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의 편린들

자고 일어났을 때 “어, 꿈인가?” 할 때가 더러 있다. 흩어지는 꿈의 조각이 아쉬워 더듬더듬 머리맡에 둔 연필과 공책을 찾는다. 뭐라 적었는지도 잘 모르겠는 비뚤배뚤한 글씨 사이로 어슴푸레 이미지가 그려질 때, 나는 비로소 꿈을 낚았다고 생각한다.

안미옥

꿈의 안과 밖

어릴 때 자주 꾸던 꿈이 생각난다. 꿈의 기억은 보통 아침이 되면 대부분 사라지고, 오래 기억하면 하루 이틀 정도인데.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꾸던 꿈이 아직도 생각나는 이유는 너무나 자주 꾸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꿈을 꾸지 않지만, 여전히 기억나는 꿈은 두 가지다. 하나는 내가 바비큐처럼 기둥에 매달려 돌아가다가 순식간에 몸의 안과 밖이 뒤집히는 꿈이다. 마치 주머니를 뒤집듯이, 뒤집히는 순간 늘 잠에서 깨어났고 너무 무서워 한참을 다시 잠들지 못했다. 나머지 하나는 조금 더 긴 꿈이다. 대중목욕탕에 물은 없고 바닥에 사람들이 누워 있다. 많지는 않았고 대여섯 명 정도. 지푸라기를 엮어 만든 덮개가 그들의 머리끝까지 덮여 있었는데 나는 그걸 하나하나 열면서 얼굴을 확인하다가 깨곤 했다. 깨고 나면 꼭 가위에 눌렸다. 

요즘은 자고 일어나면 꿈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대신 세 살 아이와 함께 자다가 아이의 꿈을 목격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잠꼬대도 하고 심해지면 반수면 상태로 울면서 꿈을 겪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럴 땐 내게 무언가 요구를 하고, 해결되기 전까지 다시 잠들지 못한다. 예를 들면, 홀쭉해진 애착 인형을 들고 “베베가 바람이 다 빠졌어! 바람 넣어줘!” 하면서 운다거나, 모기 물린 자리에 밴드를 붙여 달라며 운다. 이럴 땐 아무리 사실적인 설명을 해줘도 잘 달래지지 않는다. 베베를 들고 후후 풍선 불 듯 바람을 넣어주는 시늉을 하거나 진짜로 밴드를 붙여줘야 안심하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아이에게 꿈을 꾸었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했다. 세 살 정도 되면 꿈을 인지한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엔 자다 깬 얼굴로, 아침의 목소리로 아이가 내게 말했다. “왜 꿈은 밖으로 못 나오는 거야?” 꿈은 잠 속에 있기 때문이야, 나는 대답했는데. 그날부터 아이의 질문이 자주 떠올랐다. 최근 내가 꾸는 꿈에는 대부분 현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등장했고 대부분 악몽으로 이어진다. 현실 같은 꿈과 꿈같은 현실 사이에서 나는 자주 혼란스러워하곤 했다. 그런데 아이의 질문이 이상하게 나를 안심하게 했다. 침범할 수는 있으나 넘어갈 수는 없다는 것, 내가 어떤 악몽을 꾸더라도 꿈이 나의 현실을 상하게 할 수 없다는 명백한 사실이 주는 안심. 그러다 한밤이 되면 다시 의심하기도 했다. 정말로 꿈은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것일까? 어쩌면 이미 꿈은 제 마음대로 밖을 활보하고, 경계 없이 넘나들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어디에도 가본 적 없는 얼굴로 앉아 있는 것은 아닐까? 현실은 꿈의 바깥일까? 꿈의 아주 깊숙한 안쪽 아닐까? 그러다 자면서 히히히 웃는, 즐거운 꿈을 꾸는 아이의 웃음소리를 들으면 이런 생각도 어딘가 꿈처럼 날아가기도 했다.

안미옥 시인. 시집 《온》, 《힌트 없음》,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가 있다.

정의정

Yes Means Yes

꿈에서는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하지만, 내 꿈에서는 현실에서 하는 만큼만 재연된다. <인사이드 아웃>(2015)을 본 이후 꿈 내용이 시원찮으면 머릿속에서 한창 꿈을 만들고 있을 꿈 공장장을 욕하게 되는데, 이 공장장은 도무지 열심히 하려는 의지가 없어서 늘 하던 것만 한다. 꿈에서 나는 하늘을 날아다니지도 않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듣고 싶은 말을 듣지도 않는다. 주로 꾸는 건 다음 날 회사에 가면 해야 할 일들을 쳐내는 꿈이다. 꿈에서 일한 만큼 현실에서도 일이 되어 있으면 좋았을 테지만 그럴 일은 없다. 일만 두 번 하는 꼴이다. 

