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진부한 형태의 사랑

한수희

LOVE
LOOKING BANAL

가장 진부한 형태의 사랑

사랑을 할 때마다 나는 진부해진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나만 그런가 싶었더니 아니었다. 다들 그렇게 사랑을 하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진부한지 깨닫게 될 때, 그제야 비로소 나는 사랑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그건 무척 슬픈 일이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었을 때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다름 아닌 내 진부함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그렇게 진부한 인간이 아니었다. 신파 따윈 질색이었다. ‘내가 너를 지켜주겠네.’, ‘별이고 달이고 다 따다 주겠네.’, 질질 짜고 울고 불며 ‘너 없이는 못 사네.’ 이런 신파는 사양이었다. 그런데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사랑에 빠지게 되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진부한 사람이 되었다. 그 사실이 당황스러워 나는 코끼리의 털처럼 뻣뻣해졌다. 그래서였는지 나와 너무 비슷한, 진부함을 경멸했던 남자와는 잘 되지 못했다. 우리는 서로의 진부한 감정들을 비웃고 무시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가까이 다가서는 걸 두려워했다. 그러면 우리가 정말로 진부한 사람들이 될 것만 같아서. 

사랑보다 자의식이 앞서던 20대 초반의 연애는 20대 중반에 끝이 났다. 당연했다. 사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니까. 그렇게 고상하게 끝내놓고 진부하게 울었다. 이제는 마음 놓고 진부해져도 될 때였다. 평소였으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듣지 않을 유행가를 반복재생하며 목을 놓아 울었다. 매일 밤 술을 마시고 하루에 담배를 한 갑씩 태우면서 ‘이러다 죽지.’ 하는 생각도 했다. 회사를 무단결근하고 을왕리 바닷가에도 갔다 왔다(진부함의 대미를 장식하기 적당한 장소였다). 을씨년스러운 바다를 바라보며 철없는 연인들에 둘러싸인 나는 당장 죽을 것 같은 얼굴로 담배를 태웠다. 그렇게 꼴사납게, 진부하게, 신파조로 나는 사랑에서 서서히 빠져나왔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어떤 일일까. 마지막으로 사랑에 빠져본 것이 무려 12년 전인 내게는 그 감정이 가물가물하기만 하다. 아마 그때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제정신이었다면 요즘은 매일 서로를 무덤덤하게 스쳐 지나가는 저 남자 때문에 속을 태웠을 리가 없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남들에게 뭐 좋은 일 있느냐는 소리를 듣고, 잠을 자지 않아도 힘이 불끈불끈 솟았을 리가 없다.

22세의 봄, 스미레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다. 드넓은 평원을 곧장 달려가는 회오리바람 같은 격렬한 사랑이었다. 그것은 지나는 길에 있는 모든 존재를 남김없이 쓰러뜨렸고, 하늘 높이 감아 올려 철저히 두들겨 부수었다. 그리고 기세를 조금도 늦추지 않고 바다를 건너 앙코르와트를 무자비하게 붕괴시키고, 한 무리의 불쌍한 호랑이들과 함께 인도의 숲을 뜨거운 열로 태워 버렸으며, 페르시아 사막의 모래바람이 되어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성으로 이루어진 어떤 도시를 통째로 모래로 묻어 버렸다. 멋지고 기념비적인 사랑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스푸트니크의 연인》 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스푸트니크의 연인》은 ‘스미레’라는 22살의 여자가 ‘뮤’라는 39살의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소설의 화자는 스미레를 좋아하는 남자 ‘나’이다. 세 사람이 그리는 사랑의 궤도는 서로 엇갈려 있다. 그들은 지구라는 행성 주위를 외로이 회전하며 서로를 스쳐 지나갈 뿐인 세 개의 각기 다른 인공위성이다. 

