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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관 — 영화감독
어느 맑은 오후, 서촌의 오래된 카페에서 김종관 감독을 만났다. 원래 약속 장소에 자리가 마땅치 않아, 새로 찾아 들어간 카페는 그의 영화 <최악의 하루>(2016)에 나왔던 공간이었다. 어쩐지 익숙하게 느껴지는 자리에 앉아 영화와 산책, 걸으며 담아냈던 그의 영화 속 곳곳을 함께 돌아보았다. 김종관 감독의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말이 느리고 걸음은 쓸쓸하다. 온화한 보폭, 조금씩 늘어지는 산책자의 시간처럼 그의 영화는 흐른다.
이야기를 만드는 소설가 창석은 유랑하듯 걷는다. 지하철 역사의 오래된 카페, 쓸쓸한 공원, 어두운 바, 서촌의 북적이는 카페까지. 영화 속 공간은 익숙하지만 어딘가 낯설게 느껴진다. 오랜 외국 생활 끝에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네 명의 인물을 만나 대화를 나눈다. 상실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창석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창석은 가끔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를 풀어 보이며,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변화한다.
“우리가 이미 늙었다면 헤어지자는 말 따위는 안 했겠지.” “그러니까 오래 기억해 하코다테. 우리가 같이 있던 세계, 여기 거리, 그 길들.” 헤어지는 남녀의 목소리와 하코다테의 아름다운 거리. 영화는 눈 속을 걸으며 누군가 남겼을 오래된 흔적을 찾아 이동한다. 이별 앞에 선 이들의 마음을 조용히 산책한다.
서촌의 골목길과 남산 산책로. 해가 맑은 날씨와 오늘. 은희는 걷고 또 걷는다. 연기를 배우는 그녀는 작은 거짓말이 일상적인 여자다. 퇴로가 없는 길 위에서 방황하듯 산책하지만 그 길 끝에는 뜻밖의 아름다운 장면이 기다리고 있었다. “저 길에 눈이 내리고 한 여자가 걸어옵니다. 무표정하게 내리는 눈 사이를 걸어오다가 뒤를 돌아봐요. 어두워진 저 산책로 너머로. 하지만 안심하세요.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입니다.”
거미줄 쳐진 침대, 외딴 시골 정류장, 녹음진 거리의 아이들, 깨진 유리잔과 낡은 의자. 김종관 감독이 산책 하며 수집한 사진에는 늘 서사가 담긴다. 한 장 안에 누군가의 기억과 마음과 감정과 흐르는 시간이 묻어난다. 그의 영화 속 길 위에서 목격한 익숙하고도 낯선 기록들. 오래전 나의 어떤 하루를 문득 떠올려본다.
에디터 김지수
Ⓒ 김종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