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비추는 색깔

나의 부끄러운 빨강

감정을 비추는 색깔

나의 부끄러운 빨강

빨강 하면 부끄러움부터 떠오르는 게 아니라 열정이나 화려함 따위를 떠올리게 될 수 있을까? 색을 변하게 할 수는 없지만 온도는 변할 수 있을 거 같다. 뜨겁고 붉은 내가 점차 따뜻해지고, 때론 미지근해졌으면 좋겠다. 무미건조한 게 아니라 불같이 뜨겁다가 적당히 따스하고, 때로는 미지근하게 은근한 사람이 되고 싶다.

대학교 3학년 때 발표수업이 있었다. 40명 정도 모여 있는 강의실이었고, 나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입을 뗐다. “저는 긴장하면 얼굴이 아아주 빨개집니다. 고등학교 때 별명은 레드인간이었어요. 혹시 발표를 들으시다가 제 얼굴을 봐도 너무 놀라지 마세요.”

사람들은 웃었고, 나는 안심했다. 다행히 무사히 발표를 마쳤다. 29년 동안 꽤 많은 별명을 들으며 자랐다. 그중 기억에 남는 별명은 몇 개 되지 않는데, 가장 흔한 건 백세주, 백세카레였고, 백 살 먹은 마귀할멈이라는 별명도 있었다(친언니는 백설공주였는데, 나는 왜…). 그중에서도 단연 기억에 남는 별명은 레드인간이다. 고등학생 때였는데, 누가 지어주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고등학교 2학년 체육대회 날이었다. 5월 중순은 초여름처럼 더웠고, 우리 반은 피구 시합 중이었다. 나는 바글거리는 아이들 틈에서 열을 내지 않으려고 심호흡을 하고 몸을 최소한으로 움직였지만 서서히 얼굴로 피가 몰리기 시작했다. 한번 빨개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어지기에 마음이 조급해졌고, 어딘가로 숨고 싶었다. 아이들이 심각하게, 또는 이상하게 바라볼 게 뻔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시선이 싫었다.

그때 어떤 친구가 날 보며 외쳤다. “어? 레드인간이다!” 모두가 날 보며 빵 터졌다. 사실 지금 생각해도 창의적인 별명이기는 했다. 그날 이후로 내 별명은 레드인간이 되었고, 나는 꽤 쿨해 보이고 싶은 학생이었기에 나를 희화화하며 먼저 그 별명을 언급하기도 했다.

나는 얼굴이 잘 빨개지는 사람이다. 선천적으로 피부가 얇고, 오랜 스테로이드 연고 사용으로 모세혈관이 확장되어 안면홍조가 있다. 여기서 빨개진다는 건 보통 사람처럼 살짝 상기된 정도가 아니라, 정말 빨간색이 된다. 

내 얼굴이 빨개질 때마다 사람들은 ‘얼굴이 왜 이래? 얼굴에서 피나는 줄, 더위 먹었구나, 얼굴이 익었네 익었어.’ 따위의 말들을 망설임 없이 해댔고, 그땐 그 말들이 무례하다는 걸 잘 몰랐다. 하지만 수치스러운 감정에는 늘 면역이 없었다. 빨간 얼굴은 매번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고, 나는 부끄러울 때마다 빨간 얼굴이 되곤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 빨강과 부끄러움은 동의어나 마찬가지다.

어릴 때부터 날 부끄럽게 만드는 일은 아주 많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부끄러움의 이유는 언제나 타인에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 바지에 똥을 쌌을 때, 반장선거에 나갔는데 달랑 한 표를 받았을 때,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했을 때, 친구들이 좋지 않은 피부를 보며 놀렸을 때, 가난 때문에 비교당했을 때 등등. 타인이 없었다면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고 부끄러운지도 몰랐을 일들. 특히 가난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건 어른들 때문에 알게 됐다. 

