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구운 티셔츠와 한 장의 우주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가벼운 물건은 무엇일까? 수수께끼 같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으면서, 지금 당신과 맞붙어 있을지도 모르는 존재. 당신을 편안하게, 때로는 시원하게 만드는 존재. 그 이름은 바로, 티셔츠!

프린트해 드릴까요?

서촌의 한 작업실. 복사기를 닮은 커다란 기계가 따끈한 열을 내며 작동한다. 곧이어 한 사람이 다가와 기계에서 꺼낸 건 다름 아닌 티셔츠. 그 위에는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사적이고 일상적인 장면과 문장이 새겨 있다. 이곳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프린팅 티셔츠를 만들고 그에 담긴 이야기를 다양한 콘텐츠로 풀어내는 프로젝트, ‘프린트 프레젠트 서비스Print Present Service’(이하 PPS)가 펼쳐지는 공간이다. 참, 이렇게만 설명하면 이 프로젝트의 다채로움과 유쾌함이 납작해져 버린다. 먼저 티셔츠를 향한 PPS의 애정을 알아두어야 한다.

“컵라면 없이는 장기 여행을 할 수 없는 고집 센 입맛의 어른이 되어서도 귀국길 여행 캐리어에서 빠지지 않는 수비니어는 단연 티셔츠와 레코드입니다. 옷장에는 여전히 정체 모를 티셔츠가 많고, 특이한 티셔츠를 입고 있는 사람에게는 괜히 말을 걸어보고 싶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사적이고도 유쾌한 에너지, 취향과 기분을 나누고 싶습니다.”

PPS는 그토록 좋아하는 티셔츠를 매개로 사람과 연결된다. 일하는 사람을 위한 티셔츠, 파티를 위한 티셔츠 등 다양한 상황과 대상을 위한 옷을 제작하거나, 의뢰인이 원하는 문장과 사진을 프린팅해 커스텀 티셔츠를 만들어낸다. PPS가 옷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전개하는 이유는 이 직물 한 장이 한 사람의 세계를 대변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프로젝트는 티셔츠를 사랑하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을 빌려 이 마음을 설명한다.

“그는 그의 티셔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일부러 모은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우연히 모이게 된 이 컬렉션이, 결국 본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드러내는 것 같아 좋다고요. 티셔츠는 본인의 ‘프리 라이프스타일Free-Lifestyle’을 상징한다면서요. 형식적인 자리를 꺼리는 그에게 슈트라고는 수십 년 전 산 ‘보스BOSS’ 한 벌이 전부라더군요. 그렇기에 하루키에게 티셔츠는 그의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 그 자체입니다.”

T를 닮은 어떤 세계

PPS가 바라보는 티셔츠는 격식 없이 누리는 편안함이자 자기표현이다. 프로젝트는 이제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에게 마이크를 건넨다. PPS와 함께 커스텀 옷을 만들고 그에 실은 의미와 기억을 되짚어보는 대화, ‘프린트 프레젠트 인터뷰’를 진행한 것. 그간 참여한 이들은 작가 무과수를 비롯해 그래픽 디자이너 임경환, 밴드 666, ‘도넛바이닐샵’ 마케터 김소희. PPS의 다정하고도 사적인 친구들이다. 인터뷰를 소개한 이 문장을 좋아한다.

“한 명의 사람과 한 명의 티셔츠, 한 명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인터뷰입니다. 자기표현의 수단으로서 티셔츠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가훈, 교훈, 좌우명 같은 것들은 시대에서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지만 여전히 나를 움직이는 문장, 혹은 요즘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처럼 우리를 이끄는 문장과 말, 단어는 존재합니다. 한 사람은 하나의 세계이며, 한 권의 책이고, 노래입니다. 티셔츠이기도 하죠. 그들의 지금 이 순간을 프린팅하고, 대화를 나누고자 하는 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Today… I did Nothing.” 간단해 보이지만 그 뜻에 귀 기울이고 싶은 문장들이 부드러운 면 위에 자리 잡았다. 프린트 프레젠트 서비스는 문장에 담긴 의미를 묻고 한 사람의 내밀한 세계로 뛰어들어, 웹사이트에 인터뷰를 풀어낸다. PPS와 무과수의 대화 중 일부를 이곳에 옮겨 둔다.

