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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Gonna Be Around
20대 초반의 여행은 죄다 자아성찰과 관련된 것이었다. 이를테면 비행기를 8시간쯤 타고 기차와 버스, 인력거 따위를 갈아 타가며 겨우 도착한,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깡촌의 싸구려 여관 화장실 하수구에서 나 자신을 발견한다든가 하는 일 말이다. 아, 닭살 돋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나이 때는 보통 양쪽으로 시야가 차단되는 안경을 쓰기라도 한 것처럼 세상을 보는 시각이 좁기 마련이니까. 20대 후반에 접어들어 돈을 좀 벌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자아성찰은 식도락과 쇼핑으로 대체되었다. 나는 뭐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먹고, 또 샀다. 지금 아니면 또 언제 먹어?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사? 나이가 들어도 시야가 넓어지기는커녕 욕심만 늘어난 것이다. 이럴 수가. 세월이 흘러 30대가 되었고 내게도 가족이 생겼다. 아이들이 어릴 때 여행의 목표는 안전, 안락, 편의 따위였다. ‘맛집’을 찾아가도 계획이라도 한 듯 발광을 하는 아이들을 남편과 번갈아 끌어안고 달래느라 우아한 식사는커녕, 뭔가를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했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씨름을 하고 난 밤, 남편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가도 맥주 캔을 손에 쥔 채로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그럼에도 언제까지고 이런 식의 삶이 계속될 줄 알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1년에 한 번쯤은 휴가를 내어 3박 4일 정도 도쿄나 홍콩으로 떠날 수 있는 삶. 리조트에 가서 아이들을 키즈클럽 같은 데 맡기고 우리는 풀 사이드에 누워 칵테일을 마실 수 있는 삶. 1년에 한 번 정도니까 돈 걱정 같은 건 하지 않고 실컷 먹고 실컷 사고 실컷 즐길 수 있는 삶. 하지만 동시에 탈출하고 싶기도 했다. 해가 뜨기도 전에 불편한 양복에 불편한 구두에 불편한 가방을 맨 차림으로 집을 나가, 해가 지고도 한참 후에야 술에 취해 돌아오는 남편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가 가려고 했던 곳이 과연 어디였는지 의심스러워지곤 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나의 간절한 염원이 효과가 있었는지 남편의 커리어는 점진적으로 엉망이 되기 시작했다. 그가 두 번째로 회사를 그만 두게 되었던 날,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여행이나 갑시다.” 그러나 막상 일곱 살과 다섯 살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가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조식 뷔페가 괜찮은 쾌적한 호텔과 수영장 따위를 검색하고 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도대체 왜 여행을 가려는 거지? 이런 건 한국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잖아.’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려야 했다. 이 나이를 먹어서 히피 흉내를 내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패키지 관광단 스타일의 여행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일단은 가보기로 했다. 내가 20대 때 꿈꾸었던 대로, 가족과 함께 허름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자고 노점식당에 앉아 땀을 닦으며 밥을 먹기로 했다. 밤기차를 타고, 트럭을 타고, 뚝뚝을 타고, 통통배를 타보기로 했다.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진짜 여행을 해보기로 했다. 우리는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수도 방콕에서 남부의 크라비를 거쳐 피피섬으로, 방콕으로 돌아와서 북부의 치앙마이로 올라갔다가 다시 방콕으로 내려오는 이동거리가 엄청난, 비효율적이기 짝이 없는 2주간의 진짜 배낭여행 코스로. 하지만 두려웠다. 집 대문만 나서도 다리 아프다고 업어 달라, 차 태워 달라 징징대는 아이들이 이 험난한 여정을 과연 버틸 수 있을까? 돌이 지난 후에는 아이들을 어린이집으로, 유치원으로 떠밀어 보내느라 48시간 이상 아이들과 함께 붙어 있어본 적도 없는 불량 부모인 우리가 과연 아이들과 함께하는 336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 혹시 아이들을 잃어버리면? 아이들이 다치면? 걱정은 거의 공포 수준이었다.