그나마 꿈 공장장이 가장 애써서 만든 꿈 중 기억나는 건 케이트 블란쳇Cate Blanchett이 나왔을 때다. 어느 서울 인근의 고급 호텔 로비에서 나와 케이트 블란쳇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캐롤>(2015)에서처럼 은근한 어투를 사용하면서 나에게 호텔 카드키를 건넸다. “내 방은 1401호예요.” 그러고는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뭐야, 나 루니 마라Rooney Mara야? 지금 케이트 블란쳇한테 대시 받은 건가?

같이 올라갔다면 나는 케이트 블란쳇과 잔 사람이 될 수도 있었겠지, 꿈속에서지만. 하지만 현실에서 못 하는 일은 꿈에서도 못 한다. 나는 로비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아, 하지만 나는 애인이 있는데!’ 하며 정절(?)을 지키는 쪽을 택했다. 나는 종종 그때 꿈을 생각한다. 눈 딱 감고 그냥 올라갈걸…. 꿈인데 뭐 어때…. 나중에 애인에게 말해주자, 애인도 그런 기회가 생기면 잡았어야 한다며 다음에 또 꾸게 되면 자고 와서 후기를 남겨 달라고 했다. 그리고 또다시 기회가 왔다. 

이번에는 꿈속에서 케이트 블란쳇이 신작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나는 그를 보필하는 비서 역할이었다. (<타르>(2022)가 개봉하기 전이었다. 개봉 후였다면 장르가 스릴러 내지는 사회 고발이었을지도.) 그는 K-홍보 일정에 맞추어 ‘강남스타일’을 추고 “사랑해요, 연예가중계” 인터뷰를 몇 건 한 다음 나한테 자자고 해놓고는 소주를 먹고 곯아떨어졌다. 꿈속의 나는 생각했다. ‘판단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는 안 된다!’ 웃자고 한 얘기지만 꿈에서도 안 된다, 암 안 되고말고. ‘Yes Means Yes’입니다. 상대가 누구든, 장소가 어디든 기억합시다.

정의정 낮에는 인터넷 서점, 밤에는 퀴어페미니스트 책방에서 일한다.

엄지혜

꿈도 나를 닮았네

어릴 적부터 잠을 좋아했나?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잠을 만병통치약으로 여긴다. 몸이 뻐근하거나 피로가 몰려오면 일단 눕는다(누울 수 있는 상황이라면). 30분, 1시간, 2시간을 자고 나면 급속도로 몸이 충전된다. 일도 육아도 살림도 모두 해낼 수 있는 느낌이랄까. 어떠한 피로회복제, 자양강장제보다 낫다. 40년 인생 가운데 불면증을 겪은 날짜가 50일쯤 될까. 형편없는 체력의 소유자지만 아직까지 큰 병 없이 살아가는 건 매일 비축해 놓는 ‘잠’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일주일 중 3일은 꿈을 기억한다. 사람들은 항상 꿈을 꾸지만 모든 꿈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니, 꾼다는 것이 아니라 기억한다는 편이 맞을 듯하다. 현실적인 성격답게 꿈도 스케일이 작다. SF 작가 인터뷰를 한 날에도 내 꿈의 배경은 독립영화관이다. 어제 나의 심신을 불쾌하게 한 K씨와 도무지 속내를 알 수 없는 Y씨가 등장해 나를 쌍방향으로 괴롭힌다. 꿈에서라도 싸우고 싶은데 현실처럼 꾹 참은 채 눈을 뜬다.

두 번째 육아 휴직을 기념하여 어제는 <나는 솔로>를 ‘본방 사수’하고, 오늘은 <하트시그널4>를 몰아 봤다. 왜 이렇게 남의 연애사를 지켜보는 일은 흥미진진한지, 꿈에서라도 달달한 연애를 하고 싶은 욕망이 아직 샘솟는 것일까?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연이어 보았으니 가능한 일 아닌가 싶은데, 웬걸 오늘 자 꿈의 배경은 다음 주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강의 현장이었다. 수강생이 한 명도 오지 않아 텅 빈 강의실에서 애꿎은 마우스만 만지작거리는 내 모습이라니. 왜 꿈의 소재도 나를 닮았나? 꿈에서라도 현실의 걱정에서 해방될 수 없는 걸까? 차라리 기억나지 않는 편이 더 나은 꿈만 꾸는 2023년 가을이여! 그래도 오늘은 <스트릿 우먼 파이터2>를 볼 것이다. 꿈에서라도 춤꾼이 돼보고 싶어서. Fight! (바다 언니, 사랑해요.)