Q. 티셔츠 속 문장(I follow where my mind goes.)은 사이키델릭 퍼스The Psychedelic Furs의 ‘Love my way’에 나오는 가사라고요.

 

A. 제 오른쪽 팔 타투에서 길어 올린 문장인데요. 제가 삶을 살고 싶은 어떤 태도가 있는데, 그 문장을 뭘로 할까 하다가 발견하게 되었어요. 처음에 이 노래를 들을 때만 해도 자세한 가사의 의미를 모르고 들었는데요. 타투를 새기려고 알아보다가 의미를 잘 알게 된 거죠. 어떻게 보면 제 태도가 그런 것 같아요. 마음 가는 대로 살아왔고, 어떤 더 좋은 선택지가 있다고 해도 제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선택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어서 새긴 것 같아요. 그게 진지하기보다는 무겁지 않은 의미로요. 

인터뷰이가 이 옷을 입은 날이면 문장들은 그들을 따라다니며 외칠 것이다. 나는 무얼 좋아해요.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 입을 열지 않고도 나를 설명하는 방법. 그 귀엽고 유쾌한 묘안은 대문자 T를 닮은 어떤 조각이다.

현재를 선물할게요

이진수 프린트 프레젠트 서비스

이 유쾌한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사람을 만났다. 이진수는 《GQ》 콘텐츠 에디터, 네이버문화재단 온스테이지 기획위원을 거쳐 프리랜서 에디터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프린트 프레젠트 서비스는 어떻게 태동했는지, 그에게 티셔츠는 어떤 존재인지 물었다.

PPS를 시작한 계기 시작을 하게 된 결정적인 순간은 없는 것 같아요. 도랑물이 모여 개울이 되고 계곡이 되고 강이 되는 것처럼 ‘일어났다’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항상 저는 방구석에 쓸모없는 것들을 모아두는 아이였습니다. 티셔츠는 그런 것들 중 하나이기도 했고, 제가 좋아하는 밴드나 아티스트의 티셔츠를 사면 그냥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처음엔 굿즈를 소유하고 소비하는 게 좋았어요. 하나둘 모으기 시작했고 매거진 에디터로 일하면서 개인의 SNS조차 플랫폼이 되는 시대를 겪고 나니, 티셔츠도 하나의 플랫폼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티셔츠는 취향을 표현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수단으로 너무나 좋아요. 왜냐하면 사람이 입고 돌아다닐 수 있거든요. 어디든지요. 

이름의 뜻 사람들에게 선물을 프린팅해 준다는 의미와 더불어, 스쳐 지나갈 수 있는 ‘현재, 지금’을 프린트해 준다는 중의적인 표현이에요.

프린트 프레젠트 인터뷰를 시작한 이유 티셔츠를 프린트하는 ‘브라더 GTX pro’ 기기를 구매하고, 브랜드 이름을 짓고, 남편의 브랜드 쇼룸 공간에 신세를 지고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많은 고민이 들었어요. 3-4개월은 슬럼프도 겪었죠. 출근길에 눈물도 났지만, 결국 나를 구원할 사람은 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게 티셔츠 브랜드, 의류 사업일까? ‘No’였어요. 제가 삶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은 언제나 ‘사람’과 ‘이야기’가 있는 곳이었고, 티셔츠 역시 그 수단으로 존재할 때 유의미했어요. 그래서 동기 부여를 하기 위해 콘텐츠를 시작한 거죠. 티셔츠 한 장만 받고 응해준 친구들에게 아직도 너무 감사합니다. 지금도 사이트는 쇼핑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B2B 사업을 더 많이 하고 있어요.

