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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강현 ㅡ 후로기오피스
몇 년 전부터 전주의 공기는 분명 달라졌다. 카페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기능적 장소에서 다양한 사람이 교류하는 문화 공간으로 바뀌었고, 전례 없던 실험적 행사들이 도시에 소소한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변화는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전주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이 흐름에는 기획자 백강현, 그리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젊은 주인장들이 있다. 그들은 오래된 도시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이곳의 지도를 다시 그려간다.
매년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전주 영화의 거리. 이곳엔 흡사 오래된 병원처럼 보이는 거대한 상가 건물이 우뚝 서 있다. “전주 객사 cgv 옆 건물 뉴롯데오피스텔 오른쪽 엘리베이터 이용하고 4층 417호 까꿍.” 주인장이 인터넷 지도에 게시한 설명 글을 들여다봤다. 정말 이런 곳에 후로기오피스가 있단 말이지. 4층으로 올라가는 버튼을 눌렀다. 적막이 흐르는 복도를 따라가다 마주친 건 후로기오피스의 개구로 로고가 붙어 있는 호실. 문을 열자 주인장 백강현 씨가 나를 맞는다.
그의 직업은 하나로 특정하기 어렵다. 후로기오피스와 독립 출판사 ‘닌겐 페이퍼 프레스’ 운영부터 디자인, 디제잉, 브랜딩, 이벤트 기획까지 취향에서 파생된 다양한 활동들에 손을 뻗고 있기 때문. 다재다능한 그의 여러 얼굴 중에서도 나는 기획자로서의 백강현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는 공간이 문화로 기능할 수 있도록 전략을 세운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공간들의 내부 구조와 콘셉트, 디자인 요소를 디렉팅하거나 이벤트를 열어 문화적 이야기가 파생될 수 있도록 기획하는 것.
이를 위해 그가 선택한 방법은 친구로서 오랜 연을 맺어왔던 공간 운영자들과의 풍성한 대화였다. 많은 대화를 통해 주인장의 취향을 깊게 파악하고, 그들의 다양한 요구를 일관성 있게 정리했다고. 그 과정에서 도출한 콘셉트를 공간 곳곳에 불어넣어, 완성도 높은 브랜딩을 이끌어 냈다. 주인장을 똑 닮았으나 ‘백강현식 기획’이 한 스푼 섞인 공간들은 전주 곳곳에 하나둘 문을 열었다.
각 공간은 카페, 바 등으로 원래 목적에 충실하게 운영되면서도 때때로 새로운 모습을 갖춘다. 강현 씨가 하나의 주제로 행사를 열어,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리는 문화의 장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물 가게는 뮤지션이 함께하는 파티 공간이 되고, 카페는 시기적절한 요리를 내어주는 식당으로도 변모한다. 그가 이런 재미난 일을 벌이는 동안, 전주는 조금씩 새로워졌다. 낯선 문화적 움직임을 수용한 이 도시는 분명 이전과는 다른 얼굴이다. 나는 강현 씨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분야를 사랑하는 이들이 좋아하는 일을 더 잘 해낼 수 있도록 고민한 흔적을 좇아 보기로 했다.
전주 객사에 자리한 선물 가게. 주인장은 강현 씨다. 세계 곳곳의 음반과 의류, 소품부터 그가 운영하는 독립 출판사 ‘닌겐 페이퍼 프레스’의 출판물 등을 판매 중.
“수집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레코드, 기발한 책들, 오래된 기업 티셔츠, 사용법이 궁금해지는 독특한 물건들…. 후로기오피스는 그런 저의 생활이 모인 공간입니다. 번듯한 가게로서 돈을 벌고 싶었다기보다는 취향이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가게에서 소개하는 것 중 제 취향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는 듯합니다. 대체로 누군가 어떤 물건을 파느냐고 물어본다면, ‘쉽게 살 수 없는 것, 사람들에게 소외된 것’을 판다고 해요. 이건 가게 문을 닫기 전까지 지켜내고 싶은 신념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A.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주객사3길 62, 417호
O. 금-일요일 15:00-19:00, 월-목요일 휴무
후로기오피스 제2회 야간 뮤직 프로그램
2025. 05. 02 – 05. 05
영화계, 클럽, 베뉴, 스테이지 등 다양한 채널에서 활동하는 음악 커뮤니티 속 인물들과 4일간 프로그램을 함께했다. ‘웰빙 댄스 디제이’부터 올해로 2회를 맞이한 ‘닫힌 음악회 라이브’, ‘클리크 레코드 일동의 단합 세션’ 그리고 10년의 우정을 지켜온 ‘신도시와 우주만물 친구들의 디제잉 소풍’까지 편성했다.
