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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진 ㅡ 콘텐츠 크리에이터
스물넷 상진은 12만 구독자의 응원을 받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이십이세 상진’이자, 제주에서 귤을 키우는 농부다. 그리고 ‘적당한 게스트하우스’, 여행사 ‘제작소’를 운영한다. 그곳에서 만나 인연을 맺고 친구 이상의 존재가 된 사람들, 상진은 그들을 가족이라고 부른다. 그는 오늘도 낯선 이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한다. 훗날 친구들, 아니 가족들과 함께 살 작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상진 씨 영상을 오래전부터 봐왔는데, 이렇게 만나 반가워요. 자기소개부터 해볼까요?
안녕하세요. 서귀포에서 감귤 농사를 본업으로 하고, 주말에는 게스트하우스 사장으로 일하는 김상진입니다. 이런 저의 일상을 담는 유튜버이기도 해서 총 세 가지 직업을 갖고 있네요.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여행사도 운영하고 있어요.
직업이 세 가지인 만큼 바쁜 일상을 보낼 것 같아요. 일과는 어떻게 흘러가나요?
보통 새벽 4시쯤 일어나 한 시간 정도 차를 타고 게스트하우스에 가서 손님들과 아침 산책을 다녀와요. 그럼 8시쯤 되는데,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귤밭으로 출근해서 오후 늦게까지 일해요. 퇴근하고 저녁에 유튜브에 올릴 영상을 편집하면 자정쯤 되고요.
상진 씨 말대로라면 꽤 이른 시간에 아침 산책하러 가겠네요?
네. 희망자만 5시 반에 금오름에서 일출을 보는 거라 난도가 있어요. 가면 제가 해설사처럼 오름 설명도 해드리고, 예전에 사진 일을 한 경험을 살려서 손님들도 찍어드려요. 관광객들은 더 자고 싶은데 사장 놈이 억지로 깨워서 크고 이상한 밴에 태우니까 되게 힘들어하세요(웃음). 그런데 찍어드린 사진을 보시면 대체로 만족하고 또 오고 싶다고 하시죠.
색다른 경험이겠어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싶어 하던 이유도 궁금해요.
저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는 걸 아주 좋아해요. 사람들이 저를 한번 만나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하거든요(웃음). 제가 가진 에너지가 꽤 크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영상으로 전달하는 것도 좋지만 직접 사람들을 만나서 전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어요. 그렇게 만난 분들이 저를 통해서 회복했다는 말을 해줬는데 여운이 남더라고요. 그 상황을 재현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나 봐요. 어느새 제주도에 와서 이렇게 게스트하우스를 하게 됐어요.
적당한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손님들이 참석하는 독특한 파티도 열린다고요.
음식을 나눠 먹는 포틀럭 파티인데, 손님들끼리 한정된 시간 동안 금방 가까워지도록 반말을 쓰게 해요. 저처럼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말도 잘 못하고 소심한 분들이 많은데, 말을 놓으면 서로 친근감을 느끼더라고요. 그리고 고민 파티도 열려요. 저는 게스트하우스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서로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휴식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어서라도 마음에 있는 짐을 내려놓으라고 말하고 싶어요.
투숙객들은 주로 어떤 고민을 나눠요?
직장인이나 대학생이 많이 오는데 고민의 결은 다들 비슷하더라고요. “직장 생활 힘들다.”, “학과가 나랑 안 맞는 것 같다.” 이런 가벼운 고민부터 시작해서 가정사 이야기를 하는 분들도 있어요. 가까운 친구보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오히려 더 쉽거든요.
그럴 수 있겠어요. 누군가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일은 오래전부터 시작했죠?
맞아요. 어릴 때부터 반항아였어요. 학교도 잘 안 나가고 성적도 애매한 학생이었는데, 추진력이 좋았고 전국으로 여행 다니는 걸 좋아했어요. 그런데 청소년인 저를 재워줄 곳이 없는 거예요. 20대가 되었다고 해도 숙소 가격은 부담스러웠고요. 그래서 청소년들도 올 수 있고, 원하는 만큼만 돈을 낼 수 있는 도네이션 하우스 ‘상진여행집’을 열었어요. 그때 저랑 집 꾸밀 사람을 구한다고 인스타그램에 공지를 올렸고, 면접을 보고 뽑힌 다섯 명이랑 일주일간 살면서 숙소를 꾸렸어요.
낯선 이들과 사는 경험은 어땠어요?
건달들이 “우리 식구잖아!”라고 말하기도 하잖아요(웃음)? 그때 친구들이 가족처럼 느껴졌어요. 삼시 세끼 밥도 같이 만들어 먹고, 농사하면서 땀도 흘리고…. 그러면서 많이 가까워졌거든요. ‘친구’ 그 이상의 가까움을 표현할 단어는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또 그 말을 엄청나게 좋아하고요.
피를 나눈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함께 지낸 건 그때가 처음이었나요?
저는 아홉 살 때부터 열일곱 살까지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자라서 공동생활은 익숙했어요. 저희는 기독교적인 주제로 공연예술을 선보이는 문화 사역 공동체였기 때문에 항상 다른 교회를 방문했어요. 유랑 서커스단처럼 어른들과 작은 밴을 타고 전국 팔도를 누비던 기억이 나요. 저는 그 안에서 사물놀이도 하고 뮤지컬도 하는 역할을 했죠.
