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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7월 1일, 사전에 없는 단어가 태어났다. 걷다(walk)와 사람(man)을 합친 말, 워크맨. 음악을 어디서나, 혼자만의 방식으로 듣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음악 감상의 새 지평을 연 워크맨의 이야기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보자.
‘워크맨’은 소니 공동 창업자 이부카 마사루의 아주 단순한 요구에서 출발했다. 출장길 비행기에서 스테레오로 음악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이전까지 음악 감상 기기란 특정한 공간 안에서만 누리는 것이었다. 턴테이블과 릴 테이프 레코더, 라디오···. 이부카 마사루의 요청을 받은 개발팀은 녹음 기능을 걷어내고 재생에만 집중한 휴대용 기기를 만들었고, 그렇게 완성한 첫 모델은 사내에서조차 긴가민가한 반응이었다. 녹음도 안 되는 플레이어를 누가 살까? 하지만 세상에 내보인 결과는 정반대였다. 이어폰을 끼는 순간 오로지 혼자만의 세계에 몰입할 수 있고, 심지어 걸으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젊은 세대는 열광했다. 첫 번째 워크맨인 TPS-L2는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014) 스타로드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템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물론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1980년대 일본 가전제품 수입이 금지된 상황에서도 워크맨은 널리 퍼졌고, 삼성전자 ‘마이마이’, LG전자(당시 금성사) ‘아하프리’, 대우전자 ‘요요’ 같은 국산 제품이 앞뒤를 다투며 나왔다. 1990년대까지 중·고등학생들의 입학 혹은 졸업 선물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워크맨’은 소니의 제품명이지만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레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를 통칭하는 말이 되었다. 1986년, 이 단어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등재된다.
이 빈티지 워크맨들이 고이 보존된 곳이 있다. 용산구에 있는 ‘심쿵서클’의 쇼룸이다. 디자인 브랜드 ‘더스thus’를 운영하는 전성환 대표가 개인 컬렉션에서 시작해 점차 손님들을 만나는 공간을 꾸리게 되었다. 80~90년대 인기를 끌었던 워크맨 제품은 물론이고 CD 플레이어와 디스크맨도 볼 수 있다. 모양도, 색도 다양한 워크맨들이 손님의 청음을 기다린다. 전성환 대표는 워크맨이 성행했던 90년대, 좋아하는 음악을 이어폰 끼고 들으며 몰입했던 그 순간을 생생히 추억한다. 고등학교 시절 워크맨으로 015B의 라이브 앨범을 듣다 잠들곤 했다고. (이 말을 듣고 나는 청음해볼 앨범으로 015B를 골랐다.)
워크맨으로 음악을 들으려면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속도와 효율이 극대화된 요즘엔 번거롭기 짝이 없는 과정이다. 워크맨에 쓰이는 배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원통형 건전지가 아닌 납작한 모양의 충전식 배터리다. 껌 모양을 닮아 ‘껌전지’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그 시대로 돌아가 음반을 청음해보자. 우선 듣고 싶은 테이프를 고른다. 한 손에 딱 들어오는 직사각형 모양의 테이프를 열고 워크맨에 껌전지를 넣은 뒤, 이어폰을 꽂고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바로 음악이 나오지도 않는다. 화이트 노이즈를 짧게는 10초, 길게는 20초 정도 들으며 리더 테이프Leader Tape를 지나야 한다. 리드 테이프는 소리가 녹음되지 않은 얇은 플라스틱 띠로, 메인 마그네틱테이프를 보호하고 끊기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 수고로운 과정을 거쳐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다. 비로소 그 앨범을 진정으로 향유하는 기분이다.
전성환 대표에게 워크맨의 변화를 이끈 상징적인 모델이 무엇인지 물었다. 첫 번째로 돌아온 대답은 개인적으로도 애용한다는 DD모델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디스크 드라이브disc drive 메커니즘인데, 고무벨트를 통해 테이프를 회전시키는 일반적인 벨트 드라이브 방식과 달리 모터가 톱니바퀴와 직접 맞물려 돌아가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 이전보다 부품 구조가 단순화된 것이다. 고무벨트가 늘어나면서 생기는 음정이 흔들리는 현상을 줄여주어 더 안정적으로 들을 수 있다.