티셔츠 제작 과정 앞서 언급한 브라더 GTX pro는 우리에게 익숙한 브라더 미싱, 프린터 등을 제작한 회사의 디지털 의류 인쇄기입니다. 잘 알려진 ‘김씨네과일’도 이 기기를 쓰고 있어요. 한 장, 한 장 사람이 다 만든다는 것이 특징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커스텀이 용이해요. 일반적으로 컴퓨터에서 문서를 프린트하는 것과 비슷한 과정이라고 생각하시면 쉬워요. 단, 면직물에 프린트하는 만큼 전후로 특수한 처리 과정이 필요합니다. 인쇄 전 잉크 용액이 잘 흡수되도록 도움을 주는 전처리 용액을 발포한 뒤 열 프레싱 진행. 이후 본 인쇄를 진행하고 또다시 최종적으로 마감 열 프레싱을 하죠.

나에게 티셔츠의 의미 어떤 의미가 구체화되었다고 말씀드리기에는 제가 아직 초보 사장인 것 같아요. 매번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티셔츠를 만들고 싶어서 시작한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제 기대와 상대방의 기대를 맞추고 조율하는 일이 어렵기도 합니다. 회사에 소속되어 일할 때와 다르게 개인으로 일을 하다 보니, 매일 스스로 사춘기에 맞닥뜨린 중학생처럼 심각해지곤 해요. 때때로 내가 삶의 너무 많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나 싶을 때가 있거든요. 지구가 이렇게 오염되고 있는데 굳이 나까지 옷을 만들어야 하나,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옷이 주제인 이슈에 못 할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집에서 놀고 있는 티셔츠를 활용하는 리프린팅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니 기대해 주세요.) 하지만 그럼에도 변함없는 부분은 모든 게 디지털로 쉽게 흩어지는 것 같고, 나라는 인간이 우주의 먼지 같고, 당장 제가 내일 죽을지도 모르지만 이 유한함을 기억하며 기록하고 감사하며, 떳떳한 의미로 채워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앞으로의 계획 욕심이 없는 편이라 사업에 엄청난 열정이 없고, 그냥 모든 걸 그만두고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해요. 그저 지금처럼 티셔츠를 좋아하는 마음을 유지하면서, 꾸준히 고양이들 사룟값을 벌면서,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자의든, 타의든요.

제 티셔츠를 의뢰합니다

나도 나만의 티셔츠를 만들고 싶었다. 준비물은 옷에 담고 싶은 문장과 사진 그리고 설레는 마음.
물건을 의뢰한 지 며칠 후, 이진수 에디터에게 연락을 받았다. 티셔츠가 프린팅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Editor’s Comment

원하는 문구는 “Love, Reads Books, Drink Water”입니다. 언젠가 내 아이에게 세 가지만을 당부할 수 있다면 하고 싶은 말을 생각해 본 적 있어요. 저 자신에게 늘 건네는 이 문장이 바로 떠오르더라고요. 누군가를 아끼는 저만의 방식은 사랑하고, 책을 읽고, 물을 많이 마시라는 말을 하는 거예요. 사진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주 들렀던 국립현대미술관을 직접 찍은 필름 사진입니다. 티셔츠에 새긴 문구와 함께, 소중한 이들을 떠올리고 싶어요.

한번 입어볼까요?

서촌 작업실에 들르자, 부부가 환히 나를 반겼다. 이진수 에디터와 패션 브랜드 ‘소프터SOFTUR’를 운영하는 조항현 대표다. 이미 티셔츠를 제작해 두었지만 사진이 조금 흐릿하게 표현돼 아쉽다는 두 사람. 사진을 좀더 또렷하게 프린트해 보겠다며 옷 한 장을 새롭게 꺼냈다. 경쾌한 음악을 들으며 잠시 기다리니, 따끈한 티셔츠가 완성됐다. 소중히 여기는 문구와 장면을 새긴 작품은 또 다른 나 같았다. 나를 닮은 옷, 내가 담긴 옷. 이렇게 특별한 티셔츠라면 또 만들고 싶어!

PPS’s Comment

필름 사진과 일상의 균형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담긴 문장들을 전해 받고, 느껴지는 차분함과 맑은 기운을 오기가미 나오코荻上 直子 감독의 영화 포스터처럼 표현해 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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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차의진

자료 제공 프린트 프레젠트 서비스 일러스트 임경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