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치며 사는 사람

박찬용 — 프리랜서 에디터

고치는 일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포기할지 결정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박찬용은 정답 없는 세계 안에서 완성도와 현실성, 효율과 비효율, 욕망과 타협 사이를 오가며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선택을 해왔다. 한 페이지의 지면 위에서도, 자신이 꾸리는 집에서도, 고치고 또 고치며.

그 과정을 지나오며 ‘내가 원하는 주거 공간은 이런 곳’이라는 나름의 정의가 생기기도 했을까요?

2020년대 버전의 저를 기준으로 말하자면요. 일단 집에 책이 많은 편이라, 책을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집을 원했어요. 책등이 바래지 않고 오랫동안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공간이요. 그래서 이 집이 북향이라는 점이 오히려 구매를 망설이지 않게 만든 이유이기도 했어요. 이 집을 보면 큰방 하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북향이에요. 작은방 북향, 화장실 서향, 큰방은 남향. 거실을 비롯한 나머지 공간들은 거의 다 북향이죠. 북향이면 직사광선이 강하지 않아서 가구나 책이 덜 바래잖아요. 그리고 집을 고쳤을 때 오래 버틸 수 있도록 기본 구조, 그러니까 원판이 튼튼한 집이 제가 원하던 주거 공간이었어요. 이 집은 그런 조건을 갖추고 있었고, 그래서 저는 이곳을 선택한 거죠.

 

살아보니 예상하지 못했던 불편함이나 어려운 점도 있었어요?

있긴 있었어요. 다만 해결된 것도 있고, 제가 익숙해진 것도 있는데요. 해결된 건 단수 문제예요. 이 집이 오래된 집이라 수도가 한 세대씩 독립돼 있지 않고, 한 라인으로 들어오거든요. 이사 올 때부터 아래층에서 물을 쓰면 위층에서 물이 안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어요. 실제로 그런 경우가 있었고요. 특히 연휴처럼 사람들이 집에 오래 머물 땐, 아래층에서 씻고 위층에서 빨래를 돌리면 제 쪽에서 물이 안 나오는 상황이 생기기도 했어요. 제가 늘 물을 틀어놓는 편은 아니라 괜찮았지만, 씻고 바로 외출해야 할 때는 조금 곤란했죠. 그런데 알고 보니 수도 라인이 워낙 오래돼서 물이 많이 새고 있던 거예요. 그래서 지난 늦가을에 건물 전체 수도 라인을 한 번에 새로 공사했어요. 그 이후로는 물이 거짓말처럼 콸콸 나와서, 지금은 그 부분에서 전혀 불편함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그 외 예상 밖의 불편함은 별로 없어요. 주차가 애매하고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점, 택시가 잘 안 잡힐 때가 있다는 점 정도가 있지만, 이건 예상 밖의 불편은 아니었어요. 그런 동네는 서울에 워낙 많기도 하고요. 아침에 지갑을 두고 나와서 다시 20분을 걸어 올라가야 했던 적은 있죠. 하지만 그것도 몰랐던 조건은 아니었고, 누가 속인 것도 아니니까요.

 

결국 자신에게 필요하고 필요하지 않은 게 무엇인지 아는 게 중요해 보여요. 에디터님은 자신의 기호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저에게는 중요한 일인데요. 동시에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도 생각해요. 이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비슷한 관심사를 공유하니까 오래,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죠. 하지만 그런 요소가 없다고 삶이 건조해지거나 재미없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빅터 프랭클이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극한의 상황 속에서는 인간의 취향이나 개별적인 개성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쓴 적이 있잖아요. 저는 그 말에 점점 더 공감하게 돼요. 이렇게 살지 않아도 사람은 각자 개성을 가지고 있고, 반대로 아주 잘 꾸며진 삶을 살아도 개성 없는 사람도 있거든요. 요즘 사회를 보면 ‘액세서리처럼 소비되는 개성’을 권하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와인도 알아야 하고, 커피도 알아야 하고, 디자인 가구나 옷, 신발도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하는 것처럼요. 물론 자기가 원하는 걸 추구하는 건 무엇이든 괜찮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런 것들이 또 하나의 스펙처럼 요구되는 순간에는, 저는 그다지 공감이 되지 않더라고요.

 

에디터님은 스스로의 기호에 대해 아는 게 중요하다 했는데, 자신의 기호를 조금씩 알아가게 된 방식이 있을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저는 인생을 꽤 허비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누구나 삶의 시간과 자원이 유한하잖아요. 어떤 사람들은 그 시간을 잘 살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기술을 쌓고 돈을 벌죠. 그런데 저는 그런 것들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 했던, 꽤 나태한 청소년이자 청년이었어요. 늘 예산은 한정돼 있었지만, 그렇다고 빚을 내서 비싼 걸 사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예산 안에서 나는 무엇을 취할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하게 됐고요. 그 과정에서 유행하지 않거나, 이미 유행이 지난 물건들 가운데서도 제 눈에는 괜찮고, 나름의 의미가 느껴지는 것들을 찾게 됐죠. 그렇게 선택한 것들이 하나둘 쌓이면서 지금의 제 기호가 만들어진 게 아닐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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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황진아

포토그래퍼 최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