에는 미묘하게라도 변하는 지점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그 흐름을 자연스레 지켜보면서 따라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전과 다른 모습을 내 안에 이런 면이 있었구나, 이런 색깔도 있었구나 하면서 즐겁게 바라보는 거죠. 나아가 결국 나한테 관대해지는 건 다른 사람을 인정하는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것과도 같은 말이더라고요.
정현 씨 기록의 주무대는 인스타그램이에요. 피드와 스토리를 통해 자신의 작업물에 대한 리뷰, 글과 영상 조각을 꾸준히 기록하는 편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크게 두 가지 방향인데요. 먼저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니까 내가 무얼 하는지 계속 보여줘야 해요. 그래야 사람들에게 각인이 되고 또 다른 일로 연결되죠. 한번은 의뢰를 주신 분께 절 어떻게 아셨냐고 물어봤는데, 제가 대학생 때 친구들이랑 작게 만든 잡지를 펀딩해서 받아 보셨다는 거예요. 예상외로 우연히 알고리즘으로 봤다는 분들도 많았고요. 아무리 작은 기록이라도 꾸준히 발행한다면 누가 어디서 지켜보고 있을지 몰라요. 언제 싹을 틔울지는 알 수 없어도 끊임없이 씨앗을 뿌리는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관심받고 싶기 때문이에요. 나의 무언가를 공유함으로써 남들과 연결되거나 공감을 받는 ‘좋아요’와 ‘댓글’에 취했다고 말할게요(웃음).
아주 달콤하죠(웃음). 가끔은 기록물의 작은 부분 때문에 나라는 사람 전체가 오해받는 일도 있을 텐데요. 보는 이들의 반응이 따가울 수도 있고요.
언제나 명심하려고 노력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 세계에 올라가는 순간, 아무리 솔직하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내가 존재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거요. 현실의 나는 편집된 세계의 나와 달라요. 불변의 진실만을 기록하는 공간이 아니기에 작은 오해를 부르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그 오해를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내가 아는 나의 다양한 모습을 가감 없이 공개하려고 해요. 진지한 면도 있지만 한없이 가볍고, 트렌드를 따라 가보다가도 최근 받기 시작한 심리상담 이야기처럼 굉장히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두면서 나의 면면을 추측할 수 있도록요. 이런저런 모습이 전부 나라는 걸 넌지시 알려둔달까요.
문득 정현 씨에게 ‘공유’란 어떤 의미일까 궁금해지네요.
순수한 즐거움이라 말하고 싶어요. 어릴 때부터 나한테 좋은 게 있으면 사람들한테 호들갑 떨면서 같이 보고 좋아하길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었어요. 순전히 나누는 것만으로도 기쁨이라 느껴졌고요. 그리고 내면에는 허영심도 있지 않을까요? 음… 분명히 있을 거예요. 내가 좋은 걸 경험했다는 걸 슬쩍 비추고 싶은 마음인 거죠.
그럼 기록에는 나를 위한 마음과 타인을 위한 마음 중 무엇이 더 중심에 가까워요?
딱 잘라 말하기는 쉽지 않네요. 그저 나를 위해 써둔 기록이 사람들에게 공유되는 기록을 만드는 데 좋은 재료가 되어준 적도 있고, 남들에게 보여주려고 올린 글이 한참 뒤에 봤을 때 무척 흡족하게 느껴질 때도 있거든요. 일기를 안 쓰는 내가 인스타그램이라도 꾸준히 기록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하고요. 두 마음이 혼재하다 보니까 결국에는 목적보다 남긴다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게 와닿아요.
우리는 누군가의 기록을 보면서 나의 기록에 대한 응원을 얻기도 하잖아요. 최근 기억에 남는 타인의 기록이 있다면 들려줄래요?