엄지혜 《태도의 말들》, 《돌봄과 작업》(공저) 등을 썼다. 2023년이 지나기 전에 두 번째 에세이를 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다. 이것만큼은 꼭 꿈이 아닌 현실로 이룰 것이다.

이지은

마치 꿈을 꾸는 기분이야

한때 자주 보던 사이였으나,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 그저 그 시절이 우리에게서 지나가 버려 더 이상 보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그와 나 사이에 연결된 다른 이들이 전혀 없어, 어디서도 소식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의 안부가 궁금할 때가 있다. 어쩌다 해 질 녘 불어오는 바람이 다르게 느껴지면서 머물고 있는 이 계절이 아쉬워질 때쯤, 혹은 라디오에서 나온 어떤 노래가 불러온 추억 귀퉁이에서 소환되거나, 읽던 책에서 등장인물과 겹쳐 떠오른다거나 할 때면. 

그런 사람들이 꿈에나 나와 얼굴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간혹 생각한다. 실제로 만나면 정말 어색할 테니까. 괜히 우리 사이에 쏜살같이 흘러버린 시간들을 눈으로 분명하게 셈하게 될 테니까. 서로 시선을 피하며 막연한 약속을 내놓은 채 어색한 대화를 마무리할지도 모르지. 아니면 아예 못 본 척 재빠른 걸음으로 지나쳐 버릴지도. 배를 20분쯤 타고 들어가는 서해 어느 작은 섬에서 3박의 여름을 보낸 적이 있다. 짓궂은 장난처럼 ‘김철썩’이라고 주인아저씨 명패가 붙은 민박집에서, 밤새 소란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무인도 아닌 무인도 같은 곳에서, 마음껏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적당한 고립감을 느끼며 애매한 멤버십 트레이닝을 하던 그때. 당시 우린 아무것도 안 하는 걸 두려워하며 뭐든 열심이었다. 그러다 잠시라도 짬이 나면 바다에 나가 서로 물에 빠뜨리고 놀았다. 너나 할 것 없이 크게 웃으며 소리를 질렀고 그런 와중에도 우리는 누군가와 눈빛을 나누고 몰래 손을 잡고 재빨리 놓으며 달아오르는 마음을 지긋이 누르느라 각자 바빴다.

지구가 태양을 스무 바퀴쯤 돌고 나니, 어느새 뱃길은 사라졌다. 해저 터널이라고 알려주지 않았으면 그저 지루한 땅속이라고 느꼈을 도로를 빠르게 달리고 나니 그 섬에 도착한다. 여기저기 건물들이 솟았고 거침없이 초록 사이를 가로지르며 도로는 끝없이 길어졌는데, 그때 그 섬의 쓸쓸한 풍경을 기억하는 나는 “이거 꿈 아니야?”라고 아무에게나 묻고 싶어진다.

어딘가에서 무엇이든 열심일 친구들에게, 사진을 찍어 그때 그 바닷가를 보여준다. 작은 꿈이 피어나 어두운 밤에 말 못 할 사연 있어 내게 빛나네. 귓가에 노랫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온다. 모래사장 위 내 키보다 크게 쌓은 장작더미에서 불길이 치솟고 그리웠던 친구들이 목청껏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까만 벨벳 같은 하늘엔 쏟아질 듯 별이 가득하고 내 손을 놓칠세라 손깍지를 끼고 있는 네가 있다. 나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그렇지, 이건 꿈이다. 깨고 나면 너의 온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 꿈.

이지은 출판사 유유히에서 책을 만드는 편집자. 에세이 《내 인생도 편집이 되나요?》를 썼다.

