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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에 사는 일
그곳에도
사람이 산다
관광지에 사는 일
“너희 ‘해운대여고’라는 이름이 얼마나 재밌는지 알아?”, “아니요. 뭐가 재밌어요?”, “‘석굴암여고’라는 게 있다고 생각해봐.”, “그러네. 이상하네.” 우리는 관광지에 살고 있구나. 서울 사람들이 일 년 동안 일해 모은 돈으로 휴가 차 오는 해운대에 사는 일은 참 즐거운 일이구나. 수학여행으로 가는 경주를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것도 신나는 일이구나. 그때 나는 그렇게 막연하게 생각했다.
해운대
아빠가 직장을 옮기게 되면서 우리 가족은 처음 부산에서 살게 되었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도 한참 어린 서른한 살의 엄마와 서른세 살의 아빠는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부산이라는 낯선 도시에 다섯 살 딸, 두 살 아들과 이사를 왔다. 회사는 부산 시내 중심가 남포동에 있었다. 보통 직장 근처에 집을 구하기 마련인데, 그때 아빠는 ‘부산까지 와서 사는 거 기왕이면 해운대에서 살자.’라는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그건 아빠가 한 결정 중 가장 좋은 결정이었다고 지금도 나는 생각한다. 아빠는 차로 거의 한 시간을 달려 남포동까지 출퇴근을 했는데, 토요일이면 해운대 미포항에서 회사 근처 부산항까지 배를 타고 출근했다. 그리고 다시 바다를 가로질러 퇴근했다. 아빠에게도 그 시절은 잊지 못할 추억이겠다.
그 덕분에 나는 학창 시절을 해운대에서 보낼 수 있었다. 스무 살 이후 서울에서 생활하며 종종 친구들이 옆에 없어 외롭다 생각했지만, 한편으론 쓸쓸할 때 갈 곳이 있다는 게 정말 든든했다. 종종 밤 기차를 타고 혼자 부산에 갔다. 자정 전에 영등포역에서 무궁화호를 타면 새벽 다섯 시가 조금 넘어 부산역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해운대로 들어가면 이제 막 해가 뜨는 아침이었다. 바닷가를 잠깐 걷다가 제일 먼저 문을 여는 카페에 가서 앉아있으면, 친구들이 하나둘 모였다. 해운대를 걷고 수다를 떨고 맛있는 것을 사 먹는 시간도 좋았지만, 바다 앞 카페에 혼자 앉아 친구들을 기다리는 시간이 나는 제일 좋았다.
경주
부산에서 보낸 어린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는 경주였다. 개교기념일마다 동네에서 친하게 지내는 몇 가족이 모여 당일치기로 경주를 여행했다. 해운대역에서 출발한 기차는 바다를 옆에 끼고 달려 경주역까지 간다. 경주역에 내리면 역 앞에 쭉 늘어서 있는 택시 중 하나를 골라 탔는데, 그 택시들은 ‘총알택시’라고 불렸다. 이름처럼 목적지와 목적지 사이를 정말 총알처럼 빠르게 달렸다. 택시에서 내리면 우리는 다 같이 “살았다.”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관광이 끝나면 다시 목숨을 걸고 ‘총알택시’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왜 그렇게까지 무리해서 바쁘게 다녀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당일치기 여행이었고 평일이었으니 엄마들은 저녁 시간이 되기 전에 해운대로 돌아왔어야 했을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어린 우리들만 그저 신났다.
사실 경주에 대한 기억은 희미한데, 총알택시 안에서 긴장한 엄마가 이웃의 하얀 바지를 너무 세게 쥐어서 누르스름한 땀 자국을 냈던 일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걸 보며 모두 함께 깔깔 웃던 기억도 어제처럼 선명하다.
바르셀로나
지금 나는 바르셀로나의 구시가지에 살고 있다. 낮이나 밤이나 붐비는 곳이다. 방음이 잘 되지 않는 오래된 건물 창 밖으로 밤마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인다. 여행객들의 소음에 잠들지 못하던 자정이 넘은 시간, 참다못해 창문을 열고 골목을 향해 만국 공용어 “쉿!”을 길게 외치지만, 여간해서는 그들에게 닿지 않는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면, 집집마다 빨래가 널려있어 당신들이 떠들고 있는 이 길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쯤 금방 알 수 있을 텐데, 여행에 취한 관광객들이 거기까지 생각할 리가 만무하다.