이 질문을 듣자마자 소개하고 싶은 기록물이 바로 떠올랐어요. 저는 인스타그램에서 피드를 둘러보다 저장해 두는 기능을 아주 잘 활용하거든요. 후루룩 내리면서 지나쳐 버리기에 아쉬운 것들을 스크랩하는 기능인데요. 그 안에서도 ‘컬렉션’이라고 해서 폴더를 만들어 분류할 수 있는데, 폴더 개수를 헤아려 보면 열 개가 넘어요. 제주도, 부산처럼 도시에 관련된 것도 있고 북 커버, 타투, 그래픽 디자인, 아이템, 장소, 심지어 헤어스타일과 건강 팁도 모아뒀어요.
잠시만요. 이 저장 목록이 정현 씨의 머릿속과 마찬가지인데요(웃음)?
그렇죠(웃음). 그중에서 ‘스토리’ 컬렉션이 있어요. 누군가의 글이 좋거나 인상 깊은 에피소드를 만나면 이 폴더에 저장해 두는데, 이 안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한 사람은 제 여자 친구이자 동료인 김해서 작가의 피드예요. 둘이 대화를 길게 나누기도 하지만 그 사람의 기록을 보고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때도 많아요. 어제 다시 들춰보다가 위로가 되는 말을 발견했는데요. “나라고 믿은 것은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에 가깝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 나도 여전히 생생하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서의 나를 끊임없이 바라지만 충족되기가 어렵잖아요. 완벽하지 않은 것 같아도 그 자체로 충분히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어요. 나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고, 그런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하고 싶게 만든 문장이었죠.
앞으로는 “감탄하는 인간에서 사유하는 인간”이 되고 싶다고 했죠. 어떤 궤적을 그리는 삶을 살지 고민하고 있나 봐요.
지금껏 저를 보면 즉각적인 감정 표출이나 주변 자극에 반응하는 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잘하는 것 같아요. 쉽게 말해 금세 감동받고 울다가 웃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휘발 속도도 빠르다는 거예요. 떠오른 것들이 한시 잠깐 번쩍이다 사라질 게 아니라 오랫동안 진하게 남아서, 깊은 차원으로 곱씹어볼 만한 것이 된다면 좋을 텐데 전혀 그렇지 못했어요. 아마 외부의 것에 시선을 많이 쏟았기 때문 아닐까 싶은데, 이제는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충분히 사유하고 성찰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경험들이 흩어지지 않고 차곡차곡 더 잘 쌓일 수 있게끔요.
그 답을 찾아가다 보면 또 다른 정현 씨의 모습을 마주하겠네요.
그러기 위해서 기록은 필수예요. 지금 내 안에서 어떤 감정과 생각이 맴돌고 있고, 저 깊은 곳에서 무슨 목소리가 들리는지 받아 적으면서 정리해야 소화할 수 있을 테니까요. 기록하지 않으면 어렴풋한 감각으로만 끝나버릴 거예요. 마주한 무언가가 내가 원래 갖고 있던 생각을 어떻게 바꿀 기회를 주었는지까지 돌아봐야 그만큼 더 깊어질 수 있겠죠.
마지막 질문이에요. 기록은 과거를 현재에 남기는 일인데 이번에는 미래를 써본다고 가정하고 싶어요. 10년 후의 정현 씨는 어떤 기록을 남길까요?
사실 미리 보내주신 질문들을 살펴볼 때 이것만 답하기 어려웠어요(웃음).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예측하는 대로 삶이 쓰이지 않을 거라 생각하거든요. 그래도 어림잡아 본다면, 여전히 사람들에게 공유하기 위한 기록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그 시대의 새로운 SNS에서 할 수도 있고, 더 공들여서 책이나 특정한 결과물로 세상에 내놓을지도 모르죠. 나이가 들어도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이나 인정 욕구는 여전할 테니까요.
그때의 기록도 기대할게요. 이제 연희동을 좀 걸어볼까요? 산책하지 않을 수 없는 햇살이네요.
좋아요. 제가 자주 걷는 골목길을 알려드릴게요.
에디터 이명주
포토그래퍼 박은비 장소 협조 룩백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