손현

꿈은 꿈일 뿐

침대에 눕자마자 금방 잠드는 편이다. 누운 지 3초 만에 잠든다고 해서 한때 별명이 ‘3초자’이기도 했다. 이런 나도 가끔 꿈을 꾸고, 아주 가끔 그걸 기록한다. 2014년부터 최근 10년 사이 기록한 꿈을 보니, 대체로 ‘불안’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먼저 모터사이클을 처음 배우기 시작하며 여행을 준비하던 2014년. 그때는 브레이크를 늦게 잡아 접촉 사고가 난다든지, 주유하는데 휘발유가 사방으로 튄다든지, 내용도 제각각인 꿈을 꿨다. 아마도 자전거를 처음 배웠을 때처럼 두 바퀴만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이 탈것에 익숙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2015년 모터사이클로 여행하던 6개월 중에도 간혹 꿈을 꿨다. 당시 며칠 전부터 타이어를 언제 바꿀지 고민했는데, 간밤에 타이어가 펑크 나는 꿈을 꾸고는, 그날 바로 앞뒤 타이어와 브레이크 패드를 모두 교체하기도 했다.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뒤의 일상은 대체로 평온했다. 대신 내 삶에 큰 변화가 있거나 현재 일하는 곳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애써 모르는 체하려는 기분과 불안이 스멀스멀 꿈으로 나왔다. 휴대폰 메모 앱에서 발견한 2018년 4월의 꿈은 이랬다. “재입대하는 악몽을 꿨다. (이 레퍼토리는 평생 반복되는 건가.)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이 큰 배가 있는 항구에서 누군가 나에게 이 배를 타야 한다고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성별을 떠나 사회에서 알게 된 다른 동료들도 보였다. ‘설마 군함은 아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를 인솔하는 사람들은 모두 군인이었다. 심지어 용모 단정한 사람으로만 골랐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멋졌다. 신분증 하나 달랑 가지고, 언제 돌아올 기약 없이 이 배를 타야 하나 곤란해하다가 나중에 꿈인 걸 알고는 안도의 한숨을 크게 쉬었다.” 참고로 그해 5월에 나는 결혼했다. 

가장 최근에 꾼 꿈은 회사 생활의 스트레스가 그대로 반영됐다. “어떤 스타트업의 워크숍 현장. 두렵고 긴장되던 발표를 마치니 대표로 추정되던 사람이 잘했다고 나를 안아줬다. 다 같이 술을 마시며 즐기는 뒤풀이 시간. 어떤 음료수에서 나온 듯한 미러볼 모양의 은색 구Sphere가 회전하며 점점 커지더니, 급기야 그걸 감싸던 두꺼운 유리 상자를 산산조각 내며 ‘펑’ 하고 터졌다. 꿈속의 나는 느낌이 불길하여 얼른 문을 열고 대피하려는데, 그 찰나에 내 등에도 유리 파편들이 튄다. 따갑다. 현장엔 왠지 더 크게 다친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 차마 고개를 못 돌리겠다.” 새벽 1시 32분에 악몽을 꾼 채로 깨어났는데, 깬 직후에도 등 전체가 따가웠다. 불이 켜진 거실과 부엌 등을 다시 끄고 잠들었다. 그날은 회의 때 누군가에게 직설적인 피드백을 받은 날이기도 했다.

‘꿈은 꿈이지 뭐.’ 싶다가도 무의식이 전하는 목소리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큰 변화를 앞두고 있든, 불안한 상태이든 한 가지 다행인 건 언제나 꿈에서 깨어날 수 있다는 점. 오늘 하루는 별 꿈 없이 푹 잠들길 바라본다.

손현《서울에서 태어나 건축을 공부했다.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공장을 짓다가 퍼블리, 매거진 《B》를 거쳐 핀테크 회사에서 글을 짓고 있다. 《글쓰기의 쓸모》, 《모터사이클로 유라시아》, 《요즘 사는 맛》(공저), 《썬데이 파더스 클럽》(공저) 등을 썼다. 현재 두 돌을 넘긴 딸의 양육자이기도 하다. 집안일을 마치고 테니스 코트로 나가는 게 요즘 삶의 낙이다.

이재영

다시 아침이 밝아오더라도 잊히지 않을

여름 아침, 구름이 많았고 햇살이 방을 비추고 있었다. 오늘도 끝내주는 악몽 두 편을 꾸고는 아침 눈을 떴다. ‘오늘만은 늦잠을 자고 싶었는데….’ 머리가 지끈지끈한 이유는 꿈에서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공포 영화를 만드는 감독처럼 꿈속 주인공의 시나리오를 개편한다. 나는 매일 꿈을 꾸는데, 100편 중 98편이 악몽이다. 악몽을 꾸지 않기 위해 주변 사람들의 말을 적극 수용해 풍수지리 어쩌고를 믿어보기로 했다. 침대 위치를 바꿔보거나, 반대로 눕거나, 침대 프레임을 팔고 토퍼만 사용해 보기도 했는데, 소용없었다. 브레이너 제이의 숙면 여행도 들어보고, 요가도 수행하고, 수면에 도움이 된다는 향기 디퓨저도 사보고, 심지어 전기 코드를 모조리 뽑아 전자파 제로 상태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몽은 계속되었다.