방콕의 여행자 거리인 카오산 로드Khaosan Road에 무사히 도착해서 식당을 찾기 위해 걸어갈 때였다. 20대 때 수도 없이 와본 곳이건만 이번엔 아이들과 함께였다. 자연스럽게 경계심이 생겼다. 마약에 취한 듯 몽롱한 표정의 비쩍 마른 여자가 비틀거리면서 걸어갔다. 길바닥에 쪼그리고 앉은 남자들이 매서운 눈빛을 날렸다. 온몸에 문신을 새긴 서양인들이 공허한 얼굴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있기에는 지나치게 비교육적인 곳이었다. 이런 곳에 아이들을 끌고 온 나 자신을 잠시 자책하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교육적이고 비교육적인 것의 기준은 뭘까? 세상이 신도시의 아파트촌처럼 단정하기만 한 곳일까? 세상에는 매일 아침 양복을 차려 입고 정해진 시각에 출근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지저분한 골목과 이런 사람들도 엄연히 세상의 일부다. 아이들을 그런 세상에서 차단시키는 것만이 과연 교육적인 해결책일까? 이런 고민이 무색하게도 아이들은 달라진 환경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게다가 2만원짜리 여관방이든, 3만원짜리 침대기차든, 10만원이 넘는 호텔방이든 개의치 않고 잘 잤다. 천원짜리 수박주스, 천5백원짜리 볶음밥도 잘 먹었고 만 5천원짜리 뷔페는 더 잘 먹었다. 아픈 일 한 번 없이 씩씩하게 걸어 다니는 것은 물론 트럭에도 오르고 통통배의 갑판 위에서는 한껏 바닷바람을 즐겼다. 더불어 일상에 대한 강박과 부담감에서 벗어난 우리는 아이들에게 여유롭게 집중할 수 있었다.
화난 얼굴로 짜증만 내던 부모가 부드러워지자 아이들도 싸우거나 투정도 부리지 않고 매일 매일을 즐겁게 지냈다. 아이들은 골목에 누군가가 놓아둔 작은 어항 속의 물고기를 보면서도 신기함을 감추지 않았다. 숙소 앞에서 어슬렁대던 고양이들과는 심심할 때마다 어울려 놀았다. 함께 기뻐할 작은 행운들이 매일 우유처럼 배달되었다. 예약도 하지 않고 즉석에서 고른 숙소의 가격 대비 훌륭함이라든지, 역한 냄새를 참고 들어간 식당 음식의 빼어난 맛이라든지. 태국에는 수영장이 딸린 저렴한 숙소가 널려 있었기에 아침저녁으로 아이들과 물놀이를 하고 수영을 했다. 몸이 절로 가벼워졌다.
우리는 검게 그을린 얼굴로 집으로 돌아왔다. 여름에서 출발했는데 도착하니 겨울이었다. 돌아오기 전에는 분명 많은 것들을 다짐했지만 쉽게 잊어버렸다. 다시 현실에 부딪혀야 했다. 그럼에도 몇 가지의 것들은 잊지 않았다. 차를 거의 타지 않고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 나이에 외국에 가서 무엇을 얼마나 기억하겠느냐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아이들은 모든 것을 기억했고, 종종 함께 모여 앉아 태국에서의 추억을 나눴다. 가족과 함께 나눌 추억이 있다는 건 정말 기쁜 일이었다. 조금 부족하고 조금 불편한 것이 반드시 불행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나는 사람들이 반드시 혼자서 낯선 곳을 여행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기간은 아무리 짧아도 보름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래야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내가 낯선 숙소의 하수구에서 나 자신을 발견한 것처럼. 하지만 이 나이까지 그런 문제를 끌어안고 머리를 싸매고 있는 건 좀 모자란 짓이다.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생각할 때다. 앞으로의 삶이라든지,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라든지. 그리고 이제는 혼자 여행을 하기보다는 내가 본 것, 느낀 것들을 곁에 있는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 자기 자신밖에 몰랐던 20대의 여자아이가 30대의 여자로 나이 들면서 달라진 게 바로 이것이다. 나누고 싶어진 것, 나눌 줄 알게 된 것. 바로 그것을 여행이 깨닫게 했다.
피피섬
PHI PHI ISLANDS
가족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피피섬을 추천한다. 방콕에서 열두 시간쯤 버스를 타고 가거나 비행기로 크라비Krabi로 간 후 다시 배를 타고 두 시간 정도 이동하면 마침내 섬에 도착한다. 에메랄드 빛 바다에 밀가루 같은 백사장, 해질녘에는 에어컨보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해변에서 아이들은 모래성을 쌓는다. 식당과 바, 가게들이 좁은 섬을 메우고 있어 소소한 구경거리가 있고, 무엇보다 좋은 건 차가 들어오지 못하는 섬이라 한껏 여유를 즐길 수 있다는 점. 그렇다고 마냥 한적하지만은 않다. 여행자의 성향에 따라 스노클링이나 스쿠버다이빙, 각종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된다.
글 사진 한수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