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어디에나 있었다

어느 날 시작된 동물들과의 눈맞춤

고양이는 한번 보이기 시작하면 계속 시야에 들어온다. 주변에 고양이가 이렇게 많은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고양이를 좋아하게 되면 벽 넘어, 자동차 아래, 지붕 위까지 볼 수 있는 눈이 하나 더 생기는 걸까.

고양이가 왔다

고양이를 처음부터 좋아했던 건 아니었다. 몇 년 전, 당시 남자친구가 고양이를 몹시 좋아했다. 데이트를 하는 중에도 ‘야옹’ 소리가 들리면 편의점으로 뛰어가서 참치 캔이라던가 소시지 같은 것을 사왔다. 캔을 따서 고양이 근처에 가져다 주고 “옆에 있으면 경계하느라 먹지 않으니 멀리서 지켜봐야 한다”며 내 손을 뒤로 당겼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저 멀찌감치 팔짱을 끼고 서 있었을 뿐이었다. 어두운 곳을 거니는 저 비루한 행색의 동물이 왜 좋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거리의 고양이들과 함께하는 데이트를 이어가다가 그와 결혼을 했다. 반 농담으로 “담배 끊고 2년이 지나면 고양이를 키우게 해줄게”라고 말했다. “1년 반으로 하자” “콜” 장난으로 시작된 제안이어서 설마 가능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남자는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가는 길, 웨딩카를 운전해 준 친구와 함께 인천공항 앞에서 핀 담배를 끝으로 기어이 금연에 성공했다.

그리고 어느 날 하얗고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집에 왔다. 이름은 제제. 주차장에서 제제를 발견해 구조해준 지인이 지은 이름이다. 좀 더 근사한 이름으로 다시 지어주려고 했는데 “제제야” 불렀더니 “야옹” 대답을 하는 바람에 계속 제제라고 부르기로 했다. 제제와 살면서 일상에 작은 변화들이 생겼다. 흙을 파헤쳐 그곳에 용변을 보는 바람에 베란다에 만들어둔 작은 텃밭을 없애야 했고, 팔과 다리에는 깨물고 할퀸 작은 상처들이 생겼다. 그리고 밤이면 밖에 있다가도 고양이 밥 줘야 한다며 서둘러 귀가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거리의 고양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길을 가다 고양이를 만나면 근처 편의점으로 뛰어가 닭가슴살 캔을 따서 건넸다. “안녕 너 참 예쁘구나!” 지나가는 개에게도 인사를 했다. 그러는 사이 내가 착해진 것 같았다. 조금 낯설었지만 마음에 들었다.

제제랑 살게 된 지 반년쯤 됐을 때 우리는 조금 긴 여행을 떠났다. 그동안 제제는 부모님 댁에서 지내기로 했다. 여행을 하는 동안 한국의 그 무엇보다 나는 제제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당장 한국으로 뛰어가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 있었던 건 길 위에서 만난 수많은 제제들 덕분이었다.

길에서 만난 수많은 제제들

고양이들의 모습은 그 나라와 닮아있는 경우가 많았다. 쿠바 고양이는 어딘가 상처가 나 있었고 칠레 고양이는 오동통한 몸집에 윤기가 흘렀다. 아르헨티나 남부지방 고양이는 털이 길고 겁이 없었으며, 콜롬비아의 고양이는 여유가 넘쳤다. “역시 고양이를 보면 그 나라의 성품과 경제 상황을 알 수 있어.” 새로운 나라에 도착할 때마다 우린 그런 식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때마다 우리나라 길고양이들의 마른 몸과 날 선 눈빛이 떠올라 조금 시무룩해지곤 했다.

한번은 멕시코 와하까Oaxaca의 숙소에서 강렬한 눈빛의 회색 고양이를 만났다. 호스텔에서 키우는 고양이는 아니었는데, 밤에 우리 방까지 찾아 들어와 과자를 훔쳐 먹다가 걸렸다. 먹어도 되는 과자일까, 우린 잠시 고민하다가 배고픈 것보다는 낫겠지 싶어 몇 조각 건넸다. 날이 밝으면 사료를 사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재래시장을 샅샅이 뒤져 사료 파는 곳을 찾았다. “갸또(고양이)” 라고 말하며 먹는 시늉을 했더니 사람들이 시장 안 쪽 가게로 안내를 해줬다.