그렇다면 집 문제가 아닐까. 매일 꿀잠을 잔다는 친구의 집도, 좋은 침구류만 쓴다고 소문난 호텔도, 테라스 밖으로 바다가 절경을 이룬 미야코지마의 리조트도 어림없었다. 나의 꿈은 무대와 주연을 바꿔가며 극강의 시나리오가 매일 밤마다 플레이되었다. 꿈 내용은 주로 이렇다. 누군가와 격하게 말다툼하거나, 추격전이 펼쳐지거나, 뛰어내려야 하거나, 재입대하거나…. 분명 무서웠는데 깨고 나면 이상하고 지나치게 웃긴 꿈. 어쩌면 나는 꿈을 여행하고 있는 건 아닐까.

오늘 밤은 어제저녁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무렵, 겨우 가늘어진 빗줄기 사이로 선명히 그려진 무지개와 보랏빛 하늘을 추억한다. 올해도 무더위를 갱신한 여름이었지만, 이토록 멋진 무지개를 본 건 처음이었다. 비와 여름이 만나 이루어진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오늘 밤도 악몽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오늘 밤은 다시 아침이 밝아오더라도 잊히지 않을 꿈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이재영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이자 출판사인 6699프레스를 운영하고 있다. 겨울에 태어났고 여름을 좋아한다. 클래식FM <세상의 모든 음악>의 애청자이기도 하다.

김상민

고독의 세계

우리 모두 일정량의 외로움을 품고 산다. 시선을 내면으로 옮기면 마치 밀물과 썰물처럼 움직이는 외로움이 감지된다. 물론 사람마다, 그리고 삶의 지점마다 끌어안은 고독의 크기는 제각각이다. 인지조차 어려울 만큼 미미한 시절이 있는 반면, 외로움에 잠식돼 술 없이는 잠들지 못하는 밤도 존재한다. 하지만 결국 하나의 사실로 귀결된다. 우리는 가끔, 자주 그리고 지금 아니면 어느 과거, 혹은 미래 언젠가 외로웠고 외롭고 외로울 것이다.

다만 나이 들며 고독의 감정과 더 과감히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의 판단은 나중으로 미루기로 한다.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일이 줄어 다행인가 싶다가도, 이 무뎌짐이 강인함보단 익숙함에서 기인한 변화란 사실에 담담히 서글퍼진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독하게 외로운 순간이 있다. 꿈을 꾸고 눈뜬 순간, 휘발되는 기억을 겨우 이어 붙여 이해 가능한 서사의 상태로 남겨둔 순간, 그러나 그걸 나눌 이가 없을 때의 고독함이다. 그때는 많이 외롭다. 화자만 존재하는 꿈은 매번 쓸쓸하게 망각의 영역으로 사라진다. 

반대편 기억으로 가본다. 꿈 대신 외로움을 망각하던 순간으로. 그런 시기는 “잘 잤어?”로 시작해 “잘 자.”란 인사로 끝맺는 하루 속에 있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 여닫으며 인사 나누는 사이, 나는 사랑으로 결속된 관계를 그리 정의해 본다. 비록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다 한들, 그것은 단단히 연결된 마음이자 공존이며 각자의 자리에서 동거하는 삶이다.

물론 수면의 세계는 그 공고한 연결을 잠시나마 끊어낸다. 잠은 태초부터 모든 인간에게 부여된 혼자만의 시간이기에. 그래서 꿈은 철저히 나 혼자 축조하는 세계다. 사랑하는 이의 손을 붙잡고 잠들지언정, 꿈은 나머지 한 손으로 헤엄치며 홀로 나아가는 발걸음이다.

고독의 세계 문턱에서 우리는 잘 자라는 말로 사랑하는 이를 배웅한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함께하고 싶은 따스한 마음이다. 반대로 잘 잤냐는 인사와 함께 사랑의 대상이 홀로 지나온 고독의 시간을 보듬는다. 동시에 함께하는 세계로 돌아왔음을 일깨우고 환영한다.