소설의 저 첫 문단처럼 한 사람의 사랑은 그의 세계에서는 엄청난 위력을 가진 것이다. 대개 사랑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무언가를 채우지 못한다. 사랑은 오히려 모든 것을 파괴한다.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은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기보다는 불행하게 만들기 십상이다. 지금껏 별 불만 없이 살아온 사람도 상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처지를 비관하게 된다. 전에는 혼자 씩씩하게 잘 걷던 길도 더 이상 그렇게 걸을 수 없다. 함께 걷고 싶은 사람이 생겼으니까. 그런데 그럴 수 없으니까. 더없이 만족스러운 저녁 시간도 이제는 결정적으로 무언가가 빠진 것처럼 느껴진다. 바로 그 사람 말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에게 친절해도 그 한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거나 내가 사랑한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사실에 미아라도 된 기분이 든다. 아니면 이 행성에서 영영 추방당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성과 평정심을 찾기란 쉽지 않다. 오버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처지를 비관하지 않거나 과대 포장하지 않기도 쉽지 않다. 감추기도 쉽지 않고 드러내기도 쉽지 않다. 뭐든 쉽지 않다. 사랑에 빠지게 되면. 

스미레는, 자기가 이 사람에게 사랑을 느끼고 있다고 확신했다. 틀림없다(얼음은 차갑고 장미는 붉다). 그리고 이 사랑은 자기를 어딘가로 끌고 가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강한 흐름에서 몸을 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자기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전혀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가 끌려가는 곳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특별한 세계일지도 모른다. 그곳은 어쩌면 위험한 장소일 수도 있고, 그곳에 숨어 있던 것들이 자기에게 치명적인 깊은 상처를 입힐지도 모른다. 또한,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기는 이제 물러설 수 없다. 물이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기는 수밖에 없다. 설사 자기라는 인간이 그곳에서 불길에 휩싸여 완전히 소실되어 버린다 해도. 

-무라카미 하루키, 《스푸트니크의 연인》 중에서 

도대체 어떻게 해서 누군가에게 빠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분명히 아무렇지도 않던 사람이 왜 어느 순간 머릿속을 떠나지 않게 되었을까. 별것도 아닌 그 사람을 왜 이렇게 손에 넣고 싶은 걸까. 하루 종일 양쪽 가슴 사이가 무겁고도 텅 빈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바로 그 지점에서 식도와 위장과 대장에 걸친 길로 뜨겁고 따가운 것들이 계속해서 새어나가는 기분이 드는 건 또 왜일까. 스무 살에 사랑에 빠진 내 친구는 어느 날 밤 소주를 마시며 이렇게 말했다.

“내 머리를 톱으로 썰어내 버리고 싶어.”
나는 그 말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사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면 자신의 머리를 톱으로 썰어내 버리고 싶을 정도로 그 애는 괴로워했다. 그럼에도 도리가 없다. 톱으로 썰어내 버리거나 아예 머리에 총알을 박지 않은 이상은 떨칠 수가 없다. 이렇게 망가져 버린다고 해도, 영영 회복될 수 없다고 해도, 마음이 가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사랑에 빠진 자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 

안톤 체호프의 단편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은 흔하디흔한 불륜에 빠진 남녀의 이야기다. 처음에는 가벼운 바람이었던 그들의 연애는 끝내는 오랜 세월에 걸친 진실한 사랑이 되어버린다.

오레안다에서 그들은 교회 가까이에 있는 벤치에 앉아 말없이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아침 안개 속으로 희미하게 얄타가 보였고, 산 정상에는 흰 구름이 미동도 없이 걸려 있었다. 나뭇잎들이 사각거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고, 그저 매미들만 소리쳐 울었다. 그리고 아래에서 들려오는 단조롭고 황량한 파도 소리는 우리를 기다리는 안식, 영원한 잠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직 얄타도 오레안다도 없었을 때도 이렇게 소리를 냈을 것이고, 지금도 소리 내고 있으며, 우리가 존재하지 않을 그때에도 이렇게 무심하고 황량한 소리를 낼 것이다. 이 항상성 속에, 삶과 죽음에 대한 전적인 무관심 속에 우리의 구원과 이 땅에서의 삶 그리고 끊임없는 진보가 약속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새벽빛을 받아 너무도 아름다워 보이는 젊은 여인과 나란히 앉은 구로프는 바다, 산, 구름, 드넓은 하늘이라는 이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배경에 매혹되어 마음이 평온해졌다.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우리 스스로 존재의 고상한 목적과 인간의 가치를 망각한 채 생각하고 저지르는 일들을 제외하면, 사실 이 세상 모든 것은 아름답지 않은가.