주인장 김정인 씨가 운영하는 전주 객사의 카페, 가게 뒤편에서 직접 로스팅한 커피콩과 더불어 ‘두유 참깨 푸딩’, ‘산딸기 스쿼시’ 등 독특한 메뉴가 존재한다. 간단한 점심 메뉴와 주류도 함께 제공한다.
“포도시커피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왔던 운영자 정인 씨로 시작한 공간입니다. 공간을 차리기 이전부터 정인 씨는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커피를 내려주는 활동을 해왔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여우를 상징하는 로고를 그려주게 되었고, 당시의 인연으로 지금의 포도시까지 이어졌어요. 포도시는 정인 씨와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가 자기 일을 대하는 신념과 태도, 그리고 살아가는 방식까지도요. 포도시를 만들어 줄 때, 그런 정인 씨를 생각하며 수더분한 동네의 커피점을 상상했고, 그녀의 이름표가 새겨진 커피 한 잔이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지나치게 멋 내지 않아 수수한 듯 정갈한 메뉴들, 사장님의 분주함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는 주방과 가까운 바 테이블, 또 어딘가 취향이 확실해 보이는 여러 나라의 지역 음악까지. 이런 작은 부분들이 손님들에게 마음으로 전해지도록 설계하고, 전략을 세웠습니다.”
A.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주객사2길 92, 1층
O. 목-화요일 12:00-20:00, 수요일 휴무
연말 팥죽 사업
2024. 12. 29 – 12. 31
연말을 맞아 강현 씨가 직접 요리한 팥죽을 매일 20그릇씩 내어주었다. 한 그릇은 오천 원, 국산 팥을 썼다는 후문.
주인장 양석원 씨가 직접 볶은 원두로 커피를 내어주는 로스터리 카페. 이름은 무언가를 경유한다는 뜻의 ‘Via’처럼 동네를 거닐다 편하게 들를 만한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포도시와 마찬가지로 석원 씨도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바이아커피스토어는 가게의 이름부터 며칠 동안 함께 고민하며 같이 정하곤 했었죠. 석원 씨는 로스팅을 위주로 운영될 수 있는 공간을 원했고, 작업실과 같이 ‘자신이 생활하는 영역’에서 취향이 공유되는 사람들과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런 석원 씨의 신념과 개성이 돋보일 수 있는 공간을 계획했어요. 저는 그를 보며 ‘로스터가 내려주는 커피집’ 이라는 개념을 떠올렸고, 그 상상이 공간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운영자 양석원 그리고 목공 디자이너 이주광 씨와 꾸준히 소통하고 협력하여 이곳을 만들어 갔습니다. 저는 공간 최초의 구조를 발상하고, 로고 및 코어 그래픽 디자인과 상품 개발, 소품 스타일링으로 참여했습니다. 나아가 원두를 숫자와 색상으로 구분해, 손님들이 원두 종류를 쉽게 이해하고 주문할 방법을 제안했죠.”
A. 전북 전주시 완산구 현무1길 21-15, 1층
O. 수-일요일 08:00-16:00, 월·화요일 휴무
Via Coffee Store Welcome Party with Purin
: smoothing sounds for via beans
2024. 05. 03
정식 오픈을 기념해 리스닝 모임 ‘푸린’이 바이아 로스팅룸을 찾아 원두를 위한 태교 음악을 들려줬다. “까다로운 로스팅 환경에서 긴장감을 풀어주는 부드럽고 섬세한 소리가 왠지 커피를 조금 더 맛있게 해주리라 기대했다”는 행사 소개 문구가 흥미롭다.
“코어그래픽 리뉴얼을 맡았습니다. 매튜는 바이아커피스토어와 꾸준히 협력하는 가게로, 바이아보다는 디저트와 서비스에 더 무게를 두고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매튜를 리뉴얼 하기 전 떠올랐던 건, 하얀 건물의 상징적이고 편안한 분위기도 있었지만, 운영자들의 가까운 접객, 친절한 배려였습니다. 그런 매튜의 친절한 미소가 공간과 함께 기억되기 위해서는 확실한 아이콘, 직관적인 해석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단조로운 색상과 matthew의 m과 t를 약자로 삼아 타이포그래피 로고를 제작했고, 전채은 디자이너와 함께 로고를 활용해 디저트 패키지와 서비스 테이블 용품 등을 제작했습니다. 기업 Apple이 90년대에 선행했던 방식, 그리고 교토 기반의 Arabica Coffee의 직설적인 UI·UX 방식에서 도움을 받아 공간에서 활용된 그래픽들이 맥락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고민했습니다. 그런 균일한 방식이 공간의 품질과 서비스의 인상으로도 남을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A. 전북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동1가 218-12
O. 매일 10:00-20:00
“바 스카프는 제가 서울에서 처음 맡은 공간입니다. 그리고 지금 가장 만족하고 있는 공간 중 하나이기도 하죠. 바텐더로 일해왔던 이도헌 씨는 저에게 언젠가 나만의 가게를 하게 되면, 매일 하얀 셔츠를 입고 바를 지키고 싶다고 이야기했었습니다. 스카프라는 가게의 이름도 거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번화가에서 살짝 비껴간 어느 좁은 골목에서 우연히 발견한 작은 술집에, 지키고 싶은 신념이 있다는 듯 매일 하얀 셔츠를 입고있는 주인을 마주친다면, 어째설까 홀린 듯 들어가게 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8평 남짓한 공간에 좌석은 단 아홉 석 밖에 준비되어 있지 않지만, 갖출 수 있는 모든 것을 꽤 적절하게 갖추고 있습니다. 스카프는 그런 겸손하고 욕심 없는 도헌 씨의 태도를 반영한 공간입니다. 이번 공간을 구상하고 디렉션을 줄 때 가장 기본의 것에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 공간도 바이아커피스토어를 함께 작업했던 목공 디자이너 이주광, 그리고 이번에 새롭게 일하게 된 안용찬, 문상호 씨와 함께했습니다.”