꿈은 매번 사람을 외롭게 한다. 반면 외로움을 희석하기도 한다. 나 자신을 감싸고 있는 외로움의 밀도를 나는 꿈에서 벗어난 순간마다 직감한다. 내일 아침도 부스스 눈뜰 것이다. 여러분도, 나도 그 순간이 조금은 덜 외롭길 빈다.

김상민 낮에는 브랜드 마케팅, 밤에는 글을 쓰며 살아간다. 《낯가림의 재능》, 《아무튼, 달리기》 등을 썼다.

이주연

잠의 다림질

눕기만 하면 바로 잔다. 어젯밤에도 그랬다. 아빠랑 여행 계획 짜면서 맥주 한 캔을 나누어 마셨는데, 먼저 다 마신 아빠가 잠시 쓰레기 비우러 나간 사이 곯아떨어졌다. 사실 눕기만 하면 자는 것도 아니다. 앉아서 원고를 쓰다가도 자고, 책을 읽다가도 잔다. 전철이나 버스에서도 잔다. 서서 자다가 무릎이 꺾여 넘어지거나 쥐고 있던 소지품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사람들 이목이 집중돼 얼굴이 빨개지는 일도 잦다. 바쁘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못 잔 어떤 시절에는 걷다가도 잤다. 대단히 깊이 쿨쿨 잠이 든다기보다는… 몇 초 만에 꿈뻑 잠이 든다. 말 그대로 걷다 졸아버리는 것이다. 나의 잠은 이토록 심상치 않다. 

토막 잠도 잘 자고, 긴긴 잠도 잘 자는데 꿈이랑은 별로 친하질 않다. 사람은 잠잘 때 언제나 꿈을 꾼다고 하는데, 난 눈 떴을 때 기억에 남는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일까, 주변 사람의 꿈 이야기를 수집하는 것은 재미있다. 사람들의 꿈은 다채롭다. 꿈 이야길 들으면서 “너, 어제 이러저러한 일 있어서 그런 꿈 꾼 거 아냐?” 하고 추리하는 것도 재미있고, 너무 현실 그대로라 어이없는 꿈도, 기이하고 이상해서 얻다 사연이라도 보내고 싶어지는 꿈도 재미있다. 그런데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다들… 꿈에 사람이 나오는 거야? 내 꿈엔 대체로 사람이 없다. 어쩌다 나오더라도 보통은 모르는 사람이다. 그래서 아는 사람이 꿈에 나오면, 그걸 기억하는 아침이면 머리가 멍하다. 내 꿈에 왜 나온 거야?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야? 

사람과 가볍게 만나는 걸 즐기지 않는다. 사람이 싫은 건 아닌데 내 이야기가 멋대로 왜곡되거나 오해 받는 상황이 어렵다. 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대화보다 해명하는 데 더 많은 신경을 쓴다. 혹자는 나에게 지나치게 세심(소심)하다고,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웃지만 나는 대체로 마음이 작고 자주 떨린다. 더 조심스럽게, 더 친절하게, 더 섬세하게 말하고 싶다. 그래서 많은 이야기를 하는 날이면 곰곰 되짚게 된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는 시간보다 그 말들을 하나씩 톺아보는 시간이 더 길어진 때부터 사람 만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인가, 꿈에서라도 사람을 만나면 자꾸 돌아보게 된다. 나 무슨 말했지? 내가 혹시 (꿈이지만) 기분 상하게 하진 않았을까? 요즘 유독 마음이 작아진 걸 보니 내 어딘가가 살짝 찌그러진 것 같다. 마음의 구김을 말끔하게 펴기 위해선 잠을 자야 한다. 나는 얼른 이불 속에 파고 들어 ‘야빵이’를 찾는다. 10년째 끌어안고 자는 보들보들하고 멍하게 생긴 팬더 인형. 이 녀석을 꼭 안고 잘 자면 물 먹은 화분처럼 활짝 피어나겠지. 내일 아침은 좀더 반드러워지자!

이주연 《AROUND》 에디터. 제법 긴 시간 책을 짓고 살아왔다. 책과 어린이, 그리고 귀여움이 세상을 구할 거라 믿는다. 여름방학이라는 단어가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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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주연

글 김상민, 손현, 안미옥, 엄지혜, 이재영, 이주연, 이지은, 정의정 / 일러스트 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