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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다정함
중국 윈남에 다녀왔다. 그리고 일상에 아름다운 균열이 생겼다.
언제부턴가 집을 떠나면 마음이 불안하다. 덕분에 여행을 못 간 지 좀 되었다. 집을 떠나지 않고 여행할 방법은 없고, 불안은 힘이 세며, 불안을 감당하느니 좋아하는 걸 포기하는 게 낫다. 더 이상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야 나의 일상을 싫어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종종 친구들이 SNS에 올리는 여행 사진을 보면 나도 저기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든다. 이탈리아 볼로냐에 가서 매 끼니 볼로네제 파스타를 먹고 싶고, 중국 시안에 가서 비양비양면을 먹고 병마용갱 앞에 오랫동안 서 있고 싶다. 쿠바 아바나에서 산티아고데쿠바까지 자동차 여행을 하고 싶기도 하고, 콜롬비아 보고타에 다시 가서 오래 그리워한 싸이타 호스텔 문을 두드리고 싶다. 후안이 문을 열어줄까? 나를 알아볼까? 남미 40번 국도 북쪽부터 남쪽까지 달리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내 불안은 집에 있는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라, 집에 사랑이 존재하는 한 나는 내내 불안할 수밖에 없다. 사랑을 최대한 오래 하고 싶으니, 그만큼 불안도 오래 데리고 다녀야 한다. 내가 선택한 것이니 내가 감당할 수밖에.
그러다 최근 친구 따라 중국 윈남성에 가게 되었다. 내 친구 리우는 매년 4월이면 윈남 중에서도 오지에 속하는 빙도 마을에 간다. 그곳에 머물며 손으로 차를 따고, 불에 덖고, 햇볕에 말리며 보이차를 만드는 과정을 함께한다. “나도 같이 갈래!” 불안의 수위가 낮은 날이었을까? 용감해진 나는 손을 번쩍 들었고, 중국행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다. 일단 손을 들고 나면, 모든 것이 시작된다. 지금이 아니면 봄에 새로 난 싱그러운 찻잎의 향을 맡지 못할지도 몰라. 한 번도 맡지 못한 그 향이 궁금했다. 향은 그곳에 가야 맡을 수 있는 거니까. 불안을 이기는 건 호기심일지도 모르겠다.
제주에서 상하이까지 비행기로 한 시간 반, 상하이에서 린창 공항까지 네 시간. 그리고 다시 차로 한 시간 남짓 달려 맹고진에 도착했다. 거기서부터 다시 한 시간 정도 높고 깊은 산을 구불구불 감싸며 도는 좁은 길을 달리면 우리의 최종 목적지 빙도 노채 마을에 닿는다. 도로 폭이 넓지 않아 차 두 대가 동시에 지나갈 수 없고, 한쪽은 가파른 낭떠러지다. 하지만 가장자리에 안전장치는 없다. 앞차가 보이지 않는 커브 길마다 차는 속도를 줄이는 대신 빵빵 클랙슨을 울린다. 그러다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차를 만나면, 둘 중 한 대가 거침없이 후진을 한다. 그러니까 여기는 사람보다 나무가, 자동차보다 산이 먼저인 곳. 정신을 차려보니 이곳에 와 있다. 문득 집 생각이 난다. 습관처럼 홈캠을 켜고, 나의 사랑이자 불안이 소파 위에 웅크리고 자고 있는 장면을 확인한 뒤, 조금 안심한 채로 카메라를 끈다. 산속이라 걱정했는데, 휴대폰 전파는 잘 잡힌다. 휴, 다행이다.
집을 떠나면 불안하다면서, 왜 하필 보이차의 고장, 윈남에 갔느냐고, 평소 차 마시는 걸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하겠다. 차를 마시지 않는 사람들보다는 차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주로 보이차를 마신다. 보이차는 중국 남서부 윈남성의 차나무에서 채취한 잎으로 만든 차다. 하지만 차 애호가들만큼 차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차를 마시기도 하지만, 어느 날은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다만, 항상 궁금했다. 내 친구가 왜 그곳을 사랑하는지. 이 친구 이야기를 언젠가는 꼭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하게 될 줄은 몰랐네. 리우는 20여 년 전 처음 한국에 왔고, 치열하게 일했다. 그러다가 번아웃이 오면서, 일을 멈추고 잠시 쉬러 제주에 오게 된다. 몇 년 전 그때 제주의 한 요가원에서 우리는 처음 만났다. 한달살이가 끝나자 일 년 살 집을 구하더니, 일년살이가 끝나자 전셋집을 구했고, 그다음엔 집을 지었다. 아니 나도 아직 집을 못 지었는데. 집 옆에 차실도 만들었다.
리우 덕분에 좋은 차를 만났고, 시행착오 없이 차 생활을 시작했다. 그뿐 아니다. 리우와 친구가 되면서 내 세상은 한 뼘, 아니 열 뼘 넓어졌다. 우선 중국에 대해 쉽게 가졌던 편견들이 모두 깨졌다. 당신이 알고 있는 중국에 대한 생각은 대체로 사실이 아니다. 그리고 어디서나 뿌리를 내리지만, 뿌리내린 땅에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도 알게 되었다. 나도 사는 곳을 어렵지 않게 옮겨 다니는 편이고, 어디서든 적응을 잘하는 사람이지만, 내가 언제나 약간 주저하며 어정쩡하게 뿌리를 내린 채, 주변 나무와 비슷한 모양의 이파리를 내밀고 적당히 비슷하게 맞춰 산다면, 리우는 곧장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지만, 자신만의 이파리 모양을 버리지 않았다. 뿌리가 얕아 흔들리는 나무인 나는, 여간해선 흔들리지 않는 리우 나무를 보고 있는 게 좋았다.