-안톤 체홉,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중에서

사랑하는 안나와 함께 있을 때 구로프는 비로소 인생의 비밀이나 목적, 진리를 알게 된 것 같다. 그의 인생은 이제 완벽할 정도로 아름답다. 그렇지만 사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저 안나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그에게 세상은 다른 것이 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가 없을 때, 그는 지금껏 당연했던 자신의 인생을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어버렸다.

안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을 깨달은 구로프는 안나와 함께 이 현실을 바꿔보기로 결심한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 사랑은 덧없다. 수많은 여자와 사랑을 하고 또 이별을 한 구로프가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그 사람만 있으면 내가 완벽해질 것 같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빛을 향해 달려들다 장렬하게 타죽는 나방들처럼 사랑에 뛰어든다.

머리를 감싸 쥐며 그가 물었다.
“어떻게?”
그러자 조금만 지나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새롭고 아름다운 인생이 시작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멀고도 먼 길이 남아 있으며,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이제 막 시작되었음을 두 사람 모두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안톤 체홉,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중에서

처음 좋아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밤거리를 걷던 순간에, 그 길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으면 했다. 우리는 어떻게 그렇게 서로를 좋아할 수가 있었던 걸까. 누군가가 했던 말처럼, 우리는 어떻게 그렇게 바보 같을 수가 있었던 걸까.

사랑을 할 때 사람들은 오직 두 사람만이 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고귀하고 특별하고 선택받은 존재라는 착각에 빠지지만, 그래서 이 사랑은 절대로 더럽혀지거나 깨질 수 없다고 믿고 싶을 테지만, 그건 착각일 뿐이다. 그 착각에서 빠져나오게 되는 것은 연애 관계를 끝냈을 때가 아니라, 자신이 딱히 고귀하지도 특별하지도 선택받지도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다.

이것이 지구상에 사는 누구라도, 그러니까 영자도 말자도 복자도 메리도 심슨도 스폰지밥도 짱구 엄마도 다 겪고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비로소 나는 겸허한 마음으로 나의 사랑이 끝났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결국 앙코르와트는 무너지지 않았고 인도의 숲도 불타지 않았고 페르시아 사막의 도시도 모래에 묻히지 않았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단지 내가 다시 혼자가 되었다는 것밖에는.

“나는 그때 이해할 수 있었어요. 우리는 멋진 여행의 동반자이지만 결국 각자의 궤도를 그리는 고독한 금속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것은 멀리서 보면 유성처럼 아름답지만 실제로는 각자 그 틀 안에 갇힌 채 그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죄인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 거예요. 두 개의 위성이 그려 내는 궤도가 우연히 겹쳐질 때 우리는 이렇게 얼굴을 마주볼 수 있죠. 또는 마음을 합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건 잠깐, 다음 순간에는 다시 절대적인 고독의 틀 안에 갇히게 되는 거예요. 언젠가 완전히 연소되어 제로가 될 때까지 말이에요.” 

-무라카미 하루키, 《스푸트니크의 연인》 중에서 

스푸트니크의 연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ㅣ문학사상ㅣ365쪽

무라카미 하루키의 목소리로 전해 듣는 러브스토리 《스푸트니크의 연인》. 도저히 사랑을 외면할 수 없는 이들의 모습이 하루키 특유의 비유와 상징을 통해 그대로 드러난다. ‘어째서 우리는 고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그녀가 우리에게 남긴 질문에 이제 대답할 차례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안톤 체호프 지음ㅣ더클래식ㅣ212쪽

구로프는 마흔도 되지 않은 나이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공을 이뤘다. 하지만 겉에서 보이는 것과 달리 그의 결혼생활을 행복하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얄타에서 홀로 여름휴가를 즐기던 그는 우연히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안나’를 만나게 되며 일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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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수희

사진 이자연