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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서영·이영하 — 스튜디오 고민
그래픽 디자이너 듀오 안서영, 이영하는 작지만 단단한 약속을 지키며 산다. 컴퓨터가 후끈거릴 때까지 디자인에 열중한 날, 작업 비용이 입금된 날은 꼭 돈가스를 먹는 것. 뜨겁고 바삭한 덩어리는 일종의 연료이자 수고했다며 다독여주는 친구인 셈이다. 맛있는 한 끼가 믿을 만한 구석이 되어준다는 건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 사랑스러운 두 사람을 보고 알았다. 세미콜론 ‘띵’ 시리즈 《돈가스: 씩씩한 포크와 계획적인 나이프》와 함께 두 사람의 고소한 규칙에 귀 기울여본다.
안식월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스튜디오 고민의 작업실에서 만나게 되었네요.
영하 반갑습니다. 스튜디오는 매년 한 달 동안 쉬어 가요. 디자이너 특성상 야근이 잦다 보니까 생활 리듬이 흐트러지더라고요. 안식월을 보내면서 세끼 잘 챙겨 먹고 일찍 자는 루틴을 회복해요. 제가 말을 잘 못하는데 오늘은 열심히 이야기해 볼게요.
서영 둘 다 내향적인 편이라 많이 도와주셔야 해요(웃음).
편하게 이야기 나눠주세요. 이번 안식 기간에는 무얼 하며 보냈어요?
영하 서영 씨는 대학 친구들과 졸업 후 처음으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어요. 저는 고향에서 부모님과 시간을 보냈고요. 우리 부부는 함께 일해서 365일 24시간 붙어 있는데, 안식월을 기회로 잠깐 떨어지는 거예요(웃음).
(웃음) 그래픽 디자인 듀오로는 어떻게 활동하게 된 거예요? ‘스튜디오 고민’이라는 이름 뜻도 궁금했어요.
서영 저희는 그래픽디자인과 캠퍼스 커플이었어요. 졸업 후에 각자 회사도 다니고 프리랜서로도 일해봤지만 둘 다 인간관계나 경쟁적인 환경을 힘들어한다는 걸 알았죠. 우리는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이니까 함께 일해보면 좋을 것 같았어요.
영하 이름을 지으려고 두 사람의 공통점을 찾아보니까, 생각을 많이 하는 점이 비슷했어요. 그래서 ‘고민’이 된 거예요. 서영 막상 같이 일해보니까 우리가 작업할 땐 의사결정이 빠른 편이더라고요. 지금은 고민보다 ‘스튜디오 고Go’가 더 나았겠다고 농담하기도 해요.
재밌는 이름인데요. 음반 패키지 디자인부터 출판 디자인까지 작업 분야가 다양한 편이에요.
서영 초창기에는 좋아하는 인디 뮤지션 소속사에 먼저 연락해서 만들어보고 싶은 작업물을 제안했어요. 감사하게 화답해주신 분들 덕에 인디 뮤지션 포스터, 앨범 디자인으로 스튜디오를 시작하게 되었죠. 출판 작업도 비슷하게 좋아하는 책을 낸 출판사에 메일을 보내면서 성사됐어요.
영하 이제 음악은 케이팝과 관련된 그래픽 디자인 작업을, 출판물은 매거진이나 브랜드북을 주로 다루고 있네요.
《표기식 사진집》을 시작으로 최근 전솔지 사진집 《umipodo》까지 출간했죠.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인데, 사진집 출간은 어떻게 시작한 거예요?
영하 표기식 작가님과는 가수 태연의 포스터 디자인 작업으로 인연을 맺었는데, 우리에게 좋은 면을 보셨는지 사진집을 함께 만들자고 하셨어요. 출판은 할 계획이 없었는데, 작가님 덕분에 책을 내게 된 거죠. 작년 세상에 나온 《umipodo》는 표기식 작가님 추천으로 전솔지 작가님이 출간을 의뢰해 주신 건데요. 본격적으로 출판 브랜드를 시작해 보자는 생각에 ‘라스츠카피LASTzCOPY’라는 이름으로 선보였어요.