상점에 갔더니 커다란 포대 자루에 개 사료, 고양이 사료가 나누어 담겨있다. 두 바가지 달라고 했더니 주인장 아저씨는 두 바가지가 넘치게 퍼서 까만 비닐 봉투에 가득 담아주었다. 얼른 숙소로 돌아와서는 간밤의 침입자, 고양이를 불러 사료를 나눠줬다.

와하까를 떠나는 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금 남은 사료를 배낭에 챙겨 넣었다. 그때부터 여행을 하는 동안 우리 배낭 속에는 항상 고양이 사료가 들어 있었다. 짧은 산책에도 한 움큼의 사료가 담긴 비닐봉지를 주머니에 찔러 넣고 걸었다. 배낭에 사료가 떨어지면 조금 불안해지기까지 했다. 낯선 도시에 도착하면 ‘꼬미다 델 갸또(고양이 사료)’를 찾아 다녔다. 쿠바에는 사료라는 게 아예 없기도 했고, 칠레에는 사료 종류가 너무나 다양해서 한참 고민하기도 했다. 어쨌든 처음 가보는 나라에서 사료를 사는 일은 재미있는 일이다. 마치 내가 이곳에 사는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으니까. 사료를 사 들고 나올 때면 어깨 힘도 조금 풀리고 걸음걸이도 여유로워졌다. 미소 짓고 있는 내가 있었다.

‘미시’라고 부르면

남미에서는 고양이를 부를 때 수컷은 ‘미시’ 암컷은 ‘미샤’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고양이를 ‘나비야’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미시미시!” 길을 걷다가 고양이를 만나면 휘파람 불 듯 경쾌하게 외치는 거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들은 하나같이 우리를 스윽 쳐다봤다. 주머니에서 사료를 꺼낼라치면 쪼르르 다가와 손길을 피하지도 않고 쪼그리고 앉았다. 가끔 무릎에 올라오는 녀석들도 있었는데, 그렇게 모두 엉켜서 낡은 계단에 앉아있자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고양이들과 있으면 하루는 금방 저물었다.

“저 골목으로 가보자. 왠지 고양이가 있을 것 같아.” 골목에서는 언제나 마음속에 약간의 설렘을 담고 모퉁이를 돌았다. 찾아간 골목에 고양이는 없을 때가 더 많았지만 그 대신 시원한 그늘을 만나기도 했고 예쁜 꽃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든든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걷는 이 길을 고양이도 함께 걷는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구나. 사막에도 호수에도 고산지대에도 고양이가 살고 있어서 참말 다행이구나.

고양이가 있는 풍경

여행이 끝나 한국으로 돌아온 우리는 다시 제제와 살고 있다. 일상으로 돌아온 지 한참이 지난 어느 바람이 좋던 밤, 동네 치킨집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마침 테라스에서는 예쁘장하게 생긴 길고양이 한 마리가 이 테이블 저 테이블 사이를 옮겨 다니며 치킨 조각을 얻어먹고 있다. 머리를 쓰다듬어도 가만히 있는 순한 고양이. 

우리가 치킨 살을 찢어 나눠주는 걸 보고 한 아저씨가 다가오더니 “아침에 내가 우유도 줬는데 잘 먹더라고요. 새끼가 있는 거 같아”라고 말을 건넨다. 고양이 배를 보니 얼마 전 출산을 한 것 같다.

그때 또 실내에 앉아있던 한 아기 엄마는 문을 열고 나와 쪼그리고 앉더니 “얘 왜 이렇게 말랐대요?” 애를 태운다. “친정에 고양이가 있거든요. 결혼 전에 같이 살았어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신의 고양이 이야기를 불쑥 털어놓는다. ‘아마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정든 고양이와 이별해야 했던 여자’, 목소리가 조금 촉촉해지는 걸 보고 짐작해 본다. 

“콜롬비아에 온 것 같다. 그치?” 맞은 편에 앉아 생맥주를 넘기던 남편에게 말을 건넸다. 개와 고양이는 테이블 사이를 오가며 먹이를 구하고 주인도 손님도 그들을 성가셔하거나 쫓아내지 않았던 콜롬비아의 작은 식당, 쿠바 아바나의 노천카페, 칠레의 바닷가 레스토랑. 그곳에 앉아있는 것 같았다. 벽 너머에도 자동차 아래도 지붕 위도 아닌, 지금 이 길 위에 자연스럽게 사람과 고양이가 섞인 풍경. 완벽한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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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전진우

글 정다운 사진 박두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