빈티지 워크맨에 관심이 있는 입문자에게는 1990년대에서 2000년대에 출시된 후기형 워크맨을 추천한다. 지금 사용해도 고장이 잘 나지 않고 비교적 수리도 쉬운 편이다. 특히 AMS(Automatic Music Search) 기능이 있어 곡을 찾아 듣기도 좋다.
워크맨의 하락은 소니 스스로 만든 다음 물결에서 시작되었다. 1984년 세계 최초 휴대용 CD 플레이어 D-50이 나오며 균열이 생겼고, 결정타는 MP3 플레이어였다. 1998년 국내 새한정보시스템이 세계 최초 MP3 플레이어를 출시했다. 2000년대에는 아이리버 제품이 큰 인기를 끌며 학생들의 가방 속 주인공이 되었다. 뒤이어 등장한 애플 아이팟으로 전자기기의 흐름은 완전히 디지털로 넘어갔다. 결국 소니는 2010년 10월 25일 카세트 워크맨의 생산과 판매를 전 세계적으로 중단했다. 국내에서는 그보다 앞서 대부분 모델이 단종되었다. 내 주변 사람들도 많이 기억하는 어학용 ‘찍찍이’ 시리즈마저 2013년 생산을 멈추었다.
기술은 워크맨을 지나 다음 걸음으로 넘어갔지만, 돌고 도는 유행을 따라 사람들은 다시 네모난 워크맨을 찾는다. 카세트테이프가 음악을 들려주기 직전 몇 초간의 화이트 노이즈는 심쿵서클 같은 공간에서 여전히 재생 중이다. 전성환 대표는 누군가와 마주 앉아 깊은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을, 워크맨으로 음악을 듣고 싶은 마음에 비유한다. 스마트폰 화면에서 벗어나 오로지 음악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 그 시간은 47년이 지난 지금도 분명 필요할 것이다.
DD-100 (1986)
도쿄의 공연장인 무도관의 이름을 차용한 모델. 공연장만큼의 감동을 재현하겠다는 의미다. 음 떨림이 거의 없고 강력한 베이스를 자랑한다.
WM-D6C (1984)
아몰퍼스라는 고성능 헤드를 갖춰 최상의 음질과 함께 수준 높은 녹음 성능을 갖고 있다. 전성환 대표가 처음으로 믹스테이프를 녹음해 본 모델이기도 하다.
WM-DC2 (1984)
WM-D6C의 메커니즘을 계승했지만 녹음 기능을 없애 크기를 줄였다. 고급 하이파이에만 쓰였던 돌비 C 회로를 장착한 최초의 보급형 워크맨이다.
1985년 출시된 마지막 기계식 워크맨. 라디오 청취 기능과 녹음 기능을 갖추었다.
아이와Aiwa에서 출시된 가장 유명한 워크맨 중 하나. 기기 버튼을 누르면 여성 안내 음성이 ‘Reverse playback’ ‘Stop’ 등을 말해준다.
넓은 음장을 제공하는 ‘EX DBB’ 베이스 시스템을 탑재했다. 버튼이 기기 안으로 숨겨지는 매립형 디자인이다.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에서 주인공 신지가 사용한 워크맨의 실제 모델로 알려져 있다.
일반 CD가 아닌 8cm 미니 CD 전용으로 출시된 초소형 포터블 플레이어.
별도의 고정 헤드를 사용하는 듀얼 헤드 메커니즘이 적용되었다. 헤드를 뒤집는 소음이 없어 음질이 뛰어나다.
카세트테이프 크기와 거의 비슷한 초소형 워크맨. 리모컨 조작을 지원해 휴대용 레코더의 완성도를 끌어올린 모델이다.
2004년 출시된 카세트 워크맨. 음악 청취는 물론 재생 속도를 조절할 수 있어 어학용 모델의 계보를 잇는 마지막 워크맨이다.
소니 최초의 스포츠 워크맨으로, 생활 방수와 충격 방지 설계를 갖추었다.
에디터 황진아
포토그래퍼 정찬웅 장소 협조 심쿵서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