활발한 작업의 동력은 바로 돈가스라죠? ‘띵’ 시리즈 《돈가스: 씩씩한 포크와 계획적인 나이프》를 재밌게 읽었어요. 출판사가 먼저 집필 제안을 한 건가요?
서영 네. 자주 같이 일하는 미식 분야 도서 편집자님이 꼭 가보라면서 합정에 있는 ‘최강금 돈까스’라는 식당을 추천해 주셨어요. 다녀온 후기를 SNS에 올렸는데, ‘띵’ 시리즈를 기획한 김지향 편집자님이 돈가스에 관한 책을 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죠. 오랜 집필을 거쳐 나온 우리의 첫 책이에요. 출판 디자인을 하니까 평소 다른 사람 글을 많이 읽는데요. 이번에는 직접 글을 쓰니까 새로웠어요. 어릴 때 추억, 여행 가서 먹은 돈가스처럼 잊고 있던 기억들을 소환하면서 삶의 해상도가 올라가는 느낌도 들었고요. 바쁜 일로 무뎌지던 감각들이 되살아나는 기분이었어요.
두 분 SNS에서는 돈가스에 관한 이야기를 거의 찾아볼 수 없어요. 출간 제안을 받은 후엔 돈가스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세상에 드러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진 않았나요?
서영 그랬죠. 포스팅할지 말지 고민했어요. 책 쓰는 과정을 공개하는 게 흥미롭기도 하고 홍보 효과도 있지만, 부담감은 더 심해질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좋아하는 가게를 혹시나 많은 사람이 알게 돼서 제가 가지 못하게 된다면 아쉬울 듯했고요(웃음).
영하 돈가스를 워낙 자주 먹어서 포스팅할 이유를 찾지 못한 것도 있어요. 사람들이 집밥 먹는 걸 SNS에 잘 올리지 않는 것처럼요.
혹시… 돈가스를 얼마나 자주 드세요?
영하 3일에 한 번 정도 먹어요.
와, 그렇게 자주요?
영하 우리도 출간하고 나서야 돈가스를 자주 먹는 편이라는 걸 알았어요. 돈가스는 두 가지 경우에 먹는데요. 하나는 ‘마감’을 했을 때예요. 마감이란 디자인 시안을 보내는 날, 최종 데이터를 인쇄소에 보내는 날, 프로젝트가 완전히 끝난 날처럼 무언가를 마무리 짓는 날을 뜻해요. 그런 날은 굉장히 지쳐서 메뉴 고르기가 귀찮죠. 그때 돈가스를 선택하는 거예요. 또 ‘비정기적 월급날’에 먹어요. 서영 씨가 붙인 이름인데, 우리는 프리랜서라 월급이 아니라 프로젝트별로 작업 비용을 받거든요. 통장에 입금이 되는 날엔 돈가스를 먹으면서 소회를 나눠요.
월급을 받으면 평소에 먹기 힘든 음식이 생각날 것 같은데, 왜 꼭 돈가스를 찾으세요?
서영 제 어린 시절 추억에서 출발한 리추얼인데요. 어릴 때 살던 동네에 어느 날 ‘봉주르’라는 경양식집이 생겼어요. 거기서는 TV에서 본 화려한 요리를 팔 것 같아서 엄마를 졸랐더니 아빠 월급날에 데려가셨죠. 경양식집은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 곳이었어요. 집에서 쓰지 않는 포크와 나이프로 밥을 먹어야 하고, 냅킨도 쓰니까요. 어른이 된 지금은 일하고 돈을 받으면 추억을 만들려고 돈가스를 먹으러 가요.
기억은 음식을 더 맛있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추억 덕분에 더 손이 가는 메뉴가 또 있나요?
