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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 작가 주시은의 잔잔한 파장
그녀가 말하는
투영된 그림
작가 주시은의 작품에는 감정이 숨겨져 있다. 슬픈지 기쁜지, 우는지 웃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림 속, 먼 곳을 응시하는 두 눈은 내 안의 무언가를 책망하기도 하고 다시 감싸주기도 한다. 그 일련의 과정은 유리 같은 것이라 가끔 나도 모르는 나를 마주하게 만든다.
INTERVIEWEE
Illustrator 주시은(33)
그녀는 생각보다 차분했다. 작은 조약돌이 만든 잔잔한 파장처럼 고요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커다란 창 옆,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소리를 가까이 들으며 무엇을 만든다. 주로 무궁화와 월계수 잎을 그리는 일을 한다. 가끔 외화를 틀고 작업을 하는데, 그리 귀담아듣진 않는 것 같다. 적막과 소음은 그녀의 좋은 친구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귀에 어떤 소리를 들려주어도 결국 그녀의 맞은편 의자 위엔 알 듯 말 듯한 표정을 지은 소년이 앉아있을 것만 같다.
그림을 언제 시작하게 됐고, 그 계기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유치원 땐 장판과 벽지에 가득 낙서했어요. 옛날 장판은 폭신하고 볼펜이 부드럽게 그려져서 그 감촉이 좋았거든요. 학교에 입학하게 된 후 학생 시절 내내 미술부 활동을 했고, 미대를 졸업 후 작가활동을 시작했어요. 정말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일들이었죠.
그림의 선 하나하나가 다 보일 만큼 세밀하게 묘사하시잖아요. 자신만의 그림체를 가지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요?
입시 미술을 지나 대학에 들어가면서 저만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던 것 같아요. 오래전부터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데, 그림은 저에게 심리치료 같은 존재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어요. 세밀하게 표현하는 반복적인 행위로 잠시 나를 잊고 복잡한 마음을 풀어내는 과정이죠. 그리고 마음의 공간을 찾고, 풀과 꽃을 그리면서 행복한 낙원과 바람을 상상합니다.
작가님만의 독립적인 그림으로 인정받았을 때는 언제라고 생각하세요?
나만의 그림으로 인정이라, 그냥 부끄러워요. 단체전이고 개인전이고 전시를 할 때 몇몇 사람들이 좋아해 주시거나 찾아주시면 그걸로 인정받은 기분이 들어요. 그 분야에서 유명한 디렉터와 기획자들이 찾아주실 때도요.
작가님 그림에 나오는 인물들은 주로 무표정입니다. 밝게 웃거나 인상을 쓰거나 하는 감정표현이 전혀 없어서인지 밝은색 위주인 그림이지만 따뜻하단 느낌이 적어요. 꼭 그림이 밝은 감정만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이 전달하고 싶은 감정이 무엇이었나요?
제가 홈페이지나 블로그 활동을 좀 해보려 했으나 컴퓨터와 친하지 않아서 방구석에서 만든 것들을 반들반들하게 문지르고만 있어요. 밝고 귀여운 그림들도 있는데 안 올리는 것뿐! (농담입니다)
그런데 질문해주신 내용이 맞아요. 그림 대부분에 밝고 화려한 색을 쓰지만 항상 무표정으로 그려요. 점점 감정표현에 소극적이게 되는 저와 닮아있는 것 같아요.
항상 낙원을 뛰어다니는 상상을 해요. 제 그림 중에 꽃과 풀이 있는 숲속의 사슴을 그린 그림이있는데, 사슴의 표정이 아주 정적입니다. 넓은 풀숲을 달리고 싶지만 박제된듯한 모습으로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있죠. 현실에 갇혀버린 제 모습이기도 해요. 화려한 색으로 틀을 만들어 동물 오브제를 붙여 낙원 속에 있는 것처럼 만들어 주지만, 낙원이라는 틀에 저의 섬(작업실) 안에 가둬버린 건 아닌지 가끔 생각합니다. 그래서 화려한 색 뒤에 공허와 정적이 흐르나 봐요. 하지만 표정이 정적이기 때문에 보는 사람 마음대로 그때그때의 감정을 실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눈매가 날카롭지만 부드러운 털을 가진 사슴은 저에게 따뜻한 동물로 다가오는 것처럼요.
오브제를 이용한 작품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예전부터 물건에 대한 욕심이 많았어요. 지금은 무소유를 외치고 있습니다만, 일상 물건들을 보면 새로운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싶었어요. 사진은 찍으면 그 기록과 추억이 남잖아요. 그와 같이 액자와 상자 속에 그때만의 감정을 기록하고 저의 욕심이나 욕망을 넣어 담아두고 싶었어요.
오브제라는 건 무한 가지 잖아요. 작품을 만들 때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요?
맞아요. 무한한 것 같아요. 모든 일상의 것들이 오브제죠. 기준은 없지만, 주로 저의 감정을 움직이는 것들을 선택하게 돼요.
시장구경을 참 좋아해요. 그곳에서 발견하는 싸구려 물건들이 예뻐 보일 때가 많거든요. 유년기 때의 따뜻한 추억을 느낄 때도 있고, 키치한 느낌이 마음에 들어서 작품을 만들 때 자주 사용해요. 이것도 병인데, 마음에 드는 것만 보면 칠하고 싶고, 옛 상자에 넣어두었다가 또 열어서 보고 싶어요.
하루에 몇 시간 정도 작업하세요? 규칙적으로 작업하시는 편인가요?