A. 서울 성동구 성덕정19길 10, 1층
O. 수-목요일 18:00-24:00, 금-일요일 15:00-24:00, 월·화요일 휴무
기획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처음부터 기획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후로기오피스 전에는 1평 남짓한 사무실을 사용하며 복식 문화를 중심으로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었죠. 어쩌다 보니 오래된 일본의 패션 잡지를 모으게 되었고 또 어쩌다 보니 그렇게 수집된 취미들로 이뤄진 작은 팝업을 열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이벤트 자체에 관심을 두게 되어 전시 연계 행사를 주최하거나 상품을 만들어 팝업 스토어를 꾸리는 것을 반복하게 되었죠. 이전의 경험들이 후로기오피스, 그리고 기획자로 활동하는 지금의 저에게 좋은 발판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제가 때로는 부끄럽고 창피하기도 하지만, 일찍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경험해 봐서 다행이라고도 생각해요.
공간, 이벤트, 브랜드 전략을 세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어떤 프로젝트든 그것이 문화적으로 기능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단순한 카페, 작업실의 개념에서 벗어나서 그곳이 문화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가에 집중하죠. 공간은 본래의 목적 이외에도 음악, 미술, 영화와 같은 예술을 매개로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카페를 기획한다고 했을 때, 손님들이 커피 마시기 외에도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카페를 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제가 하는 일인 것 같아요.
강현 씨가 기획한 프로젝트의 특징이 있다면요?
모두를 설득할 수 있고, 여러 분야의 소비자들이 어울릴 만한 것을 기획하려고 해요. 특정한 커뮤니티의 사람들만 즐길 수 있는 걸 만들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요즘엔 국소적인 타기팅으로 편향적인 곳들이 많이 생기고 있는데요. 그런 방식은 사업적인 성공을 불러올 수는 있지만, 사회가 문화로 순환하고 개성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좋은 방향이 아닌 것 같아요. 요즘엔 20-30대 젊은 여성의 소비만을 목표로 설정하는, 다시 말해 사진 찍기 좋은 장소와 음식을 제공하는 공간이 한 거리에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고 생각합니다. 개성과 신념을 유지하면서도 세대와 성별이 자연스럽게 공간과 어우러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다행히도 지금까지 제가 맡아온 공간들은 비교적 제가 꿈꿔온 대로 운영되고 있습니다만, 앞으로 그런 영역이 더 발전하길 바라요.
이벤트는 음식이 소재인 경우가 많아요. 직접 요리도 하던데요. 이유가 궁금했어요.
음식을 좋아하거든요(웃음). 사실 식당을 너무 하고 싶은데, 다른 일로 바빠서 할 수가 없어요. 그나마 음식을 소재로 할 수 있는 건 가게 메뉴 컨설팅, 이벤트마다 맛있는 음식을 잘 내어드리는 일인 거죠. 물론 북페어처럼 규모 있는 이벤트는 전략적으로 접근하지만, 음식을 소재로 한 작은 이벤트들은 그냥 좋아서 하는 거예요. 그래서 상황과 맥락에 적합한 요리로 이벤트를 열어요. 예를 들어서 작년 말복에는 후로기오피스에서 치킨 스튜와 인삼주를 내어줬어요. 인삼주는 행사 한 달 전에 직접 담갔는데, 그냥 소주로 만들면 재미없으니까, 인삼과 어울릴 수 있는 다른 주종 진Gin으로 담갔죠.
이벤트는 시기와 메뉴, 맥락이 적절히 맞아떨어져서 모두의 공감을 끌어내는 게 중요하겠어요.