바로 앞집은 여행자 숙소다. 여행객들이 테라스에 나와서 하는 이야기가 우리 집 안까지 고스란히 들린다. 그 숙소 아래층에는 아이가 있는 가족들이 사는데, 여행객들이 그 집 테라스 쪽으로 자꾸 담배꽁초를 떨어뜨려 빨래가 망가지는 일이 벌써 여러 번 있었다. 아이 아빠는 몇 번이나 씩씩거리며 윗집으로 올라갔다. 이렇듯 관광도시 바르셀로나에서 사는 일은 동시에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을 견디는 일이다. 하지만 관광객들에게 주민은 보이지 않는다. 이 고민은 우리만 하는 게 아니라서, 바르셀로나에서는 “여기 사람이 살고 있다.”, “나는 관광객이 아니다.”라는 현수막이 달린 테라스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제주도
제주 금능리 마을의 카페 ’그 곶’ 맞은편 집에는 쫑쫑이라는 강아지가 살았다. 쫑쫑이는 카페에 손님이 오면 쫑쫑거리며 다가와 꼬리를 흔든다. 우리도 갈 때마다 쫑쫑이와 인사를 나누곤 했다. 어느 날, 렌터카가 마을 길을 쌩 달리다 쫑쫑이를 치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는데, 그 후로 한참을 쫑쫑이는 차와 사람을 무서워했다. 카페 그 곶이 있는 금능은 아름다운 바다로 유명한 해수욕장이지만, 한편으론 작은 어촌 마을이다. 하지만 여행객들은 그런 건 알려고 하지 않는다.
관광객들이 질주하는 길은 차가 없고 한적하지만 달리기 좋은 도로는 아니다. 허리가 90도로 구부러진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걷고 고양이는 사뿐사뿐 길을 건너며 개들이 촐랑촐랑 뛰어노는 시골 마을이다. 원래 차가 많은 동네가 아니었으니까 고양이도 개도 할머니도 아이들도 천천히 걷고 또 뛰어놀아도 괜찮은 동네였다. 이런 동네에 차도 많아지고 사람도 많아졌다. 그리고 그만큼 로드킬이 늘었다. 유명한 카페 앞집은 살림집이다. 손님들이 줄 서있는 식당 뒷집도 살림집이다. 여행자들은 그걸 자주 잊는다. 나도 살면서 겨우 알았다.
과테말라
산페드로
과테말라 산페드로는 배낭여행객들이 많이 모이는 호숫가 마을이다. 여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배낭여행자였던 나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산페드로가 마음에 쏙 들었다. 웃통을 벗고 레게 머리를 한 낯모를 서양 여행자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밤이면 술을 마시고, 별을 머리에 이고 숙소로 들어갔다. 그러다 우연히 호숫가에서 그 동네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니까 산페드로에 사는 사람들 말이다. 엄마가 빨래를 하는 동안 아이들은 수영을 했다.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함께 한참 시간을 보냈다. 그 후로 내게는 여행자들이 보이기 전에 아이들이 먼저 보였다. 사는 사람들이 보였다. 목소리를 키울 수가 없었다. 누군가는 술에 취해, 또 다른 누군가는 약에 취해, 걷고 있는 거리 바로 옆, 유난히 얇은 벽 뒤에는 아이들이 잠들어 있을 테니까. 그날 이후 나는 거리를 걸을 때 목소리를 낮췄고, 지나가다 맥주병 조각이 보이면 슬며시 주웠다.
교복을 입고 해운대 바닷가를 걸으면 서울 말씨를 쓰는 남자들이 들뜬 목소리로 다가와 “같이 놀자.”고 했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냥 하교 길이었다. 총알택시로 달리던 경주의 도로도 누군가에게는 등교 길이었을 것이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 지금도 창문을 통해 바르셀로나 골목의 시끄러운 소음이 들린다. 오늘 밤도 조용히 자기는 글렀다. 어느 곳도 관광지이기만 한 곳은 없다. 해운대에서 경주로, 제주에서 바르셀로나로 이어지는 생활과 여행과 추억과 사건들을 뒤죽박죽 떠올리며, 나는 오늘도 그 생각을 하는 중이다. 모든 여행지에는 사람이 살고 있다. 우리는 여행할 때 그것만 기억하면 된다.
글 정다운
사진 박두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