지금 나는 우리 집 책상 앞에 앉아 차를 내려 마시고 있다. 윈남 빙도 마을에서 직접 가져온 ‘빙도 노채 100년 고수 생차’. 빙도 지역의 100살 이상 나이 먹은 나무에서 딴 잎으로 만든, 인위적으로 발효시키지 않은 차라는 의미다. 나무의 나이가 많을수록 땅의 기운을 깊게 가지고 있어 좋은 차로 여겨진다. 수확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햇차라 맛이 산뜻하고 맑다.
비행기 두 번, 차 두 번을 타고 빙도 다산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초제소(차 덖는 곳)에 머무는 동안, 딱히 한 일은 없다. 불과 며칠 전에 수확했다는 햇차로 쉬지 않고 차를 내려 마셨다. 바구니 안에 수북이 쌓여 있는 차를 무게도 재지 않은 채 대충 손으로 집어 투박한 다기 안에 넘치게 채우고 내려 마신 차 맛이 정말 좋았다. 어디에나 귤이 쌓여 있어 손끝이 노래지고 속이 쓰리도록 귤을 까먹는 제주도의 초겨울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다 수확한 찻잎이 초제소에 도착하면 반갑게 마중을 나갔다. 윈남의 차나무는 키가 무척 커서, 높은 사다리로도 닿지 않는 가지가 많아 굵고 튼튼한 대나무로 나무 주변에 지지대를 설치해 둔다. 수확은 주로 윈남 소수 민족들이 하는데, 어깨에 커다란 바구니를 메고 지지대를 타고 올라 가지 끝에 달린 새순을 딴다. 나도 한번 올라가 봤는데, 다리가 후들거려 서둘러 내려와야 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수확한 잎은 골고루 펴서 말리듯 널어 둔다. 이때는 전문가가 아닌 나도 찻잎을 만져볼 수 있다. 두 손 가득 잎을 담아 얼굴을 파묻고 향을 맡는다. 몸 구석구석에 향이 닿길 바라며 가능한 한 깊은숨을 들이쉰다. 아, 내가 이 향을 맡으러 여기에 왔지.
그 상태로 잎을 펼쳐 두고 얼마간 시간이 흐르면 나무 장작을 떼 불을 피우고 솥을 뜨겁게 달궈 잎을 모아 덖는다. 이후 유념 과정을 거쳐 그대로 햇볕 아래 말리면 된다. 코끝을 채우는 방금 딴 잎의 향과 솥의 열기를 타고 나는 향, 그리고 햇볕 아래 마르면서 공기를 채우는 향이 각각 다르다. 아, 그립다. 자리에서 일어나 햇차가 담긴 통을 열고, 고개를 숙여 차의 향을 맡고 왔다. 더없이 향기롭다. 어떻게 잎에서 이런 향이 나지? 빙도 다산의 공기와 햇볕까지 깊숙이 들이마신다. 빙도에선 고개를 돌릴 때마다 산과 눈이 마주쳤다. 시야를 가득 채우는 산을 보며 산을 이루고 있는 나무를 헤아렸고, 나무 사이에 난 길을 떠올렸고, 매일 그 아슬아슬한 길을 오가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산 방향으로 바로 앉아 나무와 길과 사람을 생각하다 보면 집을 떠나며 등에 지고 온 나의 불안도 조금씩 사라졌다. 햇볕 아래 바싹 마른 찻잎처럼 어깨가 가벼워졌다
윈남성에 다녀온 후 차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갖게 되었다든가, 차 맛을 극적으로 더 잘 알게 된 것은 아니다. 다만, 잎 하나를 보면 떠오르는 이야기가 많아졌다. 이제 나에게 차를 마시는 일은 깊은 산을 떠올리는 일이다. 내 하루가 한결 풍부해졌다. 그러니 다녀오길 잘했지. 그곳에 직접 가야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안전한 집 안에서는 알 수 없는 것들. 불안을 감당하고, 손을 번쩍 들어야 가질 수 있는 것들. 전과는 다른 나.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2006)라는 루마니아 영화가 있다. 오래전에 봐서 내용은 조금 희미해졌지만, 제목은 오래 남아 내내 나를 두드렸고, 매 순간 내 등을 떠밀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잊고 있었다. 나에게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라는 질문을 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는 걸, 윈남에서 돌아와 깨달았다. 그리고 바로 그 주 주말 경북 구미에 다녀왔다. 구미 공단의 불탄 한국옵티칼 공장 위에 ‘일하게 해 달라.’ 외치며 수백 일간 고공 농성 중인 박정혜, 소현숙 두 여성 노동자가 있다고 했다. 그들을 직접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뿐이었다. 세상사에 관심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농성 현장에 직접 찾아가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불쑥 집에서 나와 비행기를 타고 구미에 가서, 고공에 있는 사람이 웃고 우는 걸 보고 왔다. 그때 거기 내가 있었다.
한 친구를 알게 되었고, 보이차를 마시기 시작했고, 윈남 차 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그 여행은 뜬금없이 나를 구미로 등 떠밀었다. 매일 똑같던 잔잔한 일상에 뜻밖의 작은 균열이 생겼다. 아름다운 균열이다. 균열 사이로 천천히 좋은 것들이 스밀 것이라는 걸 안다. 그리고 더 단단해질 것이라는 것도. 그 사이로 불안이 낄 틈은 없다. 다녀오길 잘했다. 오늘도 따뜻한 차에 천천히 불안을 녹인다.
글·사진 정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