서영 옛날 떡볶이요. 중학생 때 학교 앞에서 파는 떡볶이를 사 들고 친구들이랑 먹으면서 수다 떨며 집에 돌아오곤 했어요. 로제 맛, 분모자 토핑 같은 개량 떡볶이가 많은 요즘이지만 항상 옛날 떡볶이가 더 먹고 싶어요.
영하 저는 오므라이스를 굉장히 좋아해요. 어머니가 제 생일마다 항상 해주셨거든요. 그래서인지 저한테는 그게 가장 맛있는 음식이에요. 어머니께 예전에는 늘 오므라이스를 해주셨다고 말씀드리니까 고향에서 올라오신 날 오랜만에 차려주셨어요. 그때 서영 씨가 옆에서 만드는 법을 지켜보더니 이제는 생일마다 해주고 있죠. 신기하게 어머니 오므라이스랑 맛도 비슷하더라고요.
서영 정말? 맛이 비슷한 줄은 몰랐는데. 되게 기쁜데요?
추억처럼, 똑같은 음식도 더 맛있게 만드는 요소는 무얼까요?
서영 우연한 발견이요. 요즘은 다들 리뷰를 보고 유명한 가게를 찾아가지만, 낯선 지역에 왔거나 지쳐서 좋은 식당을 찾을 여유가 없을 때도 있어요. 그럼 느낌이 오는 곳에 들어가죠. 지나가다가 발견한 식당이고 손님도 나뿐인데, 음식이 의외로 맛있을 때가 있어요.
맛집을 알아채는 팁이 있는지 궁금한데요?
서영 음식점 앞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이 싱싱하고 예쁜 모습이면 90퍼센트 확률로 맛있어요. 그만큼 가게를 정성 들여 꾸리고 있다는 의미라고 생각하거든요.
영하 식물은 섬세하게 다뤄야 하지만 손을 너무 많이 타면 오히려 죽기도 해요. 무신경하면서도 세심함이 필요한 게 식물 키우기죠. 음식도 비슷하지 않을까 해요. 과하면 맛이 없지만 무심한 듯 만들면 맛있는 경우가 많잖아요.
식물을 잘 키우면 맛있는 식당이라니…. 앞으로 참고할게요(웃음).
서영 또 리뷰도 없고 뭐 파는지 잘 모르겠어도 동네 주민처럼 보이는 아주머니, 아저씨가 많이 모인 가게는 대체로 괜찮아요.
영하 책에도 썼는데, 주방장이 머리에 두건을 두르면 맛있는 경우도 많아요. 그렇다고 이런 요소를 보고 식당을 고르는 건 아니고, 만족스럽게 먹고 보면 식물이 많거나 사장님이 두건을 쓰고 있더라고요.
늘 식사를 같이 하는데, 돈가스 취향은 어떻게 다른가요?
영하 서영 씨는 모든 음식의 원형을 찾아가는 여행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돈가스도 등심으로 만든 ‘로스가스’를 좋아하죠. 저는 로스가스가 조금 퍽퍽하게 느껴지고, 지금보다 음식을 좋아하지 않던 시절에는 먹는 데 너무 오래 걸린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안심으로 만든 ‘히레가스’는 좀더 부드럽고 잘 씹히죠. 저는 항상 그걸 시켜요. 이런 취향은 디자인에서도 나타나는데요. 서영 씨는 정해진 것들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아무도 보지 않는 미세한 수치도 여러 번 체크해요. 하나의 작업을 우직하게 진행하는 걸 좋아하고요. 저는 작업도 부드럽고 유연하게 처리하는 걸 좋아해서 여러 프로젝트를 한 번에 진행하는 걸 즐겨요.
먹는 걸 좋아하지 않던 시절이 있다고 하셨어요. 전에는 식사를 알약으로 대체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고요.