타인을 과도하게 의식했기에 부끄러운 일이 잦았고, 그래서 얼굴이 자주 빨개졌다. 대학교 때는 발표나 토론에 자신이 없어서 무시당할까 봐 두려웠고, 내가 쓴 글이 별로라서 부끄러웠다. 직장에서는 일을 못하는 거 같아서, 소개팅할 때는 상대가 날 마음에 안 들어 할까 봐 불안했고, 그 마음이 또 부끄러웠다.

서른을 앞둔 지금은 예전처럼 얼굴이 빨개지지는 않는다. 부끄러움 때문에 얼굴이 빨개지는 감정홍조는 항불안제로 어느 정도 컨트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의 동요를 눌러주기 때문에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다고 부끄러운 일이 아주 없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영화 <미쓰 홍당무>의 주인공 양미숙은 안면홍조증을 앓고 있다. 심통 난 얼굴로 “내가 뭐 어때서!”라고 외치는 그녀는 누가 봐도 비호감 캐릭터다.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말하고, 늘 남들을 탓하고 욕하던 그녀는 영화 말미에 서 선생의 딸 종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정말 내가 안 창피해? 사실 난 내가 너무 창피해.”

남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양미숙은 결국 스스로 자신을 부끄러워한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만다. 내가 별로라는 거 나도 안다고, 특유의 빨개진 얼굴로 말이다.

이십 대 중반까지 타인 때문에 자주 전전긍긍하고 부끄러웠다면, 지금은 나 자신 때문에 부끄러운 일이 많아졌다. 사실 타인 때문에 부끄러웠다고 생각하던 어린 시절도 내가 나를 부끄러워했기에 느끼던 열등감일 수도 있다. 내 안에 없는 건 절대 느끼거나 알아챌 수 없으니까. 나는 자주 부끄러움을 느끼고, 그래서 내가 싫은 날이 많았다. 심한 날에는 내가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타인은 전혀 알 수 없는데도 나 자신만은 알고 있기에 부끄러운, 비밀 같은 일들 때문에 말이다.

나는 옷 속에 감춰진, 매일 긁어서 붉게 상처 난 피부가 싫었다. 매번 원피스로 가리는 두껍고 군살 많은 허벅지도, 야식과 술로 차곡차곡 쌓아온 뱃살도, 내 글에 자신이 없어서 남의 글을 한참 동안 훔쳐보며 질투하고 좌절하면서도 글을 쓰지 않는 게으름도,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다고 떠들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위선도, 타인을 비웃고 무시하면서도 아닌 척하는 음흉함이, 아주 많이 부끄러웠다. 어릴 때보다 교활해져서 완벽하게 숨길 수 있다는 사실이 더 부끄러웠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 혼자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히는 일들이 늘어갔다.하지만 요즘에는 나를 지키기 위해 합리화를 받아들이려 하고 있다. 부끄러움은 적어도 나아질 수 있는 여지를 내포하는 일이라고 자위한다. 생각만큼 행동할 수 없다면 말이라도 뱉어놓고 지켜가자고 다짐한다. 어차피 살아가는 동안 부끄러운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니까. 우리는 모두 미완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테니까.

나는 보다 완벽한 나를 원했다. 나 자신이 부끄러워서 더 더 완벽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부족한 나를 채워가는 방법을 연구하며 부끄러움을 줄여가려는 중이다. 아직은 더디고 멀었지만 말이다. 내년이면 서른이 된다. 빨강 하면 부끄러움부터 떠오르는 게 아니라 열정이나 화려함 따위를 떠올리게 될 수 있을까? 색을 변하게 할 수는 없지만 온도는 변하게 할 수 있을 거 같다. 뜨겁고 붉은 내가 점차 따뜻해지고, 때론 미지근해졌으면 좋겠다. 무미건조한 게 아니라 불같이 뜨겁다가 적당히 따스하고, 때로는 미지근하게 은근한 사람이 되고 싶다. 사실 나 자신에게 당당해질 수 있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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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백세희(《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