맞아요. 말씀하신 요소에 더해 공간의 특성까지 모든 박자가 다 맞았을 때 하나의 이벤트가 탄생할 수 있어요. 단순한 수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정말 하고 싶어 해야 하고요. 이 모든 것을 하나하나 따져가며 기획하진 않아요. 반복된 경험 덕분에 ‘응당 그렇게 해야 한다’고 자연스럽게 여기는 부분이 늘어났죠. 이번 추석 연휴에는 재방송을 키워드로 한 이벤트를 계획 중이에요. 명절에 영화 전문 채널에서 재방송 많이 하잖아요. 이 이벤트는 전주에 있는 후로기오피스에서 하기 좋을 거고, 수도권 거주자들이 고향에 내려와서 재밌는 이벤트를 경험할 수 있겠죠. 이렇게 계속 다양한 일들을 기획하면서 한 해를 꾸려가고 있어요.
내가 생각해도 잘했다, 싶은 이벤트도 들어보고 싶어요.
재작년 겨울 후로기오피스에서 ‘오뎅과 재즈’라는 행사를 했어요. 그때 되게 추운 날이었는데요. 공간 중앙에 가스버너 두 개를 켜놓고, 오뎅을 여러 종류 끓여서 손님들이 골라 먹게 했어요. 친구들 몇 명이 재즈를 틀어줬고요. 그러다 창가를 봤는데 안이 너무 더워서 창이 뿌예지더라고요. 그래서 영하의 날씨에 창문을 열어놓고 행사를 했어요. 그런데 사람들로 온기가 가득 찬 그 느낌이 무언가 돈독하게 느껴졌죠. 제가 만든 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 돈독함을 느끼고, 그런 행사를 열었을 때 좋았다 싶어요. 그 돈독함을 신경 쓰다가 아쉬웠던 순간도 있어요. 최근 후로기오피스 3주년에 뷔페를 하겠다고, 잠도 못 자고 혼자 엄청나게 많은 음식을 만든 거예요. 결국 수익도 안 났고, 이번 건 실수했다 싶었어요. 돈보다 구색이 중요한 사람이라 어쩌다 한 번 그런 실수를 하는 것 같아요.
진짜 고생하셨겠네요(웃음). 이런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사람들 반응은 어땠나요? 특히 전주에서요.
이 일을 한 지 6년 정도 되었는데요. 이벤트든 공간이든, 처음엔 다들 낯설어했고 반응이 차가웠어요. 그래서 저는 설득에 굉장히 익숙해요. 작은 도시에서, 수도권 사람들이 즐길 법한 것들을 전해야 하니까요. 초반엔 힘들었고 그만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많지만, 2020년의 전주와 2025년의 전주는 너무 달라요. 받아들이는 태도가 달라졌어요. 이 일을 몇 년간 지속했고, 제가 참여한 공간들도 생겨나면서 설득할 사람이 이제는 늘어난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일들로 서울과의 왕래도 잦은 것 같던데, 전주에 계속 머무는 이유도 궁금해요.
서울은 문화적 인프라가 많아서 좋지만, 너무 복잡해요. 도시 분위기가 왠지 저를 힘들게 해요. 전주를 꼭 지켜야겠다는 사명 의식까진 없어요. 그냥 날 때부터 살아온 지역에서 활동하고 싶을 뿐이지, ‘내가 전주의 문화 혁명을 일으키겠다.’ (웃음) 뭐 그런 건 아니에요. 사실 어디 사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있는 곳으로 사람들을 오게 만들면 된다고 생각해서요. 중요한 건 역시 전략이에요. 서울에 이미 있는 걸 전주에 가져온다는 얄팍한 생각을 하면 안 돼요. 한국에 없는 걸 전주에 만들어야 서울 사람들이 전주까지 발을 내딛어요. 저는 바이아커피나 포도시커피가 그런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그곳들을 대체할 수 있는 공간이 서울에 딱히 없어요.
앞으로 전주에서 꼭 해보고 싶은 기획이나 실험이 있을까요?
전주에서 더 많은 공간을 디렉팅하고 싶어요. 언젠가 엑스포 같은 형태의 거대한 음악 행사도 만들어 보고요. 당분간은 웬만하면 전주를 지키려 해요. 이곳이 계속 바뀌는 모습이 너무 재미있거든요. 황무지에 내 땅을 조금씩 늘려가는 재미랄까요(웃음). 서울은 이미 레드오션이라 제가 있다고 뭐가 달라지겠어요. 그래서 여기서 후로기오피스도 차리고, 공간도 같이 만들면서 해마다 달라지는 사람들의 반응을 체감하며 사는 거죠. 전주가 문화적 인프라가 꽤 괜찮은 도시가 될 때까지는 여기 있고 싶어요.
에디터 차의진
포토그래퍼 박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