영하 지금과는 다르게 음식을 적게 먹고 굉장히 마른 때가 있었어요. 음식은 영양소를 섭취하는 행위에 가까웠지, 맛있는 걸 먹어야겠다는 생각은 못 했거든요. 자취 생활도 오래 하다 보니 식사를 귀찮게 여길 때도 많았고요. 그래서 밥 대신 알약이 더 편하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그런데 서영 씨는 밥 한 끼를 먹더라도 풍성하게, 잘 갖춰 놓고 먹는 사람이었죠. ‘그냥 한 끼일 뿐인데.’라고 생각하곤 했는데, 서영 씨 덕분에 이제는 먹는 게 재밌고 즐거운 일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서영 싱어송라이터 프롬의 ‘후유증’이라는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있어요. “커피 한 잔만으로 점심밥을 대충 때우고 있나요.” 들으면서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었죠(웃음). 영하 씨가 바빠서 밥을 걸렀다거나 한 끼만 먹었다고 하면 놀랐어요. 저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거든요. 같이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매 끼니를 챙겨 먹는 사람이 되었네요.
가까운 사람들은 음식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영향을 주고받나 봐요. 돈가스를 먹을 때 특별한 규칙도 있나요?
서영 처음 가보는 식당에서는 무조건 로스가스와 히레가스를 먹어본다, 그 정도예요. SNS에서 음식 리뷰하는 분들을 보면 엄격한 기준을 가진 경우가 많아요. 튀김옷 두께, 양배추 모양…. 그런데 좋아하는 걸 디테일한 잣대로 보기 시작하면 행복감이 줄어드는 것 같아요. ‘좋다!’ 딱 그 정도까지만 알면 되지 않을까요?
영하 돈가스 첫 한 점은 꼭 소금에 찍어 먹어봐요. 그래야 육질을 잘 느낄 수 있대요. 우리는 커피도 좋아하는데 전문가가 되기 전 단계에서 일부러 멈췄어요. 기준이 엄격해져서 어느 순간부터 카페에 쉽게 갈 수가 없더라고요. 10년 전부터는 커피를 직접 핸드드립으로 내려 마시는데요. 원두 그램 수, 내리는 시간을 정확하게 맞추면 조금 더 맛있다고 해요. 하지만 커피 내리는 행위가 나한테 부담이 되지 않는 수준에 머물고 싶어요. 정확하게 계량하기보다, 머리에 두건 쓴 식당 아주머니처럼 그냥 툭툭 해보자는 주의죠. 물론 음식을 깊이 연구하면서 흥미를 느끼는 분들도 존중해요.
서영 에디터님 주변에 그런 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안 먹는 음식이 많은 미식가도 있어요. 그런 분들과 식사를 하면 제가 고른 식당을 좋아하지 않을까 봐 걱정하게 되더라고요. 까다로운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돈가스 먹을 식당을 고를 때 의견이 부딪친 적은 없나요? 각자 가고 싶은 곳이 다를 수 있잖아요.
영하 없어요. 식당 선정은 온전히 서영 씨 몫이거든요. 서영 씨가 제안하면 군말 없이 따라가는 편이에요. 항상 좋은 선택지를 주거든요.
서영 저도 식당 선정은 독재라면서 농담하곤 하는데요(웃음). 둘의 기분이나 몸 상태를 고려해서 식당을 골라요. 돈가스 맛집 데이터가 제 안에 잘 갖춰져 있답니다.
책에서는 요리사와 디자이너의 유사성을 살펴보기도 했어요.
영하 작업할 땐 스튜디오가 식당 같아요. 손님들이 각 테이블에 앉아 있는 것처럼 클라이언트가 기다리면, 저희는 접시를 하나씩 내는 것처럼 디자인을 하는 거죠. 요리사들이 분업을 통해 재료를 주고받으면서 음식을 완성해 가는 과정도 비슷해요. 보통 제가 디자인 콘셉트를 기획하면, 서영 씨가 디테일하게 보완해요. 다음으로 제가 아이디어 스케치를 하면 서영 씨가 구현하고, 제가 다듬어 넘기면 서영 씨는 마지막으로 인쇄를 맡기죠.