규칙적이지 않아요. 눈에 보이는 대로 하고 싶을 때 집중적으로 해요. 어느 날은 작업을 안 할 때도 있고 하고 싶을 때는 종일 앉아있어요. 그림은 저의 욕구를 푸는 수단인 것 같아요. 일상적인 일을 할 때도 항상 머릿속에서 구상을 해요. ‘저 화분에 이런 그림을 그려줘야겠다’, ‘내일 뒷산에 갈 때 인형을 가져와 사진을 찍어봐야겠다’ 이런 식의 단순한 생각이요.
작업하실 때 주변 환경은 어떤가요?
주변 환경은 조용한 편이에요. 그래도 너무 조용한 건 오히려 불편해서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틀어 놓고 작업을 해요. 1년 전까지만 해도 작업실이 있어서 방안 가득 액자를 걸어두고 물건을 쌓아두며 만족스러워했어요. 지금은 작업실이 있을 때보단 불편하긴 한데, 뭐 저는 작업 할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좋아요.
작가님은 영향을 어디에서 많이 받나요? 영감과는 별개로, 쉽게 행복을 주거나 상처를 주는 ‘무엇’이 있다면요?
영향이라고 한다면 제가 속한 환경이겠죠.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서요. 사람은 자기가 속한 주변환경에서 영향을 많이 받잖아요. 사람들과 대화도 나누고 또 그곳에만 갇혀 빠지지 않게 친구들이나 가족들과도 많이 이야기하려고 해요. 그림이 많은 책을 봤을 때 행복해요. 서점에서 새로운 영역의 아트북을 볼 때도 좋고, 뒹굴 거리며 만화책 볼 때도 좋아요. 가족들과 산책을 하는 것도, 아침에 늦잠을 자는 것도, 예전이지만 유치원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쳐 주고, 아이들이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행복이죠.
반대로 상처를 받는다면 제가 한 것들, 그린 것들이 현실에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때요. 가끔 저 자신이 현실적이지 못하고 사회적이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될 때가 있거든요.
그림을 그리지 않을 땐 주로 무얼 하나요?
산책해요. 요즘 나이를 먹었는지 자연을 보는 게 그렇게 좋더라고요. 그리고 친구들과 사는 이야기를 하면서 수다해요. 집에서는 자수를 놓고, 공방에 가서 도자기 만드는 것을 배워요. 가끔 동대문이나 방산시장에 가서 재료를 삽니다. 브로치나 팔찌 만드는 걸 좋아해서요. 부천에 있는 만화박물관에 가서 종일 동화책과 만화책을 읽다 오는 것도 좋아합니다.
여행 좋아하시나요?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여행을 좋아하기는 하는데 막상 가려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해요. 겁이 많아서 무작정 훌쩍 떠나보는 여행을 상상만 해요. 20대 때는 여행을 종종 다녔어요. 친구와 둘이 유럽 배낭여행도 가고 일본이나 대만도 다녀오고요. 그중에서 베네치아의 분위기가 참 좋았어요. 도시의 분위기 때문에 마음이 허공에 떠있는 느낌이었죠.
그리고 프랑스에서 루브르 박물관 창가에 기대서 데생을 하는 학생들이 기억에 남네요. 우리나라는 학원에서 다닥다닥 이젤을 붙여 머리만 있는 석고상을 돌려가며 그리고 있는데, 이 친구들은 역동적인 조각상들을 아무데서나 그릴 수 있다는 게 부러웠죠.
여행을 가서 그리는 그림은 평상시와 다르나요? 좀 더 즉흥적이라던가 화려해진다거나 미묘한 차이들이 있을 것 같아요.
조금 다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작업실에서 구상해서 그리는 것보다 즉흥적이고, 여행을 가면 많은 재료를 준비 못 하니 드로잉 위주로 그리게 돼요. 그때그때의 감정을 담을 수 있는 점이 좋은 것 같아요.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이상적인 작품은 무엇인가요?
‘완전한 작품’에 대해서 정의해놓지는 않아요. 개념적이고 사회적인 그림들이 대중에게 영향을 주고 의미가 있겠지만, 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즐겁고 행복한 그림이 이상적인 그림 같아요. 물론 다같이 즐기고 공감할 수 있으면 더 좋겠죠.
그림 그리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의 어린 시절이 궁금해져요. 작가님은 어떤 학생이었나요?
어렸을 때는 평범한 아이였어요. 지금도 평범한 사람이지만요. 자전거를 타며 매일 동네 한 바퀴씩 돌고 친구들이랑 뒷산에 가서 뭔가 대단한 탐험 하듯이 휘젓고 다녔죠. 남자아이같이 크게 떠들고 다니고 매일 나가 놀기를 좋아했었어요. 학생 시절 때도 옷이나 패션보다는 장난감이나 소품에 관심이 많았어요.
나를 꾸미기보다는 쌓여가는 소품들에 만족감을 얻곤 했어요. 지금도 어렸을 때 모았던 물건들을 가지고 있어요.
지금 하고 계시는 프로젝트가 있나요? 소개해주세요.
8월에 롯데 갤러리에서 2인전과 홍대에서 카페전을 했는데 이미 철수를 했어요. 지금은 내년에 있을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어요. 아주 작지만 몇 번 경험을 해봤으니까 이제는 정리된 모습으로 조금 규모 있게 진행해보려고요. 그리고 지금 SSE 프로젝트라는 곳에서 진행하는 아트노트가 나왔어요. 올해 11월쯤엔 ‘모그리지’라는 팀으로 일러스트 작가들과 단체로 구두를 주제로 한 전시를 준비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계속 그림을 그리실 건가요?
그럼요. 어렸을 때부터 한길만 걸어와서 다른 건 생각 못 해봤어요. 나이가 있으니 아이를 낳고 키우게 되면 몇 년간 그림을 손 놓을 수도 있겠지만 평생 그리고 싶은 게 꿈이고 저의 치유입니다.
에디터 이혜인
포토그래퍼 박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