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언제부터 거기 있었나

살아남은 물건들

그들은 언제부터
거기 있었나

살아남은 물건들

고백하건대 사물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진 않다. 그런데도 곁에는 ‘살아남은’ 물건들이 있다. 한바탕 사건을 겪고 난 후 유독 쓸쓸한 모습이다. 지상의 고독은 자신들에게도 주어진 몫이라는 듯이.

*본 일러스트는 작가 에드워드 고리를 오마주 했습니다.

북극에서 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인류 최후의 곳간이 문을 열었다. 벌써 십여 년 전 일이다.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Svalbard Global Seed Vault’는 기후변화와 자연재해, 핵전쟁으로 위기에 처한 인류가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각종 씨앗을 저장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저장고가 들어선 스발바르 일대는 영구동토 지대로 말 그대로 영원히 얼어있는 땅이다. 그래서 어떤 장치 없이도 무언가를 오래 저장하기에 적합한 장소인데, 노르웨이 북단에 위치한 만큼 생활권,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에서도 자유롭다는 게 선정의 이유였다. 최근에는 인류의 지적 재산을 보관하는 특별한 창고에 관한 소식도 들려왔다. 저장고 근처에 문을 연 북극세계보관소Arctic World Archive가 그것이다. 영구동토 150미터 깊이에 있는 폐탄광에 위치한 보관소는 굉장히 건조하고 낮은 온도를 유지하여 기록을 보관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민간 기업이 운영하며 조건이 맞으면 개인 기록물을 보관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당장 보관소에 간다면 어떤 물건을 맡길 것인가. 소중한 사람의 얼굴이 담긴 사진첩, 재미와 위안을 줄 몇 권의 책, 혹시 모르니 현금도 필요하겠지,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옆에 있는 남편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는 잠시 골몰하더니 한 가지 있다며 오래전 일을 기억해냈다. “올해가 바로 그때야.” 언젠가 들은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며 학우들과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는 이야기. 그것을 운동장 한쪽에 있던 거북이 동상 아래 묻었고, 20년 후에 모여서 다시 열어보기로 했다는 것. 2017년은 꼭 20년 되는 약속의 해였다. 편지를 묻은 장소는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는데, 정확한 위치를 가늠할 수 없어 어쩌면 주변을 모두 파헤쳐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땅속 어딘가에 과거이자 미래 그리고 현재이기도 한 어떤 것이 묻혀있다니. 시골 마을의 학교에서 북극의 폐탄광으로 옮겨지는 물건의 모습을 상상하며 물었다. 대체 편지에는 뭐라고 썼느냐고. 돌아온 답변은 진지하면서도 우스꽝스럽고 그리 놀랍지 않은 것이어서, 이 정도면 거의 예견된 미래가 아닐까 생각했다. 대화가 끝나자 보관소에 두고 싶은 몇 가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살아남은 나의 물건들.

살아남은 목각

어느 겨울, 극지방에 머무른 적이 있다. 여름에는 해가 지지 않는 백야가 펼쳐지지만, 겨울에는 반대로 온 세상에 밤이 내렸다. 오전 11시에 일출이, 오후 1시에 일몰이 시작되었기에 결국 밤인지 낮인지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하루는 오로라 헌팅을 이끄는 요나스를 만났고, 밤새도록 고요한 어둠 속을 헤맸다. 현지 토박이인 요나스는 지친 일행이 몸을 녹이도록 1975년에 지은 할아버지 집으로 데려갔다. 가끔 아버지와 낚시하러 온다며 직접 말린 생선을 보여주더니 오로라를 보는 일도 낚시 같은 거라고 중얼댔다. 우리는 그가 끓인 수프를 먹으며 순록을 치며 살던 원주민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며칠 후, 떠나기 전에 동네 산책에 나섰다. 정오였지만 여전히 밖은 어둑했고, 어디서든 잘 보이는 아문센 동상을 기준으로 동선을 짰다. 그렇게 여기저기 기웃대다가 손으로 깎아 만들었다는 목각 인형을 만났다. 며칠 전 요나스의 말이 떠올라 순록으로 몇 마리 골랐다. 그중 하나가 사라졌음을 깨달은 건 다음 목적지인 런던에 도착하고 나서였다. 자유를 갈망하던 한 녀석이 틈을 놓치지 않고 자연으로 돌아간 게 아닐까 생각하기로 했다. 눈 덮인 고원에서 피요로드와 빙하를 내려다보는 순록, 비록 목각일지라도 그 편이 훨씬 자연스러우니까.