서영 〈더 베어〉라는 미국 드라마 아세요? 레스토랑 운영기를 그렸는데요. 손님들에게는 감각적인 음식을 선보이지만 주방은 주문이 밀려드는 통에 굉장히 정신없어요. 우당탕 난리도 나고 요리사끼리 싸우기도 하지만 완벽한 음식을 내어주고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죠. 디자인도 비슷한 것 같아요. 독자나 뮤지션 팬분들이 우리 작업물을 받아보고는 예쁘다며 좋아하시는 모습은 마치 음식을 먹는 것 같달까요.
일과 음식이 함께하는 일상 속에서 의미 있는 생각을 도출한 이야기가 책에 가득하던데요. 야식을 먹으면서 느낀 점도 인상적이었어요.
영하 야근을 하면 스트레스가 쌓여서 야식을 많이 먹게 되는데요. 그러면 위장도 야근을 하게 되는 거잖아요. 우리도 급작스러운 클라이언트 요청으로 늦게까지 일하게 되는 상황이 달갑지 않은데, 어느 순간부터는 제가 위장한테 가혹한 클라이언트가 아닐까 싶었어요. 이제는 위장이 밤늦게까지 일하지 않도록 주의하는데, 종종 실패하긴 해요(웃음).
음식은 다양한 기능을 갖고 있어요. 일상에 새로움을 주거나, 특별한 날을 더 특별하게 만들죠. 또 음식은 우리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영하 밥 한번 먹자는 말이 있듯이, 음식은 관계의 매개체가 될 수 있어요. 어릴 때와 다르게 아무 목적 없이 같이 있는 관계나 시간이 이제는 잘 없더라고요. 시간을 함께 보낼 이유가 필요한 때가 된 거죠. 커피든 돈가스든, 음식은 누군가와 관계를 좀더 쌓게 해주지 않을까요?
서영 우리는 친밀한 사람하고만 식사를 함께하는 편인데요. 그래서 같이 음식을 먹는 일이 서로에게 편한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인 것 같아요. 누군가가 밥 먹으러 가자고 했을 때 그래, 하고 기쁘게 응할 수 있다는 게 그 사람과의 관계를 알려주죠. 또 추억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요. 최근 업무 차 도쿄에 다녀왔는데, 클라이언트가 추천한 식당에 따라가서 식사를 하고 돌아오니까 그분을 떠올리면 항상 그 음식이 생각나요.
두 분은 어떤 식사를 만족스럽다고 느끼세요?
영하 질문을 받고 막연하게 생각해 봤는데, 서영 씨와 싸우지 않는 식사가 떠올랐어요(웃음). 서로 다른 가정 환경과 가치관이 먹는 행위에서도 드러나곤 하거든요. 둘의 차이점이 다툼으로 번지지 않고 즐겁고 화기애애하게, 좋은 대화를 나누는 식사. 저한테는 그게 만족스러운 식탁이에요.
음식보다는 함께하는 사람과의 기류가 중요하군요.
서영 마찬가지예요. 비싸고 유명한 레스토랑이라도 불편한 상대랑 같이 가면 맛을 못 느끼고 먹을 수도 있잖아요. 특별하지 않은 음식이어도 편안한 상대와 재미있게 먹는 게 더 좋아요.
사람들은 메뉴를 고심하고, 맛집 앞에서 오래 줄을 서기도 해요. 왜 이렇게 식사를 중요하게 여길까요?