그래서 타인과 함께하는 일에 좀더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거군요. 상진 씨는 여행사 ‘제작소’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무전여행을 떠나기도 하죠.
무전여행 프로그램은 한 달에 한 번, 3박 4일 동안 열려요. 열 명 정도 모아서 가고, 제주도 서쪽에서 남쪽으로 90킬로미터 정도를 무작정 걸어요. 무전여행은 어떻게 보면 무모하고 요즘 시대에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힘든 일이잖아요. 다들 혼자 도전하는 걸 어려워한다고 생각했고, 제가 느낀 무전여행의 감정을 그대로 전하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쉽지 않은 여정이겠는데요(웃음)? 3박 4일 동안 같이 고생하면 서로 꽤 친밀해지겠어요.
저는 친구들과 “그래, 우리 다음에 또 보자.” 정도로는 만족을 못 하는 사람이더라고요. 같이 고생하고, 같이 밥 먹고, 같이 깊은 이야기를 해야만 진짜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여기에 동의하는 분들이 많이 오다 보니 여행이 끝나면 ‘절친’이 되죠.
여행기를 담은 유튜브 영상 제목에 “나는 한 달에 한 번 가족이 생긴다.”라고도 썼어요. 짧은 만남이지만 참여자들을 가족이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있나요?
단순한 친구로 끝내고 싶지 않아서 아쉬운 마음에 가족이라는 포지션을 주는 것 같아요. “너 이제부터 내 가족이야.” 하고요. 처음 본 사람들과 힘든 시간을 함께 보내고, 내 민낯도 보여주고, 가까운 식구들한테 하지 못했던 이야기도 하니까 정말 친해지거든요.
상진 씨가 말하는 가족은 전형적인 가족의 의미와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만난 지 하루도 안 돼서 사랑할 수 있는 관계면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경험을 거의 매일 하면서 살고 있고요. 저는 그런 관계가 한 500명 있었으면 좋겠어요(웃음). 친구 이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 정도 많기를 바라요.
상진 씨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기는 건 어떤 의미예요?
응원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지는 거예요. 저는 열여덟 어린 나이부터 유튜브를 하면서 운 좋게도 많은 관심을 얻게 됐고, 그 과정에서 대가 없는 응원을 가득 받았어요. 그 사랑을 돌려주지 못하면 유튜브도 게스트하우스도 시작한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죠. 게스트하우스나 제작소로 제가 받은 격려를 돌려줄 수 있는 자리가 생겼다는 게 가장 유익한 점이에요.
그렇게 만난 이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사람도 있어요?
저 때문에 직업을 바꾼 사람들 생각이 많이 나요. 무언가를 하고 싶지만, 현실에 부딪혀서 내면에만 가두고 있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이 제작소에 오면 “지금 해야 한다. 해가 바뀔수록 네가 꿈꾸는 게 멀어질 거다.”라는 말을 항상 해주거든요. 그 이야기를 듣고 일반 직장인이었다가 제주도 사진작가가 된 친구도 있고, 수능을 네 번 봐서 들어간 대학교를 그만두고 제과점을 연 친구도 있어요. 지금 다들 잘되고 있어서 다행이에요.
인연이 계속 이어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워낙 많은 이들을 짧은 기간 동안 만나다 보니 생기는 어려움도 있을 것 같아요.
처음엔 그런 강박이 있었어요. 영상으로 나를 보고 왔는데 이 사람들을 어떻게든 만족시켜야겠다는 생각이요. 그래서 항상 긴장한 상태로 사람을 만나고 부담스럽게 굴면서 오히려 인연을 놓친 적이 많았어요. 지금은 나를 보고 왔다고 해도 대화가 잘 통하지 않으면 좋은 추억 정도로 남길 수 있는 방법도 아는 것 같고, 인간관계를 유하게 하는 방법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어서 관계를 맺는 일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요.
사람을 대하는 방법 중에서 무얼 터득한 건가요?
처음 누군가를 만날 때 우린 서로 동등하다고 생각하는 걸 배웠어요. 제게 가장 문제가 됐던 건 만나는 손님을 나보다 우월하다고 항상 생각했던 점이에요. 그 생각 때문에 늘 긴장이 됐는데 어디서 일하든, 무슨 직업을 갖든, 나이가 어떻든 그냥 다 같은 사람이더라고요. 다양한 직업과 환경에 있는 분들을 만난 게 큰 도움이 됐어요.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훗날 상진 씨가 그리는 가족은 어떤 모습이에요?
지금은 친구들과 떨어져 있잖아요. 나중엔 제 마을을 만드는 게 최종 목표예요. 약간 사이비 같은 이야기지만 가족이라 칭하는 친구들을 입주시켜 놓고 사람들이 체험할 수 있는 자그마한 관광 단지를 만들고 싶어요. 그게 항상 꿈이었어요. 그래서 지금 가족들을 한 명씩 만들고 있는 거고요(웃음).
에디터 차의진
포토그래퍼 김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