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고 단정한 기록

김혜정 — 포토그래퍼
새로운 걸음을 시작하며

여행하는 시선

반가워요. 먼저 소개로 시작해 볼까요?

안녕하세요, 사진 찍는 김혜정입니다. 얼마 전까지 독일에서 지내다가 한국에 돌아왔어요. 요즘은 프리랜서 사진가로 일하면서 틈틈이 일상을 기록하며 지내고 있어요.

 

베를린에서 지냈었죠. 어떻게 그곳으로 떠나게 됐나요?

당시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미래를 고민하던 중에 부모님 권유로 떠나게 됐어요. 어릴 때부터 외국생활을 선망하기도 했는데, 기회다 싶어서 바로 떠날 채비를 했죠. 베를린은 관광도시 느낌이 강하지 않은 점에 끌렸어요. 특유의 자유로움과 날 것의 분위기를 그대로 경험하고 싶었고요. 일단 가서 살아 보기로 한 거죠.

 

바라던 유학 생활이지만 낯설기도 했을 것 같아요.

처음엔 불편한 점이 많았어요. 일요일과 공휴일에는 상점이 대부분 영업을 하지 않아 미리 장을 봐야 하고, 집 열쇠를 사용하는 것처럼 베를린에서는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하는 문화가 남아 있어요. 아주 간단한 행정 업무 처리도 무조건 예약을 잡고 가야 하고요. 한국처럼 빠르고 쉽게 처리하는 문화가 없죠. 그런 점들이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는데 적응하다 보니 어느 순간 느린 생활에 익숙해져갔어요. 베를린 사람들은 주위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인데요. 그들이 사는 방식을 차차 이해하게 되면서 저 또한 스스로 주체가 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많이 배우고 성장하는 계기가 됐죠. 세상을 보는 시야도 전보다 넓어졌어요.

 

적응을 잘 했네요. 베를린에서 전시도 했었는데, 어떤 내용이었나요?

베를린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기획했어요. 모두 베를린에 거주하며 각자 자기 작업을 하는 친구들인데, 회화, 조소, 패션, 사진 등 전공 분야가 다 달랐죠. 그 덕분에 다양한 장르로 구성된 전시를 꾸릴 수 있었어요. 전시는 ‘나’와 ‘이방인’이라는 두 가지 주제로 진행했는데요. 저는 두 주제를 모두 저에 관한 이야기로 풀어냈어요. ‘이방인’이라는 단어 또한 결국 타국에서 살아가는 저 자신과 연결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사적인 공간인 집에서의 일상을 담은 사진과 함께 이방인인 제 시선으로 바라본 독일의 풍경을 전시했어요. 사진 안에 오랫동안 품고 있던 감정을 담기도 하면서 여행하듯 새롭게 발견하는 시선들을 기록했죠.

 

값진 경험이었네요. ‘고요할 정’이라는 단어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어요. 듣기만 해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단어예요.

제 이름 마지막 글자의 한자 뜻이에요. 원래 고요한 분위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또 저를 잘 표현해주는 단어라고 생각해서 그 단어로 저를 대신 소개하고 있어요.

 

원래 조용한 성격인가요?

맞아요. 사실 어릴 때는 조용한 제 성격을 싫어했어요(웃음). 학교나 사회에서는 외향적인 사람을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예전엔 그 분위기에 저를 맞춰가느라 급급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문득 굳이 바꾸려고 애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다움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제가 가진 차분함을 점점 좋아하게 됐죠. 그 후로 제 이름에 담긴 의미를 더 아껴주기로 했어요.

그래서인지 꾸밈없이 깨끗하게 다가오는 분위기라고 할까요. 사진에서 단정함이 느껴졌어요. 화려한 것보다 단정한 걸 더 좋아해요. 사진에 그런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아요.

작업할 때는 제 시선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취향이 짙게 드러나는 편이에요. 어떤 시선에서 바라보아야 더 좋은 사진이 나올지 고민하는 거죠. 지금은 저만의 시선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알아가는 단계인 것 같아요.

 

어떤 시선일지 궁금해요. 주로 어떤 순간에 카메라를 드나요?

여행을 가거나 일상에서 마주친 순간들에 집중하게 돼요. 걷는 걸 좋아해서 밖에 나가면 지칠 때까지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는 편인데요. 돌아다니다 보면 길 위에서 우연히 발견하는 것들이 참 많아요. 정해진 것 없이 저도 모르게 시선이 가는 순간이 있어요. 그럼 바로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어요. 그 순간이 지나가면 또 언제 마주칠지 모르니까요. 어쩌면 늘 관찰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요.

 

자연스러운 사진에 이유가 있었네요. 여행도 좋아하나요?

여행을 정말 좋아해요. 제 삶에서 중요한 가치 중 하나예요. 예전에는 혼자서도 훅훅 잘 떠나고 기회만 생기면 여행을 갔어요. 돌아왔을 때는 항상 에너지를 충전하고 오는 느낌을 받았죠.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그때의 기억으로 하루하루를 버텨 나가고요. 그리고 방전될 때쯤 또 다시 여행을 떠나는 거죠!

 

여행에 진심이네요(웃음). 여행하면서 기록도 남기나요?

그럼요. 여행의 시작부터 끝까지 거의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겨요.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여행은 시작된다고 생각해서 기록도 함께 시작해요. 평소에는 제 모습을 사진으로 잘 담아두지 않는데요. 신기하게 여행을 가면 저 자신을 기록으로 꼭 남겨요. 여행에 관련된 것만 기록해 두는 노트도 있어요. 단순한 기록 글을 넘어서 여행지와 관련된 다양한 것들을 모아뒀어요. 기차표나 귀여운 영수증같이 노트에 보관할 수 있는 것들이요. 잘 모으려고 전용 파우치를 챙겨 가기도 해요(웃음). 지금은 잠시 멈춰 있지만, 얼른 여행 노트를 맘껏 채울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요.

 

기록 고수네요(웃음)!

그런가요(웃음). 저는 기록하면서 저라는 사람에 대한 데이터를 쌓는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고 나는 어떤 사람인지 취향이 무엇인지 그 안에 모두 들어 있으니까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데이터가 쌓이겠죠. 제가 기록하는 이유는 잊히는 기억들을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 때문이에요. 그래서 더 열심히 사진을 찍고 일기를 써요. 그동안의 기록들을 보면서 그때 그 순간과 감정을 떠올릴 수 있잖아요. 그 순간이 정말 좋아요. 소중한 기억이 훼손되지 않게 지켜주는 일이죠. 사진이 가진 여러 본질 중에서도 기록성을 가장 좋아해요. 중학생 때부터 늘 카메라를 들고 다녔는데요. 아마 그때부터 사진으로 기록을 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지금도 가끔씩 그때 찍은 사진들을 열어보는데 정말 재밌어요. 지금 보면 왜 이렇게 찍었지 싶은 사진들도 많지만(웃음), 변함없이 모두 소중해요.

 

사진과 인연이 길었네요. 앞으로는 사진 안에 어떤 시선을 담아갈까요?

일상 속 풍경을 계속 담아가고 싶어요. 우리의 삶 속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잖아요. 저는 그 안에서 쉽게 놓치는 부분을 잘 발견하면서 한 장면으로 남겨두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평범한 풍경도 사진 안에서는 빛났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사진을 찍는 방식에도 특정한 기준점을 잡아 두지 않아요. 카메라를 들고 있는 순간만큼은 자유롭고 싶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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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지수

Photographer 김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