영하 식사는 하루에 두 번에서 세 번, 무조건 해야만 해요. 바쁜 와중에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좀더 즐겁고 특별하게, 취향에 맞추어 하고 싶은 것 같아요. 음식으로 만족감을 채우려는 욕구도 있을 것 같고요. 저도 디자인 작업물이 좋은 반응을 얻어서 만족감이 들면 특별한 음식으로 나를 만족시키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아요. 그런데 지루한 일상이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면 일상적인 식사라도 특별한 경험이 되게 하고 싶어요. 사람들도 저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서영 저는 원래 줄 서는 식당을 좋아하지 않는데요. 최근 도쿄 여행에서는 친구가 소개해 준 디저트 가게 앞에서 20-30 분 정도 줄을 서봤어요. 그때 경험은 또 즐겁더라고요. 특별한 음식을 먹기 위해서 이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과 한편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요? 그날 야쿠자 같은 한 아저씨도 폭주족처럼 운전해와서 아무렇게나 주차하고는, 줄을 서서 케이크를 사 가는 거예요. 재밌는 경험이었어요.
뜻밖의 즐거움을 만났네요. 앞으로도 가게 앞에서 기다려볼 의향이 있어요?
영하 네. 근데 안식월에만 가능할 것 같아요. 평상시에는 줄을 설 시간이 많지 않거든요.
서영 어디 여행 갈 때나 가능하지 않을까요?
영하 그러게요. 기다리더라도 훌륭한 맛보다는 좀더 특별한 시간과 공간을 누리고 싶은 마음에 줄을 서볼 것 같아요.
바삭한 돈가스가 아른거리는 대화였어요. 두 분이 자주 찾는 가게에서 돈가스를 주문해 보기로 했죠. 역시 로스가스, 히레가스 하나씩이 좋겠죠?
영하 네.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좋아하는 돈가스 맛집 네 곳을 소개해 드릴게요.
1. 오로라경양식
“연세 지긋한 부부가 운영하시는 석촌호수 근처 경양식집이에요. 간판도 화려하고 벽에는 옛날 무성 영화 배우 사진이 붙어 있는, 오래되고 독특한 분위기의 식당이죠. 우연히 들어갔는데 음식이 맛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추천 메뉴는 비프가스입니다. 육전처럼 넓게 두드린 소고기를 튀겼는데 고소한 맛이 훌륭해요. 곁들임 메뉴인 산고추와 함께 먹으면 고소함이 배가 돼요.”
2. 이키가이
“언제나 맛있어서 믿을 수 있는 곳이에요. 작업실 근처라 자주 이곳을 찾죠. 히레가스와 더불어 토리카츠를 추천할게요. 닭 안심으로 만들어서 돈가스를 먹기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맛있게 즐길 수 있을 거예요. 일반적인 돈가스 소스가 아닌 매콤한 마요네즈 소스가 인상적이죠. 후식으로는 딸기 소르베를 내어줘요. 식사를 마치고 소르베 먹기만을 늘 기다린답니다.”
3. 최강금 돈까스
“책을 낸 계기가 되었던 곳이죠. 일본 돈가스를 한국적으로 해석해서 곁들임 나물, 생들기름 소스 같은 요소를 찾아볼 수 있어요. 추천 메뉴는 역시 로스가스예요. 이름을 건 식당은 언제나 맛있는 법이죠. 일본식 돈가스는 재료가 되는 돼지고기의 질에 따라서도 맛이 많이 차이가 나는 편인데, 맛집의 격전지인 마포구의 돈가스 가게 중에서도 육질이 단연 뛰어난 편입니다.”
4. 돈카츠 야마모토
“현지인들에게도 유명한 가게예요. 할아버지 요리사가 새하얀 복장으로 고요한 분위기에서 능숙하게 한 접시를 만들어내요. 일본 장인 특유의 절도 있는 몸짓으로요. 몇 년 전 여행 중에 방문했는데 한국에 돌아가기 전 한 번 더 찾아갈 정도로 만족스러웠어요. 로스가스와 히레가스 모두 맛있죠. 가능하다면 서울에 포장해 가고 싶었다니까요.”
에디터 차의진
포토그래퍼 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