살아남은 묵주

두 명의 사제가 두 채의 성당을 건축하고 홀연히 떠났다. 그들의 헌신과 수고는 몇몇 사람들만이 기억할 뿐이었다. 두 사제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만 어쩐지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둘 다 떠나면서 묵주를 남겼는데, 아쉬운 마음에 제대로 꺼내보지도 않고 봉인해버렸다. 지난해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작고 동근 보관함에 넣어둔 것을 발견했을 때, 두 개의 물건은 엉키고 설켜 군데군데 녹이 슨 상태였다. 풀리지 않은 묵주를 주머니에 욱여넣고 성당을 찾았다. 한곳은 고향에, 다른 곳은 서울에 있지만 두 장소가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성당은 건재했다. 늘 그렇듯이 사람들이 모이고 미사가 진행됐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조용히 떠나간 사제의 그림자와 마주했다. 일정한 지역을 담당하는 교구 신부는 5년마다 다른 곳으로 부임 받아 이동해야 했다. 90년도에 추기경 후보로 거론되던 사제는 성당을 짓자마자 시골 마을로 쫓겨나듯 떠났고, 건축가 출신으로서 북촌에 역사적인 장소를 재건축하는 일에 매달리던 사제는 완공된 지 1년 만에 다른 성당으로 옮겨 가야 했다. 흔적도 보상도 없는 그들의 길을 감히 짐작할 수 없기에 미처 하지 못한 말은 허공으로 흩어졌다. 아직도 누군가 묵주에 관해 물으면, 그 의미를 설명하는 일이 쉽지 않다.

살아남은 찜통

살아남은 물건 중에서 가장 큰 부피를 자랑한다. 굵직한 구황작물 몇 개쯤은 너끈히 들어가지만 보기보다 가볍다. 물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면 투명한 뚜껑에 김이 서린다. 바닥은 불에 쉬이 그을리지 않는다. 작은 그릇가게를 운영하는 시어머니가 오랫동안 아껴둔 것으로, 몇 해 전 홍수가 나서 가게가 물에 잠겼을 때도 살아남은 기특한 물건이다. 문득 물살에 휩쓸려 동네 강가에 떠내려갔다가 바다에 이르게 된 찜통을 상상해본다. 걱정은 없다. 심해에 가라앉더라도 죽거나 분해되지 않고 다시 살아갈 날을 기다릴 것이다. 어쩌면 근처를 지나는 수색꾼에게 발견돼 별안간 구조될지도 모를 일이다. 갓 살림을 시작한 며느리에게 선뜻 건넨 분홍색 냄비는 당신처럼 단단하다. 그것이 보물인 것을 안다. 장롱 깊숙이 넣어두고 가끔 꺼내보는 사진이나 목걸이처럼, 높은 선반 위에 두고 가끔 눈길만 줘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었을 테다. 미국의 시인 칼 샌드버그Carl Sandburg의 말대로 “사람에게서 남는 건 성냥 한 갑을 만들 만큼의 인과, 사형수 한 명을 목매달 못 정도 되는 철이 전부”라면, 찜통은 사람보다 거대한 존재다. 숨이 턱턱 막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더위를 비유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살아남은 종이

서랍에서 뭉텅 발견한 종이에 시간이 꽂혀 있다. 커피 맛도 모르면서 커피에 관한 글을 읽고, 사랑을 해본 적도 없는데 연애를 시시하다고 여기던 시절, 구독하던 잡지에서 오려낸 기사들이다. 그 속에는 토씨 하나 놓칠세라 눈을 부릅뜨고 읽었던 어느 기자의 글을 비롯해 흠모하는 작가와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 ‘조선백반오백년’이라는 식당에서 섬세하게 구운 생선과 녹아내릴 것 같은 소고기, 엄청난 가지 수의 두부와 버섯을 단 10유로에 먹고 감격한 영국인의 미식기행문이 있었다. 꽤 오래전에 쓰였지만 지금도 유효한 원고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매 순간 종이를 읽고 만진다. 언젠가 종이의 무게에 관해 쓴 적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책장이 흐트러지거나 날리지 않도록 잡아주는 도구, ‘문진’을 다루는 기사였는데, 어느 때보다 간절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팔락이는 종잇장이 아무리 가볍다고 한들, 후루룩 읽고 마는 책들이 넘쳐난다고 한들, 그 안에 담긴 글자 수만큼 빼곡한 누군가의 시간과 노력을 잊고 싶지 않다.” 종이로 둘러싸인 방을 둘러본다. 줄 세운 책등이 서로를 지탱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기억과 망각으로부터 살아남을 방법이 있다는 걸 안다. 끝까지 살아남는 물건이 있다면 기필코 종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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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오혜진

일러스트 오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